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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LP 디깅 일지

어떤 사인 음반

by onekey 2024. 3. 8.

어떤 사인 음반

롱암
2019.01.03. 17:57조회 591
 

어떤 사인 음반

우연히 황학동에서 구한 음반입니다. 특별한 것도 없는 음반인데, 가격이 3만원이니 황학동 치고는 비싸게 붙어 있습니다. 요즘 가요 LP가 비싸다고는 하지만 이 음반은 비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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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황학동에서 구한 음반입니다. 특별한 것도 없는 음반인데, 가격이 3만원이니 황학동 치고는 비싸게 붙어 있습니다.


요즘 가요 LP가 비싸다고는 하지만 이 음반은 비쌀 이유가 별로 없어 보였습니다. 음반이 민트급이라 비싼가 싶어서 음반을 꺼내서 살펴 봤습니다. 음반 상태가 나쁘진 않지만 스친자국도 있고 전체적으로 EX 급 밖에 되지 않습니다.

다음에 상태 좋은 음반이 보이면 사야지 하는 마음으로 음반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러다 혹시 내가 좋아할 만한 노래가 있는지 궁금해서 재킷 뒷면을 봤습니다.
누군가가 사인을 했는지 사연을 적었는지 작은 손 글씨가 보입니다.


글씨를 읽는 순간 음반을 다시 집어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젊은 시절 그 분이 예술로 쓰신 소설을 혈기 왕성했던 저는 묘한(?) 기대속에 사서 야설로 탐독했던 기억이 솟아오릅니다.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에서 출발해서 '즐거운 사라','가자! 장미여관으로', '사라를 위한 변명'이 파노라마처럼 머리를 스쳐지나갑니다.

야한 소설과 수필로 그분과 인연을 맺었지만, 나중엔 그분의 시학과 미학 관련 책도 사보게 되었습니다. 몇해 전 그분의 안타까운 소식을 뉴스를 통해서 접하면서 가슴이 먹먹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는건 그분의 소설과 수필을 당시에 정부에서 음란물로 규정하고 검찰이 기소까지해서 실형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강단에서 열렬히 강의하던 교수가 비리나 성추행이 아닌 책 내용 때문에 수의를 입고 죄수로 감옥에 가야했던 당시의 기가막힌 상황이었습니다.

작은 글씨로 쓰여진 내용을 보면 당시 대학생 가수 였던 지관해가 자신의 노래가 들어간 LP를 지관해의 노래에 좋은 말을 해준 마광수 교수에게 선물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아마도 마광수 교수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엘피가 중고 음반가게로 흘러 들어왔을 것입니다.

묘하게도 마광수 교수는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 지관해 씨는 신학교를 나와서 목회활동을 하는 목사가 되어 있습니다. 그 동시대에 마교수님 책을 즐겨 읽고 흠모했던 저는 LP 로 음악을 듣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 앨범 하나로 80년대를 추억하게 됩니다.

제가 할말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마교수님 부디 그곳에선 사라를 만나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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