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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음악가 이야기

위대한 음악가들 - 천재적인 변신의 대가, 허비 행콕

by onekey 2024. 3. 1.
최영수2010-05-18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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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비 행콕이라는 뮤지션의 가치는 변화무쌍한 그의 음악적 변신에 근거를 두고 있다. 지성적인 아티스트로서 재즈 뮤지션들의 모범이 되고 있는 그는, 현재 재즈신을 이끌고 있는 리드 그룹의 한 사람으로서 무궁무진한 아이디어와 스타일은 가히 독보적이다.

최영수 / 재즈 평론가

 

재즈 피아니스트 허비 행콕은 1940년 4월 12일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온 가족이 음악을 사랑하는 분위기에서 자라면서 일곱 살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여 열한 살 때 시카고에서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할 정도로 탁월한 자질을 보였다. 십대 초에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을 연주하는 등 피아니스트로서의 뛰어난 재능을 보인 그가 재즈에 흥미를 갖기 시작한 것은 시카고의 하이드파크 하이스쿨 시대의 일로 기록되고 있다. 물론 결정적인 계기는 아이오와주에 있는 그리넬 칼리지에 입학하여 전기공학에서 작곡으로 전과한 후 작·편곡을 시작, 클레어 피셔, 올리버 넬슨, 길 에번스 등의 작·편곡을 분석하면서부터다.

 

마일스 데이비스와 길 에번스가 협연한 컬럼비아 레코드사의 "Miles Ahead"에 크게 감명 받은 그는 그 외에 영국의 로버트 파논의 편곡에도 매료되고, 시카고의 피아니스트 크리스 앤더슨에게도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대학 재학 중 작곡한 클래식 곡으로 최우수 작곡상을 수상하였다. 1960년 6월에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그 해 9월 시카고의 클럽 버드 하우스에서 콜맨 호킨스가 이끄는 밴드에 참가하여 2주 간 연주 활동을 했다. 1960년 12월 도널드 버드와 페퍼 아담스 퀸텟에 참가하여 역시 버드 하우스에서 연주를 하였는데, 이 공연이 계기가 되어 1961년 1월 대망의 뉴욕 입성이 이루어졌다. 듀크 피어슨의 후임으로 버드 앤 아담스 퀸텟의 정식 멤버로 가입한 것이다.

 

1962년 5월 첫 리더작인 "Takin' Off"를 블루노트에서 레코딩하였다. 1962년 12월 몽고 산타마리아의 밴드에서 연주할 때 그의 첫 리더작에 삽입되었던 자작곡 'Watermelon Man'을 연주하여 몽고 산타마리아의 마음에 들게 되는데, 몽고는 자신의 그룹으로 재빠르게 레코딩하였다. 몽고의 싱글판은 1963년 크게 히트하면서 'Watermelon Man'은 허비의 출세곡이 되었다. 이외에도 1961년부터 63년까지 올리버 넬슨, 필 우즈, 에릭 돌피 등과 공연하고, 프레디 허버드, 그랜트 그린, 재키 맥린, 행크 모블리 등의 리더 녹음에도 참가하였다.

 

1963년 5월 마일스 데이비스 그룹에 참가하여 68년까지 활동하였는데, 당시 밴드에서 론 카터, 토니 윌리엄스, 웨인 쇼터라는 출중한 인물들과 함께 하며 입지를 확고히 하였다. 1964년 소니 롤린즈가 레코딩에 참가하고 1965년에는 롤린즈의 쿼텟으로 클럽에도 출연하였다. 1964년 7월에는 마일스 데이비스 밴드 멤버로 일본 투어링을 하여 인기를 높였다.

 

 

1960년대의 허비 행콕은 이처럼 마일스 밴드에서 활동하는 한편, 바비 허처슨, 웨인 쇼터, 프레디 허버드 등과 교류하며 주로 블루노트 레코드를 무대로 피아니스트 겸 작·편곡가로서 재능을 꽃피운다.

 

1965년 3월 대표작이랄 수 있는 "Maiden Voyage"를 레코딩하였고, 1966년에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영국 영화「블로우업」의 OST를 담당하면서 영화음악 활동이 계속되는데, 「Hey hey hey, It's Fat Albert!」(1969년, 빌 코스비 주연의 TV 쇼),「The Spook Who Sat By The Door」(1973년, 미국 영화),「Death Wish」(1974년, 찰스 브론슨 주연의 미국 영화),「The Beach」(1979년, 영국 영화),「Sunburn」(1979년, 영미 합작 영화),「Round Midnight」(1985년, 프랑스, 감독 베르트랑 타베르니에, 덱스터 고든 주연의 재즈 뮤지션 다수가 등장하는 미국 영화) 등이 있다.

 

1968년 마일스 데이비스 밴드에 있으면서 8월에 결혼한 그는 그 해 가을 마일스 밴드를 떠나 자니 콜스, 조 헨더슨 등을 포함하여 자신의 섹스텟을 결성하면서, 매니저로 뮤지션이기도 했던 데이비드 루빈슨을 영입하였다. 이 섹스텟으로 1969년"The Prisoner"를 블루노트에, "Fat Albert Rotunda"를 워너브라더스에 남긴다. 1970년에는 에디 핸더슨, 베니 모핀, 줄리안 프리스터, 버스터 윌리암스, 빌리 하트를 포함하여 뉴 섹스텟으로 재편성하여"Mwandishi", "Crossings"를 워너에서, "Sextant"를 컬럼비아에서 레코딩하였다. 1973년 6월까지 활동하지만 그 사이 1972년 12월에는 LA로 이주하여 서해안에 위치한 오클랜드 펑크 서키트의 멤버로 교류하였다.

 

1973년 여름, 이전 섹스텟 멤버 중 베니 모핀만 남기고 오클랜드 펑크 서키트 출신의 폴 잭슨 등 젊은 리듬 섹션을 참가시켜 뉴 그룹을 결성하여 1973년 녹음한 "Headhunters" (컬럼비아 녹음)가 폭발적인 히트를 쳤다. 당시 그처럼 펑키한 일렉트릭 사운드는 ‘블랙 펑크’라고 불리어졌다. 이후 일렉트릭 팝 사운드와 어쿠스틱 재즈를 교묘하게 접목시켜 연주하며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하는 동시에 이 스타일은 허비의 대표적인 사운드로 정착하는데, 추종자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선사하는 멋진 사실로 남았다.

 

 

1976년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에서는 프레디 허버드, 웨인 쇼터, 론 카터, 토니 윌리엄스를 영입한 슈퍼밴드 ‘VSOP’를 결성하여 참가한다. 그룹명이 제시하듯이 ‘Very Special Onetime Performance’였지만 인기가 높아 이 밴드로 1970년 후반은 월드투어링으로 일관하면서도 1978년에는 칙 코리아와 피아노 듀오로 투어링하기도 했다. 1981년 윈턴 마살리스, 론 카터, 토니 윌리엄스와의 쿼텟으로 투어링하며 이 해에 첫 레코딩한 윈턴의 앨범에도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한편, 팝 사이드에서는 1970년대 후반에 "Sunlight"(컬럼비아)에서 처음으로 보코더를 사용했는데, 그 후에 신서사이저와 보컬을 교묘하게 사용하여 댄서블한 작품을 속속 발표하였다. 그중에서도 1983년 빌 라스웰 등 그룹 매트리얼과 조직하여 레코딩한 "Future Shock"는 당시 유행하던 힙합의 이디엄을 차용한 참신한 작품으로, 발표 후 갑자기 베스트셀러를 기록하였다. 이 스타일로 록 밴드를 만들어 투어링를 하여 젊은 팬들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얻기도 했다.

 

1985년에는 덱스터 고든이 주연을 맡고 허비 자신도 피아니스트 역으로 출연한 베르트랑 타베르니에 감독의 획기적인 재즈 영화 「라운드 미드나잇」의 뮤지컬 디렉터를 맡아 1987년 아카데미 작곡상을 수상하였다. 또 같은 해 그의 폭넓은 활동을 높이 사서 BMI로부터 표창을 받고, 6월 뉴욕에서 열린 기념 파티에는 도날드 버드를 위시한 뮤지션들이 다수 참가하였다. 1980년대에는 최고의 재즈 피아니스트임과 동시에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프리젠테이터를 맡는 등 재즈계뿐 아니라 음악계 전체에서 널리 이름을 날리는 유명 인사가 되었다. 그때까지의 밥 피아니스트와는 다른 참신한 이디엄을 표방하며 1960년대에 데뷔했던 허비는 케니 커클랜드를 위시한 수많은 후배 피아니스트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주었으며, 작·편곡가, 프로듀서로서도 비범한 재능을 발휘하며 늘 시대의 첨단을 이끄는 음악을 창조해왔다.

 

그는 메인 스트림 재즈로부터 프리, 팝 뮤직, 영화 음악까지 무엇이든 소화해내는 토털 뮤지션이자 아티스트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전술한 것 외에도 다음과 같은 앨범들이 있다. 마일스 데이비스 시대의 작품 "My Funny Valentine", "Four&More", "Miles Smiles", "Sorcerer", "Nefertiti" 등을 컬럼비아에서 찾을 수 있고, "My Point of View", "Empyrean Isles", "Speak Like a Child"등을 블루 노트에 남기고 있다. 또한 블랙 펑크 시대에 컬럼비아에 "Thrust", "Flood"가 있으며, VSOP 퀸텟으로 레코딩한 "Herbie Hancock Trio", "V.S.O.P The Quintet : Tempest in the Colosseum"을 들 수 있다. 계속해서 컬럼비아에 "Sunlight", "Direct Step", "Monster", "Magic Windows", "Quartet", "Lite Me Up", "Mr. Hands", "Sound System", "Perfect Machine"을 남기고, 버브 레이블로 이적하여 레코딩한 "Jazz Africa","Dis is Da Drum", "New Standard", "1+1", "Gershwin's World", "Return Of The Headhunters" 등 일련의 음반들은 거의 히트를 쳤다.

 

허비 행콕은 여러 차례 내한 공연을 가지기도 했는데, 특히 버브로 이적한 후 포스트 밥적인 연주로 회귀하고 있으면서 블랙 펑크의 매력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점은 그의 음악적으로 내재된 심성을 표현하고 있으며, 아프리카를 향한 심리적인 귀소 본능이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도널드 버드를 만나 뉴욕으로 진출한 1960년을 기점으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40여 년이 넘게 재즈 신의 중심에 서서 발전해온 아티스트 허비 행콕. 이제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조금의 오차도 없이 연주에 임하는 그의 모습에서 차라리 처절함을 느끼는 것은 또 무엇일까? 원기 왕성과 노익장이라는 수식어는 과연 누구를 위한 언어일까?

 



허비 행콕의 명 음반들


Takin’ Off
본문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이 앨범은 허비 행콕의 데뷔 앨범으로, 1960년 도널드 버드(TP) 밴드에서 인연을 맺어 1962년 도널드의 추천으로 블루버드 레이블과 계약하여 리더 앨범으로 레코딩한 것이다. 전곡이 허비의 자작곡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특히 첫 번째 곡 "Watermelon Man"은 크게 히트하여 허비의 이름을 팬들에게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리드믹한 패턴을 반복해서 연주하는 친숙한 테마는 어린 시절 허비가 자주 듣던 수박 장수가 부르던 소리에서 힌트를 얻어 작곡한 곡이라 한다. "Watermelon Man"은 허비 자신도 자주 연주하곤 했지만, 몽고 산타마리아가 히트시켜 더욱 유명해진 곡이다. 물론 이때 허비 자신은 펑키한 필링을 충분히 발산시키며 유니크한 멜로디 라인과 참신한 하모니를 탐구했다. 나머지 곡들도 이러한 맥락에서 일관된 그의 감성을 의욕적으로 발산시키고 있다.


Gershwin’s World
위대한 작곡가 조지 거슈윈을 흠모하며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발표한 헌정 앨범이다. 특히 이 음반에 참여한 뮤지션들은 스티비 원더, 조니 미첼, 웨인 쇼터, 케니 가렛, 칙 코리아, 테리 링 캐링턴 등 허비의 실력을 인정하며 거슈윈의 곡들을 늘 가까이에서 접하는 클래식, 팝, 블루스, 컨츄리 뮤지션에 이르기까지 대단한 호화 군단이다. "St. Louis Blues"와 "Cotton Tail", "Blueberry Rhyme"을 제외한 열한 곡이 모두 거슈윈의 주옥같은 재즈 오리지널과 클래식 곡들이다. 그러나 전술한 세 곡은 모두 재즈 오리지널로, 피아노의 달인들의 작품을 선곡한 것은 허비의 진심이 담긴 것이다. 블루스에 기초하여 편곡된 곡들의 내용이 너무나 벅차게 다가온다. 기획력의 완성이라고 보기에 충분하다. 또 허비는 맹우였던 토니 윌리엄스에 헌정하는 곡을 배려하는 것도 잊지 않고 있다. "Concerto For Piano And Orchestra In G, Second Movement"를 오르페우스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있다. 모리스 라벨의 명곡이기도 하다.

Headhunters
1970년대 이후의 퓨전 재즈에 대한 선구적인 역할을 한 앨범으로, 네 곡이 모두 허비의 자작곡이다. 1973년 마일스 데이비스 밴드에서 퇴단 후에 결성하였던 뉴 그룹의 멤버를 교체하면서 젊고 재능 있는 뮤지션을 영입하는데. 특히 허비 자신도 그렇지만 드러머 하비 메이슨을 제외한 베니 모핀, 폴 잭슨, 빌 서머스 등은 멀티 인스트루멘탈리스트로서 어느 악기를 다루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실력의 소유자들을 세션에 참가시켜 이렇게 공전의 히트를 시킨 앨범을 만들기에 이른다. "Chameleon"에서는 아프로 아메리칸 의식에 강한 뿌리를 두고 펑키한 비트를 사용하여, 뛰어난 팝적인 감각의 멜로디와 대담한 일렉트릭 사운드의 묘미를 전하고 있다. "Watermelon Man"에서는 어쿠스틱 밴드의 맛과 일렉트로닉스의 맛을 비교할 수도 있지만 허비의 탁월한 편곡 실력도 이 앨범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는데 일조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15분이 넘는 "Chameleon"이 대작으로서의 면모를 가득 담고 있다.

Quartet
허비 행콕의 앨범 중에는 남에 대한 배려로 이루어진 것이 많이 있다. 그중 한 장이 바로 이 음반이다. 특히 트럼페터 윈턴 마살리스는 열아홉이라는 어린 나이에 아트 블레이키가 이끄는 재즈 메신저스의 멤버로 있었는데, 1981년 여름휴가를 얻어 일본에서 열린 ‘라이브 언더 더 스카이’라는 재즈 페스티벌에 참가했다가 동경에 있는 CBS Sony 스튜디오에서 레코딩한 것이다. 원래 두 장의 LP로 제작되었는데, 후에 한 장의 CD에 디지털 마스터링하여 출반되었다. 핫한 연주에 스릴링이 가미되어 어리지만 경이적인 연주를 구사하고 있다. 또 허비의 사람 보는 안목이 얼마나 출중한가를 인식케 하는 훌륭한 앨범이다. 세션에 참가한 베이시스트 론 카터가 누구이며 토니 윌리엄스의 드럼은 또 어떠한가. 당대의 실력가들이 리듬 세션을 백킹하나 윈턴은 양탄자 위를 그냥 걸어가고 있다.

V.S.O.P The Quintet
이 앨범은 마일스 데이비스 밴드에서 함께 한 혈맹 론 카터가 베이스, 웨인 쇼터가 색소폰을 담당하고 토니 윌리엄스가 타임 키핑을 맡고 있다. 물론 트럼펫에는 마일스를 이은 실력 있는 아티스트 프레디 허버드를 영입하여 결성한 퀸텟으로, 전 미국 순회공연 중에서 1977년 7월 16일 캘리포니아 대학 극장과 18일 샌디에고 시민 회관에서 연주한 실황 음반으로 허비의 매니저 데이비드 루빈슨이 프로듀서로서 참가했다. 전곡이 참여한 뮤지션들의 곡들로 재치와 유머가 가득한 연주에서 허비의 편곡과 함께 당대를 대표하는 뮤지션들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는 앨범으로, 라이브 음반의 진미를 만끽하기에 충분한 연주가 전편에 흐르고 있다. 처음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을 위해 결성하였던 ‘Very Special Onetime Performance’는 인기를 거듭한 관계로 투어링을 하였고, 또 프레디 허버드를 마일스 데이비스의 연주라고 생각하면 옛 마일스 퀸텟과의 비교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