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턴테이블의 궁극적 이상, Basis Work of Art

by onekey 2024. 3. 4.

턴테이블의 궁극적 이상, Basis Work of Art

이종학2008-12-13 13:53
추천 33 댓글 0
 

과연 이상적인 턴테이블은 무엇일까? 처음 베이시스의 데뷔를 보면서, 필자는 이런 어프로치야말로 가장 현실적이고, 정확하며, 합리적인 방향이 아닐까 생각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일단 세팅이 쉽고, 작동이 간편하며, 트레이싱이나 모터 등 기본 능력이 출중하다는 뜻이다.특히, 데뷔는 받침대를 주먹으로 쾅쾅 내리쳐도 아무런 충격이 플래터에 가해지지 않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계속 음악을 재생할 뿐이다. 정말 신기하기 짝이 없다.

 

 

베이시스 턴테이블의 기본 개념은, 어찌 보면 턴테이블의 이상을 구현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절묘하다. 말하자면 플로팅 방식과 리지드 방식의 장점을 골고루 취했다고나 할까? 사실 턴테이블 애호가들은, 마치 중국집에 가서 짬뽕을 시키면 자장면이 먹고 싶고, 자장면을 시키면 짬뽕이 먹고 싶은 심리로, 오랫동안 이 두 가지 타입에서 갈등해왔다. 물론 두 타입을 모두 갖고 있으면 불만이 없겠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

 

그런데 베이시스는 이 두 가지 접근법을 모두 병행하되, 음질에 있어서도 양자의 장점을 골고루 취해서, 이를테면 리지드 방식의 강직함과 단단한 베이스에 플로팅의 화사한 고역과 디테일한 표현력 모두를 들려준다. 이것은 긴 턴테이블의 역사에서 중요한 쾌거다. 그렇다고 짬짜면은 아니니까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처음 베이시스가 출범한 시기는 1986년. 당시 기계 공학을 전공하고, 에어로스페이스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신참내기가 당돌하게 턴테이블을 발표한다. 진공관 앰프며 아날로그 관련 제품들이 죽을 쓸 때 홀연히 출사표를 던진 그의 이름은 A.J. 콘티로, 상황에 맞게 제품명도 “데뷔”로 했다. 그런데 이 제품은 나오자마자 주목을 끌었고, (스테레오파일)에서 추천 기기 목록에 오를 만큼 평도 좋았다. 이어서 나온 신제품 오베이션 역시 큰 인기를 끌었음은 물론이다.

 

여기서 콘티는 자신의 제품을 크게 세 가지 폴리시를 갖고 만든다고 밝히고 있다. 첫째는 턴테이블을 구성하는 모든 파트를 최상급으로 만들 것, 둘째는 모든 생산품은 일체의 하자가 없이 균등한 품질을 유지할 것, 셋째는 무엇보다 셋업이 편리해야 할 것. 필자는 특히 셋째 부분이 제일 마음에 든다.

 

아마 요즘 아날로그 붐에 관심을 가진 애호가들이 많을 법한데, 문제는 운용상 너무 까다롭다는 데에 있다. CD 플레이어처럼 척 랙에 올려놓고 오픈/클로즈 버튼만 누르면 알아서 CD를 갈아 끼우고 플레이 버튼 하나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편의성에 길들여져 있다가 갑자기 아날로그 하면 일단 두려움이 앞서는 것이다.

 

 

레코드 홈에 바늘을 올려놓는 행위부터가 만만치 않은 데다가, 그 까다로운 세팅법은 또 언제 마스터한단 말인가. 물론 전문가를 불러서 세팅을 부탁하면 되지만, 처음 구입할 때나 도움을 받지 매번 부를 수도 없다. 이래저래 이런 불편함이 계속 아날로그 플레이어의 구입을 망설이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베이시스의 제품은 다르다. 이런 걱정이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허무하게 세팅이 쉽다. 초보자도 매뉴얼만 보면 간단히 설치할 수 있다. 말하자면 일단 갖다 놓고, 척 음반을 올려놓으면 끝, 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게다가 음반을 틀어놓은 상태에서 주위에 아이들이 뛰어 놀거나 어쩌다 받침대를 건드려도 음반이나 바늘이 상할 염려도 없다. 이  되면 거의 마법의 경지다.

 

 

여기서 베이시스가 일관되게 추진해온 댐핑 방식을 설명해야 할 듯하다. 이 회사의 다양한 제품군 공히 이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데, 그 방법은 간단하다. 네 개의 기둥으로 베이스를 허공에 올려놓는 것이다. 그리고 기둥과 베이스 사이에 스프링을 사용해 외부의 충격을 완전 흡수하는 것이다. 이를 베이시스는 “플류드 댐프”(fluid damp)라고 하는데, 플류드라는 말이 유동성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으므로, 어떤 충격도 물 흐르듯 유연하게 대처해서 일체 플레터에 전달하지 않는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듯하다.

 

아무튼 90년대 초, 이른바 아날로그 르네쌍스의 여명기에 해당하는 시기에 베이시스는 혜성과 같이 나타나 신데렐라처럼 일약 주목을 끌었는데, 콘티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자신이 생각하는 턴테이블의 궁극을 벌써부터 구상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이번에 소개할 “Work of Art"(이하 WOA)가 이미 그때부터 기획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거대한 프로젝트가 진행되면, 거기에 수반되는 예상치도 않은 성과물이 나오기 마련이다. 연구가 거의 10년에 달할 즈음인 1999년, 그 최초의 성과가 상품화되는 바, 그게 바로 벡터라는 톤암이다. 이 제품의 뛰어난 성능을 여기서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이후 계속되는 연구 끝에 최근에 WOA가 햇빛을 보게 된 것이다.
 

WOA에는 단순한 주조나 압출 성형으로 제작된 부분이 하나도 없다. 다이캐스트와 절삭 머신을 통한 연마로 부품 하나하나가 무도 수공업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베이시스는 WOA의 생산 작업을 “툴 앤드 다이 메이커스”(Tool and Die Makers)라고 부른다. 전자는 절삭 가공을, 후자는 다이캐스트 작업을 뜻하는데, 여기엔 두 명의 직인이 참여하고 있다. 모두 자기 분야에서 45년 이상을 일한 베테랑으로, 베이시스 창업 때부터 파트너쉽으로 관계해왔다. 말자하면 WOA는 그간 베이시스를 이끌어 온 드림 팀 모두가 최선을 다해 이룩해낸 일종의 “드림 웍스”인 것이다.

 

 

그럼 본 기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어디일까? 우선 베이시스 특유의 댐핑 방법을 이상적으로 구현한 서브샤시를 들 수 있다. 이것이 베이스를 감싸고 일종의 공중 부양을 시킨, 마치 갈고리처럼 생긴 철제 형상을 말한다. 그런데 이 기둥엔 세 개의 구멍이 각각 다른 크기로 뚫려 있다. 아마 진동 관련해서 엄밀한 조사 끝에 뚫어놓은 것이 아닐까 판단된다.

 

이 네 개의 기둥은 각각 조금씩 위 아래로 미세 조절할 수 있는데, 이를 위해 별도의 악세서리가 제공된다. 두 개의 구멍이 뚫린 이 기구를 기둥 위에 꽂고 좌우로 돌리면 미세한 높이 조절이 가능하다. 턴테이블에서 완벽한 수평만큼 필수불가결한 조건이 없다. 이를 위한 장치다.

 

베이스는 특유의 아크릴제로, 두께부터 어마어마하다. 안이 투명해서 내부가 훤히 보인다. 속에 구멍을 뚫었는데, 컨트롤부와 연결하는 케이블이나 회전축 같은 것을 설치하기 위함이다. 그 위로 플래터가 설치되어 있다.

 

 

이 플래터는 벨트에 의해 회전하는 바, 이를 돌리는 장치는 플래터 뒤에 따로 설치되어 있다. 일종의 합금으로 만들어진 작은 박스에 수납되어 일체 외부에 노출되어 있지 않다. 역시 진동 관련 대책인 것 같다. 이를 구동하는 모터는 AC 방식으로, 매우 성능이 좋다. 또 이 플래터는 위 아래로 높이 조절을 할 수 있어, 설치하는 암에 따라 얼마든지 대응할 수 있다.

 

본 기에는 일종의 진공 펌프가 제공된다. 플래터에 음반을 올려놓고, 단단히 흡착해서 최적의 수평도를 얻기 위함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펌프에서 별로 소리가 나지 않는다. 가끔 이런 방식을 사용하는 제품을 보면 그 소음에 질리곤 하는데, 본 기는 거짓말처럼 적막강산이다. AC 모터와 더불어 진공 펌프에 상당한 기술력이 투입되었음을 알게 하는 대목이다.

 

 

이어서 본체를 받치는 네 개의 기둥이 보이고, 그 옆에 또 아크릴로 댄 부분이 발견된다. 왜 아크릴을 덧붙였을까? 단순한 폼 같지는 않다. 이는 음질을 위한 배려로 보인다. 미세 진동을 억제하거나 위 아래 파트의 밸런스를 고려한 것도 같지만, 이 아크릴을 붙였을 때와 떼어냈을 때의 차이를 감안하면, 결국 더 나은 음을 위한 조치가 아닐까 한다.

 

스탠드 상단에 위치한 컨트롤 박스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분된다. 왼편이 331/3 및 45 회전을 구분하는 스위치와 전원 스위치 등이 있다면, 오른편은 진공 펌프를 조작한다. 그런데 이 압력을 미묘하게 조절할 수 있는 노브가 달려있다. 무턱대고 압력을 최대한으로 맞추기보다는, 자신의 귀를 믿고 적절하게 조절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확실히 WOA는 그 존재감이 강렬하다. 무엇보다 엄청나게 공들인 아크릴 가공도 가공이지만, 뭔가 음악을 확 움켜쥐고 절대 놓아줄 것 같지 않은 서브샤시의 크기도 대단하고, 스탠드의 견고함도 만만치 않다. 특히, 외부 진동에 대한 대책이 상당해서, 옆에서 탱크가 지나가거나 폭탄이 터져도 트레이싱에 아무 문제가 없을 정도라고 한다. 하위 기종에서 경험한 진동 대책을 감안하면, 이 부분은 절대 과장이 아닐 것이다.

 

이번 시청을 위해, WOA에 걸맞는 라인업이 동원되었다. 프리 파워는 전가의 보도처럼 쓰이는 다질 앰프지만, 여기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두 대의 파워 앰프를 사용했다. 매칭된 루멘 화이트의 다이아몬드 화이트는 바이 와이어링이 가능하다. 즉, 점퍼선을 떼어내면 중고역부와 저역부가 각각 분리되는 것이다. 여기에 하나씩 파워 앰프를 연결했으니, 말하자면 바이 앰핑을 한 셈이다. 이럴 경우, 특히 저역에서 나오는 역기 전류가 중고역부를 침범하지 않으므로, 단순한 출력 증가 이상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 시스템으로 참 많은 음반을 걸었다. 클래식부터 재즈, 록, 팝, 가요 등 시청실에서 구할 수 있는 음반부터 개인적으로 소장한 음반까지 많은 LP가 동원되었다. 특정 제품을 시청하면서 이렇게 많은 음반을 들어본 것은 본 기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이 기기에서 재생되는 음의 정보량과 퀄리티, 무대 연출 능력, 스피드 등에 매료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간단하게 WOA의 성격을 정의한다면, 매우 섬세하면서도 파워풀한 음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정보량이 많을수록 음이 여리거나 혹은 특정 대역에 치중할 수 있는데, 본 기는 절대 그렇지 않다. 일단 위 아래의 밸런스가 좋고, 저역을 단단히 잡은 가운데,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엄청난 양의 정보량을 쏟아놓는다. 그런데 그 음들이 제대로 정돈되어 있다.

 

 

특히, 양 스피커 옆쪽으로 자연스럽게 음장이 확대되어 한쪽 벽 전체가 무대가 되고, 스피커 사이의 공기가 악기와 보컬이 되어 자기 자리를 확고하게 지키는 가운데 노래하고 연주하는 대목은, 과연 이 기기를 왜 “예술 작품”으로 명명했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리지드와 플로팅 방식의 장점을 적절히 취한 베이시스의 취지가 여기서 화려하게 만개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 중 좋았던 음을 하나씩 나열해보자. 우선 플리트우드 맥의 걸작 앨범 “Rumours"에 실린 (Dreams). 우선 이 소스에 이렇게 강력한 베이스 라인이 있었나 깜짝 놀랄 정도로, 보텀 엔드까지 쭉 뻗는 베이스 음이 인상적이다. 킥 드럼의 신명난 리듬감도 절묘한데, 베이스 라인과 일체 엉키는 법이 없다. 스티비 닉스의 다소 중성적이면서 상큼한 보컬도 음색이 빼어날 뿐 아니라, 약간 코맹맹이같은 느낌도 놓치지 않는다. 이렇게 좋은 녹음의 음반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실감한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Round about Midnight)은 숱하게 들은 소스이지만, 전혀 다른 인상으로 다가온다. 사뿐사뿐한 스네어 웍을 바탕으로 절묘하게 드럼이 녹아들고, 베이스가 꿈꾸듯 부유하는 가운데 뮤트를 건 마일스의 트럼펫이 도시의 비정함과 차가움을 적절히 혼합해, 과연 당시 신세대 재즈의 기수다운 멋이 가득하다. 꽉 짜여진 편성에 일사분란한 그룹 컴비네이션 그리고 혹시라도 있을 흐트러짐이 있으면 놓치지 않고 잡아낼 듯한 현미경적인 재현을 들려주지만, 전체를 아우르는 밸런스 감도 매우 특출나다.

 

 

호로비츠가 70세가 넘어서 연주한 리스트의 연주는, “내 몸에 아직도 악마가 있다”라고 출사표를 던진 만큼, 다양하고 현란한 손놀림이 눈부시게 펼쳐진다. 피아노 한 대만으로도 충분히 풀 오케스트라를 상쇄할 만큼 엄청난 음량과 다이내믹이 나오는데, 과연 종횡무진, 피아노 건반을 휘젓는 이 노대가의 강인함과 부드러움이 절묘하게 조화된 핑거링엔 절로 탄식이 나온다. 페달링의 미세한 표정, 건반 하나하나의 분명한 터치, 그랜드 피아노의 풍부한 여운 ... 지금 여기 호로비츠가 왕림했다!

 

마지막으로 제임스 테일러의 (You've Got a Friend). 원래는 캐롤 킹 버전으로 유명하지만, 테일러 역시 매력이 넘친다. 양쪽 채널에 하나씩 배치된 어쿠스틱 기타의 기분 좋은 울림이 눈부시고, 중앙에 젊디 젊은 테일러의 부드러운 음성이 여유 있게 흘러나온다. 처음 그의 노래를 들었을 땐 참 싱겁다고 생각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조금씩 그의 존재가 가슴에 다가왔다. 지금 이 노래를 들으면 눈물이 글썽이는 것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이 생생함, 이 광대역, 이 다이내믹 레인지 ... 대체 한 장의 LP 속에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정보량이 얼마나 많다는 말인가?

 

 

현실적으로 WOA와 같은 클래스의 턴테이블을 손에 넣을 애호가들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고맙게도 베이시스는 2000 시리즈처럼 조금만 저축하고 아끼면 구할 수 있는 모델도 만들고 있다. 이번에 WOA가 들려준 아날로그의 궁극을 들었으니, 더욱 베이시스라는 브랜드의 존재감이 강하게 어필해온다. 꼭 WOA는 아니더라도 그 밑의 시리즈라면 한번, 하는 마음도 든다. 깊어 가는 겨울, 아날로그 생각이 슬슬 피어오르는 시기다. 덧붙여 20년이 넘는 집념으로 WOA를 완성한 콘티에게 깊은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