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푸젤리: 티타니아, 보텀, 요정들 Henry Fuseli: Titania, Bottom and the Fairies. Oil on Canvas, 169×136cm. Kunsthaus(Zürich)
사랑의 묘약(妙藥)은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것일까.
누군가를 사랑에 빠뜨리는 것은 할 수만 있다면 흥미진진한 일이다. 이런 짓궂은 일은 요정들이 즐겨한다. 셰익스피어가 초서와 오비디우스에게 영향을 받아 쓴 "한여름밤의 꿈"도 이러한 요정들의 이야기이다.
아테네 너머의 숲으로 사랑의 도피를 한 헤르미나(Hermina)와 리센데르(Lysander) 헤르미나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그녀를 쫓아온 데메트리우스(Demetrius), 다른 여자에 정신이 팔려 있는 데메트리우스를 미치게 사랑하는 헬레나(Helena). 여기에 더해 귀여운 소년을 사이에 두고 서로 싸우고 있는 오베론(Oberon)과 티타니아(Titania)가 끼어 든다. 요정들의 왕과 왕비인 이들의 개입으로 인해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는다.
질투에 눈이 먼 오베론이 또다른 요정 퍼크(Puck)를 시켜 사랑의 묘약을 사용하게 한다. 퍼크는 이 특별한 약을 티타니아가 잠든 사이에 그녀의 두 눈에 발랐는데, 그렇게 되면 티타니아가 잠에서 깨어나 처음 보게 되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티타니아는 숲 속에서 당나귀 탈을 쓰고 친구들과 함께 연극 연습을 하고 있던 보텀(Bottom)을 사랑하게 된다.
한편 오베론은 짝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는 데메트리우스를 측은히 여겨 퍼크에게 사랑의 묘약을 바르게 한다. 그런데 정작 퍼크는 엉뚱하게도 데메트리우스가 아닌 리센데르의 눈에 묘약을 발랐고, 그렇게해서 리센데르는 잠에서 깨어나 처음 보게 된 헬레나를 사랑하게 된다.
상황을 확인한 오베론은 다시 명령을 내렸고, 퍼크는 데메트리우스에게 약을 썼는데 하필 그때 눈 앞에 나타난 헬레나에 푸욱 빠지게 된다. 이렇게 모든 관계는 뒤죽박죽 되었고 한때 헤르미나를 사이에 두고 으르렁 거리던 두 사람이 (쳐다도 안보던) 헬레나를 차지하려고 싸운다.
"안녕 프란체스카"의 안성댁은 이런 상황을 두고 ‘황당한 시추에이션’이라고 했는데, 정말이지 헤르미나와 헬레나의 상황이 역전되었다. 사태를 지켜본 오베론은 분노했고 또다시 퍼크는 동분서주했다. 결국 잠이 든 리센데르의 두 눈에 사랑의 묘약을 바르는 데 성공한 퍼크는 모든 상황이 정상으로 돌아올 것을 기대했다(묘약을 두 번 바르면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온다).
이 이야기는 행복한 결말의 풍요로움으로 모두를 즐겁게 한다. 헤르미나와 리센데르는 다시 서로를 사랑하게 되며 헬리나와 데메트리우스는 엇갈린 짝사랑에서 구원받았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에게 있었던 일들이 마치 ‘한여름밤의 꿈’과 같았다고 느끼게 된다.
헨리 푸젤리(Henry Fuseli, 1741∼1825)가 1793년에 제작한 이 작품은 티타니아가 보텀을 보고서 사랑에 빠진 그 순간을 그린 것이다. 당나귀 탈을 쓰고 있는 보텀은 필요이상으로 크게 그리고 있는데 푸젤리가 의도했던 것은 르네상스 시대의 원근법을 부정하므로써 잃어버린 고대 미술의 정신성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푸젤리는 낭만주의로 넘실대던 시대적 파도를 신고전주의 정신으로 헤쳐나갔다. 20세기 초반에 브르통을 비롯한 초현실주의자들이 푸젤리의 작품에 무한한 경의를 표시했으며 19세기 전체를 통해 낭만주의자들의 찬양을 받아왔지만, 정작 화가 자신은 빈켈만의 ‘고귀한 단순함과 고요한 위대성’에 집착했다.
티타니아의 모습은 어쩌면 안나 란돌트일지도 모른다. 그녀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한 상처는 푸젤리의 인생을 결정지은 커다란 사건이었다. 그가 1781년 이후에 그린 많은 작품들에서 보이는 여인의 모습은 대부분 안나의 묘사였다.
음악에서도 셰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은 많은 작곡가의 상상을 자극했는데, 그중에서도 멘델스존의 작품이 가장 유명하며, 드뷔시도 [전주곡]에서 요정 퍼크를 묘사했다. 서곡으로 유명한 베버의 오페라 오베론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아닌, 18세기 독일 작가인 크리스토프 마르틴 빌란트의 대본을 썼는데 [한여름밤의 꿈]과는 완전히 다른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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