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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LP 디깅 일지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by onekey 2024. 3. 8.
음반이야기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롱암
2019.01.10. 12:27조회 851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황학동은 확실히 LP 가격이 싼게 맞습니다. 그 맛에 자주 가게 됩니다. 물론 다 싼건 아니라서 가끔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르는 곳도 적지않게 있습니다. 몇번 나가서 돌아다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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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학동은 확실히 LP 가격이 싼게 맞습니다. 그 맛에 자주 가게 됩니다. 물론 다 싼건 아니라서 가끔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르는 곳도 적지않게 있습니다. 몇번 나가서 돌아다니다 보면 합리적인 가격에 파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을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

가격이 전체적으로 싼것 맞는데, 음반 상태는 민트부터 도저히 들을 수 없는 수준의 상태까지 다양합니다. 그래서 판의 상태를 예의주시해서 봐야합니다. 황학동을 LP를 사려고 돌아다니다 보면 음반 가게 사장님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꽤 알려진 음반가게 사장님이나 직원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도 여기서 사다가 자신의 매장에서 닦고 정리해서 제값을 받고 파는 셈입니다.

먼지가 켜켜히 쌓인 판을 보고 이게 세척기로 닦아서 딱일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해야하는 일이 무수히 반복됩니다. 이 판단을 잘못하면 들을 수도 없는 쓰레기를 돈주고 사게 되기도 합니다. 실은 저도 그런 경험이 꽤 있습니다. 물론 그러면서 판 상태 보는 경험치가 쌓여가기도 합니다.

먼지가 범벅인 판을 이거 닦으면 깨끗해지겠다 싶어서 저렴하게 구입해서 집에 와서 닦아서 민트급으로 바뀌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습니다. 득템이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며칠전에 노점에서 이판을 고민하다 구입을 했습니다.


재킷부터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더군요. 알맹이는 더 가관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먼지가 앞 뒷면 가리지 않고 잔뜩인데, 긁힌 흔적은 이상하게 없는거 같더군요. 아마 팝이나 클래식, 혹은 가요판이었으면 바로 포기하고 안 샀을 텐데, 국악판이라 고민하다 집었습니다.

집에 와서 정성스럽게 1차로 손세척을 먼저 합니다. 워낙 먼지가 심한 경우는 스펀지에 주방 세제 원액을 묻혀서 먼저 애벌 세척을 해줘야 합니다. 그 다음에 이지크린 세척기에 넣고 돌려주면 세척 효과가 극대화 됩니다.

세척을 하고 보니 스크래치 전혀없는 알판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턴테이블에 얹어서 소리를 들어 들어봅니다. 잡음없이 마치 새판처럼 소리가 나옵니다. 어릴적 동네 아주머니들이 흥얼거리던 강강수월래 노래가 흘러 나옵니다. 호기심 많고 고집쎄고 개구쟁이 였던 어린시절로 돌아간 느낌입니다. 노래는 참 이런 면에서 대단한 한 힘을 가진거 같습니다.

이렇게 상태가 안좋아 보이는 판이 민트급으로 변신하면 기분이 좋습니다. 싸게 샀다는 만족감도 있지만, 무엇보다 음악을 들을 수 있게 새롭게 재탄생 시켰다는 뿌듯함이 큽니다. 먼지가 묻은 재킷을 알콜 솜으로 닦으며 흐뭇해하는 나자신을 보면서 국악 LP에 대한 사랑인지 집착인지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얼마전에는 길가 노점에서 이 음반을 찾아냈습니다.


가야금 산조 중에 최고로 치는 신쾌동의 연주 입니다. 더구나 후기인 히트 레코드 버전이 아닌 신세기 버전입니다. 워낙 좋아하는 판이라 바로 알맹이를 꺼내서 확인을 해봅니다. 전체적으로 상태가 괜잖아 보입니다. 다만 가장자리가 약간 휘어져 있는데 심하진 않습니다. 이정도면 판 펴는 기계를 동원하면 어렵지 않게 원상태에 가깝게 회복할 수 있을 것 같더군요.

가격을 물으니 만원 부르더군요. 이게 왠 떡이냐 싶어 다른 판 한장과 같이 값을 지불 했습니다. 판을 사들고 자주 들르는 레코드 가게에 들렀습니다. 사장님이 어떤 판 샀는지 궁금해 하시길레 보시라고 했습니다. 이것저것 꺼내보시더니 바로 이 음반에서 반응을 보이시더군요. 알판을 꺼내서 이리저리 보시더니 가장자리에 약간 불 먹은 자리가 보인다고 하시더군요. 판이 약간 휘어진 것도 바로 보고 아시더군요. 가격을 묻길레 말씀드렸더니 득템이라고 입이 벌어지십니다. 그러면서 이거 불 먹은 곳은 잘 잡아야 할것 같다고 한마디 하십니다.

집에 와서 세척을 하고 음반을 얹어 봅니다. 예상대로 첫 트랙에서 추적을 못하고 판이 튑니다. 판 펴는 기계를 이용해서 한번 교정을 했는데도 효과가 별로 없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가장자리 부분이 뜨거운 것에 노출이 되어 휜정도는 크지 않지만 작은 구간에서 급격하게 휘어서 이걸 잡기가 쉽지 않은 상태로 보이더군요. 시간을 두고 연구를 해서 잡아보도록 노력을 해야 할것 같습니다.

노점에서 샀으니 반품이나 환불은 불가능합니다. 결국 싸게 산게 아니었습니다. 그나마 재킷이 상태가 나쁘지 않으니 재킷 값이라고 위안을 삼아야 할것 같습니다.

나 스스로 이제 좀 판을 볼줄 안다 싶었는데, 그 위에 이 모든 걸 휜하게 다 보고 있는 프로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습니다.

프로의 세계는 깊고도 험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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