주말에 황학동 들러서 판보러 다니다가 보긴 했지만 사지 못한 국악 전집이 있습니다. 그 뒤로 다시 가서 물어보니 안가지고 나왔다고 하시더군요. 몇 번을 주말에 갈 때마다 물어보기 그렇더군요. 티나게 관심을 보이면 주인장이 값을 비싸게 부르게 됩니다. 특히 이 노점 사장님 음반 가격은 레코드 가게 가격 뺨칠 정도로 쎈 편입니다. 그런데도 가끔 독특한 음반을 가지고 나오시기 때문에 빼먹지 않고 들르는 곳입니다.
자꾸 물어보면 값이 올라가고 그러면 다시 눈물을 머금고 포기해야 하는 악순환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는 사이 다른 사람이 사갈 수도 있구요. 해서 유심히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내색을 안하고 가지고 나왔는지 살펴보기만 했습니다.
예전에 처음보고 가격이 안 맞아서 포기하고 왔는데, 이번에 노점에 펼쳐놓은 엘피를 뒤지다 보니 이것이 보이더군요. 처음 발견하고 다시 본지 족히 3개월은 된거 같습니다. 주인장에게 못 이긴척하며 가격을 물어봅니다. 전보다 조금 가격이 내려 갔습니다. 여기 들르기 전에 엘피 사느라 지갑에 있는 돈 다쓰고 현금 인출기에서 돈을 새로 찾았습니다. 여기 오기 직전에 들른 다른 노점에서 판 한장을 사면서 만 몇천원을 써버렸습니다. 그런데 노점 사장님 귀신같이 처음 현금 인출기에서 인출한 금액과 같은 금액을 부르더군요. 오늘도 못 사가나 싶어서 지갑에 있는 돈이 이것 뿐이라고 하면서 만 몇천원 부족한 지갑을 보여주었더니 가져가라고 합니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싶었지만 표정 관리하면서 지갑에 있는 돈을 천원짜리까지 털어서 주고 전집을 받아 들었습니다.
점심을 카드되는 식당을 찾아야 하는데, 이 동네선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닙니다. 하긴 점심시간이 살짝 지났어도 배가 고프지도 않더군요.
고려대학교 민족문화 연구소에서 펴낸 시조창 전집입니다. 천 재질의 하드카바에 내용물은 국악 전집의 특성상 민트급입니다. 점심을 먹고 집에 와서 찬찬히 확인을 해보니 이 전집에 이상한 음반이 한장 끼어져 있습니다.
원래는 이렇게 생긴 음반만 들어 있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이 음반 사이에 낱장으로 오아시스에서 나왔던 이 음반이 한장 끼워져 있습니다.
10여년 전에 한두번 본것 같긴한데 사지는 않았던 음반입니다. 종소리가 까지 들어야 하나 싶어서 였습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걸 가지고 있던 사람이 이 전집에 넣어두는 바람에 들어가 있었던 것입니다. 원치 않았지만 어쩔수 없이 갖게 된 셈입니다. 궁금해서 한번 들어나 보자고 턴테이블에 얹어봤습니다.
굵고 톤에 느끼한 남자 성우의 설명에 이어 종소리가 나옵니다. 그런데 성우 목소리는 조금 거슬리지만, 종소리는 듣고 있으니 좋더라구요. 아무 생각도 안나고 소리 그 자체에 집중이 됩니다.
음악은 듣다보면 어떤 음이 나올까 자연스럽게 기대가 되고 그 기대에 부응하는 소리가 나오면 만족이 되어서 기분이 좋아집니다. 물론 그 기대를 무참히 깨버리거나 살짝 비틀어서 나오게 되면 관심이 더 증폭되는 중간 과정을 거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국은 처음에 시작한 고향으로 돌아오거나 기대한 음으로 마무리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인간을 즐겁게 하고자 만들어낸 음악의 속성입니다.
범종소리를 듣고 있으니 어떤 음이 나올지 하는 기대가 같은게 사라집니다. 물론 다음은 어떤 종이 나올까하는 생각이 들긴합니다. 종소리가 울리면 그냥 나오는 현재의 소리 그 자체에 몰입될 뿐입니다. 미래에 대한 어떤 기대나 예상이 없이 그냥 소리 자체에 빠져드는 느낌입니다. 인간이 만든 종이고 그것을 치는 것도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치는 행위로 나온 소리가 음악이라고 하기는 좀 뭔가 어색한 느낌입니다. 이것이 음악인지 음악이 아닌지 잘 모르겠습니다.
인간이 만든 종을 인간이 치는 것인데, 음악은 왠지 아닌거 같습니다. 일체의 조직화된 리듬이나 멜로디도 없고 화음도 없습니다. 음악이 아니라면 자연의 소리인가 싶은데 그것도 좀 애매합니다. 자연의 소리는 새소리, 바람소리, 나무가지 흔들리는 소리, 풀벌레 소리 같은 것이겠지요. 듣다보니 자연의 소리인지 아닌지도 궁금하지 않습니다. 걱정 근심 같은 잡 생각이 사라지고 어떤 것을 해봐야 되겠다는 이성적인 생각도 멈춰집니다. 목표나 지적인 성취 같은게 부질없게 느껴집니다. 그저 지금이 좋을 뿐이고 더 듣고 싶을 뿐입니다.
호기심에 걸었다가 한번에 앞 뒷면을 다 듣고 잡음 줄이려고 세척해서 다시 올렸습니다. 자기 전까지 몇 번을 반복해서 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 날 아침 자연스럽게 범종 음반을 검색하고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앞으로 이쪽 음악 아니 이런 소리에 관심을 가지게 될것 같습니다.
엘피 판 사서 듣다가 음악도 아닌 이상한 삼천포로 빠지는 기분입니다.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길은 아닌거 같습니다. 그런데 보편적이지 않으면 또 어떤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 인생은 대신 살아줄 사람은 없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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