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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쿤의 진격은 멈추지 않는다. - 디지털 어테뉴에이터(ATT)

by onekey 2024. 10. 17.

 

 

아키라 나가이 상

바쿤을 주재하는 나가이 상은 참 재주가 많은 분이다. 취미로 비즈 공예를 하고 있는데, 어쩌다 사진을 보면 어지간한 전문가 못지 않다. 타고난 센스와 손재주가 남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본적으로 음악광이라, 수많은 레코드를 모았고, 턴테이블과 카트리지도 많이 수집하고 있다. 또 라이브 레코딩에도 일가견이 있어서 취미 삼아 가끔씩 카페나 클럽에서 녹음도 한다. 이런 여러 경험이 결국 바쿤의 제품에 녹아있는 셈이다.

이번에는 아주 특별한 업그레이드를 준비했다. 대체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특히, 두 어 종의 프리앰프를 제외한 나머지 제품에 다 대입할 수 있다고 하니, 기존의 바쿤 애호가들도 관심을 둘 만한 사항이라 본다.

 

한번 와서 들어보실래요?

일전에 내 칼럼에서 탐방기를 올렸던 성원장님이 어느 날 연락을 해왔다. 내 시스템에서 아주 사소한 부분을 업그레이드하려는데, 한번 와줄 수 있냐는 전갈이었다.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사실 오디오라는 것이 그냥 앰프 바꾸고, 스피커 바꾸고, 뭐 그래서 업그레이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일단 시스템을 구성하면 정말 세세한 부분까지 점검하고, 매만지고, 보충해야 한다. 이것은 시간과 정열과 끈기를 요한다. 큰돈은 들지 않지만, 정말 효과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이 대목에서 성원장님의 최근 몇 가지 변화를 잠깐 짚고 넘어가보자.

 

맨 처음 시스템

성원장님과는 10년 이상 아는 사이로, 그간 간간이 방문하며 오디오 시스템의 변화를 근거리에서 목격해왔다. 이분은 일종의 완벽주의자로, 대충 매칭해서 소리 나오면 만족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정말 꼼꼼하게 제품을 관찰하고, 실제로 다양한 매칭을 통해 현장의 목소리, 일종의 필드 웍에 강하다. 무조건 남이 좋다고 따르는 분은 아닌 것이다.

따라서 앰프를 바쿤으로 고정한 채, 윌슨 오디오의 제품을 여러 개 사용한 바 있고, 그 와중에 나가이 상이 두 번이나 방문해서 역시 좋은 데이터를 얻어간 바 있다.

 

이후 작년에 우연히 방문했을 때에는 현재에 거주하고 있는 송도의 29층 아파트 꼭데기 층에 다음과 같은 시스템이 준비되어 있었다.

 

-프리앰프 : 바쿤 5540

-파워 앰프 : 바쿤 5570

-스피커 : 윌슨 알렉스

-SACD 플레이어 : 에소테릭

 

여기서 5570은 모노 블록으로 사용하고 있었으므로, 스테레오기로 쓸 때의 8오옴 100W 출력이 200W로 증강된 상태다. 알렉스를 운용하는 데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이 당시 사용했던 소스기는 에소테릭의 SACD 플레이어다. 에소테릭은 매우 투명하고, 출중한 해상도를 자랑하고 있으며, 고역에서 나긋나긋하고, 탐미적인 음색이 매력적이다.

 

하지만 당시 알렉스에 하이파이 스테이의 받침대를 넣으면서, 약간 음이 경질이지 않나, 싶은 구석이 있었다. 베이스가 너무 억제된 느낌이 있었다.

 

이런 부분을 아는지 성원장님 역시 베이스를 너무 줄였나요, 살짝 웃기도 했다.

 

에소테릭에서 TAD로

이후 올해 중반에 다시 방문했을 때, 깜짝 놀랐다. 지난번보다 더 활기차고, 힘이 있는 소리가 나왔기 때문이다. 또한 착색이 없으면서, 저역의 펀치력이 몰라보게 좋아졌다. 대체 무슨 변화가 있었나 봤더니, 소스기가 바뀌었다. 에소테릭에서 TAD D6000으로 교체한 것이다.

 

사실 두 업체 모두 일본이 베이스이긴 하지만, 그 성격이 좀 다르다. 에소테릭이 약간 탐미적이면서, 여성적인 느낌이 있는 음색이 매력적이라고 하면, TAD는 미국에서 출범한 프로용 회사답게 정확하면서도 호방한 느낌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애호가들은 TAD보다 에소테릭을 선호할 것같다. 하지만 성원장님의 선택은 TAD였고, 기존의 시스템 구성이나 성격으로 보아 이런 부분이 좋은 쪽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헤밍웨이의 등장

한편 이번에 전화를 받고 다시 방문했을 때, 바쿤의 파워를 업그레이드하기 전에 다시 음악을 들었다. 그런데 또 뭐가 극적으로 바뀐 듯했다. 알고 보니 그 사이 헤밍웨이의 케이블 여러 개가 들어온 것이다.

 

헤밍웨이로 말하면, 독자적인 케이블 이론을 갖춘 회사다. 많은 메이커들이 음을 전송할 때, 거기에 따라붙는 자기장의 존재를 제거하려고 애쓴다. 헤밍웨이는 정반대다. 그것을 적절하게 이용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덕분에 헤밍웨이 케이블을 걸면, 기본적으로 파워 앰프의 용량이 10% 이상 늘어난 느낌을 준다. 음에 힘이 붙고, 저역의 표정이 좋아지며, 전체적으로 스케일이 커진다. 나 또한 헤밍웨이 케이블을 좋아한다.

 

이쯤에서 눈치빠른 독자들은 내가 왜 가끔씩 성원장님의 댁을 방문하는지 이해할 것같다. 내가 추구하는 음이 실은 바로 이런 쪽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볼륨단

자, 이렇게 차곡차곡 진화한 시스템은, 뭐 하나 흠을 잡을 수 없을 만큼 밸런스가 좋고, 해상력이 풍부하며, 무엇보다 음악을 듣는 재미가 각별했다.

 

만일 나가이 상의 입장이 되어, 여기서 더 나은 음을 내기 위해 뭔가를 만진다면, 과연 그게 가능이나 할까 의문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오디오의 세계는 끝이 없고, 바쿤의 진화 역시 끝이 없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 법이다.

 

이번에 업그레이드한 것은 기기의 교체가 아니다. 실은 앰프, 그것도 파워 앰프의 볼륨단을 바꾸는 정도에 불과했다.

 

아니, 파워 앰프에 볼륨단이 있나, 의문을 가질 법하다.

 

여기엔 설명이 필요하다. SATRI 회로로 만들어진 바쿤의 제품은 게인단이 무척 중요하다. 파워 앰프가 무작정 증폭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 게인단을 추가하면서 프리앰프의 영역까지 아우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쿤의 앰프는 프리와 파워가 결합된 형태라, 대부분 인티 앰프로 쓰고 있지만 또한 전용 파워 앰프로도 쓰고 있는 것이다.

 

또 만일 바이 앰핑을 한다고 하면, 실은 게인단의 역할이 더 중요해진다. 지난 번 JBL L100 클래식 75를 바이 앰핑하면서 느낀 것인데, 두 종의 파워를 사용할 경우, 역시 어느 정도의 볼륨 조정이 필요하다. 이런 부분에서 파워 앰프라고 해도 게인단, 우리가 흔히 볼륨단이라고 부르는 쪽의 역할이 생각보다 큰 셈이다.

 

디지털 어테뉴에이터(ATT)

그럼 대체 어떤 볼륨단이 투입되었는가 궁금할 것이다. 실은 5440과 5410 프리앰프를 만들면서, 여기에 투입한 새로운 볼륨단이 음질 향상에 극적으로 기여한 만큼, 이 부분을 디지털 ATT로 만들어서 기존의 제품에 장착하자, 라는 것이 이번 업그레이드의 주요 내용이다.

 

따라서 이 디지털 ATT가 어떤 내용을 갖고 있는지, 이것부터 확인이 필요하다.

 

사실 이것은 디지털 기판과 아날로그 기판이 함께 맞물려 있다. 즉, 디지털 ATT로 어떤 설정을 하면, 아날로그 기판에서 릴레이로 저항을 변화시키는 방식인 것이다. 이런 볼륨단은 고가의 제품에나 투입하는 것이 관례다.

 

하지만 프리앰프만 놓고 보면, 볼륨단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이 넘는다고 하니, 양질의 볼륨단으로 교체했을 때 음질 향상의 효과는 마치 케이블의 업그레이드 못지 않다고 봐도 좋다.

 

67 스텝의 성과

한편 저항으로 말하면 미세한 칩 저항을 사용해서 배선을 최대한 짧게 했으며, 패턴을 폭넓게 만들어서 ATT에 향하는 리액턴스가 적다. 다시 말해 부가음이 발생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기판 자체는 그랜드 플레인 방식이라, 임피던스를 최대한 낮춘다는 이점도 갖고 있다. 덕분에 높은 주파수 대역까지 안정적으로 동작한다.

 

기존의 금속 피막 저항 방식의 볼륨단이 23 스텝에 불과한 데 반해, 이번 디지털 ATT 방식은 무려 67 스텝으로 향상되었다. 0.2 dB 이하의 정밀도까지 갖췄고, 무려 10개나 투입한 릴레이는 로듐 도금이 되어 있어서 1억번을 사용해도 지장이 없다. 또 가끔 분해 청소해줘야 하는 기계식 금속 피막 저항 방식에 비한다면, 반영구적이라 해도 좋다.

총 28개의 칩 저항으로 67 스텝을 확보한 것이 이번 디지털 ATT의 성과라 하겠다.

 

본격적인 시청

두 어 시간에 걸친 작업 끝에 드디어 볼륨단의 교체를 마치고 본격 시청에 들어갔다.

 

첫 번째 트랙은 “She & Him”이라는 듀오의 <It’s Always You>라는 곡이다. 일단 스케일이 더 커지고, 음의 표현력이 확 증대되었다. 공간에 여유가 생기면서, 보컬과 악기의 활동 범위도 넉넉해졌다. 무엇보다 아티스트의 존재감이 더 부각된 점이 특별했다. 저역의 경우 탄력이 붙고, 더 명료해졌으며, 펀치력도 일품이었다. 마치 파워 앰프를 좀 더 출력이 나가는 것으로 교체한 것같았다. 그러면서 해상도와 다이내믹스가 향상한 느낌도 받았다.

 

이어서 에릭 클랩턴이 최근에 벌인 라이브 중 <Layla>를 들었다. 영국 농가의 허름한 창고에서 장인 넷이 벌인 세션이다. 허심탄회하게 노래하고 또 기타를 뜯는데, 녹음 자체도 뛰어나고, 공간감도 일품이다. 여기에 단단한 저역과 명징한 고역이 맞물리면서, 좀 더 치밀하고 디테일한 음이 나왔다. 전체적으로 밀도감이 높아져서, 시청실을 꽉 채우는 음향을 경험했다. 이전 버전과 달리 똑같은 볼륨 레벨인데도 음이 더 커졌다. 그만큼 볼륨단에서 발생하는 부대음이나 장벽이 없어졌다는 뜻도 된다.

마지막으로 에디 히긴스의 <You Don’t Know What Love Is>를 들어봤다. 일본의 재즈 명문 비너스에서 발매한 음반으로, 테너 색스를 맡은 스콧 해밀턴의 멋진 플레이가 빛나는 곡이다. 전체적으로 비밥을 너머 스윙 시대로 돌아간 듯한 노스탤지어가 일품이다. 리듬이 풍요롭고, 유머가 넘치며, 무엇보다 활기차다. 벤 웹스터를 연상케 하는 구수하면서, 관능적인 색소폰 음색이 전면에 부각되는 가운데, 에디의 내공 넘치는 컴핑이 정말 멋들어진다. 절로 발 장단이 나왔다.

 

결론

이번 디지털 ATT 볼륨단은 기존에 발매중인 5440 및 5410 프리를 제외한 바쿤의 제품 대부분에 투입할 수 있다. 단, 개인이 교체 작업을 하기는 힘든 만큼, 수입원인 바쿤매니아에 연락해서 장착을 부탁하면 된다.

 

SATRI 회로의 성격상, 볼륨단의 중요성이 상당한 만큼, 저렴한 예산으로 놀라운 업그레이드이 효과를 볼 것이라 장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