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된 영화 <미드나이트 스카이> 포스터
얼마 전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미드나이트 스카이>라는 영화가 공개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영화배우라고 하는 조지 클루니. 하지만 그가 연출한 영화는 단지 섹시함을 넘어선 여러 진솔한 가치를 담아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릴리 브룩스돌턴의 소설 <굿모닝 미드나이트>를 원작으로 각색한 <미드나이트 스카이>는 인류의 구원에 관한 이야기다.
재앙으로 인해 위기에 처한 지구는 새로운 역사적으로 지구인들이 그래왔듯 또 다른 식민지를 찾는다. 그러나 그곳은 지구상의 또 다른 대륙이 아니라 지구 밖의 행성이라는 것이 차이점이다.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난 그곳에서 우주인들이 주고받는 대화 그리고 그 와중에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마치 꿈결처럼 펼쳐진다. 디스토피아를 다루지만 그 안엔 사랑과 가족애 등 여러 소중한 가치들이 단단히 내재되어 있다.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은 우주선 안에서 그들이 부르는 노래. 지구를, 고향을 그리고 그들의 무사귀환을 소망하고 있을 가족을 생각하며 부르는 노래다. 크리스 스테이플턴의 ‘Tennessee wihiskey’라는 이 컨트리 곡만이 이들이 떠나온 곳을 부표처럼 가리키고 있었다. 아니, 이들이 지구인이라는 것. 그중에서도 미국인이라는 걸 확실히 증명해 주고 있다.
대체로 미국 중심의 팝 음악이 지배하는 지구지만 사실 지구엔 미국 외에 훨씬 더 많은 나라들에서 만든 보석 같은 음악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화석처럼 굳어진 것이 아니라 현재도 공기 중에서 수없이 명멸 중이다. 다행히 저장 매체가 있고 음원이 있어 다시 되새길 수 있다. 지난번 1편에서 평소 리뷰에 즐겨 사용했던 곡들에 이어 이번에도 다섯 곡을 추려보았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나라와 음악적 언어를 통해서 다채로운 음향의 앰비언스를 느껴보기 바란다.
1. 프레드릭 린드보르그 / A Swedish Portrait
혹시 오디오파일이라고 자부한다면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뛰어난 아날로그 녹음의 레퍼런스를 찾고 있다면 프로프리우스(Proprius) 레이블의 앨범을 들어보길 바란다. 이미 잘 알고 있는 마니아들도 있겠지만 [Jazz At The Pawnshop]이나 [Cantate Domino] 같은 앨범들 말이다. 음원도 좋고 시디나 엘피도 좋다. 더군다나 최근엔 2XHD 같은 뛰어난 레이블을 통해 리마스터링되어 고해상도 음원을 구할 수도 있다.
프로프리우스 레이블은 스웨덴의 야코브 보에티우스가 설립한 레이블이다. 최소한의 마이크와 아날로그 장비를 통해 아주 간결하게 녹음하지만 그 음질은 감상자와 뮤지션의 거리를 최소한으로 좁혀준다. 그가 그의 아들 얼랜드 보에티우스와 함께 또 하나의 레이블을 설립했는데 다름 아닌 프로폰(Prophone)이다.
워낙 여러 앨범들을 출시해 단 하나를 꼽기 힘들지만 하나만 고르라면 프레드릭 린드보르그의 [A Swedish Portrait]라는 작품이다. 새하얀 종이 위에 수채화 물감을 톡 ~ 떨어뜨린 재킷 이미지는 맑고 순수한 음악적 색채를 상상하게 만든다. 그리고 실제로 이들의 음악은 재즈와 스웨덴 민속음악 등이 혼재되어 북구의 신선한 에너지가 넘친다. 악기도 다양해 색소폰,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베이스, 드럼 등으로 구성되었는데 그 중심에 바리톤 색소폰 주자 라스 굴린이 있다. 여러 악기들이 다양한 대역을 오가면서 만들어내는 배음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리고 그것들이 얼마나 잘 분리되면서 자신만의 음색을 개성 넘치게 표현하는지 즐겨보자. 시디는 물론 2LP로 제작된 엘피 모두 추천한다.
2. The Wonderful Sounds of Female Vocals
평소 이곳 하이파이클럽 같은 웹진이나 블로그 등에 글을 쓰기도 하고 가끔 잡지에 글을 쓰기도 한다. 최근엔 ‘에스콰이어’ 잡지에 ‘나는 왜 작은 것에 집착하는가’라는 제호로 칼럼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글 쓰는 것 외에 종종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달라는 곳들이 있어 진행하곤 한다. 사실 선곡 자체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온라인 음원 서비스 같은 편리한 도구가 있으니까.
작년엔 약 천여 곡을 선곡해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제공했는데 항상 가장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동시에 힘든 것은 곡의 순서다. 아무리 뛰어난 곡이고 녹음이 좋다고 해도 플레이리스트 안에서 어떤 위치에 어떤 곡이 들어가느냐에 따라 그 음악에 대한 감상은 무척 다르게 다가오기 때문. 아무리 뛰어난 지능의 AI라고 하더라도 사람보다 복잡다단한 감성을 가지진 못할 것이라고 장담한다.
이런 생각이 든 것은 최근 [The Wonderful Sounds of Female Vocals]이라는 모음집 때문이다. 나는 엘피로 구입해서 즐기고 있는데 줄리 런던과 엘라 피츠제럴드 그리고 더스티 스프링필드로 이어지는 대목에서 선곡과 큐레이션을 맡은 사람의 센스에 주목했다. 그는 QRP라는 엘피 프레싱 회사를 운영하면서 동시에 아날로그 프로덕션이라는 레이블을 가지고 있는 채드라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 앨범은 채드가 직접 선곡해 제작한 모음집이다.
뮤직 매터스 재즈와 최근 블루노트 톤 포엣이나 80주년 앨범들로 유명한 케빈 그레이가 마스터링을 맡아 음질도 환상적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각 곡의 음율과 리듬, 톤과 뉘앙스가 절묘하게 이어지는 선곡이 압권이다. 가격은 비싸지만 탁월한 커버 패키지와 환상적인 음질은 가격을 상회한다.
3. 황병기 / 달하 노피곰
대지를 먹어 삼키려는 눈은 퇴근길 도시를 마비시키면 아비규환으로 만들었다. 며칠 전 퇴근길 소복소복 쌓이기 시작한 눈은 영하의 날씨에 도로를 빙판길로 도배한 것. 이맘때면 생각하는 음악이 있다. 바로 황병기 선생님의 [춘설]이다. 아직 봄은 아니지만 눈 내린 돌담길 앞을 가야금을 들고 왼쪽으로 빠져나가는 황병기 선생님을 포착한 커버 사진이 눈에 아른거린다.
그러나 황병기 선생님의 연주를 음질까지 만족스럽게 즐기고 싶다면 우리에겐 그가 남기고 간 또 다른 걸작 [달하 노피곰]이 있다. 영국 셰필드대 앤드루 킬릭 교수가 오죽하면 "모순을 명상하는 선(禪)의 경지"라고 평가했겠나. [미궁]에서 시작된 가야금 소리에 대한 추구는 [달하 노피곰]에서 가장 큰 감동으로 집약되었다. 그의 가야금 작품집 중에서 최고 수준의 녹음인 본 작은 음악적으로도 편견이 없이 자유로웠던 생전 그의 가치관을 잘 반영하고 있다. 베토벤 소나타에서 영감을 얻은 ‘시계탑’이나 박목월 시인의 향토적 시 세계를 노래한 ‘고향의 달’이 그렇다. 서정주의 ‘추천사’는 또 어떤가?
특히 이 앨범은 가야금의 배음 구조를 이해하는 데 상당히 유익하다. 이는 본래 가야금 소리보다 더 맑고 또랑또랑한데 다름 아닌 가야금 아래 질그릇을 받혀 연주했기 때문이다. 해외 음반들보다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도 장점. 시디는 물론 작년에 엘피로 발매되어 커다란 즐거움을 선사했다. 특히 에밀 베를리너에서 래커 커팅하고 독일 팔라스에서 제작해 뛰어난 음질을 선사하는 엘피를 추천하고 싶다.
4. 씨아라멜라 앙상블 / Dances On Movable Ground
고음악은 평소에 그리 자주 듣는 레퍼토리는 아니지만 가끔 제대로 녹음된 앨범을 들어보면 섬뜩할 정도로 신선한 사운드를 들려줄 때가 있다. 대표적으로 필자의 저서 [고음질 명반 가이드북]에서도 언급했던 조르디 사발의 ‘La Folia’같은 앨범 말이다. 스페인과 프랑스에서 작곡된 수백 년 전의 음악을 고악기로 연주할 때 만들어지는 배음은 최근 악기와 음악에선 절대 들을 수 없는 향취 속으로 빨려 들게 만든다.
최근 또 하나의 고음악 명반을 하나 만났다. 앱솔루트사운드에선 레이블 얄룽이 홈런을 쳤다고 이야기하면서 마스터링 엔지니어 버니 그런드먼이 커팅한 이 앨범의 45rpm 엘피를 극찬하기도 했다. 궁금해서 재생해본 이 앨범의 사운드는 놀랍다. 1500년대부터 바로크 시대까지 살았던 뮤지션들의 곡과 이 앨범의 디렉터인 애덤 길버트의 곡들을 담아내고 있는 작품으로 음악과 음질 모두 잡은 작품이다.
씨아라멜라 앙상블은 디렉터 애덤과 로템 길버트를 중심으로 바로크 기타, 비올라 다 감바, 드럼 등 타악기는 물론 하프시코드와 리코더, 르네상스 브라스 등 다채로운 악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수록곡들은 마치 수백 년 전 야외 결혼식에서도 흘러나왔을 법한 춤곡들로 반복적인 코드와 멜로디 속에 활기찬 음조가 소용돌이친다. 버진 폴리카보네이트와 특수 합금을 사용한 시디와 버니 그런드먼이 커팅한 45rpm 엘피 모두 극상의 음질 퀄리티를 보장한다.
5. 팻 메스니 / Still Life (Talking)
음악만 듣다가 하드웨어, 즉 음질과 오디오에 천착하게 되면 이제까지 들어왔던 음악은 다 무엇이었는지 허탈해지기 일쑤다. 동시에 같은 음악도 전혀 다른 감흥으로 자신을 이끌고 있을 때 당혹감마저 든다. 좋은 일은 음질이 좋다고 생각해 보지 않았던 음악이 더 좋은 하이파이 오디오에서 상당히 뛰어난 음질로 다가올 때의 즐거움이다. 이전엔 들리지 않았던 약음이 모두 살아나 마치 새롭게 녹음한 음악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팻 메스니의 [Still Life] 같은 앨범이 바로 그런 녹음이었다. 팻 메스니와 라일 메이즈가 만들어내는 천상의 하모니와 함께 다양한 리듬 악기와 코러스가 멋지게 버무려진다. ECM 시절 최고의 성공작 [Offramp]에서 감지되었던 라틴 음악의 융합. 이 앨범에선 그것을 더욱 적극적으로 포용해 거의 월드뮤직 수준으로 이행하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Last train home’은 어딘가로 이동하는 자동차나 버스 안, 여행을 떠나거나 명절을 맞이해 고향으로 가는 길에 안성맞춤이다. 마치 기차가 달리는 듯한 모습이 브러쉬 스틱의 빠른 움직임과 함께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집으로 향하는 도로 위에서의 설레임과 한편으로 느껴지는 안도감은 미소를 짓게 만든다. 잘 세팅된 오디오에서 이 곡은 빠른 페시지 이동과 세밀한 약음 표현의 디테일 등을 잘 잡아내 표현해 준다. 마스터링 엔지니어가 무려 밥 루드윅이다.
Written by 오디오 칼럼니스트 코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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