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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음악가 이야기

푸르트벵글러의 바이로이트 베토벤 9번

by onekey 2024. 3. 1.
박제성2013-04-08 09:31
추천 46 댓글 0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는 1951년에 녹음한 베토벤의 교향곡 9번 바이로이트 실황 연주의 상업용 레코드 발매를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1954년 그가 타계한 후 HMV(EMI의 전신)는 1951년의 공연실황을 발매하기로 결정했다. 최초의 녹음은 LP 2장 세트로 발매되었는데, LP로 3면이 필요로 했던 기존에 발매되었던 음반들보다 오히려 유리했다. 그리고 나서 LP 1장에 수록할 수 있는 새로운 음반이 출시되었다. 그 이후로 이 2장짜리 세트는 사람들이 애타게 찾는 희귀반이 되어버렸고, 소매가로는 수백만원 이상을 호가하게 되었던 것이다.
 
베토벤 9번 교향곡은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의 디스코그래피 가운데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다음으로 필수적인 콜렉터스 아이템으로 손꼽힌다. 푸르트벵글러의 트리스탄은 1952년 공식적인 스튜디오 녹음으로서, 최초 발매(HMV ALP1030/5)된 직후 카탈로그에서 단 한 번도 누락된 적 없이 꾸준히 발매되었고, CD로도 계속해서 재발매되고 있다. 하지만 1951년 HMV에서 발매한 바이로이트 실황 교향곡 9번은 우여곡절 끝에 세상 빛을 보게 되었다.
EMI와 DECCA는 1951년 7월 바이로이트 축제가 다시 열리자 이동식 레코딩 장비를 옮겨와 세팅을 마치고 역사적인 공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축제의 예술 감독인 빌란트와 볼프강 바그너는 그들의 공연이 레코딩됨으로써 얻는 재정적 이익을 잘 알고 있었다. 1년 후인 1952년 축제의 프로그램 책자에는 크나퍼츠부쉬의 1951년 파르지팔 DECCA반(LXT2651/6, 2/52)과 카라얀이 지휘한 1951년 마이스터징거(LX1465/98, 12/51)와 발퀴레 3막(LX1447/54, 11/51) Columbia 음반이 레코드 상점에 비치되었다는 공고가 게재되었다. 
 
많은 기술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두 레코드 회사는 보석과 같은 그들의 카탈로그를 확보할 수 있었고, 현재 이들 모든 녹음들을 CD로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카라얀의 마이스터징거와 발퀴레 3막은 EMI에서, 라인의 황금 전막은 Walhall 레이블을 통해 발매되었다. 카라얀과 함께 링 전곡을 지휘했던 크나퍼츠부쉬의 신들의 황혼 전곡은 Testament에서 선보이며 열광적인 찬사를 받았고, 전설적인 연주로 평가받아온 파르지팔은 Teldec에서 발매되었다. 한편 EMI와 DECCA, Teldec의 창고에는 카라얀과 크나퍼츠부쉬가 지휘한 링 시리즈 전부를 비롯하여, 더 많은 1951년 녹음들이 보관되어 있다.
이러한 숨겨진 보물들 가운데 푸르트벵글러의 베토벤 9번 공연도 묻혀 있었다. 이 9번은 1951년 7월 29일 바이로이트 축제의 오프닝 공연으로서 연주, 녹음되었다. 하지만 이 녹음 테이프는 지휘자 자신이 시청한 결과, 그의 귀에 들어온 대부분의 녹음들처럼 보관소의 한 켠에 묻히는 최후를 맞이했던 것이다. 그는 이 9번 녹음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던 나머지 삭제되기를 원했다고 한다. 
 
1947년 그의 활동이 재개되자 HMV와의 협정하에 푸르트벵글러는 마지못해 회사를 위해 비교적 적은 수의 스튜디오 레코딩을 내놓았다. 당시 LP 카탈로그에는 이미 에리히 클라이버의 베토벤 교향곡 9번(DECCA LXT2725/6)과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의 베토벤 교향곡 9번(HMV ALP1039/40)이 명연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리고 1947년의 카라얀 78rpm 버전(Columbia LX1097/1105)이 당시까지 잘 팔리고 있었으므로, 월터 레그는 푸르트벵글러의 9번을 나중에 녹음할 기회가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 우선은 그것으로 만족해했다. 
그 기회는 푸르트벵글러의 생의 마지막 시기에 다가왔다. 월터 레그가 창단한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가 1954년 루체른 페스티벌에서 상주 오케스라트로 활동했을 당시, 푸르트벵글러는 그 페스티벌에서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지휘했던 것이다. 그리고 스위스 라디오가 방송, 녹음한 레코딩을 상업적으로 발매하는 안건이 검토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당시 참여했던 성악가들 몇 명이 불만족을 토로했다. 석 달 뒤 푸르트벵글러가 세상을 떠났다. 그제서야 HMV는 1951년 바이로이트 녹음 테이프로 다시금 관심을 돌려 미망인인 엘리자베스 푸르트벵글러와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당국으로부터 이 녹음을 발매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냈다.
 
이리하여 HMV ALP1286/7은 1955년 말 레코드 상점에 나타나게 되었다. 이 LP 세트가 발매되었을 당시에는 한 작품이 LP 4면에 모두 수록되었다는 것과 빌헬름 피츠가 이끄는 탁월한 바이로이트 합창단이 약간 뒤쳐져 녹음된 감이 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로서 3면이 아닌 4면에 수록되었다는 것은 한 악장이 한 면에 모두 수록되었다는 말로서, 3면에 수록하면 음악의 흐름이 반드시 끊기게(3악장이나 4악장이 중간에 끊길 수밖에 없다) 되었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발전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편 합창단의 사운드가 뒤쳐진 듯한 감이 있는 것은, 월터 레그가 라이브 레코딩을 감독했을 때 자신의 뜻대로 처리할 수 있는 마땅한 스튜디오 장비를 갖추지 못한 데서 기인한 필연적인 결과였다. 
1951년 바이로이트가 전후 처음으로 다시 열릴 여건을 갖춘 뒤 개막 연주작으로 베토벤 9번을 총연습 하던 날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었다. 푸르트벵글러는 초대 손님들 중 한 사람으로 참석했던 카라얀에 유독 신경을 곤두세웠던 것이다. 예전부터 카라얀을 못마땅하게 생각해왔던 그이지만, 선배 지휘자로서 그는 마지못해 리허설을 계속해 나갔던 것이다, 이로 인해 두 사람 사이에는 암묵의 신경전이 벌어지며 주위 사람들을 긴장케 했지만, 카라얀이라는 존재로 인해 빚어지는 마음속의 질투와 갈등을 푸르트벵글러가 어떻게 해결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박제성2013-05-03 14:39
추천 47 댓글 0
9번 교향곡 연주가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에게 있어서 얼마나 특별한 비중을 차지하였는가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고, 우리는 그의 1951년 바이로이트 공연이 최고의 해석적 경지에 다다른 지휘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하게 된다. 잘 알려진 1942년 전시녹음(Tahra)에서 보이는 광기 어린 열기는 이 바이로이트 음반에서는 느껴지지 않지만, 1953년의 레코딩이나 1954년 루체른 실황 녹음(Tahra)에서 이따금씩 들려오는 피곤한 음향 따위는 분명 이 1951년 녹음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바이로이트 실황의 장점은 올림피아의 제전을 연상시키는 듯한 광대한 스케일과 장대한 음향일 것이다. 장중하게 펼쳐지는 스케르쪼 리듬을 거쳐 진행되는 첫 악장의 절도 있고 당당한 걸음걸이, 아다지오의 무한한 길이(이토록 긴 패시지를 하나의 호흡으로 처리하는 혼 연주자에게 경의를 표한다)를 거쳐, 마침내 마지막 악장의 광대한 음향 퍼레이드에 도달하게 된다. 이러한 음악을 1950년대 음반 애호가들이 처음 접했을 때의 그 놀라움은 50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 와서는 거의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을 것이다.
 
바로 여기서 등장하는 성악가들의 목소리는, 베토벤의 견해와 같이, 악기로서는 더 이상 전달할 수 없는 또 다른 차원의 비젼을 펼쳐내 보인다. 처음의 세 악장들이 모두 성공적으로 연주되었다 하더라도, 마지막 악장의 결론이 단지 부분적인 설득력만을 전해 주는 불완전한 경우가 얼마나 허다했는가? 푸르트벵글러는 수많은 지휘자들 아래 9번 교향곡을 셀 수 없을 정도로 공연했고, 그 해 여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바그너 악극에서 나름대로의 배역을 맡은 네 명의 성악가를 자신의 재량대로 선발, 지도했다. 
 

소프라노와 베이스, 즉 엘리자베스 슈바르츠코프와 오토 에델만은 위에서 언급한 3년 뒤의 루체른 공연에서 한층 향상된 목소리를 선사하였던 것에 반해, 메조 소프라노인 엘리자베스 횡겐은 월터 레그가 제시한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시키지는 못했다.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9번 교향곡 마지막 악장에서 다른 세 명의 솔로이스트들보다 목소리가 튀어나오는 메조 소프라노의 목소리는 분명 훌륭한 앙상블은 아니기 때문이다. 테너는 한스 호프로서 이 위대한 바그네리안 테너의 가장 훌륭한 모습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푸르트벵글러의 바이로이트 9번을 복각한 많은 LP들은 성공작이라고 볼 수 없었다. 왜냐하면 많은 복각판들은 오리지날 모노 테이프로부터 인위적으로 스테레오로 변환한 탓에 원래의 음향이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무리한 행태는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짧은 시기동안 성행했는데, 특히 엘렉트롤라(“Breitklang”)와 데카(이클립스 시리즈)에서 발매된 LP들은 소리가 원본과 상당히 다름을 알 수 있다. 
유일하게 오리지날 HMV LP를 잡음 없이, 그리고 원본에 가깝게 복각한 탓에 소매 시장에서 엄청난 가격으로 팔린 음반은 일본 도시바-EMI에서 재발매한 LP다. 지금까지도 도시바-EMI의 이 두 장짜리 중고 LP는 상당히 높은 가격에서 거래되고 있다. 특히 이 음반은 엘렉트롤라의 오리지날 테이프에서 복사한 것으로서 연주가 끝난 후 청중의 갈채, 연주가 시작되기 전 포디움에 오르는 지휘자를 열렬히 환영하는 소리, 그리고 불명확하지만 지휘자가 오케스트라 악장과 주고받는 몇 마디 말 등등을 들을 수 있기에 더더욱 콜렉션의 대상이 되었다.
 
오늘날에는 라이브 콘서트로부터의 레코딩이 일반화되어 스튜디오 레코딩에 버금가는 퀄리티를 보장하지만, 50년대만 하더라도 이러한 라이브 레코딩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그 이전만 하더라도 1938년 1월 16일 브루노 발터가 빈 필하모닉을 이끌고 녹음한 말러 교향곡 9번 실황 녹음(EMI) 정도만이 있었을 뿐이다. 발터의 말러 9번은 나치가 독일을 장악하기 불과 며칠 전의 실황 녹음으로서, 마치 스튜디오 레코딩인 듯 청명하고 화사한 사운드가 기적적으로 포착되었을 뿐만 아니라 총주에서는 짐승이 포효하는 듯한 ‘절망적인 외침’이 인상적이다. 어찌되었던 이 두 녹음 모두 당시의 기준으로서는 대단히 예외적인 녹음이었다.
CD 시대에 들어와 발매된 음반 가운데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대표적인 바이로이트 9번 앨범을 꼽으라면 다음의 세 가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EMI에서 발매된 푸르트벵글러의 베토벤 교향곡 전집과 GROC 낱장 앨범, 다른 하나는 Tahra에서 발매된 푸르트벵글러의 베토벤 교향곡 9번 3종 세트(1942년 베를린 필 전시녹음, 1951년 바이로이트, 1954년 루체른), 마지막으로 새로 발견된 마스터 테이프를 사용한 Orfeo 앨범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EMI 발매분과 Tahra 발매분은 같은 음원을 사용한 것이다. 그런데 이 녹음들은 미국의 푸르트벵글러 전문가 헨리 포겔에 의해 당일 실황 테이프에 전날 이루어진 리허설 테이프가 살짝 짜깁기된 편집분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아마도 짜깁기가 된 부분은 3악장에서 바이올린의 실수를 사용한 정도로 극미할텐데, 전반적으로 음질의 수준 또한 어딘지 답답하고 개운치 않다. 다만 섬세하게 음향과 잡음을 컨트럴한 EMI 복각에 비해 Tahra는 음 자체의 선이 굵고 터프한 느낌이 강해 보다 강력한 푸르트벵글러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이에 비하여 2008년 발매되어 초유의 관심사로 떠올랐던 Orfeo 음반은 마스터 테이프 자체를 이전과 전혀 다른 소스를 사용했다. 당시 바이로이트 실황을 라디오 중계했던 바이에른 방송국에서 잠자고 있던 방송용 테이프를 발견하여 이를 사용한 것이다. 이 소스는 이전 발매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음질을 자랑한다. 당시 바이에른 방송국은 월터 레그가 설치한 마이크 세팅과는 별도로 레코딩 세팅을 했다고 하는데, 그러한 만큼 이 안에 담긴 이 날의 전설적인 연주의 모습 또한 많이 다르다.
일단 히스 노이스가 계속 잡혀 있는 이 새로운 테이프는 고역대가 활짝 열려있고 저역 역시 자연스러운 음역대까지 떨어진다. 각 파트의 분명한 움직임과 금관의 또렷한 음상도 훌륭하거니와 홀의 자연스러운 잔향과 오케스트라의 음색 또한 생생하게 포착되어 있다. 이것이 과연 이전 소스와 같은 녹음일까라는 의문까지 만들 정도다. 한편 1악장 첫 도입부에서 살짝 들렸던 쿠당거리는 잡음은 이 바이에른 테이프에서는 한층 또렷하고 지속적으로 잡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고, 3악장과 4악장이 거의 연결되어 진행되는 모습도 새롭게 알 수 있거니와, 4악장의 몇몇 부분에서 EMI 버전에서 느낄 수 있는 과잉된 뉘앙스보다 어딘지 안정적이라는 느낌 또한 받을 수 있다.
레거를 비롯한 EMI 엔지니어들의 예술적인 편집 기술에 의해 전체적으로 한층 다이내믹하고 안정적인 모습을 가지게 된 HMV 마스터 테이프의 위대함은 앞으로도 영원히 지속될 것이 분명하지만, 이 놀라운 음질을 자랑하는 Orfeo 발매분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진실’ 역시 반드시 함께 소장하고 감상해야 할 역사적인 음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