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턴테이블 입문을 위한 마스터피스 - 레가 Planar 2

by onekey 2024. 3. 13.

턴테이블 입문을 위한 마스터피스

레가 Planar 2

 

 

양극화

CD의 시대가 하락세로 접어들면서 파일 음원 재생이 가속화되었다. 그리고 이후엔 아예 음원을 저장해서 소유하는 시대가 아니라 온라인에서 스트리밍하는, 이른바 공유의 시대가 되었다. 초창기 음악을 온라인에서 스트리밍하는 것은 사실 하이파이 오디오 마니아에겐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애초에 스트리밍 방식 자체가 문제가 되었고 음원 같은 경우 마스터 음원은 고사하고 MP3, AAC 등 손실 압축 포맷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시대가 변화하면서 IT 기술을 발전과 서버의 증설 등 자본과 기술의 협력으로 이젠 16비트는 물론 24비트 음원도 대중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여전히 CD 정도 음원을 고음질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대중들이 즐기는 음원은 사실 음질 면에서 CD 시절보다 못한 시대를 살고 있다. 한편에선 LP가 새로운 화두로 치고 올라왔고 CD에 왕좌를 물려준 80년대 이후 현재 LP는 제 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에 발맞추어 기존 턴테이블 메이커는 물론이며 시류에 편승한 신생 아날로그 메이커가 등장했다. 일부에선 킥스타터닷컴 같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참신한 아이디어 턴테이블이 쏟아졌다. 이전엔 들어보지 못했던 신생 메이커가 마치 완구 같은 설계와 디자인의 턴테이블도 내놓았다. 가격은 저렴해 대중에게 어필했지만 제대로 만든 턴테이블은 많지 않았고 심지어 엘피를 손상시킬만한 여지가 많아 간만에 찾아온 LP 전성시대를 위태롭게 만들기도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초고가 하이엔드 턴테이블이 활개를 치고 있다. 몇 개월치 월급을 모아도 사기 힘든 턴테이블이 부지기수며 온간 휘황찬란한 장식과 바디가 원가의 대부분을 차지하기도 한다. 물론 좋은 성능을 갖추고 있다면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에겐 어필할 수 있겠지만 때론 너무 과하다 싶을 정도의 설계를 보이는 곳도 있다. 여느 분야도 그렇지만 턴테이블이라는 작은 분야도 양극화의 덫에 걸려 너 폭넓은 대중화를 눈앞에 두고 고꾸라지지 않을까 염려된다.

 

 

레가 턴테이블

레가 또한 이런 고가 턴테이블 대열에 합류하고 싶은 걸까? 레가의 로이 간디 대표는 지난 2월 영국 현지에서 개최되는 최대 오디오 박람회 ‘브리스톨 하이파이 쇼’에 Naia 턴테이블을 소개하며 올 해 말 출시할 것을 예고했다. Naia 턴테이블은 카본을 사용한 플린스에 호하셀 폼 코어를 적용했으며 세라믹 브레이스를 채용하는 등 베이스 설계, 소재부터 하위 모델과 차별화된 레가의 플래그십이다. 이 외에 플래그십 RB 티타늄 톤암 및 아펠리온 2 MC 카트리지를 채용하는 등 레가가 이제까지 연구, 발전시켜온 모든 기술과 노하우, 역량이 총 집결된 모델이 바로 Naia다. 가격은 영국 기준 12,000 파운드. 현재 환율로 2천만 원대로 레가 역사상 초유의 하이엔드 턴테이블 출현인 셈이다.

 

하지만 놀라울 건 하나도 없다. 지금까지 약 20여 년간 지켜보면서 직접 여러 레가 턴테이블을 경험해온 필자의 생각에 레가는 과거부터 이런 하이엔드 턴테이블을 만들었다. 가격은 하이엔드 턴테이블이 아니었지만 P9부터 RP10, Planar10 등 모두 성능은 하이엔드 턴테이블이었다. 낮은 질량을 추구하는 그들의 설계 철학 덕분에 독일, 미국 등의 육중하고 화려한 외관을 갖추지 못했고 가격도 상당히 합리적인 선에서 책정했기에 하이엔드 턴테이블로 분류되지 않았을 뿐이다.

 

 

Planar 2

그렇다면 실제 레가가 만드는 엔트리 급 턴테이블은 어떤 설계와 성능을 보여줄까? 이번엔 Planar 2를 통해 그 면면을 알아보자. 참고로 이번 리뷰한 턴테이블은 수 년 전에 이미 만났던 Planar 2지만 당시와 달리 조금 더 개선된 버전이다. 일단 안티스케이팅 기능이 이전엔 Planar 1처럼 오토매틱 형태였다면 이번 제품은 업그레이드된 제품으로 수동으로 조정이 가능하다. 이는 2020년 가을 생산 분부터 적용된 것이라고 한다.

 

 

제품을 박스에서 꺼내면 나무 무늬가 입혀진 월넛 색상의 플린스, 즉 베이스가 눈에 들어온다. 은은하고 차분한 분위기 위에 플래터는 Planar 1이 페놀 수지였던 것과 달리 유리 소재를 사용했다. 레가에선 ‘옵티화이트’라고 하는 10mm 두께 유리로서 매우 정교하게 깎은 플래터다. 그 옆으론 톤암이 보인다. 바로 RB220 톤암으로 스태틱(static) 밸런스 톤암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여기 투입되는 베어링은 특허 출원 중인 베어링을 매우 가볍고 단단한 하우징 안에 수납되어 있다. 단, 다른 레가와 마찬가지로 아지무스나 VTA 등의 조절은 불가능하다.

 

 

한편 구동계 부문 설계로 넘어가면 기본적으로 모터가 허브 베어링, 즉 내부 플래터를 회전시켜 외부 플래터를 회전시키는 방식이다. 내부 스핀들 베어링 또한 특허 받은 고정밀 황동 베어링을 사용한다. 약 11mm 구경으로 베어링 자체의 응력을 최소화하는 한편 에너지를 저장, 전달하지 않도록 설계했다. 이런 부분 또한 엔트리급에선 구경하기 힘든 공차와 과학적 설계가 돋보인다. 고가 턴터이블 중에서도 플래터 하단에 스핀들 및 베어링을 장착해놓고 플래터를 벨트가 직접 회전시키는 경우가 있는데 레가의 경우 에너지의 저장 및 전이 현상을 최소화하려는 철학을 투사하고 있다.

 

 

 

모터는 24V 저노이즈, 저진동 모터를 사용하고 있으며 본체 안에 내장되어 있다. 이 모터까지 분리하면 좋겠지만 레가는 상위 모델로 가도 별도로 분리하지는 않는 설계를 보인다. 그럼 이모터는 내부 플래터와 풀리를 통해 연결되어 회전시키는데 이 때 연결 방식은 다름 아닌 벨트다. 이 벨트 또한 이전의 Planar 2와 구분된다. 정확히는 2021년 3월 이후 생산 분부터 EBLT 드라이브 벨트를 사용했다고 한다. 이 벨트의 경우 기존 네오프렌 벨트에 비해 측정 수치부터 확연히 상승된 모습을 보여준다. 약 3여년 동안 연구, 개발해 적용한 것인데 어떤 돌기나 두께 차이 없이 평탄한 벨트로서 균등한 탄성 계수까지 완성했다. 이 덕분엔 와우&플러터가 36%까지 감소했다는 것이 레가의 설명이다.

 

셋업

레가 설계 철학의 기반이자 핵심이 되는 것은 ‘질량이 에너지를 흡수하고 에너지가 손실되면 곧 음악에도 손실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여타 하이엔드 턴테이블들이 높은 중량에 고강도 설계를 고집하는 것과 달리 레가는 고강도를 중요시하지만 대신 최대한 가볍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때문에 플래터도 얇고 플린스 또한 심플한 디자인에 얇은 편이다. 이런 설계 컨셉은 상위 플래그십으로 간다고 해도 전혀 바뀌지 않는다.

 

레가 Planar 2엔 기본적으로 레가 카본 MM 카트리지가 기본 장착되어 나온다. 그저 사용자가 할 일은 박스에서 턴테이블을 꺼내 조립한 후 전체 수평을 맞추고 카트리지 칩압을 조정하는 것뿐이다. 뭔가 더 하려고 해도 조정할 포인트가 거의 없다. 한편 이번 테스트엔 골드노트 PH-10 포노앰프 그리고 오라 노트 프리미어 앰프, 리바이벌 오디오 Atalante 3 스피커를 사용했다.

 

 

 

청음

 

유재하의 ‘가리워진 길’을 재생하자 풋풋한 보컬과 악기들의 잔향이 포근하게 방 안을 메운다. 에너지를 저장하거나 또는 잔향을 삭제해 건조한 소리가 아니라 그저 엘피의 소릿골에 있는 여러 정보를 자연스럽게 재생한다. 마치 응축한 소리가 아니라 소리를 토하듯 모두 내뱉는다. 어떤 조탁이나 착색이 없이 어렸을 때 듣던 그 음악에 대한 이미지를 그대로 소환해준다. 이어 ‘지난 날’에서도 쥐어짜며 일부러 힘을 싣기 보단 그저 순수하고 푸근한 가요 녹음의 질감을 잘 살려낸다. 어떤 음악을 들어도 중역에 심지가 있고 잔향이 풍부해 온도감이 좋다.

 

 

스테판 피어링의 ‘Secret of Climbing’ 앨범을 꺼냈다. 이 엘피는 런던 에어 스튜디오에서 레이 스태프가 커팅했고 독일 팔라스에서 프레싱을 진행한 앨범. ‘Johnny’s layment’를 들어보면 보컬이 부드럽고 포커싱은 기존에 듣던 것보다 약간 크게 잡힌다. 특히 중역대에 밸런스가 잡혀 있고 그 순도, 질감 표현이 좋기 때문이다. 진동을 제거하려는 레가만의 독자적인 설계는 어떤 음악도 부드럽고 풍푸한 질감으로 표현해준다. 단, 턴테이블은 그 플린스처럼 단단하고 평평한 곳에 설치하고 수평을 정확히 잡았을 때 그 성능을 한껏 뽐낸다.

 

 

조금 이르지만 비오는 날 듣는 보사노바는 감칠 맛 난다. 게츠/질베르토의 ‘The girl from Ipanema’를 들어보면 산뜻한 기타 반주 위에 보컬이 저마다의 보컬 음색이 포근하면서도 억양이 뚜렷하다. 마치 꿈결 속에서 파도가 잔잔히 밀려오는 바닷가를 거니는 느낌. 상쾌한 음악이지만 역시 온도감이 있는 편이며 테너 색소폰은 마치 물에 젖은 듯 촉촉하다. 바싹 마른 건조한 소리가 아니라 악기들이 자연스럽게 섞여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소리. 매우 음악적이다.

 

 

좀 더 강력한 록 음악에서도 레가의 올라운더로서의 성능을 가늠할 수 있었다. 표면을 말끔하게 제단하고 조탁한 사운드는 아니며 엄청난 쾌감보다 도톰한 중, 저역에 리듬감이 적절히 흥을 돋운다. 예를 들어 메탈리카의 ‘Enter sandman’을 들어보면 드럼이 레가에선 라스의 드럼 사운드가 32년 전 듣던 그 소리를 떠올린다. 하이엔드 턴테이블로 들을 땐 마치 약간 데이브 롬바르도 같던 드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여타 입문기처럼 들뜨거나 가는 소리를 재생하지 않는데 이는 카트리지 영향도 꽤 크다.

 

 

총평

로이 간디는 말한다. ‘우리의 철학은 가치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Naiad 출시는 우리에게 큰 발걸음이었습니다. 무언가 설계할 때 가장 먼저 자문하는 것은 과연 비용이 얼마나 소요될 것인가?’라고. 훨씬 비싼 제품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되며 실제로 레가의 톤암을 가져가 장착해 훨씬 더 비싸게 판매하는 몇몇 브랜드를 볼 때 레가는 대중 지향적이며 양심적이다.

자사의 기술과 노하우를 활용해 충분히 값비싼 턴테이블을 만들 수 있는 역량을 갖춘 레가. 그래서 레가가 만든 엔트리 급 턴테이블은 같은 가격대 턴테이블과 비교 우위에 있을 수밖에 없다. Planar 2는 엔트리 급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성능의 턴테이블로서 안티스케이팅 및 EBLT 벨트 그리고 월넛 마감으로 재탄생한 마스터피스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

제품 사양

톤암 : RB220
카트리지 : 카본 MM
모터 : 24V 저 노이즈
플래터 : 옵티화이트 글라스
크기 (WxHxD) : 447 x 117 x 360 mm
무게 : 5.5 kg

제조사 : 레가 리서치 (UK)
공식 수입원 : 웅진음향 (www.wjsound.com)
공식 소비자 가격 : 1,080,000원

 

 

Written by 코난

코난 이장호는 하이파이 오디오를 평가하는 평론가다. <고음질 명반 가이드북 1,2> 등의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