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 되면 진동 잡는 백신 혹은 사운드 세정제
Hifistay Mythology Transform Lite & BOP Stay Mini Audio Rack
오디오 생활을 하다 보면 신경 써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룸 환경, 전기 품질, 접지 대책, 전자파 노이즈 관리, 흡음과 분산 대책, 스피커 위치, 진동과 공진 대책 등이다. 특히 진동(vibration)과 공진(resonance)의 경우 오디오가 가청 주파수(20Hz~20kHz)를 다루는 데다 음악 신호 자체의 진폭(전압)이 워낙 낮고 섬세해서 그 폐해가 생각 이상으로 크다. 통 알루미늄에서 절삭해 앰프 섀시나 스피커 인클로저를 만들고, 그것도 모자라 인슐레이터와 스파이크, 슈즈를 투입하는 것도 다 이 진동과 공진을 조금이라도 없애기 위해서다.
하이파이스테이(Hifistay)는 바로 이러한 진동과 공진 컨트롤에 관한한 독보적인 기술력과 제작 품질로 유명한 대한민국 전문 제작사다. 필자 역시 집에서 하이파이스테이가 만든 클램프 겸 레조네이터 다르마(Dharma)와 스피커 슈즈 솔 80(Sol 80)을 쓰고 있다. 투입 전후 그 혁혁한 음질 개선 효과에 깜짝 놀랐던 기억이 새롭다. 특히 솔 80의 경우 설치 직후 시청 메모를 보면, ’음수가 많아지고 입자감이 고와졌으며 체감상 SN비가 높아지는 등 긍정적인 변화가 기대 이상으로 많아 다행이다’라고 돼 있다.
최근 하이파이클럽 메인 시청실에서 하이파이스테이의 오디오 랙 2종을 시청했다. 미쏠로지 트랜스폼 라이트(Mythology Transform Lite)와 BOP 스테이 미니(BOP Stay Mini)다. BOP 스테이 미니는 하이파이클럽에서 8년여 개발 끝에 내놓은 음질 개선 컴포넌트 BOP QF 전용 랙이다. 물론 다른 작은 오디오 기기들도 수납이 가능하다. 필자가 시청한 모델은 두 제품 모두 3단 구성이다.
각설하고, 이들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음질 차이가 컸다. 두 오디오 랙을 빼어버리니 필자와 무대 사이에 두툼한 천이 가려진 듯했고, 다시 투입하니 폴 데스몬드의 알토 색소폰에서 비로소 사람의 숨결이 느껴졌다. 해상력, 다이내믹 레인지, 정숙도, 분해능, 정위감, 사운드스테이지 등 거의 모든 평가항목에서 큰 변화가 확연했다. 아니, 음원과 스피커, 앰프 자체를 업그레이드한 듯했다. 바이러스와도 같은 진동과 공진의 폐해를 새삼 절감했다.
Mythology Transform Lite 팩트 체크
미쏠로지 트랜스폼 라이트는 지난 2월에 출시된 신상 오디오 랙이다. 하이파이스테이 편내원 대표에게 물어보니, 기존 미쏠로지 트랜스폼에 비해 가격은 낮췄지만 진동 솔루션을 비롯해 기술 자체는 업그레이드됐다고 한다. 마침 하이파이클럽 시청실에 예전 미쏠로지 트랜스폼 랙이 있어 비교를 해보니 공통점도 많지만 세세한 곳에서 제법 차이가 많았다.
일단, 미쏠로지 트랜스폼 라이트 외관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이번에 시청한 모델은 3단 랙. 다른 랙과 다른 점은 4개 스테인리스 스틸 기둥이 위에서 봤을 때 X자 모양의 메탈 프레임으로 연결됐다는 것. 하지만 전작이 랙 위에 올려놓는 오디오 기기의 크기에 맞춰 X 프레임의 각도를 조절할 수 있었던 데 비해, 이번 라이트 버전은 고정됐다. 그럼에도 신작에 '트랜스폼'(transform)이라는 단어를 계속 쓸 수 있는 것은 프레임 위에서 슬라이딩되는 부품 덕분이다.
하이파이스테이 Mythology Transform Lite 퍼펙트 포인트(Perfect Point)
이 부품이 바로 하이파이스테이에서 퍼펙트 포인트(Perfect Point)라고 부르는 것으로, 자세히 보면 이 포인트 후면 볼트를 느슨하게 한 뒤 앞뒤로 슬라이딩시킬 수 있다. 오디오 기기 크기에 맞게 4개 포인트 위치를 조절한 뒤 다시 볼트를 조여 고정시키면 된다. 따라서 오디오 기기가 랙에 직접 닿는 곳은 이 퍼펙트 포인트 4곳이며, 옵션으로 피아노 마감의 멀티 레이어 파이버 보드 등을 선택하면 이 보드를 올려놓고 기기를 올려놓게 된다.
이게 다가 아니다. 하이파이스테이가 유명한 것은 인슐레이터와 슈즈에 투입되는 스윙 테크놀로지(Swing Technology)인데, 미쏠로지 트랜스폼 라이트 곳곳에도 이 스윙 테크놀로지가 베풀어졌다. 1) 4개 기둥을 받치는 안티 그래비티(AntiGravity) 슈즈, 2) 상단 4개 기둥과 하단 4개 기둥이 만나는 접점부, 3) 기기나 보드를 올려놓는 4개의 퍼펙트 포인트다. 이 스윙 테크놀로지에 대해서는 뒤에서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각 기둥 안에는 기둥의 진동과 공진을 진동을 절연시키는 다각형 구조의 오석이 들어있다.
하이파이스테이 발레리노(Ballerino) 88 트리플 스윙
그러면 기존 미쏠로지 트랜스폼과는 어느 부분이 달라졌을까. 우선 4개 안티 그래비티 슈즈(풋터)가 달라졌다. 기존에는 테트라베이스(TetraBase) 80 스윙 슈즈를 베이스로 삼은 반면, 새 라이트 버전에서는 발레리노(Ballerino) 88 트리플 스윙을 베이스로 썼다. 숫자가 직경을 나타내는 만큼 새 라이트 버전의 슈즈가 더 넓다. 퍼펙트 포인트 디자인도 달라졌는데, 안에 들어간 세라믹 볼을 덮는 캡 디자인이 바뀌었다. 가운데 X 프레임을 덮는 디자인도 직사각형에서 육각형으로 바뀌었다.
BOP Stay Mini 팩트 체크
BOP 스테이 미니는 1단, 2단, 3단 제품이 마련됐는데, 시청 모델은 3단짜리. 다른 작은 오디오 기기를 올려놓을 수도 있지만, 이 제품이 BOP QF 전용인 것은 BOP QF 하단에 하이파이스테이가 제작한 3점 지지 슈즈(Bol 26) 달렸고 BOP 스테이 미니 각 단 보드에는 이 슈즈가 쏙 들어가는 둥근 홈이 파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필자가 이 BOP 스테이 미니를 집에서 사용하게 되면, 예를 들어 솜(SOtM)의 네트워크 트랜스포트 sMS-200 Ultra, 코드의 포터블 DAC 겸 헤드폰 앰프 Hugo(휴고)를 거치형으로 쓸 때 이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외관상 특징은 미쏠로지 트랜스폼 라이트와는 달리 X 프레임이나 퍼펙트 포인트가 없고 대신 메탈 보드가 4개 기둥에 붙박이로 붙어 있다는 점. 또한 위에서 말한 것처럼 보드 상판에 BOP QF 슈즈 Bol 26과 들어맞는 얕은 홈이 3개 파였다. 결국 미쏠로지 트랜스폼 라이트에서 퍼펙트 포인트의 스윙 테크놀로지를 BOP QF의 Bol 26으로 이전시킨 셈이다. 일종의 디바이드 앤 룰(divide & rule)인 것. 실제로 Bol 26 슈즈에는 3mm 크기의 세라믹볼 3개가 가운데 플레이트를 사이에 두고 2단으로 투입(총 6개)되는 등 스윙 테크놀로지가 적용됐다.
BOP 스테이 미니 랜더링 절단 면
BOP 스테이 미니의 미드 캡 & 스윙 하우징 절단면
BOP 스테이 미니의 하단 기둥과 슈즈 절단면
BOP 스테이 미니 랙에도 스윙 테크놀로지가 적용됐다. 1) 각 스테인리스 스틸 기둥과 기둥의 접점 부위(상단 기둥의 세라믹 볼 베어링 + 미드 캡 & 스윙 하우징), 2) 맨 밑 1단 기둥과 슈즈의 접점 부위(상단 기둥의 세라믹 볼 베어링 + 슈즈의 상단 스윙 베이스), 그리고 3) 슈즈 내부(세라믹 볼 3 x 1열)다. BOP QF 2대를 올려놓은 상태에서 3단 미니 랙을 흔들어 보면 자유롭게 흔들거리는데, 이는 미쏠로지 트랜스폼 라이트와 마찬가지로 스윙 테크놀로지가 이처럼 곳곳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스윙 테크놀로지(Swing Technology)
이제 스윙 테크놀로지를 본격적으로 알아볼 차례다. 편내원 대표에 따르면 지난 2002년 스파이크 끝단에 볼 베어링(현재는 세라믹 볼을 수직으로 쌓은 적층 구조)을 장착했는데 이는 구면 진자(Spherical Pendulum) 원리를 이용한 것. 이듬해인 2003년에 이 구면 진자 베어링 볼을 활용한 인슐레이터를 출시했다. 그리고 이 인슐레이터는 현재 하이파이스테이의 얼굴과도 같은 스윙 테크놀로지의 초석이 되었다.
구면 진자란 필자가 보기에 시계 추의 진자 운동 궤적을 3D 조형물로 만든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시계 추가 중력에 의해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왕복 운동을 하는 것처럼, 구면 진자 역시 중력과 자신에게 가해지는 힘에 대한 반작용에만 영향을 받게 된다. 한마디로 볼 베어링 위에 기기를 올려놓고 볼 베어링 밑 접촉면에 둥근 홈을 파 놓으면, 볼 베어링의 구면 진자 운동에 의해 기기의 진동을 효과적으로 소멸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기술 이름에 ‘스윙’이 들어간 이유다.
하이파이스테이에서는 여기서 몇 걸음 더 나아갔다. 인슐레이터나 슈즈 안에 구면 진자 운동을 하는 세라믹 볼을 3개 더 집어넣은 것. 볼 재질도 기존 세라믹의 최대 약점이었던 취성(brittleness. 깨지기 쉬운 성질)을 극복한 지르코니아 세라믹(zirconia ceramic)을 써서 경성과 함께 내마모성(덜 닳는 성질), 내식성(덜 부식되는 성질)을 높였다. 또한 이들 3개의 지르코니아 세라믹 볼을 플레이트를 사이에 두고 2층 구조(더블 스윙), 혹은 3층 구조(트리플 스윙)로 투입해 진동을 더욱 완벽히 소멸케 한 것이다.
결국 미쏠로지 트랜스폼 라이트와 BOP 스테이 미니 모두 수평방향, 수직 방향으로 가해지는 진동을 요소요소의 스윙 테크놀로지를 통해 효과적으로 소멸시키고 있다. 하이파이스테이에서는 이 같은 진동 컨트롤 시스템을 VHC(Vertical Horizontal vibration Control) 시스템이라고 명명했다. 바닥에서 랙으로 기어올라오는 진동, 공기를 통해 랙에 전달되는 진동, 기기 내부에서 발생하는 진동이 어떤 방향에서 오든지 모두 막을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보인다.
이 같은 스윙 테크놀로지는 하이파이스테이가 공개한 미쏠로지 트랜스폼 라이트 랜딩 절삭면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위 사진은 안티 그래비티 슈즈 쪽인데 자세히 보면, 하단 X 프레임 기둥 슈즈(상단 기둥 스파이크와 접촉면) 안에는 세라믹 볼이 3층으로 적층되어 있고, 밑의 스파이크 중심에는 세라믹 볼 4개가 수직으로 쌓여 있다. 안티 그래비티 슈즈도 세라믹 볼을 활용한 3단 트리플 스윙 구조이며 중심부에는 작은 스테인리스 볼들이 가득 채워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작은 스테인리스 볼들이 하는 역할은 스윙 테크놀로지로도 못 걸러낸 기기 진동을 걸러내기 위한 것. 이들 볼에 진동이 전달되면 미세하게 떨려 열을 내는 흐름으로, 결국 진동 에너지 -> 운동 에너지 -> 열에너지로 변환되는 셈이다. 하이파이스테이에서는 이 작은 볼이 들어간 원기둥을 댐퍼 실린더(Damper Cylinder)라고 부르는데, 진동을 막아준다(damping)는 뜻으로 보인다. 필자가 집에서 쓰고 있는 클램프 다르마에도 스핀들과 LP로부터 전해진 진동을 최대한 없애기 위해 이 댐퍼 실린더 기술이 적용됐다.
끝으로 살펴볼 것은 미쏠로지 트랜스폼 라이트 각 기둥 안에 들어간 오석이다. 금속 자체는 고유 공진 주파수가 있고 파이프 형태의 금속 봉에서는 공명 현상까지 일어나는데, 이를 줄여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기둥 내부를 가득 채운 오석이다. 한마디로 미세공진 제거제인 셈. 편내원 대표에 따르면 이들 오석은 세척 후 열처리까지 했다고 한다. 위 사진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셋업 및 시청
시청은 하이파이클럽 메인 시청실에서 이뤄졌다. 미쏠로지 트랜스폼 라이트에는 맨 윗단에 웨이버사의 W DAC3C, 가운데 단에 웨이버사의 W Core를 놓았고, BOP 스테이 미니 랙에는 2개의 BOP QF를 놓았다. 시청 시스템은 매킨토시의 C1100 프리앰프와 MC611 모노블록 파워앰프, 아방가르드의 Trio Luxury Edtion 26 혼 스피커와 베이스 모듈. BOP QF의 4개 DC 케이블은 W DAC3C, C1100, MC611의 파워케이블에 감았다. 다른 BOP QF는 인터케이블과 스피커케이블에 감았다.
시청은 1) 먼저 두 랙을 모두 동원해서 평소 익숙한 곡을 들어본 후, 2) W DAC3C를 미쏠로지 트랜스폼 라이트에서 빼내 바닥에 놓고 들어보고, 3) BOP 스테이 미니 랙에서 BOP QF 1대까지 빼내 바닥에 놓고 들어본 뒤, 4) 다시 두 기기를 두 랙에 원위치시켜 마지막으로 들어보는 순서로 진행했다. 음원은 룬(Roon)으로 코부즈(Qobuz) 스트리밍 음원과 룬 코어 저장 음원을 활용했다.
Kari Bremnes - A Lover In Berlin
Norwegian Mood
1) 키보드, 베이스, 드럼, 기타, 퍼커션 각 악기들이 선명하게 들린다. 레이어도 잘 짜였으며 보컬이 맨 앞에 등장한 모습도 잘 관찰된다. 전체적으로 SN비가 높고 투명하고 깨끗한 무대다. 발음의 디테일도 도드라지고 음의 윤곽선에서는 일절 색번짐이 없다. 특히 기타와 베이스 기타의 연주가 생생한데 불꽃이 튄다는 느낌까지 받았다.
2) W DAC3C를 미쏠로지 트랜스폼 라이트 랙에서 빼내 들어보면, 음들이 귀에 쩍쩍 붙는 맛이 사라졌다. 다이내믹 레인지도 13에서 10 정도로 줄어든 듯하며, 악기들과 보컬은 무대 중앙에 뭉쳐있는 모습이 확연하다. 무엇보다 해상력의 감소가 두드러지는데, 소스기기 한 대를 랙에서 내려놓았다고 이 정도 차이가 생기는지 자꾸 의심이 갈 정도다.
3) 이번에는 BOP QF까지 BOP 스테이 미니 랙에서 빼내 바닥에 내려놓고 들었다. 미쏠로지 트랜스폼 라이트에서 W DAC3C를 빼냈을 때처럼 큰 변화는 아니지만 음의 기세가 얌전해진 것은 분명하다.
4) 다시 두 기기를 두 랙에 원위치시키니, 첫 음의 펀치력부터 다르다. 퍼커션은 번개가 내리치듯 선명하고 또렷하다. 마치 백열등에서 아주 환한 LED를 여러 개 켜놓은 것처럼 각 악기들과 보컬에 스포트라이트를 쏴준다는 인상. 화면으로 말하면 화소가 뭉치지 않는다는 느낌도 받았다. DAC과 스피커를 업그레이드했을 때처럼 해상력이 단번에 높아진 점도 특징. 보컬의 고음이 잘 뻗는 것이 아방가르드 스피커의 혼 트위터가 비로소 제 역할을 톡톡히 하는 것 같다.
Dave Brubeck Quartet - Take Five
Time Out
1) 왼쪽의 드럼, 오른쪽의 피아노, 가운데의 알토 색소폰 순으로 악기들이 정확히 제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이 대단하다. 역시 거의 모든 음들이 또렷이 잘 들리고 무대는 확 트였다. 베이스 드럼과 하이햇의 그 키 차이까지 느껴질 정도로 디테일이 잘 구현된다. 4개 악기가 모두 한 무대에서 연주를 하는, 그야말로 오가닉 사운드를 만끽했다.
2) W DAC3C를 바닥에 내려놓으면 양쪽의 드럼과 피아노의 거리가 줄어들었고, 알토 색소폰의 그 깊고 풍성한 소리가 졸지에 단조롭고 밋밋해졌다. 그냥 음표만을 황급히 좇아간다는 인상. 베이스 드럼과 하이햇의 높낮이 차이도 '갑자기'라고 할 만큼 좁아졌다. 또한 노이즈 플로어가 높아져 거의 모든 음들이 수렁에 빠진 듯 먹먹하게 들린 점도 안타깝다.
3) BOP QF를 바닥에 내려놓자, 세상에, 드럼이 더 작아져 미니어처가 되어버렸다. 드럼 솔로 대목에서는 그 역발산기개세가 약해졌고 무대의 입체감도 상당히 퇴화했다. 알토 색소폰은 사람이 부는 게 아니라 프로그래밍 악기가 연주하는 것처럼 그 오톨도톨한 질감과 온기감이 잘 안 느껴진다.
4) 다시 원 위치시켜 들어봤다. 우선 드럼의 형체가 좀 전에 비해 최소 2배 이상 또렷해진 것이 마치 새로 맞춘 안경을 처음 썼을 때의 그 느낌이다. 이 차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다. 알토 색소폰은 폴 데스몬드의 숨결에 따라 미세하게 요동치는 음을 내주는 것이 비로소 사람이 부는 것 같다. 이게 바로 악기의 텍스처라는 것이다.
Claudio Abbado, Berliner Philharmoniker - Dies Irae, Tuba Mirum
Mozart Requiem
디에스 이래 : W DAC3C를 바닥에 내려놓으면 필자와 오디오 사이에 두꺼운 천을 가린 듯 음들이 먹먹해지고 뭉개진다. 색채감까지 줄어든 것은 당연하고 다이내믹 레인지도 좁아졌다. BOP QF까지 바닥에 내려놓으며 레이어고 입체감이고 그냥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스피커와 파워앰프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진동의 폐해가 이 정도라는 사실에 새삼 전율을 느꼈다. 다시 하이파이스테이 두 랙에 올려놓고 들어보니 합창단의 좌우 폭이 넓어지고 단원들의 발성이 곳곳에서 홀로그래픽하게 들린다. 무대는 넓고 음끝은 살아난 상황. 특히 남성 합창단의 중저음이 보다 잘 들리기 시작했다.
투바 미룸 : W DAC3C를 바닥에 내려놓자 트롬본과 바리톤이 윤곽선만 남았고 무대도 작아진다. 거의 모든 항목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화가 되어버렸다. 역시 오디오는 진동과 전기 관리가 급선무다. BOP QF를 바닥에 내려놓으면 오케스트라 악기들이 징검다리 식으로 필요한 음만 내준다는 인상. 테너가 등장할 때는 미세하게 음상이 흔들리는 느낌도 받았다. 결국 음상과 무대, 배음, 스테레오 이미지 등을 이루는 각종 정보들이 진동으로 인해 파괴되었다는 반증이다. 다시 원위치시켜 들어보면, 트롬본이 훨씬 큰 대형기로 등장하며 바리톤은 단전에 힘이 들어간 것처럼 에너지감 넘치게 노래를 한다. 한마디로 음들이 살아났다.
Animals - House fo the Rising Sun
The Singles Plus
어느새 하이파이스테이 두 랙의 효과가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어쩌면 너무나 쉬운 표현이지만 '음들이 잘 들린다'라는 것이다. 어디에 묻히지 않고 밴드 보컬의 고음은 거침없이 쭉쭉 뻗고, 안개처럼 부유하는 키보드 전자음의 모습도 잘 관찰된다. 파릇파릇, 윤기, 선도, 선명, 생기, 활기 이런 이미지다. W DAC3C을 미쏠로지 트랜스폼 라이트에서 빼내면 드럼과 키보다 갑자기 악을 쓰는 듯하고, 보컬은 신경질적이며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낸다. BOP QF까지 랙에서 내려놓으면 그 맛깔스러웠던 키보드의 전자음이 마치 스피커를 다운그레이드한 것처럼 앙상하기 짝이 없다. 다시 원위치시켜 들어보면, 드럼의 심벌과 하이햇이 분명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키보드는 그 생생한 입자감을 회복했으며, 보컬의 목소리는 위로 쭉쭉 뻗는다. 한마디로 디스토션 없이 볼륨을 올린 듯한 음이 나왔다.
Chris Jones - No Sanctuary Here
Roadhouses & Automobiles
끝으로 예전에 자주 들었던 이 곡을 테스트해보니, 현재 듣고 있는 오디오 시스템의 저역 해상력이 상당하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소위 말하는 잉여 저역 없이 깔끔하면서도 임팩트 있는 저역을 내뿜는다. 노이즈 역시 한 톨도 남김없이 증발한 상태. 재생음 곳곳에서 약간 서늘한 느낌이 드는 것은 하이엔드 오디오의 특징이라 할 것이다. W DAC3C를 바닥에 내려놓으면 이게 같은 버전의 곡인가 싶을 만큼 음들의 농도가 묽어지고 템포는 느려진다. 계속해서 진동이 음을 갉아먹고 있다는 이미지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BOP QF까지 랙에서 내려놓으면 고역이 강조되는 등 톤 밸런스가 흐트러져 버린다. 저음을 구성하는 정보들이 약해진 탓이다. 다이내믹스는 매크로, 마이크로 가리지 않고 모두 썰물처럼 밀려나갔다. 다시 원위치해서 들어보면, 마침내 안개는 사라지고 음 하나하나의 기세가 되살아난다. 퍼커션 소리도 사각사각 잘 들린다.
총평
지난해 8월 하이파이스테이의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공장을 탐방한 적이 있다. 3D 도면 작업부터 시작해서 구면진자 비율 측정, 인장강도 테스트, 보드 밀링 작업, 레이저 각인 작업까지 오디오 애호가 입장에서는 눈이 번쩍 뜨일 만한 볼거리들이 많았다. 무엇보다 800개가 넘는 지그(jig)와 전용 인큐베이터에 보관되는 측정장비, 산더미처럼 쌓인 인슐레이터와 슈즈 샘플들이 인상적. 역시 엔지니어링은 아이디어와 이론적 뒷받침도 중요하지만 이를 제품으로 구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술과 장비, 숙련된 노하우가 필수임을 깨달았다.
탐방 당시 편내원 대표가 이런 말을 했다. "저희 제품과 유사한 구조의 제품을 만들 수는 있지만 정밀가공과 저희만의 공정 컨트롤은 단시간에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좌고우면하지 않습니다. 저희는 오로지 저희가 가야 할 길을 갈 뿐입니다. 저희는 저희가 잘 할 수 있는 것, 바로 진동 컨트롤에 집중할 뿐입니다. 오디오에 있어서 진동 컨트롤 디바이스가 더 이상 액세서리가 아니라 필수 장치로 인식되기를 바랍니다."
편 대표의 바람은 공허하지 않았다. 미쏠로지 트랜스폼 라이트와 BOP 스테이 미니를 테스트하면서 그 있고 없음의 차이에 놀랐고, 진동이 이 정도로 오디오 재생음에 큰 해악을 미친다는 사실에 더욱 놀랐다. 평소 은근히 진동 대책에 무심했던 필자의 게으름과 무신경에 화가 날 정도였다. 그만큼 스윙 테크놀로지와 댐퍼 실린더로 대표되는 하이파이스테이의 제진 기술과, 제품으로서 마감 품질과 완성도는 자신 있게 엄지 척을 할 만했다. 진동 잡는 백신 혹은 세정제의 탄생을 격하게 환영한다.
by 김편 오디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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