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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음악가 이야기

Eric Clapton - Happy Xmas

by onekey 2024. 12. 23.

https://blog.naver.com/h2kim59/222585287530

 

클랩튼의 블루스락 캐롤 Eric Clapton - Happy Xmas

요즘은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어도 거리에서 또는 백화점이나 쇼핑센터, 레스토랑 등에서 좀처럼 캐럴을 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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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어도 거리에서 또는 백화점이나 쇼핑센터, 레스토랑 등에서 좀처럼 캐럴을 듣는 것이 쉽지 않다. 코로나 탓일 수도 있고 경기 탓일 수도 있고 저작권 탓일 수도 있으나 우리의 삶이 팍팍해졌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인 것 같다. 그래도 크리스마스 시즌이 돌아오면 캐럴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캐럴을 점점 잊어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캐럴들이 있다. 중세시대의 캐럴부터 요즘의 캐럴까지 다양한 스타일의 캐럴이 만들어졌으며 불려졌다. 대부분 팝 스타일의 캐럴이 제일 많은 것 같고 재즈 연주와 노래의 캐럴도 많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락의 비트로 연주하고 노래하는 캐럴은 별로 없는 것 같다. 흥겹기는 하지만 성스러운 분위를 표현하기에 적절치 않으며 과격한 스타일의 캐럴은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슬로우 록과 블루스 스타일의 연주에 일가견이 있는 에릭 클랩튼의 정식 크리스마스 앨범 《Eric Clapton - Happy Xmas》를 소개합니다. 에릭 클랩튼이 짜깁기한 편집 앨범이 아니라 정성을 들여 만든 앨범입니다.

 

에릭 클랩튼(Eric Clapton, 1945~ )

이 시대를 대표하는 영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기타리스트로, 1960년대부터 야드버즈(The Yardbirds), 존 메이올스 블루스 브레이커스(John Mayall's Blues Breakers), 크림(Cream) 등의 록 그룹 및 솔로 활동을 하며 블루스와 블루스 록의 발전·대중화에 기여했다. ‘기타의 신’, ‘슬로우핸드(Slowhand)’ 등으로 불리며 대중음악사에서 위대한 기타리스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461 Ocean Boulevar)》(1974), 《 Unplugged 》(1992) 등이 대표 앨범으로 꼽힌다.

1945년 영국 서레이(Surrey)주 립플리에서 태어난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은, 킹스톤 미술대학에서 그림 공부를 하다가, 당시 유명한 블루스 맨들의 음악에 심취해 학업을 포기하고, 영국의 리듬 앤 블루스 그룹인 루스터스(The Roosters)라는 그룹에서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하면서부터 팝계에 등장했다. 케이시 존즈 앤 엔지니어즈에서도 연주를 했던 에릭 클랩튼은 그 후로도 계속해서 야드버즈(Yardbirds), 블루스 브레이커즈(Blues Breakers), 크림(Cream), 블라인드 훼이스(Blind Faith) 등 수많은 그룹을 거치면서 연주 경력을 쌓아 오면서 그는 대중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의 ‘슬로우핸드’라는 별명은 그가 기타 1번 줄을 컨트롤하기 쉽게 얇은 줄로 써서 잘 끊어졌는데, 줄을 교체하려는 와중에 빨리하라는 재촉의 의미로 관중들이 치는 박수가 느리다고 하여 느린 박수, 즉 slow clap에서 유래된 것이다.

1970년 솔로 데뷔 앨범 《에릭 클랩튼(Eric Clapton)》(1970년 영국 앨범 차트 17위)과 록 그룹 데릭 앤드 더 도미노스(Derek And The Dominos)의 멤버로 유일한 앨범 《 Layla And Other Assorted Love Songs 》(1970년 미국 빌보드 앨범 차트 16위)를 연이어 발표했다. 《 Layla And Other Assorted Love Songs 》에서 당시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의 아내였던 패티 보이드(Patti Boyd)에게 구애하는 마음을 담은 노래 〈 Layla 〉(1972년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 10위)를 대표곡으로 남겼다. 1970년대 초반 대중들의 인기를 얻지 못하고, 친구인 듀언 올맨마저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하자 에릭 클랩튼은 실의에 빠져 고향인 서레이(Surrey)에서 은둔 생활을 하면서 마약에 중독되기도 했다. 약 2년 동안 마약 중독으로 고생하던 에릭 클랩튼은, 그룹 후(Who)의 피트 타운센드의 도움으로 재기할 수가 있었다. 1974년 컴백 앨범 《461 Ocean Boulevar》(1974년 미국 빌보드 앨범차트 1위)의 수록곡 〈아이 샷 더 셰리프(I Shot The Sheriff)〉(1974년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히트시키며 재기에 성공했다. 이후 1970년대 후반까지 〈 Lay Down Sally 〉(1978년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 3위), 〈 Wonderful Tonight 〉(1978년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 16위) 등의 노래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1980년대에도 비록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꾸준하게 음반을 출시했다. 1992년 MTV 언플러그드 라이브 앨범 《 Unplugged 》를 발표했고, 1991년 네 살의 나이로 실족사를 당한 아들 코너(Conor)에게 바치는 〈 Tears In Heaven 〉을 대표곡으로 남겼다. 《언플러그드》로 1993년에 열린 제35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올해의 앨범’을 포함한 3개 부문을, 영화 《러시(Rush)》의 사운드트랙에 수록된 〈 Tears In Heaven 〉의 스튜디오 버전으로는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노래'를 포함한 3개 부문을 수상했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음반과 공연 활동을 이어가며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다. 1992년 야드버즈의 멤버, 1993년 크림의 멤버, 2000년 솔로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Rock And Roll Hall Of Fame)에 헌액되었고, 2004년 대영제국 커맨더 훈장(CBE)을 받았다. 《461 Ocean Boulevard》, 《 Unplugged 》 등이 대표앨범으로 꼽히며, 대표곡으로 〈 Lay Down Sally 〉, 〈 Wonderful Tonight 〉, 〈 Tears In Heaven 〉 등이 있다. 약 20여 년 만을 팝계에 몸담아 온 에릭 클랩튼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몰려오는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여 오면서 자신을 일으켜 세운, 당대 최고의 기타리스트로 손꼽을 수 있다. 롤링 스톤지 선정 100인의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 4위에 올랐고 100인의 위대한 예술가 53위에 오르는 등 세계 3대 기타리스트 중 한 명이라는 칭호마저 받게 된다.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의 기타 연주는 애절하면서도 포근하게 감싸안는 음색과 선율로 그만의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곡조에 맞게 ‘톤’을 찾아내는, 바로 ‘기타의 신’만이 할 수 있는 특허품이다. 음악을 만들고 듣는 이가 인간이지만 ‘비인간적’인 음악이 판치는 요즘이다. 그러나 에릭 클랩튼의 음악과 인생은 자신만의 것을 고집하지 않고 다른 것들과 합일점을 찾아 예술로 승화시킨다. 그래서 그의 음악에는 삶의 희노애락이 담겨 있다. 특히 온갖 역경 속에서 소중한 음악의 싹을 틔우고 키워냈으며, 내면의 고통과 이별의 슬픔을 블루스로 쏟아낸 ‘인간의 음악’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클랩튼은 전설로 추앙받는다.

 

# 살아있는 음악 전설

에릭 클랩튼은 그 이름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음악 전설’이다. 40여 년의 음악 여정 동안 그가 쌓아올린 메리트는 가히 대단하다. 야드버즈(Yardbirds)와 존 메이올스 블루스브레이커(John Mayall`s Bluesbreakers) 시절 블루스의 부흥을 주도했으며, 크림(Cream)의 활동 기간 동안 헤비메탈의 원형을 제공했고, 재즈와 블루스의 크로스오버를 시도했다. 솔로로 독립하고부터는 잔통적인 블루스에 어려워하는 대중들에게 팝 지향적인 ‘달콤 쌉싸름한 블루스’를 내놓아 블루스의 대중화를 선도했다. 그래미 트로피를 13번이나 받았으며,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1992년 야드버즈, 1993년 크림, 그리고 지난해 개인 자격으로 헌액된 것에서도 클랩튼의 공로를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그는 2000년 ‘블루스의 제왕’ B.B 킹(B.B King)과 협연한 작품《Riding With The King》으로 그래미 시상식 ‘최고의 트래디셔널 블루스 앨범(Best Traditional Blues album)’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다. 클랩튼은 ‘기타의 신’, ‘슬로우 핸드(Slowhand)’라는 닉네임이 말해주듯 기타 테크닉에 있어서도 대가(大家)의 경지에 올랐다. 감정을 질펀하게 쏟아내면서도 정확하고 절제된 테크닉을 구사하는 벤딩 주법(일명 쵸킹)과 비브라토는 다른 연주자들이 흉내조차 힘들 정도다.

그의 기타 연주와 관련하여 유명 기타리스트들의 칭찬 코멘트를 들어보자. “에릭은 정말 재주가 많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플레이는 뭐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감정과 함께 블루스를 연주한다. 그가 연주할 때 당신은 그것이 블루스라는 것을 알 것이다.” -B.B 킹-

“그는 나보다 훨씬 더 블루스 연주가 뛰어나다. 왜냐하면 그는 블루스를 공부했고, 그것에 대해 당당하기 때문이다.” -제프 벡(Jeff Beck)-

“내가 처음 그를 보았을 때 나는 그의 연주를 믿을 수가 없었다. 그는 바로 하늘에서 치는 천둥번개 같았다.” -존 이써리지(John Etheridge)

하지만 이런 칭찬에 대해 클랩튼은 “나에 대해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나는 악평을 받았을 때 그 사실을 소화하기가 무척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호평도 마찬가지다."라며 자신을 향한 관심을 무척 꺼려 했다. 그를 추종하는 후배 뮤지션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목소리가 있는 것처럼 나같이 연주하는 것은 아마 무리일 것이다. 자기 스타일로 연주해야 한다.” 자신에 대한 무조건적인 경외보다는 그들만의 길을 개척할 것을 충고한다. 그의 음악과 인생 여로가 굴곡이 심했기에 그 말은 더욱 절실히 다가온다.

 

# 전설의 시작

에릭 클랩튼은 1945년 3월 30일 영국 서레이(Surrey)주의 리플리(Ripley)에서 태어났다. 그는 14살 생일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로부터 기타를 선물 받고 블루스에 빠져들었다. 그는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하여 할머니 품에서 자라며 외로운 시절을 보냈다고 전해진다. 때문에 흑인들의 비참함과 슬픔을 노래한 블루스가 그에게 찾아간 것은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클랩튼은 무디 워터스(Muddy Waters), 빅 빌 블룬지(Big Bill Broonzy), 블라인드 윌리 존슨(Blind Willie Johnson) 등 초기 블루스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연주하며 성장했다. 특히 ‘델타 블루스의 왕’이라 불리는 로버트 존슨(Robert Johnson)의 영향은 결정적이었다. 훗날 클랩튼은 “로버트 존슨의 앨범들은 내가 음악적으로 원하는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라고 이야기 하기도 하였다.

에릭 클랩튼의 기타 연주가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은 1963년 야드버즈(The Yardbirds)에 가입하면서부터였다. 그의 뛰어난 블루스 기타 테크닉은 단숨에 그룹의 사운드를 특징지었고, 매니저 지오지오 고멜스키(Giorgio Gomelsky)는 그에게 ‘슬로우 핸드’라는 애칭을 붙여주었다. 하지만 클랩튼은 그룹의 음악이 상업적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며 1965년 3월 팀을 떠나 존 메이올이 이끌었던 블루스 브레이커스로 자리를 옮겼다. 야드버즈를 탈퇴한 직후 그가 연주했던 〈For Your Love〉는 영국 차트 3위를 기록했다. 이후 야드버즈는 제프 벡(Jeff Beck)과 지미 페이지(Jimmy Page)가 가세하며 전성시대를 누렸다. 바로 록 음악계의 ‘3대 기타리스트’가 야즈버즈를 통해 모두 탄생했다.

# 나, 블루스로 돌아갈래!

이 당시 에릭 클랩튼의 블루스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다. 이와 관계된 에피소드 한 가지로 그는 블루스 브레이커스의 휴지기 동안에 다른 뮤지션들과 전 세계를 돌며 블루스 전도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클랩튼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몇몇 멤버들이 영국으로 돌아갔음에도 불구하고, 한 클럽에서 계속 머물며 공연을 계속했다. 그는 그러나 강도로 돌변한 클럽 주인의 협박으로 옷과 새로 산 마샬 앰프를 놔둔 채 영국으로 도망쳐야 했다. 음악 외에는 모든 일에 문외한이었던 ‘순수한’ 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사건이었다.

클랩튼은 블루스 브레이커스에서 존 메이올의 독단적 행동에 불만을 품고 자신만의 그룹을 결성하기로 계획했다. 그는 1966년 존 메이올 몰래 드러머 진저 베이커(Ginger Baker), 베이시스트 잭 브루스(Jack Bruce)와 함께 크림을 조직하고 합주를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후 음악 전문지 < 멜로디 메이커(Melody Maker) >의 폭로로 인해 클랩튼은 블루스 브레이커스에서 해고를 당해야만 했다. 이때 런던의 한 빌딩 벽에는 ‘클랜 튿은 신이다(Clapton is god)’라는 문구가 새겨져 많은 화제를 몰고 왔다. 에릭 클랩튼은 크림을 통해 ‘악기 예술의 미학’을 획득했다.

블루스와 재즈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그들의 사운드는 즉흥적이고 빠르며 굉음을 발산했다. 멤버들의 정교하고 뛰어난 연주 실력은 타 밴드와의 간격 차를 크게 벌려놓았고, 음악계에 상당한 충격파를 던졌다. 그들의 앨범들인 1966년의 《 Fresh Cream 》, 1967년의 《 Disraeli Gears 》, 그리고 이듬해의 《 Wheels Of Fire 》 모두 명반으로 손꼽히며 파죽지세의 인기몰이를 했다. 특히 스튜디오 녹음과 라이브를 한자리에 모은 더블 앨범 《 Wheels Of Fire 》는 미국에서 4주간 정상을 차지하며 멤버들을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었다. 바로 이 작품에 명곡 〈White room〉이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룹의 멤버들은 서로 간의 음악적 견해차를 이유로 1968년 11월 해산했다. 클랩튼의 음악 이력 중 최고의 절정기가 막을 내린 것이다. 이후 트리오는 1993년 1월 명예의 전당 헌액 기념으로 재결합 공연을 가져 많은 박수를 받기도 했다. 크림의 해체 이듬해 클랩튼은 진저 베이커와 함께 트래픽(Traffic) 출신의 스티브 윈우드(Steve Winwood), 페밀리(Family)의 베이스 주자였던 릭 그레치(Rick Grech)를 영입하여 ‘슈퍼 그룹’ 블라인드 페이스(Blind Faith)를 탄생시켰다. 언론에서는 ‘인스턴트 슈퍼 그룹’이라고 비아냥거렸지만, 그들은 공연 때 ‘최후의 슈퍼 그룹’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대조를 이뤘다. 하지만 언론의 지적대로 그들은 1969년 데뷔 앨범 < Blind Faith >를 내놓고 각자의 길로 떠났다.

 

‘레일라’의 비극

에릭 클랩튼의 1970년대는 한 여인과의 슬픈 사랑 얘기로부터 시작된다. 그녀는 다름 아닌 비틀스의 멤버 조지 해리슨의 아내 패티 보이드(Patti Boyd)였다. 클랩튼은 1968년 비틀즈의 화이트 앨범에 수록된 조지의 곡 〈While my guitar gently weeps〉와 같은 해 공개된 솔로 음반 《 Wonderwall Music 》에서 기타를 맡을 정도로 조지 해리슨과는 절친한 사이였다. 조지와 음악적 교류를 하면서 패티를 본 후 사랑에 빠진 것이다. 당시 종교에 심취해 있던 남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패티 보이드는 클랩튼에게 의도적으로 눈길을 주었다. 음악밖에 모르던 에릭은 그만 사랑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녀는 조지와의 행복한 일상으로 돌아갔고, 실의에 빠진 에릭 클랩튼은 술과 마약의 구렁텅이로 빠져들었다.

이런 사랑에 대한 좌절감과 패배감은 1970년에 발표된 데릭 앤 더 도미노스(Derek And The Dominos)의 마스터피스 《 Layla & Other Assorted Lovesongs 》에 고스란히 담겼다. ‘남편이 당신을 슬프게 만들었을 때/ 나는 당신을 위로하려고 노력했어요/ 바보처럼 나는 당신과 사랑에 빠져버렸죠/레일라 당신은 나를 무릎 꿇게 만들었어요/ 레일라, 당신께 애원합니다/ 제발...’. 수록곡 〈Layla〉의 구구 절절한 가사처럼 에릭 클랩튼의 상처받은 마음은 노래 전체에 녹아들어 있다. 고통스러운 자신의 내면을 바닥으로부터 끌어올려, 그 고통을 음악으로 승화시켰다. 클랩튼의 처절한 내면의 사생화다. 클랩튼의 이러한 마음에 하늘도 감동했던지 얼마 후 패티 보이드는 조지 해리슨과 이혼했고, 둘은 1979년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이 음반은 비록 상업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블루스와 삶을 완벽하게 조화시키며 걸작의 반열로 들어섰다.

극적인 재기 드라마 1부

실연의 파장은 매우 컸다. 에릭 클랩튼은 감정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으며, 알코올과 약물 중독으로 인하여 병원과 요양원을 들락거려야만 했다. 기타조차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쇠약해졌다. 이때부터 드라마틱한 재기 스토리가 전개된다.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던 그에게 구세주가 찾아왔다. 그룹 더 후(The Who)의 피트 타운센드(Pete Townshend)였다. 피트는 이미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찬밥 취급을 받던 지미 헨드릭스를 영국으로 데려와 음악계에 데뷔시키는 등 ‘선행’을 벌여왔다. 피트는 클랩튼에게 마약에서 벗어날 것을 권유했고, 1973년 에릭 클랩튼의 레인보우 콘서트를 주최해 재기의 무대를 마련해 줬다. 클랩튼은 데릭 앤 도미노스 이후 3년 만에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피트는 에릭 클랩튼이 정신을 못 차리자 하와이안 기타로 머리를 때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기력을 회복한 에릭 클랩튼은 1년 뒤 재기 작품 《 461 Ocean Boulevard 》를 내놓았다. 앨범이 출시되기까지는 피트 타운센드와 함께 RSO 레이블의 사장인 로버트 스틱우드(Robert Stigwood)의 도움이 컸다. 그는 폐인이 된 클랩튼을 위해 요양 장소로 플로리다에 있는 자신의 별장을 선뜻 내주며 재기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클랩튼도 스틱우드의 호의에 고개 숙여 감사하며 다시 기타를 잡았다. 스틱우드의 별장 주소가 바로 이 앨범의 타이틀인 '461 Ocean Boulevard'이다. 스틱우드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인 것이다. 이 앨범에서 밥 말리(Bob Marley)의 곡을 리메이크한 〈I shot the sheriff〉는 정상을 차지했고, 〈Let it grow〉, 〈Give me strength〉 등이 인기 가도를 달리며 ‘기타의 신’으로 부활했다. 이후 연이어 내놓은 앨범들도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특히 〈Wonderful tonight〉이 실려있는 1977년 앨범 《Slowhand》는 300만장이상의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다. 에릭 클랩튼은 약물 중독으로 고생하던 이 시기를 잊지 못하고, 1999년 마약 중독자 치료기금을 위해 자신의 기타 100대를 경매에 내놓은 바 있다

극적인 재기 드라마 2부

에릭 클랩튼은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도 꾸준하게 앨범을 발표하지만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물론 1989년 작품 《Journeyman》같은 수작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그룹 시절과 달리 음악적 측면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평론가들은 ‘에너지가 사라지고 느슨해진 팝 블루스’라며 평가 절하했다. 하지만 그는 1991년 아들의 죽음이라는 ‘비극’과 함께 현실 무대로 화려하게 컴백했다. ‘운명의 여인’ 패티 보이드와 헤어지고 이탈리아 투어 도중 만난 젊은 사진작가이자 배우였던 로리 델 산토(Lori Del Santo)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코너(Corner)가 뉴욕 맨해튼의 아파트에서 실족사한 것이다. 나중에 에릭 클랩튼은 “내가 아파트에 도착했을 때는 온통 경찰관과 의료진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그것이 나와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나와는 상관없는 다른 사람의 일처럼 느껴졌다.”며 망연자실했던 당시의 심정을 묘사했다.

클랩튼은 그러나 ‘예전처럼’ 기타를 놓지 않았다. 오히려 기타와 노래에 더욱 몰두했다. 음악만이 유일한 치료제라는 것을 이전 경험으로 깨달았다. 그는 1992년 영화 《 러쉬(Rush) 》의 사운드트랙에 삽입된 〈Tears in heaven〉에 죽은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을 실었다. MTV의 제안으로 그 해 녹음된 앨범 《 Unplugged 》에서의 백미도 단연 이 곡이었다. 어쿠스틱 기타에 실린 애절한 멜로디와 노랫말을 담담한 심정으로 노래하여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이듬해 그래미는 그에게 ‘올해의 앨범(Album Of The Year)’, ‘올해의 레코드(Record Of The Year)’, ‘올해의 노래(Song Of The Year)’ 등을 포함하여 6개의 트로피를 ‘위로 선물’로 전달했다. ‘추억’에서 ‘현재 진행형’으로 다시 돌아온 극적인 순간이었다. 에릭 클랩튼의 상승세는 계속됐고 1994년 발매한 《 From The Cradle 》은 대중적인 흥행과 더불어 평론가들로부터 모두 세계적인 지위를 얻었다. 미국과 영국 앨범차트를 동시 석권하였고, 블루스의 성찬을 담아낸 작품으로 격찬 받았다. 4년 뒤에 내놓은 앨범 《 Pilgrim 》 또한 플래티넘을 기록하며 좋은 반응을 얻었다.

 

# 전설은 영원하다

에릭 클랩튼은 작품마다 자신의 인생을 투영시키고 혼을 불어넣었다. 그의 앨범 《 Reptile 》에도 그의 영혼의 숨결이 살아 숨 쉰다. 앨범의 밑바닥에 흐르는 흐름의 원천은 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삼촌의 죽음’이다. 삼촌에 대한 존경심을 작품 전체에 고스란히 담았다. 클랩튼은 "‘Reptile(사전적 의미로는 비열한 인간이라는 뜻)’은 삼촌과 관련이 있는 모든 것을 말한다. 내가 태어난 곳에서 ‘Reptile’이란 단어는 사랑스러운 말이다.”라고 설명했다. 이 음반은 프로듀서 사이먼 클리미에(Simon Climie)를 포함하여 전작 《 Riding With The King 》의 세션팀이 그대로 참여했다. 또한 시카고 소울의 거장 커티스 메이필드(Cutis Mayfield)의 빈자리를 남겨둔 채 임프레션스(The Impressions)가 부드러운 화음을 더하고 있다.

블루스뿐만 아니라 레게, 컨트리, 테크노 등 다양한 장르로 음악 지류를 넓히고 있는 클랩튼은 새 앨범에서도 그 폭을 확대했다. 퓨전 재즈풍의 기타 연주가 도입됐으며, 라틴 음악의 요소도 엿보인다. 보사 노바의 흥취가 물씬 풍기는 첫 곡 〈 Reptile 〉을 비롯해, 〈 Modern girl 〉, 〈‘Son & sylvia〉 등에서 알 수 있다. 새로운 리듬에 대한 클랩튼의 지속적인 실험이다. 선배들을 향한 오마쥬도 계속되었다. 에릭 클랩튼의 음악적 스승 중 한 명인 기타리스트 J.J. 케일(J.J. Cale)의 〈Travelin〉과 〈light〉, 1985년에 세상을 떠난 ‘점프 블루스의 대가’ 빅 조 터너(Big Joe Turner)의 고전 〈Got you on my mind〉 등이 그것이다. 또한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의 1980년대 히트 넘버 〈I ain`t gonna stand for it〉, 레이 찰스(Ray Charles)의 〈Come back baby〉를 새롭게 재해석하며 두 명의 맹인 거장에 대해 경의를 표하고 있다.

그러나 클랩튼의 음악은 인위적인 진한 ‘향수’를 풍기지 않는다. 애절하면서도 포근하게 감싸안는 음색과 선율로 그만의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곡조에 맞는 ‘톤’을 찾아내는, 바로 ‘기타의 신’만이 할 수 있는 특허품이다. 음악을 만들고 듣는 이가 인간이지만 ‘비인간적’인 음악이 판치는 요즘이다. 그러나 에릭 클랩튼의 음악과 인생은 접점이 없는 평행선을 달리지 않고 합일점을 찾아 예술로 승화시켰다. 그래서 그의 음악에는 희노애락이 담겨져 있다. 특히 역경 속에서 소중한 음악의 싹을 틔우고 키워냈다. 내면의 고통과 이별의 슬픔을 블루스 리듬 속에 쏟아냈다. 당연히 ‘인간의 음악’이다. 바로 이런 특징들이 클랩튼을 전설로 추앙받게 만드는 것이다.

Eric Clapton - Happy Xmas

01. White Christmas

02. Away In A Manger (Once In Royal David's City)

03. For Love On Christmas Day

04. Everyday Will Be Like A Holiday

05. Christmas Tears

06. Home For The Holidays

07. Jingle Bells

08. Christmas In My Hometown

09. It's Christmas

10. Sentimental Moments

11. Lonesome Christmas

12. Silent Night

13. Merry Christmas Baby

14. Have Yourself A Merry Little Christmas

15. A Little Bit Of Christmas Love

16. You Always Hurt The One You Love

Backing Vocals – Melia Clapton (tracks: D2), Sharon White (2), Sophie Clapton (tracks: D2)

Bass – Nathan East

Cello [First Cellos Leader] – Tim Gill*

Choir – Metro Voices

Double Bass – Mary Scully

Drum Programming – Paul Waller

Drums – Jim Keltner

Fiddle – Dirk Powell

Guitar – Dirk Powell, Doyle Bramhall II, Eric Clapton

Keyboards – Simon Climie, Toby Baker, Walt Richmond

Organ [Hammond B3] – Tim Carmon

Organ [Wurlitzer] – Tim Carmon, Walt Richmond

Percussion – Simon Climie

Piano – Dirk Powell, Tim Carmon, Walt Richmond

Viola [First Violas Leader] – Peter Lale

Violin [First Violins Leader] – Perry Montague-Mason

Violin [Second Violins Leader] – Emlyn Singleton

Vocals – Simon Climie

Copyright (c) – EPC Enterprises LLP

Licensed To – Universal Music Operations Ltd.

Bushbranch Records ‎– 57688-1, Surfdog Records ‎– 57688-1, 2018

LP 180g, Audiophile Vinyl, 45rpm, 2018

Pressed By – Precision Record Pressing – 10-85067

기타의 신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이 초대하는 블루스 크리스마스 첫 번째 정규 스튜디오 홀리데이 앨범 《Happy Xmas》는 잘 알려진 크리스마스 시즌 송들과 자신이 작곡한 곡들을 레코딩한 것으로 프로듀서 Simon Climie, 마스터의 대가 Bob Ludwig, 지휘자 Isobel Griffiths가 이끄는 클래시컬 현악팀과 함께 완성했다. Irving Berlin의 〈White Xmas〉, 19세기때 부터 사랑받아온 그 어린 예수 〈Away In A Manger〉, William Bell, Booker T. Jones의 〈Everyday Will Be Like a Holiday〉, R.C. Wilson, Sonny Thompson의 클래식 〈Christmas Tears〉, R&B스타 Anthony Hamilton의 〈Home for the Holidays〉, 세상을 등진 Avicii를 기리며 녹음한 〈Jingle Bells〉, Lloyd Glenn, Lowell Fulson의 클래식 〈Lonesome Christmas〉, 크리스마스의 영원한 클래식 〈Silent Night〉, Lou Baxter, Johnny Moore의 클래식 〈Merry Christmas Baby〉, Ralph Blane, Hugh Martin의 클래식 〈Have Yourself a Merry Little Christmas〉등을 수록하고 있다. Clapton 자신이 커버 아트 일러스트레이션도 직접 그렸다.

이 컬렉션은 블루스의 은은한 향이 느껴지는 무겁지도 않고 가볍지도 않은 크리스마스에 알맞는 앨범이다. 오래된 전통적인 크리스마스 캐럴도 전형적인 캐럴처럼 들리지 않도록 블루스에 기초하여 소울, 레게, 록 및 약간의 보드빌 셔플을 포함와 블루스록으로 재작업 되어 지나치게 익숙하지 않게 새로운 정말 멋진 컬렉션이며, 전체적으로 가정적인 분위기와 조용하고 명상적인 분위기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의도적으로 달콤하거나 떠들썩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Eric의 목소리와 기타 연주는 그 어느 때보 다 선명하고, 드럼의 Jim Keltner와 베이스의 Nathan East는 EC의 리듬 섹션이 서로를 훌륭하게 보완하고 있다.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의 40년이 넘는 음악 활동을 하면서도 많이 늦은 첫 크리스마스 음반은 확실히 계절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지만, 2010년대에 그가 만든 따뜻하고 상냥한 음악이 담긴 작품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오래된 양말과 이 《해피 크리스마스》는 다른 작곡가들의 캐럴이지만 블루스에 기초하고 있으며 소울, 레게, 록 및 약간의 보드빌 셔플 ( "내 고향의 크리스마스")을 포함하고 있다. 이 가정적인 분위기는 전형적인 크리스마스 캐럴처럼 들리지 않더라도 크리스마스 시즌에 확실히 어울리는 노래들이다. 단지 상업적인 캐럴 연주가 아니라는 사실은 그가 지나치게 익숙한 곡을 연주할 때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01. White Christmas

어빙 벌린(Irving Berlin) 작곡의 캐럴을 대표하는 곡 중의 하나로 1942년에 영화 《홀리데이 인》에서 빙 크로스비의 음성을 타고 첫 선을 보였다. 그 후 1947년 재 녹음한 곡이 우리가 알고 있는 빙 그로스비의 부드러운 보컬로 잘 알려진 곡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징글벨(Jingle Bells)과 함께 제일 많이 불리워지는 캐럴의 제왕이라고 할 수 있는 극히 미국적인 캐럴이다. 이 노래로 인하여 크리스마스가 되면 은근히 눈이 내리기를 바라게 된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같은 익숙한 노래가 클랩튼의 블루스와 성인 팝 본능 사이의 균형을 이루는 곡으로 편곡되어 블루스 느낌이 많이 난다.

I'm dreaming of a white Christmas

Just like the ones I used to know

Where the treetops glisten and children listen

To hear sleigh bells in the snow

나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꿈꾸고 있어요.

내가 알고 있던 장소에서

나무 꼭대기가 반짝이고 아이들이

눈 속에서 썰매 종소리를 듣는 곳.

I'm dreaming of a white Christmas

With every Christmas card I write

"May your days be merry and bright"

"And may all your Christmases be white"

나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꿈꾸고 있어요.

크리스마스카드마다 나는 써요.

"크리스마스가 즐겁고 밝기를"

"그리고 당신의 크리스마스에 하얀 눈이 오기를"

I'm dreaming of a white Christmas

With every Christmas card I write

"May your days be merry and bright"

"And may all your Christmases be white"

Yes, may all your Christmases be white

나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꿈꾸고 있어요.

크리스마스카드마다 나는 써요.

"크리스마스가 즐겁고 밝기를"

"그리고 당신의 크리스마스에 하얀 눈이 오기를"

그래, 너의 모든 크리스마스에 하얀 눈이 오기를.

https://www.youtube.com/watch?v=vmw9vHZCbMo

 

 
 

02. Away In A Manger (Once In Royal David's City)

이 캐럴은 미국의 복음주의 루터교 주일학교의 1885년 컬렉션인 학교와 가족을 위한 작은 어린이 책에서 시작되었다고 믿어진다. 이 노래는 마틴 루터의 탄생을 위해 작곡된 것으로 보이며 나중에 루터 자신의 것으로 오해의 소지를 만들게 된다. 오랫동안 독일의 종교 개혁가인 마틴 루터 의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이 캐럴은 미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19세기 후반에 처음 출판된 크리스마스캐럴로 영국에서는 가장 인기 있는 캐럴 중 하나이며 영어권 세계에서 널리 불리워지는 캐럴이다. 1996년 갤럽 여론조사에서 공동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가장 일반적인 노래는 'Cradle Song'으로 알려진 영국 아일랜드의 William J. Kirkpatrick (1895)과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뮤지컬 무대는 일반적으로 "뮬러"로 알려져 있는 James Ramsey Murray (1887)의 두 개의 버전이 있다. 미국의 멜로디는 James R. Murray가 그의 컬렉션 《Dainty Songs for Little Lads and Lasses》 (1887) 에서 《Luther's Cradle Hymn》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출판되었다. 에릭 클랩튼은 다비드왕의 시에서 유래한 캐럴 〈Away in a Manger (구유에서 멀리)〉는 유쾌하면서도 놀라운 그의 블루스애 기반을 둔 소울풀한 분위기를 보여준다.

Away in a manger, No crib for a bed

The little Lord Jesus Laid down His sweet head

The stars in the bright sky, Looked down where He lay

The little Lord Jesus Asleep on the hay

The cattle are lowing The Baby awakes

But little Lord Jesus No crying He makes

I love You, Lord Jesus Look down from the sky

And stay by my side Until morning is nigh

Be near me, Lord Jesus I ask You to stay

Close by me forever And love me I pray

Bless all the dear children In Your tender care

And fit us for heaven To live with You there

어린 주 예수 누울 자리가 없네

아기 예수님은 달콤한 잠을 자네.

밝은 하늘의 별들은 건초 더미 위에서 잠든

아기 예수를 내려다보네

소들이 울음소리에 아기는 깨어나지만

아기 예수는 울지 않네.

주 예수님 사랑합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보시며 아침이 가까울 때까지

내 곁에 있어 주옵소서

주 예수여 내 곁에 있어 주옵소서 영원히 내 곁에 머물며

나를 사랑하시옵소서

당신의 부드러운 보살핌으로 모든 사랑하는 아이들을 축복하고

천국에 우리가 올라가 그곳에서 당신과 함께 살게 하소서

https://www.youtube.com/watch?v=COfX7ukBZE4

 

 
 

07. Jingle Bells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대표적인 캐롤이며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가장 유명한 캐롤이다. James Lord Pierpont (1822–1893)에 의해 쓰여졌으며 1857년 가을 《One Horse Open Sleigh》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으나, 1859년에 재 출판되었을 때 제목이 〈Jingle Bells〉로 변경되었다. 지금은 크리스마스와 관련이 있는 캐롤이지만 실제로는 미국 추수 감사절을 위해 만들어졌다. 피어 폰트(James Lord Pierpont)가 원래 〈Jingle Bells〉로 알려진 이 노래를 언제, 어디서 작곡했는지는 불확실하나, 매사추세츠주 메드포드(Medford)의 메드포드 광장 중심에 있는 19 High Street의 명판은 〈징글벨《의 "발상지를 기념하며, 피어 폰트(James Lord Pierpont)가 1850년 당시 심슨 선술집에서 세일럼 스트리트의 썰매 경주에서 영감을 받아 징글벨 노래를 썼다고 알려져 있다. 어쨌든 미국 매사추세츠주 메드포드(Medford, Massachusetts)가 발상지로 알려져 있는 미국적인 캐롤임은 분명하다.

클랩튼의 Jingle Bells은 지금까지 우리가 들어왔던 징클벨의 이미지를 여지없이 부숴버린다. 우리가 알고 있던 뻔한 징글벨의 이미지는 없다. 대부분의 징글벨은 즐거운 분위기의 노래로 불려지지만 이 엘범의 징글벨은 산뜻한 박자의 레게 리듬이 곡 전체를 지배한다. 노래는 간주에 포함된 여성 보컬의 짧은 간주가 이 곡이 징글벨이라는 것을 알려줄 뿐이다. 리듬을 주도하는 전자악기의 연주에 기타 연주는 양념을 첨가할 뿐이다. 신선한 연주이기는 하나 징글벨의 분위가 조금은 더 묻어났으면 하는 아쉬움은 나뿐만은 아닐 것 같다. 이 곡에서는 징글벨이 언제 울리는 지 도대체 알수가 없다.

https://www.youtube.com/watch?v=C95EvXD86J8

 

 

 

12. Silent Night

1818년에 크리스마스이브에 〈Stille Nacht! Heilige Nacht 〉캐럴은 오스트리아 오베른도르프의 한마을 교회에서 처음으로 들렸다. 성 니콜라스 교회에서 열린 자정 미사에서 신자들은 합창단장 프란츠 그루버(Franz Gruber)의 지휘로 모어(Joseph Mohr) 신부의 기타 반주에 맞추어 이 캐럴을 합창했다. 여섯 구절 각각에서 합창단은 네 부분으로 이루어진 화음으로 마지막 두 줄을 반복했다. 그날의 크리스마스이브에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속 깊이 자리 잡게 된 노래가 탄생했다. 현재 수백 개의 언어로 번역된 이 노래는 우리나라는 물론 아프리카로부터 로마의 베드로 대성당이나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 남미의 구석에 이르기까지 매년 12월 수백만 명이 노래한다.

우리가 〈고요한 밤 거룩한 밤〉으로 알고 있는 캐럴의 원래 6개 구절의 독일어 노랫말은 1816년 모어(Joseph Mohr) 신부가 오스트리아 마리아파르(Mariapfarr)의 순례교회에 배정된 어린 신부였을때 썼다고 한다. 1818년 12월 24일 모어(Joseph Mohr) 신부는 인근 아른스도르프(Arnsdorf)의 학교 건물 위에 있는 아파트에 살았던 음악가-학교 교사 프란츠 그루버(Franz Gruber)의 집을 방문하여 그의 친구에게 시를 보여주고 그에게 멜로디와 기타 반주를 추가하여 자정 미사에서 부를 수 있도록 요청했다. 새로운 캐럴을 원하는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았으며, 어떤 이들은 오르간이 고장 났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다른 사람들은 기타 음악을 아주 좋아했던 부목사가 크리스마스에 새 ​​캐럴을 원했다고 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뻔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아니라 블루스 리듬에 레게 바운스를 추가하여 생소한 듯하면서도 매력적인 노래로 들려준다.

1. Stille Nacht! Heilige Nacht!

Alles schläft; einsam wacht

Nur das traute heilige Paar.

Holder Knab im lockigten Haar,

Schlafe in himmlischer Ruh!

Schlafe in himmlischer Ruh!

1. 고요한 밤! 거룩한 밤!

한 빛 말고는 모두 잠들어, (어둠에 묻힌 밤)

충실하고 성스러운 (주의 부모 앉아서)

곱슬머리의 사랑스러운 소년 아이, (감사기도 드릴 때)

하늘의 평화 속에서 잠을 자네! (아기 잘도 잔다.)

하늘의 평화 속에서 잠을 자네!

2. Stille Nacht! Heilige Nacht!

Gottes Sohn, o wie lacht

Lieb´ aus deinem göttlichen Mund,

Da schlägt uns die rettende Stund.

Jesus in Deiner Geburt!

Jesus in Deiner Geburt!

2. 고요한 밤! 거룩한 밤!

하나님의 아들은 웃으시네.

당신의 거룩한 입술에 사랑이 빛나네

온 사방에 구원의 새벽이 다가오네

예수님, 주님, 당신의 탄생과 함께!

예수님, 주님, 당신의 탄생과 함께!

3. Stille Nacht! Heilige Nacht!

Die der Welt Heil gebracht,

Aus des Himmels goldenen Höhn

Uns der Gnaden Fülle läßt sehn :

Jesum in Menschengestalt,

Jesum in Menschengestalt

3.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오늘 밤 세계 평화를 가져왔고

하늘의 황금 옥좌에서

그의 거룩한 능력의 은혜를 보여주시네

예수님, 이 땅에 인간으로 오셨네!

예수님, 이 땅에 인간으로 오셨네!

4. Stille Nacht! Heilige Nacht!

Wo sich heut alle Macht

Väterlicher Liebe ergoß

Und als Bruder huldvoll umschloß

Jesus die Völker der Welt.

Jesus die Völker der Welt.

4.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오늘 아버지의 모든 권능과 사랑으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그리고 예수님은 형제로서 포용하시네

지구상의 모든 민족을!

지구상의 모든 민족을!

5. Stille Nacht! Heilige Nacht!

Lange Schon uns bedacht,

Als der Herr vom Grimme befreit

In der Väter urgrauer Zeit

Aller Welt Schonung verhieß,

Aller Welt Schonung verhieß.

5.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오랫동안 우리는 그분이 우리의 주님으로서 ​​

우리를 분노에서 해방 시키시네.

우리의 선조 때부터

모든 인류의 구원을 약속하셨네!

모든 인류의 구원을 약속하셨네!

6. Stille Nacht! Heilige Nacht!

Hirten erst kundgemacht

Durch der Engel Alleluja,

Tönt es laut bei Ferne und Nah

Jesus der Retter ist da!

Jesus der Retter ist da!

6.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양치기가 먼저 보았네.

Alleluja라고 말하는 천사의 목소리,

멀리서 가까이서 어디에서나 들리네

"구세주 그리스도께서 여기 계시도다!"

"구세주 그리스도께서 여기 계시도다!"

https://www.youtube.com/watch?v=0c4zGKKDgO4

 

 

13. Merry Christmas Baby

미국의 전형적인 블루스 및 R&B 뮤지션인 Charles Brown이 1947년 작사, 작곡하고 싱글로 발표하여 히트한 피아노 반주의 블루스 캐럴이다. 그 당시에도 일반적이지 않은 독특한 곡으로 아무도 히트할 것이라고는 생각 못 했고 조니 무어(Johnny Moore)에게 선물로 주었다. Elvis Presley, Etta James를 비롯한 많은 블루스 뮤지션을 비롯하여 Bruce Springsteen, Christina Aguilera 등의 많은 가수들의 캐럴 앨범에서 등장하는 곡이 되었다.

물론 슬로우 핸드라고 불리는 에릭 클랩튼의 〈Merry Christmas, Baby〉는 찰스 브라운 (Charles Brown)으로부터 물려받은 블루스의 감성을 불러내어 아마도 가장 블루지한 캐럴로 온갖 우울함을 만들어 낸다. 이 앨범의 캐럴중에 에릭 클랩튼의 성향과 가장 잘 어울리는 곡으로 블루지한 캐럴이 무엇인지 정답을 들려준다. 캐럴이 아니라고 해도 블루스의 맛을 제대로 보여준다.

Merry christmas baby

Babe you sure did treat me nice

Yeah! merry merry merry christmas baby

Babe you sure did treat me nice

Gave me a diamond ring for christmas

And now I'm living in paradise

Oh! I'm feeling mighty fine this morning

I've got good music on my radio

Hey baby, I'm feeling mighty fine

I've got good music on my radio

I would love to hug and kiss you baby

While you're standing beneath the mistletoe

Santa came down the chimney

About half past three

He got all of these presents that you'll use

See, I'll help you put on these

Merry merry merry christmas baby

Oh! you sure been good to me

I haven't had a drink this evenin' baby

But I'm all lit up like a christmas tree

Hey! merry merry merry christmas baby

I've got good music on my radio

I said, merry merry merry christmas baby

I've got good music on my radio

I would love to hug and kiss you baby

While you're standing beneath the mistletoe

메리 크리스마스, 베이비

자기야 넌 정말 나를 잘 대했어.

Hey! 메리, 메리, 메리 크리스마스, 베이비

자기야 넌 정말 나를 잘 대했어.

크리스마스에 다이아몬드 반지를 줄 거야.

그리고 지금 나는 낙원에 살고 있는 것 같아.

오! 오늘 아침 기분이 좋아,

내 라디오에 멋진 음악이 나와.

Hey baby 난 기분이 좋아,

내 라디오에 멋진 음악이 나와.

너와 포옹하고 키스하고 싶어

겨우살이 아래에서

산타가 굴뚝으로 내려와

3시간 반정도 지나서

그는 당신에게 줄 수 있는 모든 선물을 가지고 있어.

잘봐, 내가 이걸 입는 걸 도와줄게

메리, 메리, 메리 크리스마스, 베이비

오! 당신은 확실히 나에게 잘해

나는 술도 안 마셨어, 베이비

하지만 난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모두를 비춰

Hey! 메리 메리 메리 크리스마스 베이비

내 라디오에 멋진 음악이 나와.

난 말했어, 메리, 메리, 메리 크리스마스, 베이비

내 라디오에 멋진 음악이 나와.

너와 포옹하고 키스하고 싶어.

겨우살이 아래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265OerAy8To

 

 

14. Have Yourself A Merry Little Christmas

1943년에 휴 마틴(Hugh Martin)과 랄프 블레인(Ralph Blane)에 의해 씌여진 곡으로, 1944년에 MGM 뮤지컬 영화 《Meet Me in St. Louis., 세인트 루이스에서 만나요》에서 주디 갈랜드(Judy Garland)가 영화에서 불러 유명해졌다. 극히 미국적인 캐럴로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는 나중에 노랫말을 즐거운 분위기로 수정된 버전을 녹음했으며, 그 후 빙 그로스비(Bing Crosby), 도리스 데이(Doris Day), 엘라 피츠제랄드(Ella Fitzgerald) 등이 레코딩하여 대표적인 캐럴이 되었다. 에릭 클랩튼의 해석은 멋진 휴일 밤을 편안한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바꾸어준다.

Have yourself a merry little Christmas.

Let your heart be light,

From now on our troubles

Will be out of sight.

Have yourself a merry little Christmas,

Make the Yule-tide gay,

From now on our troubles

Will be far away.

Here we are as in olden days,

Happy golden days of yore,

All this friends who are dear to us

Gather near to us once more.

Through the years

We all will be together

If the Fates allow,

Hang a shining star

Upon a highest bough,

And have yourself A merry little Christmas now

작고 즐거운 성탄절 보내세요

마음을 평온히 가지면

이 순간 우리의 트러블도

더 이상 안 보이겠죠

작고 즐거운 성탄절 보내세요

즐거운 성탄이에요

이 순간 우리의 트러블도

멀리 사라질 거예요

우린 정말 오래 만났어요..

황금 같은 시간들이었죠

그리운 모든 좋은 친구들과

한 번 더 우리와 함께 지내요

​​

몇 년의 시간이 지나서

우린 모두 함께 있을 거예요

운명이 허락하는 한~

가장 높은 가지 위에 당신과 빛나는 별을 걸고

작고 예쁜 성탄절 바로 지금이에요.

https://www.youtube.com/watch?v=p_492QH-V7I

 

 

2018년 디지털 레코딩이니 당연히 CD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LP도 있다. 레트로의 열풍은 막을 수가 없는 시대의 흐름인 것 같다. 그것도 오디오파일용 180g 중량반으로 45rpm의 2장짜리 앨범이다. 당연히 가격은 부담이 되는 가격이다. LP는 무거워서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라 어떻게 마스터링하고 제작했느냐에 따라 음질이 달라지지만, 180g의 LP는 제작 의도가 고음질을 추구하기 때문에 그만큼 음질이 봏을 수 밖에 없다. 들어보면 120g 대의 일반 LP와 180g의 중량반은 그 울림이 확실히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