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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음악가 이야기

글렌 굴드와 오디오

by onekey 2024. 2. 29.
코난2016-06-13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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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이자 약물 중독자이면서 클래시컬 뮤직에 있어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연주를 남긴 글렌 굴드. 그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2007년 새로운 앨범을 들고 인류에게 다시 찾아왔다. 마치 화성에 잠시 다녀왔는데 시간이 왜 이렇게 많이 흘렀냐는 듯 앨범 속 그의 표정은 그대로였다. 젊은 날의 글렌 굴드는 항상 창조적이였으며 음악에 대한 열정을 불사르는데 여념이 없었다. 젠틀하고 멋지며 성격 좋은, 그저 얌전하게 정통 피아니즘을 구사하는 피아니스트가 아니었다. 
 
그는 동시에 완벽주의자였다. 동일한 악곡을 수십 번 녹음해 이를 편집해 하나의 앨범으로 출시하기도 했을 만큼 소리 하나, 단 몇 마디 연주에도 그의 감정과 예술혼을 투영했다. 그렇게 1955년 바흐 골드베르그 변주곡이 태어났다. 2007년에 다시 우리에게 선보인 것은 그가 타임머신을 타고 1955년의 미래, 2007년에 돌아온 것이 아니다. 소니 뮤직이 그의 1955년 연주를 컴퓨터에 의뢰해 다시 재현한 것이다. 
 
 
▲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 John Q. Walker는 컴퓨터가 유명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재현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존 워커가 운영하는 Zenph 는 소니 클래시컬에 ‘Re-Performance' 를 제안했다. 이것은 원래 마스터 레코딩에서 글렌 굴드의 페달 움직임, 피아노 터치 등을 분석해 템포와 다이내믹스, 어택에서 릴리즈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것을 데이터화했다. 그리고 이 정보를 모두 프로그래밍하고 컴퓨터로 연주하게 했다. 발매 후 거짓말처럼 대중과 평단 및 현역 엔지니어들의 격찬이 이어졌다. 
 
그러나 흥행은 오래 가지 못하고 수그러들었다. Re-Performance 는 고작 대여섯 타이틀이 발매된 후 종적을 감추었다. 1955년 녹음 당시 객관적 음질 수준을 모든 면에서 뛰어넘은 Zenph 의 Re-Performance 사운드는 무엇이 문제였을까. 
 
한편 깨끗하고 선명한 음질에 최고의 디지탈 기술이 만들어낸 고음질이라고 명명한 CD 와 SACD, DVD 오디오 또한 이미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블루레이 포맷이 여전히 살아있고 고음질 음원을 담은 HFPA 가 출시되었지만 이미 고사 직전이다. 반대로 디지털 시절의 그것 훨씬 전에 풍요로운 한시대를 보냈던 LP를 생각해보라. 디지탈 매체에 밀려 시장에서 쫒겨난 LP 는 언제 그랬었냐는 듯 다시 의기양양하게 부활했다. 
 
글렌 굴드의 1955년 녹음을 컴퓨터에 의해 다시 녹음한 앨범. 굴드의 신음 소리도 당시 마스터테이프의 잡음도 사라져 깨끗하다. 다만 열정과 감성, 직관이 리퀴드하게 넘실대며 충만했던 녹음에서 음악까지 동시에 연기처럼 허공으로 증발해버린 듯 하다. 도대체 컴퓨터는 무엇을 놓친 것일까 ? 
 
 
▲ 글렌굴드와 카라얀이 연주 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최근 하이엔드 오디오는 소스라칠 듯 깨끗하고 명쾌하며 인간의 가청 대역을 넘어선 초광대역 사운드를 지향한다. 다이내믹레인지는 충분히 높아졌으며 소름이 돋을만큼 높은 정보량과 고해상도에 정확한 소리를 내고 있다. 기술의 발전은 이제 더 이상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 하지만 과연 음악의 열기는 얼마나 뜨거워졌고 그토록 염원했던 현장의 리퀴드한 음악적 뉘앙스와 에너지가 꿈틀대며 만들어내는 역동성엔 얼마나 근접했는가? 작금의 하이엔드는 너무나 일방통행하고 있다. 하지만 모두 그렇다는 건 어불성설이며 각자 선택과 집중, 운용 방식에 따라 좁은 과녁을 향한 일방통행이 아니라 보다 넓고 다채로운 음질을 즐길 수 있다.
 
 


그 시작은 음악, 마스터 녹음에 대한 이해와 가치 평가로부터 시작한다. 어떤 사람은 하이엔드 오디오에서 마칠 공연장의 현장과 같은 소리를 즐기길 원한다. 또 다른 그룹은 현장이나 스튜디오에서 녹음하고 엔지니어의 후반작업을 거친 마스터 레코딩의 정확한 재생을 원한다. 하지만 사실 대다수의 보편적 대중은 원래 레코딩이나 실연과 관계없이 자신이 즐기고 싶은 소리로 즐기길 원한다. 여기서 일부 착각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하이엔드 오디오의 기술이 발전하고 가격이 높을수록 뮤지션이 연주한 음원의 본질에 더욱 더 근접할 거라는 막연한 상상이다.
 
하지만 녹음 자체가 모두 현장음을 그대로 담아낸다고 생각한다면 커다란 착각이다. 뮤지션의 용솟음치는 창작용을 자유롭게 토해내고 엔지니어와 프로듀서는 그 퍼포먼스를 녹음한다. 프로듀서는 전체 음악을 조율하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며 심지어 연주 패턴을 바꾸어 버리기도 한다. 명심해야할 사실은 또 있다. 엔지니어, 녹음 기사는 최초에 마이크나 라인으로 거둬들인 음원을 자신의 취향에 근거해 또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재편집, 믹싱, 마스터링까지 마친다. 원음이란 없다. 단지 편집된 음원이 있을 뿐이다.
 
글렌 굴드 같은 연주자의 녹음이 반드시 실연과 동일할 것이라는 착각은 단시 레코딩의 과정과 앨범 발매 작업에 대한 순진한 생각에서 비롯된다. 현장음과 재생음의 사이엔 스튜디오, 프로듀서, 엔지니어 때로는 톤 마이스터까지 여러 다양한 ‘인간’과 ‘기계’들이 참여하고 여러 부분에서 간극을 넓힌다. 때로는 앨범을 발매하는 기획사의 방송 프로모션이나 타켓층의 취향도 반영되기 일쑤다. 
 
실상이 이렇고 뮤지션은 물론 후반작업에 참여하는 수많은 스텝들의 역할이 이런데 여전히 오디오에서 실연을 논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렇다면 오디오는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시무룩해질 수도 있다. 재생 과정 이전에 여러 다양한 편집을 포함한 후반 작업을 거친 난 후 드디어 시장에 출시된 음원을 즐기는 데 사용될 뿐이기 때문이다. 풀 다이내믹레인지, 풀 디테일이 모두 녹음되었다고 선전하더라도 우선 그것은 현장음과는 분명 거리를 갖게 된다. 다수 대중은 뮤지션과 엔지니어의 취향에 의해 편집된 것을 수동적으로 즐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재생음을 즐기는 것에 생각이 멈춰진다. 현재 하이엔드 오디오는 그것을 얼마나 정확하게 재생하느냐에 수십 년간 목을 메 왔다. 가끔 이를 혼동해 현장음을 재생하고자 하는 오디오파일도 있는데 이 때문에 웃지 못 할 해프닝도 벌어진다. 프로듀서와 엔지니어, 더 나아가 그 뒤에 서있는 투자자와 기획자의 의도가 그렇게도 중요한가 ? 그들의 의도가 깊게 반영된 재생음을 단지 동일하게 재현하는 것이 최선인지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음악을 연주하는 뮤지션과 이를 녹음하고 편집하는 엔지니어들의 역할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오디오 마니아도 나름대로 자신의 의도대로 소리를 만들어 즐길 권리가 있다. 나는 그것이 제 2의 창작이며 오디오 마니아를 일본에서 ‘오디오 연주가’ 라고 칭하는 가장 명백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수동적으로 그 본래 원음에 대한 충실도만을 따지기엔 이미 하이파이 오디오는 많은 발전을 이루어왔다. 입문기들도 대역이 넓어졌고 과거처럼 왜곡이 크지 않다. 특히 요즘처럼 기술적으로 트리클 다운이 빠르게 이어지는 시대에 성능 차이는 더더욱 좁아지고 있다.
 
신생 하이엔드 메이커는 이미 중급기 또는 대중적인(?) 하이파이 메이커가 되어버리고만 전 세대의 하이엔드 메이커들과 자신들을 구분지어야했다. 철이든 돌이든 또는 매우 값비싼 귀금속과 특수 소재가 제품에 투입되기도 한다. 무게는 늘어나고 점점 희귀한 물질 덩어리로 비대해진다. 이론적으로 더 뛰어난 소재지만 그 질량과 가치만큼 소리가 좋아진다는 보장은 없다. 소리를 위해서라기보다 여타 메이커와 자신들을 구분 짓기 위한 몸부림처럼 보인다. 심지어 독보적으로 값비싼 가격을 제시하기 위해 그럴 듯하게 포장하는 것처럼 보이기도한다.
 
 


음악적 취향은 없고 성능의 우열만 가리는 대중의 일방적 가치관도 문제를 가중시킨다. 성능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음질을 찾길 바란다. 모든 사람이 단단한 저역과 하늘을 가르는 초고역만 쫓을 필요는 없다. 자신을 음악의 바다로 이끄는 소리는 오히려 저역이 풀어지고 협대역일 수도 있다. 착색이 완벽히 제거된 증류수 같은 소리가 싫을 수도 있다. 오히려 예쁘고 화사한 또는 어둡고 적막한 음색에 과도한 저역이 그 취향에 부합할 수도 있는 것이다. 스피커로 예를 들자면 풀 다이내믹레인지와 광대역이 부담스러운 사람은 풀레인지나 평판도 좋다. 때로는 혼 스피커가 공간에 너울너울 펼쳐내는 웅대한 음파의 물결에 몸을 맏겨보는 것도 좋다.
 
원래 마스터의 녹음보다 저역이 더 과장되고 풍성하며 약간은 온도감이 더해진 필드형 빈티지도 답이 될 수 있다. 최근 오션웨이 같은 메이커에서는 극장용 알텍 같은 스피커를 응용, 현대 하이엔드 오디오파일에게 어필할 수 있도록 만들어내기도 했다. 아방가르드의 혼 스피커는 내가 들어본 소리 중 가장 아름다운 혼 사운드를 어필한다. 가장 진보된 기술을 선전하는 억대 스피커들보다 음악은 더욱 감동적일 수 있다.
 
그 어느 누구도 제대로 완성하지 못한 정전형 스피커들이 지금은 몇몇 장인들의 손에 의해 태어나기도 한다. 우리는 아큐브라는 국내 유일의 정전형 스페셜리스트를 이미 가졌다. 배플에 의한 회절과 위상차를 완전히 극복하고 사방으로 음파를 방사하는 MBL을 보라. 무지향의 자연스러운 공간감은 수억원대 박스형 스피커는 도달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다.
 
하이엔드 오디오라고 해서 모두 철저하게 냉정한 재생음만을 목표로 하진 않는다. 온건하고 풍요로운 탄노이, 소너스 파베르도 있고 WHT, Devore Fidelity, 오데온 같은 비범한 스피커들이 즐비하다. 국내에는 고유의 컬러가 아름다운 올닉이 있고 최근 주목받는 웨이버사 진공관 앰프도 있다. 우리는 어쩌면, 오디오 종주국 몇 개 나라 빼고는 가장 축복받는 사람들이다.
 
 
 
글렌 굴드 골드베르그 변주곡의 ‘Re-Performance’를 제안한 Zenph 의 폐착은 인간의 감성을 너무 간단하고 쉽게 생각했다는 데 있다. 깨끗하고 선명하며 밸런스가 잘 잡혀있고, 충분한 다이내믹스를 구현했다고 해서 그것이 완벽하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원음 따위는 존재하지 않듯 완벽한 원음 재생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누르는 건반의 터치, 밟는 패달의 강도, 리듬과 속도 등을 데이터화해 소리의 강, 약 구분과 다이내믹레인지를 흉낼 순 있다. 그러나 결국 그 데이터는 완벽하지 못했고 전체적인 음악적 늬앙스는 사라졌다. 동시에 글렌 굴드의 독보적인 아우라와 음악적 영혼도 녹음에서 쓱 빠져나가 안개처럼 증발해버렸다. 음악은 더 이상 음악이 아닌 것이 되고 말았다. 
 
하이엔드 오디오란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 그리고 우리가 즐기고 감동하는 것이 과연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인지 되돌아 볼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