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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음악가 이야기

한국 대중가요앨범 최초의 기록들 1

by onekey 2024. 3. 21.

 

가요앨범사

한국 대중가요앨범 최초의 기록들 1

유성기 시대

요약 
어느 분야나 ‘최초의 기록’에 대해서는 원조 논쟁은 있게 마련이다. 한국 대중음악도 출발부터 원조 논쟁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무수한 최초의 기록들을 쌓아가며 100년이 넘는 나이테를 만들어가고 있다. 한국 대중가요 음반의 최초 기록들을 한자리에 모아 소개한다.

한국 대중음악 역사에서 의미심장한 최초의 기록들

그동안 한국 대중음악 역사에서 ‘최초’라는 공식 인증서를 발급하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정확한 데이터베이스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기에 잘못된 홍보성 주장들이 난무해 왔다. 과연 한국인이 쓴 최초의 창작 대중가요는 무엇이고, 외국인이 최초로 한국어로 노래한 음반, 최초의 어린이 가수, 최초의 금지곡, 록 음반, 포크 음반은 무엇일까?

 

한국 대중음악 역사에서 의미심장한 최초의 기록들 중에는 발표 당시에 전혀 각광받지 못했거나 지금까지도 알려지지 않은 채 사장되어 있는 소중한 음반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가요앨범사는 전인미답의 길이어서 울퉁불퉁한 험로이기는 하나, 1920년대부터 1990년까지 음반으로 발표된 한국 대중음악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음반들을 살펴보겠다.

유성기 시절의 최초 기록들(1920-60년대 초반)

지금의 한국 대중음악은 19세기 말 조선의 개항과 더불어 서양의 가락이 들어오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유행한 창가를 유행가로 봐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한국 대중가요의 태동임은 틀림없다. ‘창가’는 외국 곡에 가사를 바꾸어 부른 번안곡 형태가 일반적이었으며 일본 유학생이나 서구식 학교의 학생 사이에서 애창되었다.

▶ 음반으로 제작된 최초의 창가

<학도가> 1921년
개항 초기 여러 종류의 창가가 불렸지만 음반으로 제작된 최초의 창가는 <학도가>이다. 1921년경 일본축음기상회에서 발매된 초반은 실물이 확인된 적은 없고 1923년경 발행된 재발매반만이 확인되었다. 이 재반도 극소수가 전해질뿐이다. 노래를 부른 가수는 초반에 ‘기독교청년회원’이라고 적혀 있는 점으로 미뤄 전문 가수가 아닌 YMCA의 기독교 청년회원들로 추측된다. <학도가>는 김인식 작사설, 최남선 작사설 등이 떠도는데 확실하지 않다. 작곡자는 일본인 우메와카()로 1900년에 신바시 역에서 출발하는 도카이도선 영업을 기념하여 발표된 일본의 <철도 창가>를 가사만 바꾸어 불렀다.

부모의은덕가 / 학도가.관학가(권학가) 앨범 앞면, 이경호 소장

 

▶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최초의 대중가요

<사의 찬미> 1926년
사실과는 거리가 있지만 윤심덕의 <사의 찬미>가 발표된 1926년을 한국 대중음악의 원년으로 보는 시각은 강력하다. 일본에서 녹음을 마치고 귀국 중인 배에서 애인인 극작가 김우진과 바다에 투신한 정사 사건은 식민지 조선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대중가요가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최초 사례이고 대중음악에 대한 거대 담론의 시작이었기에 이 노래를 최초의 대중가요로 보는 시각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긴 하다.

윤심덕, 1926년&nbsp;Nitto&nbsp;축음기

 

사의찬미 / 부활의깃붐 앨범 앞면, 신나라레코드 소장

 

윤심덕과 김우진의 정사 사건에 대해서는 이후 많은 추측이 계속되고 있다. 자살이 아닌 타살이다, 죽지 않고 이탈리아에 살고 있다는 등 1930년대까지도 윤심덕에 관한 온갖 풍문이 만연했었다. 그만큼 두 사람의 정사 사건에 이어 발매된 <사의 찬미>의 사회적 파장이 컸음을 의미한다.

▶ 최초의 캐럴음반

윤심덕 <파우스트 노엘>
국내 최초의 캐럴 음반은 일동레코드에서 발매한 윤심덕의 <파우스트 노엘>이다. 윤심덕이 1926년 대한해협에서 애인 김우진과 자살 직전 <사의 찬미>와 함께 녹음한 레코드이다. 이 때 <산타클로스>라는 곡도 녹음해 발매했는데 실물은 전하지 않고 음반 번호가 앞서는 <파우스트 노엘>이 최초의 캐럴 음반으로 인정된다. <파우스트 노엘>은 <first noel>의 일본식 발음이다. 2013년과 2015년에 TV와 신문에 국내 최초의 캐럴 음반으로 소개되었다.

파우스트노엘 / 푸른갈닐리 앨범 앞면

 

▶ 한국인이 쓴 최초의 창작가요

이정숙 <낙화유수>
한국인이 작곡한 최초의 유행가는 1929년 이정숙의 <낙화유수>이다. 흔히 <강남달>이라 부르는 이 노래는 1927년에 만든 영화 「낙화유수」의 주제가로 인기를 얻자 뒤늦게 음반으로 녹음되었다. 이 노래의 작사 작곡자는 김서정인데, 변사로 유명했던 김영환의 예명이다. 이정숙은 영화의 감독을 맡은 이구영의 동생으로 주로 동요를 많이 부른 가수이다.

최초로 한국인이 쓴 대중가요를 부른 가수 이정숙

 

낙화유수 / 쟈라메라 앨범 앞면, 이경호 소장

 

▶ 최초의 금지음반

채동원 <아리랑>
대한민국 최초의 금지곡은 1930년 콜럼비아 레코드에서 발표한 채동원의 <아리랑>이다. 채동원은 채규엽이 직업 가수로 데뷔하기 전 사용했던 예명이다. 일제는 1933년 5월 조선총독부령으로 축음기 레코드 단속규칙을 공표하고 이에 의거 4장의 음반을 발매 금지시켰는데 3장은 극이나 넌센스 음반이고, 대중가요로는 최초로 채동원이 부른 <아리랑>이 포함되었다. <아리랑>의 금지 사유는 ‘치안방해’였다.

아리랑 / 세동무 앨범 앞면, 이경호 소장

 

▶ 최초의 직업 가수, 학사 가수, 싱어송라이터

채규엽의 데뷔 음반
유행가 태동기에 가수를 직업으로 삼기에는 경제적 측면이 빈약했다. 또한 당시에는 대중 앞에서 노래 부르는 것을 최하층민인 광대의 일로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다. 최초의 직업 가수로 평가받는 채규엽은 1930년 직접 작사 작곡한 <봄노래 부르자>, <유랑인의 노래>를 발표하여 데뷔했다.

최초의 직업 가수이자 학사 가수, 싱어송라이터였던 채규엽

 

유랑인의노래 / 봄노래부르자 앨범 앞면, 이경호 소장

 

그런 점에서 이 음반은 최초의 싱어송라이터 음반이기도 하다. 채규엽은 이 음반에 앞서 ‘채동원’이라는 이름으로 <아리랑>과 <세동무>가 수록된 음반을 발표해 데뷔 음반에 대한 논란의 여지는 있다. 또한 채규엽은 1927년 일본 도쿄 중앙음악학교 성악과에서 정식으로 음악을 공부한 최초의 학사 가수이다. 배우 황해의 여동생과 결혼한 그는 가수 전영록의 고모부이기도 하다.

▶ 최초의 보이그룹 음반

연희전문사중창단 <나는 실허>, <하하하>
한국 대중음악 역사에서 남성 보컬그룹의 흔적은 1923년 <학도가>를 부른 ‘청년회원’들로부터 시작된다. 팀명으로 보긴 어렵고 멤버들의 이름도 확인되지 않았다. 1925년 최동준, 김인재, 안기영, 정성태가 <순산을 향해 갑시다>를 발표하며 이름은 표기했지만 팀명 없이 남성사부로만 기록했다. ‘연희전문사중창단’은 정식 팀명을 지닌 남성 보컬그룹으로 가장 먼저 음반을 발표한 팀이다.

한국 최초 남성 보컬팀 연희전문사중창단(1932년) 왼쪽부터 이인범, 최성두, 황재경, 신영균 (피아노는 현재명)

 

나는실혀 / 하.하.하 앨범 앞면

 

1930년대에 조선악극단에서 활동한 김해송, 박시춘, 송희선, 이복본으로 구성된 아리랑보이스도 있지만 음반은 발매하지 않았다. 연희전문사중창단이 대중가요를 본격적으로 부르기 시작한 이 음반은 실체를 보기 어려운 희귀 음반으로 평가된다.

▶ 최초의 여성 작곡가 논쟁

이준례 1935년, 김정숙 1934년
1935년 폴리돌 레코드에서 발매한 선우일선의 <그리운 아리랑>을 작사 작곡한 이준례는 지금까지 국내 최초의 여성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그리운 아리랑>은 그녀가 남존여비 사상 속에 여성이 설자리가 없었던 일제 강점기에 유일하게 발표하여 히트한 곡이다. 작품 활동을 그만둔 이준례는 1979년에 조경수의 히트곡 <행복이란>의 원작자로 밝혀져 화제가 되었다.

이준례 최초 여성작곡가

 

무정세월 / 그리운아리랑 앨범 앞면, 이경호 소장

 

최근 1934년 리갈 레코드에서 <가신 님에게>를 직접 작사 작곡 노래까지 부른 김정숙의 음반이 발굴되었다. 가사지와 언론 기사만 있고 아직 음반의 실체가 확인된 적이 없기 때문에 유일한 활동 기록인 김정숙의 음반은 국내 최초의 여성 싱어송라이터 음반이 확실하다. 문제는 최초의 여성 작곡가에 대한 논쟁이다. 이준례가 김억의 시에 자신이 곡을 붙였다고 주장하는 채규엽의 <낙화>는 김정숙의 음반보다 앞선 1933년에 콜럼비아 레코드에서 발매된 음반이다. 음반에 창작자를 명기했다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창작자를 명기하지 않았기에 확인되기 전까지는 국내 최초의 여성 작곡가는 이준례와 김정숙 중 누구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김정숙 최초 작곡가 가사지 앞

 

김정숙 가사지 뒤

 

▶ 최초의 서양인 가수

버톤 크레인 음반 1936년
음반 사업이 커짐에 따라 경쟁도 심화되고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한 노력도 대단했다. 1936년 콜럼비아 레코드는 미국인 버톤 크레인(Burton Crane)이 한국어로 부른 <다시 못 올 이 청춘>과 <술주정뱅이>라는 음반을 발표하여 관심을 끌었다.

버톤 크레인(Burton&nbsp;Crane) 최초로 대중가요를 부른 외국인 가수

 

다시못올이청춘 / 술주정뱅이 앨범 앞면, 이경호 소장

 

그는 신문 기자, 가수, 경제학 교수 및 연극 극작가로 활동한 다재다능한 경력의 소유자이다. 1930년대에 일본에서 그는 일본어로 여러 곡을 녹음해 '일본의 빙 크로스비'라고 불릴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그중 한국어로 녹음한 이 음반은 국내 최초로 서양인이 부른 노래로 기록된다.

▶ 최초의 픽처 음반

영화 『지옥화」OST 1958년
픽처 음반은 음반 전체에 사진이나 그림이 새겨진 음반을 말한다. 정규앨범보다는 소량의 전시 수집용 기념 음반으로 제작된 경우가 많으며 유럽과 일본을 중심으로 1960-70년대에 대량 생산되어 1980년대에 절정을 이뤘다. 국내에서 픽처 음반은 1993년에 신윤정과 조용필이 소량을 발표하면서 화제가 되었다.

뜨내기사랑 / 양공주아가씨 앨범 앞면

 

당시 ‘국내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일반 대중에게 픽처 음반의 존재는 생소했다. 현재까지 픽처 유성기 음반은 1958년 유니버샬레코드에서 발매한 영화 OST 3장이 확인되었다. 가장 먼저 제작된 음반은 신상옥 감독이 연출한 영화 「지옥화」의 OST로 주연 배우 최은희와 김학의 모습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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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까지 발견된’ 최초의 기록들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대중가요 앨범』은 국내 대중음악 역사가 시작된 192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국내에서 공식적으로 발매된 유성기 음반과 LP 음반들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작업이다. 이 방대한 대중가요 음반자료에는 무수한 ‘최초의 기록’들이 숨겨져 있다. 이 글에 소개된 음반보다 발매 일자가 앞선 음반이 발견된다면 최초의 기록은 변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글에서 소개한 ‘최초’는 ‘현재까지 발견된’이란 단서가 붙여야 정확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여기에 소개한 최초의 음반들 외에도 지면 관계상 소개하지 못한 최초의 기록들을 담고 있는 대중가요 음반들은 무수하다.

 

제공처 정보

  • 필자 이경호 한국 고음반 수집가

    고려대학교 영문학과 졸업했고 미국 메릴랜드 대학교(University of Maryland) 경영학과 와 인디애나 대학교(Indiana University)에서 경영학 석사를 취득하였다. 옛 가요에 대한 깊... 자세히보기

  • 필자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한국대중가요연구소 대표이자 대중문화평론가인 최규성은 한국일보 기자시절 평양에서 열린 역사적인 김대중 김정일 남북정상회담을 사진으로 기록한 언론인이다. 한국대중음악박... 자세히보기

  • 제공처 한국대중가요연구소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 대중가요앨범 최초의 기록들 1 - 유성기 시대 (가요앨범사, 이경호, 최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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