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리지 업그레이드
신품을 사거나 중고로 턴테이블을 구입하면 번들로 이미 카트리지가 장착되어 있다. 이렇게 번들 카트리지로 아날로그를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LP로 음악을 즐기는 맛을 알아갈 즈음 잘 쓰던 카트리지 바늘을 부주의로 황천길로 보내는 불상사가 생긴다. 아이가 호기심에 만지다가 일을 낼 수도 있고, 아내가 청소한다고 걸레로 스윽 닦다가 사고를 내기도 한다. 사고가 나지 않으면 음악을 즐기는 아날로그 음악생활이 익숙해지면서 다른 카트리지는 어떤 음을 내줄지 슬슬 호기심이 발동하기도 한다. 이 장에서는 이런 저런 이유로 카트리지를 업그레이드하고자 할 때 알아야 할 것을 다루고자 한다.
카트리지는 기본적으로 어떻게 음악신호를 만들어내는지 원리를 살펴보고, MM과 MC 카트리지의 구조가 어떻게 다른지 살펴볼 것이다. MM과 MC 카트리지는 구조가 달라서 소리도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왜 소리가 다를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도 알아볼 것이다. 카트리지의 기본적인 성능을 표시하는 침압이나 출력전압 같은 스펙을 보는 방법, 그리고 그 스펙에 적힌 숫자로 어떤 소리를 내줄지 예측할 수 있는 안목도 배우게 될 것이다.
카트리지는 톤암에 장착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카트리지를 선택할 때 톤암과의 상관관계가 아주 중요하다. 그래서 톤암의 기본적인 특성과 구조도 알 필요가 있다. 톤암의 기본 특성을 익히고 이런 특성이 카트리지와 조합을 통해 어떻게 작용하는지 살펴 볼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최종적으로 내가 선택하고 싶은 카트리지가 현재 소유한 턴테이블의 톤암과 잘 어울리는지 알 수 있다.
카트리지는 진동을 전기로 바꿔준다
카트리지가 하는 일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진동을 전기로 바꿔주는 것이다. 조금 어렵게 표현하면 진동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전환시켜주는 변환기다. 진동이 어떻게 전기가 될 수 있는지 궁금할 것이다. 초등학교에서 하는 간단한 과학실험으로 진동이나 운동에너지가 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과 같이 코일이 감긴 타래의 양 끝에 꼬마전구를 연결한다. 그 다음 자석을 코일 타래에 가까이 대고 좌우로 힘차게 흔들면 꼬마전구에 불이 들어온다. 세게 흔들면 불이 세지고 천천히 흔들면 불이 희미해진다. 물론 자석을 흔들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꼬마전구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카트리지의 원리도 위에서 설명한 것과 똑같다. 코일 앞에 자석을 놓고 자석을 캔틸레버라는 막대에 연결한다. 캔틸레버 막대 끝에는 다이아몬드를 정교하게 깍은 바늘을 붙인다. 바늘이 레코드에 새겨진 소릿골을 따라 상하좌우로 움직이게 되면 바늘에 연결된 캔틸레버를 통해 자석이 요동치게 된다. 자석이 요동치면 자석 뒤에 있는 코일에 전기가 발생된다. 이것이 바로 MM(Moving Magnet) 카트리지가 전기 신호를 발생시키는 원리다. 앞에서 설명한 대로 카트리지 몸체에 코일이 있고 자석이 바늘의 움직임에 의해 움직이면서 전기를 발생시킨다고 해서 Moving Magnet이라고 한 것이다. 쉽게 말해 자석이 움직이면서 전기신호를 만드는 카트리지가 MM 카트리지인 것이다.
그럼 MC(Moving Coil) 카트리지는 MM 카트리지와 어떻게 다를까? 눈치 빠른 독자는 바로 알아챘을 것이다. 자석이 카트리지 몸체에 있고 그 앞에 코일을 실패 같은 것에 감아서 놓는데 이 실패를 보빈(bobbin)이라고 부른다. 보빈에 캔틸레버라는 막대기를 붙이고 그 끝에 다이아몬드 바늘을 접착한다. 바늘이 레코드의 소릿골을 따라 진동하면 캔틸레버를 통해 코일이 감긴 보빈이 진동하게 된다. 이처럼 코일이 움직인다고 해서 Moving Coil이라고 한 것이다. 설명을 듣고 나면 처음에 카트리지 발전원리 설명할 때와 원리는 똑같고 코일과 자석의 위치만 반대로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맞다! MM과 MC는 코일과 자석의 위치만 바뀌었을 뿐이다.
코일과 자석 사이에 진동에 의해 전기신호가 생기는 것은 똑같은데 왜 굳이 MM과 MC를 구분해서 설명하는 것일까? 궁금증이 생길만 하다. 이것도 이유를 알고 나면 아주 간단하다. MM 카트리지를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다. 바늘이 레코드의 소릿골을 따라서 진동을 하면 캔틸레버라는 막대를 통해 자석이 진동하게 된다. 이때 카트리지 본체에 있는 코일이 몇 바퀴 안 감긴 것이라고 하자. 그러면 코일에서 생기는 전압이 아주 낮다. 이와 달리 코일이 아주 많이 감겨 있으면 발생하는 전기의 전압이 높아진다. 카트리지에 발생하는 신호의 전압이 높아지는 만큼 포노앰프에서는 조금만 증폭해도 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그래서 MM 카트리지는 코일을 충분히 감아서 높은 전압인 3mV 정도를 발생시키게 제작한다.
그럼 MC 카트리지의 경우를 살펴보자. MC 카트리지는 바늘에서 진동이 발생해서 캔틸레버를 통해 코일이 감긴 보빈이 움직이면서 전기가 발생한다. 이런 구조에서 충분히 높은 전압을 얻기 위해 보빈에 코일을 많이 감았다고 하자. 그러면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높은 전압은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보빈이 너무 커지고 무거워지게 된다. 보빈이 커지고 무거워지면 캔틸레버 끝에 달린 바늘이 열심히 진동을 하려고 해도 크고 무거운 보빈 때문에 움직임이 둔할 수밖에 없다. 조금 더 쉽게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 가벼운 일반 볼펜으로는 글씨를 쉽게 잘 쓸 수 있다. 만약 볼펜 머리에 무거운 골프공을 끼웠다고 해보자. 무거운 골프공 무게 때문에 전처럼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글씨를 쓰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그래서 코일이 움직이는 MC 카트리지는 코일을 많이 감을 수가 없다. 결국 출력전압이 MM 카트리지의 1/10 수준인 0.3mV 정도만 내게 된다.
MM 카트리지는 MC 카트리지에 비해 열 배에 달하는 높은 전압의 전기신호를 낼 수 있어서 승압트랜스나 헤드앰프 없이 곧바로 포노앰프나 포노단자에 연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MM 카트리지는 구조상 바늘과 캔틸레버 자석이 한 몸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바늘이 다 닳거나 캔틸레버가 부러지면 빼서 새 바늘로 갈아 끼우면 문제가 해결된다. 출력전압도 높고 바늘이 수명이 다 되거나 부러지면 카트리지 몸통은 그대로 두고 바늘만 갈아 끼울 수 있으니 아주 편리하고 경제적이다. 간혹 MI(Moving Iron)라는 방식의 카트리지도 있는데 이것은 MM의 변형이다. 소리 특성이나 스펙이 MM 카트리지와 거의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자 그럼 MC 카트리지는 어떤지 살펴보자. 바늘이 닳거나 부러졌다고 가정하자. 바늘을 빼내려고 하면 캔틸레버에 결합된 보빈과 코일이 따라 나올 수밖에 없다. 카트리지 몸체에 연결되어 있는 코일이 끊어지게 되는 것은 자명하다. 그래서 MC 카트리지는 바늘만 교환 할 수가 없다. 바늘이 부러지면 카트리지를 통째로 교환해야 한다. 수리를 하더라도 카트리지에 캔틸레버와 바늘이 붙어 있는 상태에서 해야 한다. 여기서 궁금증이 생길 것이다. MC 카트리지는 출력전압도 낮아서 추가로 승압 트랜스나 헤드앰프가 있어야 하고, 바늘도 교환이 되지 않는데다가 가격도 MM 카트리지보다 훨씬 더 비싸다. 그런데 왜 다들 MM 카트리지보다 MC 카트리지를 사용하고 싶어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 것이다. 그 해답의 열쇠는 MC 카트리지의 소리에 있다.
MM과 MC 카트리지의 소리 차이
아파트에서 생활하다 보면 소음 때문에 신경 쓰이는 일이 자주 있다. ‘쾅~ 쾅~’ 울리는 못질 소리는 옆집에서 나는 건지 윗집에서 나는 건지 쉽게 구분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런데 바이올린 소리 같은 고음은 보다 쉽게 어디에서 나는 소린지 알아차릴 수 있다. 이렇듯 저음보다 고음의 위치 파악이 쉬운 이유는 소리라는 음파가 가진 성질 때문이다. 고음은 레이저 빔처럼 직선으로 뻗는 성향이 강하고 저음은 수면에 퍼지는 물결처럼 사방으로 퍼지는 성질이 강하다.
가운데 구멍이 있어서 공기가 통하는 길이가 긴 호스로 간단한 실험을 해보자. 호스를 원형으로 하나는 열 번 감고 다른 하나는 백번 감았다고 하자. 호스의 한쪽 끝에서 사람이 도, 레, 미, 파, 솔, 라, 이런 식으로 낮은 음부터 낼 수 있는 최고 높은 음까지 차례로 내게 하고 반대편에서 귀로 이 소리를 듣는다고 가정하자. 열 번 감은 호스에서는 높은 음까지 큰 무리 없이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엄밀하게 따지면 이 경우에도 저음이 고음보다 더 잘 들린다. 백번 감은 호스에서는 저음은 그런대로 들리지만 고음으로 올라갈수록 소리가 작아지고 잘 들리지 않게 될 것이다. 이유는 앞서 얘기한 대로 저음은 사방으로 물결치듯 전달되기 때문에 구부러진 호스도 잘 통과하지만 고음은 레이저 빔처럼 직선으로 뻗어나가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구부러진 호스를 잘 통과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기 중에서 저음과 고음이 가지는 이런 특성과 코일 속에 흐르는 전기신호의 특성이 아주 비슷하다. 코일의 감은 횟수가 적을 때는 저음의 전기신호(낮은 주파수)나 고음의 전기신호(높은 주파수)나 잘 통과한다. 코일을 많이 감으면 감을수록 낮은 주파수 전기는 그런대로 잘 통과하지만 높은 주파수의 전기는 통과하기가 힘들어진다.1)
카트리지 얘기를 하다 갑자기 호스를 감아놓고 저음이 잘 들리는지 고음이 잘 들리는지 알아보는 얘기를 왜 하나 싶을 것이다. 이유는 천천히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MM 카트리지는 충분히 높은 출력을 내기 위해 코일을 충분히 감았다고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출력은 충분히 높아졌지만 고음의 전기신호는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했다. 마치 동화 ‘인어공주’에서 인어공주가 마귀할멈의 도움으로 어여쁜 두 다리를 얻게 되지만 목소리를 빼앗긴 것처럼 말이다.
MC 카트리지의 경우는 보빈이 무거워지면 안 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코일을 적게 감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출력이 MM 카트리지의 1/10 밖에 안 되는 낮은 전압을 내게 된다. 그런데 이런 이유로 코일 감은 횟수가 적어지다 보니 MM 카트리지보다 상대적으로 고음이 잘 나오게 된다. “세상에는 다 좋기만 한 것도 없고, 다 나쁘기만 한 것도 없다”는 말이 있다. 무게를 가볍게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코일을 적게 감다 보니 출력전압이 낮아서 불편하지만 반대로 고음은 술술 잘 나오게 되는 장점을 가지게 된 것이다.
MM과 MC 카트리지는 코일의 감은 횟수가 다르다. 그래서 출력전압이 차이가 나고, 소리의 특성도 다르게 된다. 코일을 적게 감은 MC 카트리지가 상대적으로 고음이 잘 나오고 좀 더 생생한 소리를 내준다. 이에 비해 MM 카트리지는 고음이 상대적으로 덜 나와서 순하고 부드러운 느낌의 소리를 내준다. 물론 비행기보다 빠른 자동차가 있듯이 MM이지만 MC보다 고음이 잘 나오는 카트리지가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전체로 보면 MC 카트리지가 MM 카트리지보다 고음이 더 잘 나오고 좀 더 생생한 소리를 내준다고 할 수 있다.
MC 카트리지가 더 생생한 소리를 들려주는 것은 맞지만 MM 카트리지에 비해 가격도 비싸고 승압트랜스나 헤드앰프 같은 추가 장치도 필요하다. MM 카트리지는 MC와 다른 독특한 질감 표현이나 편안한 느낌의 매력이 있다. 그래서 입문하는 입장에서는 MM 카트리지의 맛을 충분히 즐기고 난 후에 천천히 MC 카트리지로 접근해가는 것이 좋다. 처음부터 MC 카트리지를 쓰게 되면 MM 카트리지가 가지는 독특한 매력을 충분히 만끽하지 못한 채 지나치기 쉽다.
출력전압
카트리지를 사면 포장 박스 안에 종이가 들어 있기 마련이다. 종이에는 다양한 수치가 적혀져 있다. 그 수치를 어떻게 이해해야 되는지 알아보기로 하자. 스펙의 여러 가지 수치 중에서 제일 먼저 볼 것이 출력전압(Output Voltage)이다. MM 카트리지는 보통 3~5mV1) 정도의 수치를 가진다. MC 카트리지 중에서 고출력이라 부르는 제품은 대충 0.7~1.8mV 정도의 수치를 표시하고 있다. 1.5mV 정도의 고출력 MC 카트리지라면 볼륨을 조금 더 올리는 수준에서 MM용 포노앰프에 바로 연결해서 시청할 수 있다. 그러나 1.0mV 이하라면 MM용 포노앰프에 그대로 연결해서 듣기에는 문제가 있다. 단순하게 볼륨을 더 올리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볼륨을 12시나 1시 방향까지 올리면 소리는 들을만한 수준으로 커지지만 음질이 나빠진다. 저음은 부풀어서 풀어지고 중음과 고음은 산만해져서 듣기 거북한 이상한 소리가 나게 된다.
40dB 정도를 증폭하는 MM용 포노앰프나 앰프의 포노단자를 가지고 있다면 카트리지를 구입하기 전에 출력전압을 꼭 확인해야 한다. 최소한 1.5mV 이상의 출력전압을 가진 카트리지여야 승압트랜스나 헤드앰프 같은 추가 장치 없이 바로 연결해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0.7~1.5mV 정도의 출력전압을 갖는 카트리지를 사용하고 싶다면 포노앰프가 MC 대응이 되는 제품으로 증폭도가 55dB 정도는 되는 제품이어야 한다. 무작정 ‘어떤 카트리지가 좋다더라’ 하는 풍문에 휩쓸려 구입할 것이 아니라 구입 전에 출력전압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 이런 점을 모두 고려하면 첫 번째 카트리지 업그레이드는 출력전압이 높은 MM이나 MI 카트리지를 선택하는 것이 무난하다.
침압
카트리지 선택에서 두 번째로 보아야 할 수치는 침압(Tracking Force)이다. 침압 수치는 대개 그램(g)으로 표시되는데 우리가 보통 쓰는 무게 단위의 그램과 같다. 침압은 카트리지를 제작할 때 미리 계산해 정한 것으로, 실제 톤암에 장착해서 레코드를 들을 때 꼭 맞춰주어야 하는 항목이다. 간혹 레코드가 닳을까봐 침압을 적게 주거나 좀 더 묵직한 소리를 듣기 위해 침압을 더 주기도 하는데 두 경우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
간단한 예로 왜 침압을 정해진 만큼만 주어야 하는지 알아보자. 만년필이나 펜촉으로 글씨를 쓴다고 생각해보자. 펜촉 끝에 적당한 힘이 가해지면서 글씨가 써지게 된다. 만약 펜에 힘을 너무 적게 주면 글씨가 가늘어지면서 제대로 된 글씨꼴이 안 되게 써질 것이다. 반대로 너무 힘을 주게 되면 글씨가 굵어지면서 진해지기는 하지만 펜촉 끝이 벌어져서 펜을 얼마 쓰지 못하게 될 뿐 아니라 종이가 글씨 자국을 따라 심하게 눌릴 것이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글씨를 예쁘게 잘 쓰려면 너무 약하지도 않고 너무 세지도 않은 적당한 힘으로 써야 한다. 이처럼 카트리지의 바늘도 적정 침압을 주어야 레코드의 소릿골을 효과적으로 추적해서 음악신호를 잘 만들어낼 수가 있다.
적정 침압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카트리지의 특성상 침압을 덜 주면 그림 C와 같이 캔틸레버와 레코드가 만나는 각도가 커진다. 반대로 침압을 많이 주면 그림 B같이 캔틸레버와 레코드가 만나는 각도가 작아진다. 레코드를 처음 만들 때 커팅머신이 빈 레코드에 소릿골을 새겨 넣게 되는데, 이때 레코드 회사마다 각도가 약간씩 다르지만 대략 15˚정도가 일반적이다. 이 각도에 맞춰서 카트리지 회사들도 레코드와 캔틸레버 각도가 15˚정도가 되도록 제작한다. 카트리지가 적정 침압일 때 이 각도가 유지되는 것이다. 만약 침압을 적게 주면 15˚보다 더 큰 각도로 레코드를 추적하게 된다. 침압을 많이 주면 캔틸레버가 주저앉으면서 15˚보다 작아진 각도로 레코드 소릿골을 따라가게 된다. 이 각도가 달라지면 원래 레코드에 녹음된 신호와 다르게 왜곡된 신호가 카트리지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어떤 경우라도 침압은 규정된 범위를 벗어나게 조정해서는 안 된다.
침압에 대해 좀 더 세밀하게 살펴보자. 보통 침압 수치를 보면 2.0g이라고 표시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1.8~2.2g 이런 식으로 범위를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 간혹 2.0+/-0.2g이라고 표시하고 표준(recommend)은 2.0g이라고 표시하기도 한다. 차라리 2.0g이라고만 표시하면 고민이 없을 텐데 얼마에서 얼마로 범위를 정해 표시하면 어디에 맞추라는 것인지 쉽게 감이 잡히지 않을 것이다. 기준은 침압을 줘 가면서 소리가 좋은 지점의 값을 선택하면 된다. 침압을 최대치로 주면 저음이 묵직해지고 전체적으로 안정감 있는 소리가 난다. 침압을 최소치로 주게 되면 고음이 살아나면서 섬세해지는데 약간 가벼운 느낌이 난다. 결국 소리를 들어가면서 자기의 취향에 맞춰서 선택하면 된다.
새 카트리지라면 정해진 범위에서 가장 큰 수치에 맞춰 사용하는 것이 좋다. 고무 댐퍼 등이 아직 싱싱하기 때문에 상한선까지 침압을 주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 오래된 중고 카트리지의 경우는 상한선까지 침압을 주기보다는 중간 값이나 하한 값을 주는 것이 좋다. 이유는 댐퍼 등이 노화되어 탄력이 줄어들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싱싱한 젊은이는 무거운 짐도 잘 견디지만 노인에게 무거운 짐은 부담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컴플라이언스
침압이 단순히 카트리지를 톤암에 장착해서 세팅할 때 주어야 하는 무게 값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적정 침압을 톤암의 무게 추나 노브를 돌려 맞춰주기만 하면 문제없이 레코드를 즐길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적정 침압 수치로 카트리지가 어떤 소리를 내줄지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능하다고 말한다면 믿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정 침압 수치를 알면 그 카트리지가 어떤 소리를 내줄지 어느 정도 추측이 가능하다.
지금부터 그것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침압과 관련해 유심히 보아야 할 항목이 바로 컴플라이언스(compliance)라는 항목이다. 정의는 캔틸레버 끝을 10-6 다인(dyne)이라는 미약한 힘으로 밀었을 때 움직인 거리를 나타낸 것으로, 단위는 보통 cm/dyn이나 µm/mN이다. 정의는 다시 읽어봐도 무슨 뜻인지 감이 안 잡힐 것이다. 실제로 아날로그 꽤나 했다는 마니아도 컴플라이언스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쉽게 설명하면 캔틸레버가 얼마나 부드럽게 움직이느냐를 나타내는 수치다. 보통 수치가 10~20 정도인데 수치가 낮을수록 딱딱해서 덜 움직인 것이고 수치가 클수록 부드러워서 캔틸레버 끝이 많이 움직인 것이다.
컴플라이언스 개념도
그림처럼 같은 크기의 창포 묵과 지우개에 이쑤시개를 같은 깊이로 꽂아놓았다고 상상해보자. 창포 묵에 꽂은 이쑤시개는 옆으로 살짝만 밀어도 쉽게 밀린다. 같은 힘으로 지우개에 꼽힌 이쑤시개를 민다면 조금만 밀릴 것이다. 창포 묵처럼 부드러운 재질에 꽂은 이쑤시개는 작은 힘으로 밀어도 이쑤시개 끝이 많이 움직인다. 이런 경우를 컴플라이언스가 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생고무 지우개에 꽂은 이쑤시개는 같은 힘으로 밀어도 상대적으로 이쑤시개 끝은 조금만 움직인다. 이런 경우를 컴플라이언스가 작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컴플라이언스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을 것이다.
컴플라이언스는 침압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유를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규정 침압이 1.5g 정도로 가벼운 카트리지는 컴플라이언스 값이 크다. 침압도 캔틸레버에 가해지는 힘인데 1.5g이라는 미약한 힘으로도 캔틸레버가 충분히 움직여서 제자리를 잡는다. 창포 묵에 꽂힌 이쑤시개 끝에 잉크를 묻히고 종이에 글씨를 쓴다고 생각해보자. 창포 묵을 잡은 손에 힘을 잔뜩 주면 이쑤시개가 눕혀져서 글씨가 제대로 써지지 않을 것이다. 부드러운 힘으로 가볍게 써야 글씨를 제대로 잘 쓸 수 있다. 이처럼 컴플라이언스가 큰 카트리지는 침압이 가벼울 수밖에 없다.
반대로 규정 침압이 3g이상으로 무거운 카트리지는 대부분 컴플라이언스 값이 작다. 가벼운 침압으로는 캔틸레버가 조금 밖에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침압이 충분히 무거워야 한다. 이번에는 지우개에 꽂아놓은 이쑤시개로 글씨를 쓴다고 생각해 보자. 창포 묵보다 힘을 조금 더 주어야 글씨가 잘 써질 것이다. 이처럼 컴플라이언스가 작은 카트리지는 상대적으로 침압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 정리하면 컴플라이언스가 큰 카트리지는 작은 힘으로도 캔틸레버가 잘 움직이기 때문에 침압이 가볍다. 컴플라이언스가 작은 카트리지는 작은 힘으로는 캔틸레버가 별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침압이 충분히 무거워야 한다.
여기서 잠깐 극단적으로 컴플라이언스가 작은 카트리지에 대해 살펴보자. 오토폰의 초기 모노 카트리지와 데카와 이케다(Ikeda)의 카트리지가 그런 경우로, 코일에 직접 다이아몬드 바늘을 접합한 방식이다. 캔틸레버 없이 코일에 직접 바늘이 결합되어 있으니 컴플라이언스 수치가 극도로 작을 수밖에 없다. 이런 카트리지를 앞서 컴플라이언스를 설명한 것으로 비유를 들어 이해해 보자. 이런 직립형은 주먹을 쥔 상태에서 새끼손가락 쪽에서 엄지 쪽으로 이쑤시개를 깊게 끼워 넣은 상태로 글씨를 쓰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쑤시개와 손 사이에는 지우개나 창포 묵 같은 완충재가 없다.
주먹 쥔 손에 끼워진 이쑤시개로 글씨를 쓰려면 팔 전체가 움직여야 한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이런 직립형 카트리지는 톤암의 특성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짐작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팔 전체를 움직여야 글씨를 쓸 수 있듯 이런 직립형 카트리지는 유효질량이 충분히 무거운 하이매스 톤암에 결합되어야 제소리를 내준다. 그래서 데카의 카트리지는 전용 톤암에 장착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데카의 후기형 카트리지는 일반 톤암에도 장착이 가능하지만 로 매스 톤암에 연결하면 괴상망측한 소리가 날 뿐이다.1) 전용 톤암에 장착한 데카 카트리지의 소리는 심지가 굳고 상당히 독특한 매력을 발산한다. 데카 음반을 좋아하는 마니아라면 도전해볼만 하다.
이제 컴플라이언스가 큰 카트리지는 캔틸레버가 작은 힘으로도 쉽고 부드럽게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컴플라이언스가 작은 카트리지는 상대적으로 큰 힘을 주어야 캔틸레버가 움직인다는 것 역시 알게 되었다. 이런 카트리지의 특징은 음질로 바로 연결된다. 컴플라이언스가 커서 권장 침압이 가벼운 카트리지는 중음과 고음에서 섬세한 소리를 내준다. 왜 그런지는 조금 생각해보면 이해가 간다. 작은 힘에도 아주 예민하게 캔틸레버가 움직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미세한 소릿골을 추적하는 데 유리하다. 그래서 고음 재생능력이 좋고 섬세한 소리를 내는 편이다. 반대로 컴플라이언스가 작고 침압이 무거운 카트리지는 작은 힘에는 별로 반응하지 않기 때문에 고음을 아주 섬세하게 재생하기에 불리하다. 하지만 진폭이 상대적으로 큰 저음 신호를 재생하는 데에는 유리해서 묵직하고 깊은 저음을 내준다.
사람도 가볍고 밝은 성격이 있는가 하면 말수가 적고 진중한 성격이 있듯 카트리지도 컴플라이언스에 따라서 내주는 소리 경향이 다르다. 요약하면 컴플라이언스가 크고 침압이 가벼운 카트리지는 섬세하면서 밝고 화사한 소리를 내줄 가능성이 크다. 컴플라이언스가 작고 침압이 무거운 카트리지는 묵직하고 두터운 느낌의 소리를 내준다. 카트리지의 컴플라이언스나 침압으로 음질의 대강을 알 수가 있다.
바늘에 대하여
카트리지의 발전 원리에서 시작해서 침압과 컴플라이언스의 관계까지 살펴보았다. 카트리지에 대한 설명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 있다. 아날로그를 해본 사람이라면 무엇인지 짐작이 될 것이다. 레코드에 직접 접촉해서 소릿골을 추적하는 스타일러스(Stylus), 즉 바늘에 대한 설명이다. 아날로그 시스템에서 소리를 최초로 만들어내는 바늘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카트리지를 아무리 잘 설계해도 바늘이 소릿골을 재대로 추적할 수 없다면 도로아미타불이 된다. 한마디로 바늘 없는 카트리지는 ‘팥 없는 찐빵’이고 ‘오아시스 없는 사막’인 셈이다.
원형과 타원형
레코드의 소릿골은 커팅 스타일러스라는 바늘로 파내서 만든다.1) 시골에서 논밭을 갈아엎을 때 쓰는 쟁기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소릿골을 보통의 원추형(Conical) 바늘로 추적하게 되면 원래 새겨진 신호와 다른 신호를 만들어내게 된다. 그림을 보면 왜곡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단면이 원형인 원추형 바늘이 채용된 구형 카트리지의 소리를 듣고 ‘묵직하고 두툼해서 좋다’고 느끼는 아날로그 애호가들이 많다. 원추형 바늘이 내는 묵직하고 두툼한 소리는 레코드에 새겨진 원래의 소리가 아니라 원형단면의 바늘이 만들어내는 왜곡인 셈이다. 왜곡된 소리가 좋아서 즐기는 것이라면 문제가 없지만 원래 레코드에 새겨진 소리가 그런 소리였다고 단정하는 것은 곤란하다.
레코드 커터와 원형, 타원형 바늘에 의한 왜곡(수평트래킹 에러)
원추형 바늘이 원 신호를 왜곡해서 재생하는 것을 개선하기 위해 만든 바늘이 타원형(Elliptical) 바늘이다. 바늘을 타원형으로 만들면 원형단면보다 커팅 스타일러스에 가깝게 소릿골을 추적하게 된다. 타원형에서 좀 더 진보한 것이 초 타원(Hyper Elliptical)형으로 좌우로 좀 더 가늘고 날렵하게 만든 것이다. 여기에서 더 진보한 것이 MR(Micro Ridge) 바늘이다. 그림에서 보다시피 타원형에서 양 옆으로 날개(Ridge)를 달아 좌우 접촉 편차를 더욱 줄였다. 고가의 MC 카트리지에 채용하는 바늘은 시바타(Shibata)나 라인 컨텍트(Line Contact)가 많다. 이런 바늘은 커팅 스타일러스에 조금 더 근접하게 제작해서 레코드에 처음 새겨진 소릿골의 신호를 좀 더 충실하게 재생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다.
바늘에 대한 설명을 자세하게 하는 이유는 바늘 형태에 따라서 소리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앞서 얘기한 대로 원추형 바늘은 두툼하고 묵직한 소리를 내준다. 원추형 바늘은 섬세하게 소릿골을 추적하지 못하기 때문에 음색의 뉘앙스 표현이나 해상력은 떨어지는 편이다. 타원형은 원추형보다 두툼하고 묵직한 느낌이 줄어들면서 해상력이 조금 더 증가한다. 여기서 초 타원이나 MR 바늘로 가면 두텁고 묵직한 느낌이 더 줄어들면서 아주 섬세하고 디테일 한 음으로 바뀌게 된다. 이처럼 바늘의 형태로 음질의 대강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바늘 끝이 다 닳거나 없어져서 국내에서 수리하는 경우가 있다. D전자의 경우 3년 전 까지는 타원형 다이아몬드 바늘 재고가 있어 빈티지 카트리지는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리팁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현재는 타원형 다이아몬드 바늘 재고가 소진되었는지 원추형 바늘로 리팁이 이루어지고 있다. 바늘 전체가 다이아몬드가 아닌 바늘 끝에만 다이아몬드를 붙인 접합형 바늘은 몇 만원짜리 싸구려 카트리지에 달려있는 것이다. 고가의 MC카트리지라 하더라도 이런 바늘로 리팁해서는 도저히 원래의 소리를 낼 수가 없다.
댐퍼나 코일 단선 같은 경우는 국내에서 저렴한 값에 훌륭하게 수리가 되어 추천할 만 하다. 바늘을 갈아 끼우는 리팁 서비스는 좋은 다이아몬드 바늘이 확보되지 않고는 원래 소리를 낼 수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현재 음질을 확실하게 보장 받을 수 있는 리팁 서비스는 비싼 돈을 들여 해외의 본사에 보내는 방법 외에는 없다. 차선책으로는 슈어의 고급 바늘을 구해서 다이아몬드 바늘을 MC카트리지에 이식해 달라고 의뢰하는 것이 그나마 추천할만한 방법이다. 제값을 충분히 받고 제대로 된 다이아몬드 바늘로 이식해주는 리팁 서비스가 국내에서도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침압과 컴플라이언스, 바늘 형태 외에 재생 주파수 대역(Frequency Response) 표시가 있는데, 이 주파수 대역이 넓을수록 좋지만 대역이 넓다고 꼭 좋은 소리를 들려주는 것은 아니다. 다음으로 채널 분리도(Channel Separation)와 채널 밸런스(Channel Balance)가 있다. 분리도는 높을수록 좋고 밸런스는 낮은 수치일수록 좋다. 이 스펙만으로 카트리지의 우열을 가늠하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이 수치들은 카트리지의 성능을 가늠하는 스펙이지만 어디까지나 참고사항일 뿐이다.
카트리지와 톤암의 궁합
카트리지는 톤암에 장착되어야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카트리지 혼자서는 아무런 기능도 하지 못한다. 톤암도 카트리지가 없다면 존재이유가 없다. 이렇게 카트리지와 톤암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또한 카트리지의 컴플라이언스는 침압과 반비례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카트리지와 톤암이 결합되어 형성하는 공진에도 관계가 있다. 아날로그 경험이 조금 있는 사람이라면 카트리지가 레코드를 주행하면서 ‘부르르’ 떠는 현상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현상은 톤암과 카트리지가 특정한 주파수로 심하게 떠는 공진을 하는 것이다. 신기한 것은 이런 공진이 일어나고 있어도 우리 귀에는 정상적인 소리로 들린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부르르 떠는 공진 주파수가 인간이 들을 수 없는 20Hz 이하의 주파수이기 때문이다. 이런 20Hz 이하의 불필요한 주파수를 걸러주는 장치가 바로 서브소닉 필터다. 재미있는 사실은 카트리지의 컴플라이언스와 톤암의 유효질량(Effective Mass)을 안다면 몇 Hz에서 공진이 일어날지 미리 예측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1)
하이 매스 톤암과 로 매스 톤암
카트리지의 컴플라이언스와 톤암의 유효질량 수치를 도표에 적용해서 공진 주파수를 알아 낼 수 있지만 입문자에게는 다소 어려운 내용이다. 그래서 간단하게 카트리지와 톤암의 궁합이 맞는지 확인하는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톤암은 무거운 톤암과 가벼운 톤암으로 나눌 수 있다. 무거운 톤암은 암 파이프도 굵고 전체적으로 크고 무겁게 만든 암이다. 헤드셸 손잡이를 잡고 움직여 보면 손에 묵직한 느낌이 든다. 이때 느껴지는 묵직한 정도를 표시한 것이 유효질량이다. 이렇게 묵직한 느낌이 드는 톤암을 보통 하이 매스(High Mass) 톤암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분명히 해둘 것이 있다. 톤암 전체의 무게가 무겁다고 유효질량이 무거운 것은 아니다. 다시 한번 얘기하지만 유효질량이란 헤드셸 손잡이를 잡고 움직였을 때 느껴지는 무게감이지 톤암 전체의 무게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이 매스 톤암은 침압이 무거운 카트리지와 잘 어울린다. 서로 음질의 장점이 상승작용해서 좋은 궁합을 보여준다. 무거운 톤암이 묵직한 음을 내주는데 침압이 무거운 카트리지도 차분하고 안정감 있는 음을 내주기 때문에 둘의 특성이 만나면 서로의 장점이 더욱 극대화된다. 이런 조합은 살랑거리고 섬세한 고음을 내주지는 못하지만 무겁고 깊은 저음을 중심으로 탄탄한 음을 내준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침압이 무거운 중(重) 침압 카트리지는 자체 무게도 무거운 편이다. 카트리지가 톤암에 장착되면 카트리지 무게도 결과적으로 톤암에 더해지기 때문에 톤암의 유효질량을 무겁게 하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중침압 카트리지는 무게를 무겁게 제작하는 것이다.
무거운 느낌의 하이 매스 톤암에는 침압이 가벼운 카트리지도 무난하게 장착할 수 있다. 물론 앞서의 경우처럼 톤암과 카트리지의 장점이 만나서 음질이 더 좋아지는 시너지 효과를 내지는 못한다. 서로의 장점과 단점이 적당히 타협된 소리를 내기 때문에 적극 추천할 수 있는 조합은 아니다. 하지만 ‘부르르’ 떠는 공진 같은 물리적인 문제는 일으키지는 않는다. 하이매스 톤암은 경(輕) 침압이나 중 침압 카트리지 모두 장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대부분 가격이 비싼 편이다.
이제 보기에도 가벼워 보이는 톤암에 대해 알아보자. 톤암 파이프도 가늘고 전체 톤암 무게도 가벼워 보인다. 헤드셸 손잡이를 잡고 좌우로 움직여 보면 아주 가벼운 느낌이 든다. 이런 톤암은 유효질량이 작은 톤암으로 보통 로 매스(Low Mass) 톤암이라고 부른다. 유효질량이 작은 로 매스 톤암은 보통 침압이 가벼운 경 침압 카트리지와 잘 어울린다. 여기서도 역시 예상대로 경 침압 카트리지는 자체 무게도 가볍다. 카트리지가 톤암에 장착되면 카트리지 무게가 톤암에 더해지는데 전체 질량이 조금이라도 덜 무거워지게 하기 위해서다. 그래야 카트리지가 장착된 후에도 톤암 전체의 유효질량이 무거워지지 않아서 섬세하게 레코드 골을 추적할 수 있다.
로 매스 톤암에 침압이 가벼운 카트리지를 결합하면 서로의 장점이 상승작용해서 음질이 더 좋아진다. 로 매스 톤암이 섬세하게 소릿골을 추적하기에 유리한데 경 침압 카트리지도 역시 컴플라이언스가 커서 섬세하게 소릿골을 따라갈 수 있다. 이 둘의 결합은 저음을 묵직하게 내주지는 못하지만 고음에서는 장점이 부각되면서 아주 섬세한 소리를 내준다. 그렇다면 로 매스 톤암에 중 침압 카트리지를 연결하면 어떻게 될까? 이런 조합은 물리적으로 공진을 일으킬 수 있고 음질도 좋지 않다. 예를 들자면 듀얼 1229 톤암에 슈어M3D(N3D바늘)같은 중 침압 카트리지를 단 경우다.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경우이기 때문에 피해야 하는 조합이다.
톤암의 유효질량 조절
이처럼 톤암은 저마다 유효질량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유효질량이 가벼운 톤암에는 침압이 가벼운 카트리지가 어울리고 유효질량이 무거운 톤암에는 침압이 무거운 카트리지가 어울린다. 톤암이 가지는 특성인 유효질량은 톤암을 제작할 때 이미 정해진다. 만약 유효질량을 가볍게 또는 무겁게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면 카트리지 선택이 훨씬 자유로워질 것이다. 이런 점에 착안해 실제로 톤암의 유효질량을 조절할 수 있게 만들기도 한다. 방법은 대략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 번째는 실리콘 오일 댐퍼를 톤암에 채용하는 것이다. 오일댐퍼에는 실리콘 오일을 넣어서 톤암이 움직일 때 실리콘 오일을 자연스럽게 밀치도록 설계했다. 이렇게 하면 톤암이 움직일때 실리콘 오일을 헤치고 지나가야 하기 때문에 힘이 더 들어간다. 쉽게 말해 실리콘 오일댐퍼를 채용하면 유효질량이 증가하는 것이다. 댐퍼에 채워 넣는 실리콘 오일의 양을 조절해서 톤암의 움직임을 덜 무겁게도, 더 무겁게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침압이 가벼운 카트리지를 장착 할 때는 실리콘 오일을 안 넣거나 조금만 넣어서 유효질량이 가볍게 한다. 침압이 무거운 카트리지를 장착 할 때는 실리콘 오일을 충분히 넣어서 유효질량이 최대한 무겁게 한다.
두번째는 자력을 이용하여 톤암의 유효질량을 조절하는 것이다. 이 방법을 사용한 대표적인 톤암이 데논의 DP 시리즈다. 사진을 보면 Q-Damping라는 글씨가 보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톤암의 유효질량을 늘였다 줄였다 하는 장치다. 톤암에 실리콘 오일 같은 유체의 저항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고 자력을 이용해 톤암을 묵직하게 만들거나 가볍게 만든다. 침압이 2g이 넘는 중 침압 카트리지를 써야 한다면 이 노브를 돌려서 Q값을 높이면 된다. 반대로 경 침압 카트리지를 쓰고 싶다면 Q값을 낮추면 된다.
톤암이 카트리지 바늘에 침압을 주는 방식
톤암에 대한 얘기가 나온 김에 조금만 더 공부하고 넘어가자. 카트리지의 바늘은 톤암에 의해서 레코드에 일정한 힘으로 접촉되어야 소릿골을 추적할 수 있다. 바늘이 레코드에 일정하게 가하는 힘이 바로 침압이다. 톤암은 카트리지 바늘이 레코드에 접촉해서 소릿골을 추적할 수 있도록 침압을 줄 수 있게 설계된다. 톤암이 카트리지 바늘에 침압을 주는 방식은 대략 두 가지다. 무게, 즉 중력의 힘으로 침압을 주는 스태틱 밸런스(Static Balance) 방식과 스프링의 장력을 이용해 강제로 침압을 주는 다이내믹 밸런스(Dynamic Balance) 방식이다. 예를 들어 2g의 침압을 주었다고 하면 두 방식 모두 침압계로 재면 동일하게 2g의 수치로 나타난다.
그러면 같은 2g인데 굳이 중력의 힘으로 주는 방식과 스프링의 장력으로 주는 방식으로 나눠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소릿골을 추적하는 능력이 다르고 그에 따라 소리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보통 다이내믹 밸런스 방식이 소릿골을 좀 더 효과적으로 추적한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저역 재생에서는 다이내믹 밸런스 방식의 톤암이 우수한 효과를 발휘한다. 같은 조건이라면 다이내믹 밸런스 방식의 톤암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신품으로 판매되는 입문용 턴테이블의 톤암은 레가의 제품을 제외하고는 다이내믹 밸런스 방식이 없고 빈티지 턴테이블에서 간간이 보일 뿐이다. 다이내믹 밸런스 톤암이 만들기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다이내믹 밸런스 톤암이 제작이 어렵지만 소리는 더 좋다.
톤암의 침압 주는 방식
입문용은 로 매스 톤암 신제품이 적당하다
이 책의 앞부분에서 입문용으로 소개한 턴테이블의 톤암은 대부분 로 매스 톤암이다. 엠파이어 298, 398, 598에 장착된 톤암 정도가 하이 매스 톤암이고 파이오니아 PL-41, 듀얼 1019 정도가 중간인 미드 매스(Mid Mass) 톤암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입문용으로는 침압이 2g을 넘지 않는 하이 컴플라이언스의 경 침압 카트리지를 선택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굳이 중 침압인 오토폰의 SPU 시리즈나 슈어의 M3D나 M7D 또는 데논 DL-103같은 중 침압 카트리지를 사용하고 싶다면 엠파이어 298이나 598 또는 파이오니아 PL-41 같은 턴테이블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중 침압 카트리지만이 낼 수 있는 중후하고 묵직한 음도 나름의 매력은 있지만 입문자가 즐기기에는 다소 제약이 따른다. 중 침압 카트리지는 톤암을 무겁고 튼튼한 하이 매스 톤암으로 업그레이드한 후에 시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입문자라면 침압이 2g 이내인 경 침압에 하이 컴플라이언스 카트리지를 선택해서 즐기는 것이 좋다. 처음부터 MC 방식에 중 침압 카트리지가 아니면 안 된다는 식으로 아날로그에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입문자라면 침압이 2g 이내인 경 침압에 하이 컴플라이언스 카트리지를 선택해서 즐기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카트리지를 신품으로 구입할 것인지 중고를 살 것인지 정하는 문제가 남았다. 신품은 가격이 비싸지만 품질을 믿을 수 있다. 중고는 가격은 싸지만 상태를 확인하기가 어렵다. 카트리지 바늘은 수명이 있는 것이라 중고라도 상태에 따라 가격차가 심하다. 중고 구입 시에는 판매자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고 제품의 상태에 대해 꼼꼼히 체크해야 한다. 직거래가 가능하다면 간단한 돋보기만으로도 바늘 상태를 대충 파악할 수 있다. 입문자라면 가능한 한 신품으로 구입하는 것이 좋다. 어쩔 수 없이 중고로 구해야 한다면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는 신중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Tip
톤암 파이프를 테이프나 실로 칭칭 감은 경우가 있는데, 이유는?
톤암은 카트리지의 진동을 다 받아줘야 해서 진동에 강한 구조를 갖춰야 한다. 톤암 파이프를 테이프나 실로 감으면 진동을 좀더 효과적으로 감쇄해서 소리가 좀더 차분해지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고급 턴테이블은 톤암 리프트를 내리면 톤암이 레코드에 천천히 내려오는데?
톤암이 빠르게 레코드에 떨어지면 카트리지의 바늘과 캔틸레버, 댐퍼 등에 강한 충격이 가해져 손상될 수 있다. 따라서 고급 톤암은 카트리지의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천천히 내려오도록 설계한다.
컴플라이언스와 유효질량으로 공진 주파수 알아내기
카트리지의 컴플라이언스와 톤암의 유효질량 수치를 통해 예상 공진 주파수를 알아내는 방법을 알아보자. 우선 카트리지의 컴플라이언스는 카트리지 구매시 따라오는 매뉴얼에 표시되어 있어서 쉽게 알 수 있다. 인터넷을 통해 그 값을 확인할 수도 있다. 문제는 톤암의 유효질량을 어떻게 알아내느냐 하는 것이다. 보통 입문용 턴테이블에 번들로 달려 있는 톤암은 유효질량을 따로 밝히지 않는다. vinylengine.com 등의 사이트에서 구축해놓은 Tonearm Database에서 간혹 그 값을 적어놓은 자료를 만나기도 한다. 좀 더 고급 톤암의 경우라면 위의 사이트에서 유효질량 값을 확인할 수 있다.
카트리지의 컴플라이언스와 톤암의 유효질량을 알았다면 아래의 표를 통해 공진 주파수를 알아낼 수 있다. 보는 방법은 표의 좌측에서 컴플라이언스 수치를 찾고 표의 아래에서 톤암의 유효질량 수치를 찾아서 두 항목이 만나는 지점을 확인한다. 두 수치가 만나는 표 안의 지점은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그어진 많은 사선 사이에 있게 된다. 이 사선의 경계를 벗어나지 않게 사선을 따라서 비스듬하게 위나 아래로 이동을 한다. 그러다 보면 왼쪽 아래서 오른쪽 위로 그어진 굵은 사선과 만나게 된다. 이 굵은 사선과 만나는 지점에 써 있는 숫자가 예상 공진 주파수다. 이상적인 카트리지와 톤암의 결합은 공진 주파수를 나타내는 숫자가 8~12Hz 사이에 들어오는 경우이다.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다. 카트리지의 컴플라이언스가 20이고 톤암의 유효질량이 10이라면 표의 ●표시가 만나는 지점이다. 여기서 우 상방에서 좌 하방으로 45도 기울어진 선을 따라 내려가면 직각으로 교차하는 굵은 선과 만나게 된다. 그 굵은 선과 만나는 지점에 써 있는 숫자가 공진 주파수다. 이 경우에는 11과 12사이에서 만나는 것이니 공진 주파수는 11Hz와 12Hz 사이에 있게 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최윤욱의 아날로그 오디오 가이드, 2010. 5. 4., 최윤욱)
'Audio' 카테고리의 다른 글
레코드 관리와 액세서리 (4) | 2024.03.14 |
---|---|
카트리지 살펴보기 (5) | 2024.03.14 |
모노 레코드를 즐기기 위한 Graham Slee Jazz Club (1) | 2024.03.14 |
포노앰프 왜 필요한가? (3) | 2024.03.14 |
아날로그의 다섯 번째 맛 - 하나 Umami Blue (0) | 2024.03.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