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트 퍼피가 무엇인가?
한때 하이엔드 스피커라고 하면, 무조건 와트 퍼피라는 시대가 있었다. 대략 1990년대라고 보면 된다. 이 제품은 여러 차례 진화를 했기 때문에, 특정 모델을 지적하기가 애매하다. 대략 시스템 3, 5, 6, 7, 8 정도로 표기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여기서 시스템 3는 1980년대 말에 나온 와트 3 & 퍼피 2 조합을 말한다. 이후 시스템 5가 되면 와트 5, 퍼피 5라는 공식이 된다. 쉽게 말해 와트 퍼피 5라 부르는 것이다. 이 5는 후에 스피커 케이블을 개량한 5.1 버전이 나와 더 많은 사랑을 받은 바 있다. (이상하게도 윌슨 오디오는 다른 모델의 형번에 4를 등장시키지 않는다. 동양의 팬들을 의식한 전략일까?)
하지만 시스템 8을 마지막으로 한동안 시장에 사라졌다가 올해에 갑자기 부활했다. 윌슨 오디오의 “더 와트 퍼피”라는 타이틀을 달고 말이다. 무려 13년만이다.
사실 이 시리즈의 인기는 상상 이상이어서, 1만달러 이상의 스피커를 대상으로 한 판매량 집계에서 단연코 톱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누적 판매량이 15,000 세트 이상이라고 하는데, 20,000 세트 이상이라는 통계도 있다. 아마도 그보다 더 할 것같다.
더블 우퍼의 위용
이 스피커를 고안한 윌슨 오디오의 데이빗 윌슨씨로 말하면, 원래는 녹음 엔지니어다. 자신의 이름을 건 레코드 사도 운영하고 있었고, 가끔 <앱솔루트 사운드>에 평론을 기고도 한 바 있다. 그러다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사용할 스피커를 설계한 바, 그게 바로 전설적인 WAMM 시스템이다. 이것을 보다 콤팩트하게 만든 것이 바로 와트(WATT)라 하겠다.
사실 와트라는 제품은 니어필드 리스닝 용으로 저역에 그리 신경쓰지 않았다. 하지만 주변에서 이 제품의 진가를 알아보고 윌슨씨에게 구매를 의뢰, 점차 판매가 되면서 본격적인 스피커 메이커로 윌슨 오디오를 창업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와트만 쓰기에는 아무래도 저역에 목이 마른 분들이 많았다. 나름대로 서브 우퍼를 구성하고, 이런저런 DIY도 이뤄진 모양이다. 그래서 이들을 위해 퍼피라는 더블 우퍼 사양의 박스를 별도로 출시한 바, 그게 바로 와트 퍼피가 된 것이다.
현재까지도 이 전통이 지속되어, 와트 퍼피를 굳이 한 몸체로 만들지 않는다. 참 재미있다.
퍼피에 투입된 우퍼의 사이즈는 모델에 따라 좀 다르지만, 대략 8인치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더 와트 퍼피의 경우, 저역의 리스폰스가 무려 26Hz에 달한다. 고역은 30KHz까지 커버하니, 이 작은 제품이 가진 와이드 레인지한 성향은 현대 하이엔드 스피커의 모범이라 해도 좋다.
우연한 만남
1990년대부터 와트 퍼피를 동경한 나는 한동안 5.1을 쓴 바 있고, 지속적으로 윌슨 오디오의 제품을 관찰하거나 혹은 시청한 바 있다. 코비드 전에 도쿄에서 열린 오디오 쇼에서는 크로노소닉이라는 거함을 만난 바 있는데, 여기서 들은 음은 정말 소름이 돛을 정도였다.
하지만 내 호주머니 사정이나 리스닝 룸 환경을 생각할 때, 크로노소닉은 커녕, 알렉시아도 언감생심이다. 그러던 차에 얼마 전 용산의 드래곤 호텔에서 열린 두두오 오디오 쇼에서 마치 헤어졌던 옛 애인과 만나는 듯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바로 “더 와트 퍼피”를 만난 것이다. 정말 가슴이 뛰고, 식은땀이 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매칭한 앰프가 볼더의 작은 모델이다. 불과 50W의 출력이지만, 낭랑하고 우아하게 옛 연인을 노래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 또한 정말 듣기 좋았다.
윌슨과 바쿤
일전에 내 칼럼에서도 소개한 바 있지만, 이상하게도 윌슨과 바쿤의 조합이 절묘하다. 적당한 짝을 지어주면 정말 본전을 뽑고도 남을 만한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사실 윌슨의 여러 제품들이 하이엔드 스피커를 대표하고, 그에 따라 장안의 난다긴다하는 거함들을 매칭하는 것이 관례이긴 하다. 또 그래야 엄청난 소리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통상의 우리 시청 환경을 생각할 때, 굳이 300W, 500W의 엄청난 파워 앰프가 필요한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한편 윌슨 오디오가 직접 오디오 쇼에 나가면, 대체로 진공관 앰프와 많이 매칭시키며, 심지어 소출력 제품과도 손을 잡은 경우도 있다. 실제로 예전 와트 퍼피를 보면 8W, 12W 정도로도 충분하다고 되어 있다. 이번 모델의 경우 25W에서 시작한다. 그래서 한번 이렇게 생각해봤다. 최근에 나온 바쿤의 AMP-5522와 매칭해보면 어떨까?
바쿤의 AMP-5522
이번에 나온 바쿤의 신작은 “인생 역전의 앰프”라고 수입상에서 명명할 정도로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는 제품이다. 가격대비 성능은 당연히 우수하고, 출력이나 제품 사이즈 면에서도 존재감이 각별하다.
참고로 본 기의 전작인 5521은 35W의 출력을 갖고 나왔다. 뭐, 그래도 웬만한 스피커는 다 구동한다. 그러므로 후속기는 좀 더 욕심을 낸다고 할 때, 약 50W 정도면 되지 않을까 전망했다. 하지만 고맙게도 아키라 상이 좀 더 의욕을 발휘해서 무려 70W를 내도록 마무리했다. 정말 감사할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두 제품의 수입상이 다르다는 점이다. 같은 곳에서 하면 바로 시청실에 가서 들어보면 되는데, 이번 경우에는 좀 복잡하다. 아무튼 저간의 사정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설명하기로 하고, 드디어 지난 10월 17일 목요일 저녁 7시 반에 바쿤과 와트 퍼피의 공식 시청회를 갖게 되었다. 시청실은 케이원에서 마련한 공간을 사용하기로 했고, 오로지 앰프만 바쿤에서 제공하는 형태로 마무리지었다.
즉, AMP-5522를 주축으로, 여기에 PRE-5440을 붙인 조합을 더 와트 퍼피와 매칭시킨 것이다. 소스기는 메레디언의 제품을 동원하고, 대부분의 케이블도 케이원의 수입품으로 완성시켰다.
단, 프리와 파워 사이에만 원키 프로덕션의 올림포스(Olympos) 인터 커넥터를 접속시켰다. 이렇게 보면, 세 개의 회사가 연합한 형태가 된다. 케이원, 바쿤 그리고 원키. 왜 이런 조합을 추진했는가 하면, 그 이유는 본 기사 말미에 나오니 끝까지 읽어주길 바란다.
본격적인 시청
거두절미하고, 이번 행사를 진행하면서, 나는 여러 종류의 음악을 걸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시청회보다 먼저 도착해서, 룬을 이용한 타이달의 소스에서 여러 타입의 음악을 우선 들어봤다. 내 예상으로는 클래식의 소편성이 가진 아름다운 음색과 공간감에서 거친 하드 록의 기백까지 모두 아우를 수 있다고 봤다.
그 예상은 보기 좋게 적중했다. 정말 수많은 시스템을 듣고 또 행사도 진행한 바 있는데, 이토록 다양한 음원을 모두 커버하면서 그 각각의 특징과 매력을 모두 드러낸 케이스는 드물다. 정말 특별하고 멋진 조합이 이뤄진 것이다.
드보르작 <현악 3중주 둠키 중 3악장 안단테> 보자르 트리오
원래 이 곡은 윌슨씨가 녹음해서 발매한 음반에도 쓰였다. 물론 연주자는 다르지만, 한때 이 음반이 오디오파일용으로 널리 각광받은 바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즉, 윌슨씨는 자신의 스피커로도 얼마든지 소편성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초반에 등장하는 피아노의 울림부터 차분히 첼로와 바이올린이 가세하고, 풍부한 공간감을 연출한다. 바쿤의 소출력 앰프들이 가진 매력이 5522에도 십분 살아있다. 마치 청명한 가을 하늘을 연상시키는 놀라운 해상도와 풍부한 마이크로 다이내믹스는 듣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나는 윌슨의 고역을 특히 좋아하는데, 이 조합에서 정말 아름답고, 디테일한 음이 나왔다. 특히 바이올린이 인상적이었다.
드보르작 <신세계 교향곡 중 1악장> 라파엘 쿠벨릭(지휘)
개인적으로 시청에 자주 쓰는 곡이다. 초반에 느릿느릿 조용히 시작하다가 점차 편성이 커지면서 나중에는 변화무쌍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특히 매크로 다이내믹스를 체크할 때 무척 요긴하다. 정말 스피디하면서, 다채로운 악기의 음색이 귀를 즐겁게 한다. 5522가 보이는 놀라운 저역 핸들링은 풀 사이즈 오케스트라의 스케일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그러면서 곡 안에 숨어있는 동유럽의 정서라고 할까, 아련한 슬픔같은 것도 잘 표현하고 있다.
오스카 피터슨 <You Look Good to Me>
이젠 장르를 바꿔 재즈를 걸어봤다. 초반에 깊게 보잉하는 더블 베이스의 음향, 브러쉬로 긁는 스네어의 질감 거기에 유쾌한 피아노 터치까지, 3명의 연주인이 내는 앙상블이 일체 흐트러짐없이 펼쳐지며 무대를 꽉 채운다. 드럼의 경우 킥 드럼의 어택이나 심벌즈 레가토의 표현이 정확하고, 나중에 브러쉬에서 스틱으로 바꿨을 때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비트는 정말 현란할 정도다. 베이스를 치면서 흥얼거리는 연주자의 모습이 실체감 있게 다가오고, 점차 열기를 더하면서 속도를 높이는 피아노의 화려한 플레이는 절로 미소짓게 만든다. 피가 통하고, 개방감이 넘치며, 한껏 기분을 고조시키는 음이다.
레인보우 <Man on the Silver Mountain>
이젠 깡패(?) 음악으로 가봤다. 격한 드럼의 에너지가 놀랍게도 일체 가감없이 펼쳐진다. 두툼한 베이스에 공격적인 기타 리프 그리고 막강한 보컬의 에너지가 헤비 메탈 듣는 재미를 만끽하게 한다. 어떻게 70W에서 이런 파괴력을 연출할 수 있는가 듣는 내내 놀라고 말았다. 바쿤의 앰프는 가끔 상식을 넘어서는 괴력(?)을 발휘하는데, 5522도 마찬가지. 그간 집중해서 시청하던 관객들도 미소를 띠고, 심각한 표정을 풀어버리게 만들었다. 덕분에 연달아 몇 곡의 록을 들으면서 마무리지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70년대 록도 무척 재미있게 재생했다는 점에서 정말 인상적이었다.
사실 바쿤이라고 하면 소출력 앰프로 이름을 알렸고, JBL이라던가 로하스 계열과 좋은 궁합을 선보인 바 있다. 그러므로 하이엔드 스피커와는 인연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내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면 일단 윌슨 오디오의 제품과 궁합이 좋다.
기본적으로 와트 퍼피가 떠오르겠지만, 그 밑의 모델도 좋다. 또 반대로 알렉시아에 모노 블록 형태로 투입해서 재미를 보는 분도 있다. 앞으로 바쿤과 윌슨의 랑데부는 계속 애호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라 확신한다.
P.S.) 11월 중순에 벌어지는 풀레인지 주관의 오디오 쇼에 이번 조합이 참여한다. 윌슨의 더 와트 퍼피에 바쿤의 5522가 조합되고, 원키 프로덕션의 여러 케이블이 동원될 예정이다. 무엇보다 바쿤의 EQA 5640 MK4 포노 앰프가 활약할 예정이니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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