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udio

입문기에서 만나는 드물고 값진 경험 - 레가 Planar1 Plus

by onekey 2024. 3. 13.

입문기에서 만나는 드물고 값진 경험

레가 Planar1 Plus

 

아날로그는 귀찮아?

 

어렸을 때 동네 레코드 숍은 참새 방앗간이었다. 하교길에 들르기도 하고 고등학교를 다닐땐 저녁을 최대한 빨리 해치운 후에 단골 레코드숍으로 향했다. 거의 뛰어가다시피 했던 적이 많았다. 당시만 해도 야간에 자율 아닌 자율 학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번 자율 학습이 시작되면 열시 이전에 학교에서 나올 수 없었기에 레코드숍으로 가는 발걸음은 즐거우면서 한편으로 간절했고 조마조마했다. 내가 기다리던 음반이 들어왔는지 혹은 카세트테잎에 녹음해 달라 맡긴 것이 다 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오아시스, 지구레코드 등 단 돈 몇 천 원 하던 엘피를 용돈을 털어 구입하곤 했고 값비싼 엘피를 녹음해서 듣던 시간은 지난한 수험 생활에서 숨통을 틀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간이었다.

 

최신 앨범이 언제부턴가 엘피로 출시되기 시작했다. 그 옛날 수험생 시절이 떠올랐다. 하지만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최근 생산되는 엘피를 제대로 즐기고 있을까? 예전에 엘피가 카세트 테잎 및 시디와 공존하던 시절이 있었다. 혼수용 오디오가 활황이었고 무척 다양한 포맷에 대응했다. 가장 대중적인 미니 콤포넌트만 해도 시디 플레이어 기능에 더해 튜너가 내장되어 있었으며 카세트 플레이어 기능도 빠지면 안 되는 필수 항목이었다. 또 하나는 바로 엘피 재생에 관한 부분이었는데 작은 사이즈의 미니 콤포넌트엔 턴테이블이 빠져 있었다. 하지만 필자가 사용하던 인켈 핌코’(?) 컴포넌트 오디오엔 적어도 포노단이 탑재되어 있어 턴테이블을 추가 구입해 엘피를 들을 수 있었다.

 

 

시디가 맹위를 떨치며 엘피를 음악 포맷의 권좌에서 밀어내기 이전까지 오디오도 그에 상응하면서 설계와 기능을 달리했다. 지금 네트워크 스트리밍이 시디를 대체했지만 여전히 시디플레이어가 가물에 콩나물 나듯 출시되는 것과 비슷하다. 시디플레이어를 내장하면서도 포노단 혹은 더 나아가 턴테이블이 오디오 세트 안에 포함되곤 했다.

 

그러나 요즘 들어서 포노단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마크 레빈슨, 스펙트랄, 크렐, 오디오 리서치 등 하이엔드 프리앰프들에서도 포노단이 빠진 지 오래 되었다. 내장 포노앰프의 성능이 프리앰프 성능을 평가하는 데 척도가 되던 시절도 있었지만 현재 몇몇 일본 제품들 외엔 내장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엘피를 통한 아날로그 사운드를 즐기는 데 있어 턴테이블, 카트리지 그리고 포노앰프는 필수다. 그러므로 요즘엔 이 모두를 구입해야만 한다. 그 중 가장 번거로운 게 포노앰프다. 적당한 가격대 입문기들이 입문용 턴테이블 가격에 육박하는 경우도 많고 디지털에 익숙한 사람에겐 인터페이스가 귀찮을 수 있다.

엘피 입문. 레가가 화답하다

 

이러한 최근 추세를 간파한 레가가 엘피 입문자들의 고민에 화답했다. 바로 자신들의 턴테이블 라인업 중 엔트리 모델인 Planar 1에 포노앰프를 내장해 Planar 1 Plus라는 모델을 출시한 것이다. 처음엔 믿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레가는 매우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메커니즘을 구사하는 브랜드고 그만큼 고집도 세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플레이어는 고사하고 DAC도 만들지 않으며 여전히 시디피만 생산 중인 것만 봐도 그렇다. 게다가 턴테이블 또한 완전 수동, 벨트 드라이브 방식만 고수하고 있다. 요즘 시류에 편승해 블루투스 기능을 넣는 등 허튼 짓을 하나도 하지 않는다. 오직 고전적인 턴테이블 메커니즘에 충실한 턴테이블을 꾸준히 업그레이드하는 일에만 매진하는 브랜드다.

 

 

그렇다면 레가가 기존의 철칙을 어기면서까지 포노앰프를 내장하는 결정을 내린 기저엔 어떤 자신감이 있는 것일까? 이번 리뷰에서 이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우선 이번에 만난 모델은 기존의 화이트, 블랙 마감이 아니라 최근 추가된 월넛 마감이다. 단순히 월넛 색상이 아니라 나무 무늬가 켜켜이 새겨져 있는 문양이 눈길을 잡아 끈다. 덩달아 기존의 세련된 미니멀 디자인은 동일하지만 좀 더 고풍스러운 뉘앙스를 풍긴다.

 

 

 

우선 이 모델은 월넛 베이스에 레가 RB110 톤암을 탑재하고 있다. 구동계는 기본적으로 내부 플래터에 벨트를 걸어 외부 메인 플래터를 회전시키는 방식의 벨트 드라이브 설계다. 한편 모터는 24V 저소음 모터를 채용하고 있다. 카트리지는 기본으로 장착되어 출시되므로 별도로 세팅이 필요 없어 편리하며 카트리지 모델은 카본 MM 카트리지다. 더불어 MM에만 대응하는 포노앰프를 내장하고 있어 별도의 포노앰프가 없어도 바로 인티앰프나 프리앰프 혹은 올인원 스피커에도 직결해 사용 가능하다. 참고로 내장 포노앰프는 레가의 Fono Mini라는 모델에서 USB 출력을 생략해 장착한 것이다.

 

몇 가지 핵심 설계에 대해선 추가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먼저 레가의 현재가 있기까지 가장 많은 공을 세운 톤암부터 살펴보면 기본적으로 스태택 밸런스 방식으로 후방에 마련되어 있는 무게추를 움직여 침압을 조정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이것마저도 레가는 단순화시켰다. Planar1 Plus엔 톤암 축에 표기된 선까지 무게추를 밀어 넣으면 세팅 끝이다. 더불어 레가에선 바이어스라고 하는, 이른바 안티스케이팅 또한 별도로 세팅할 필요가 없다. 이미 셋업 되어 있기 때문이다.

 

 

플래터의 경우 상위 모델과 달리 페놀 수지를 사용하고 있다. 하위 모델이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이 또한 단순한 플래터가 아니다. 플래터의 외곽 쪽에 질량을 더 실어 일종의 플라이휠 효과를 극대화했다. 이를 통해 속도 안정성에 기여하고 있는 모습이다. 한편 턴테이블은 베어링을 몇 군데 사용할 필요가 있는데 내부 플래터에 사용한 베어링이 눈길을 끈다. 레가에서 특허 출원했다는 황동 베어링으로 자체 응력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에너지 전달을 극도로 낮추었다는 것이 레가의 설명이다. 진동이 바로 노이즈가 되어 소리를 변환되는 턴테이블의 특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레가의 비범함이 느껴진다.

 

 

모터는 24V 동기식 모터와 정교하게 가공한 알루미늄 풀리를 사용해 소음과 진동을 최소화한 모습. 심지어 내부 플래터와 모터 풀리에 거는 벨트까지 세심하게 설계했다. 레가는 이 벨트에 대해 오랜 시간동안 연구해 업그레이드시키고 있는데 이 모델에 적용한 벨트는 EBLT로서 약 3년 동안 연구해 만들었다. 특수 재료로 제작해 매우 정교한 평탄도와 균질한 탄성 계수를 얻었다. 이전에 사용한 벨트와 비교해 우선 속도 균질성에 대한 지표인 와우&플러터가 무려 36%나 감소했고 되레 수명은 50% 이상 증가했다.

 

 

성능 테스트

 

레가 Planar 1 Plus를 박스에서 꺼내면서 보면 포장 자체가 매우 간결하면서 영리하다. 택배로 받았지만 전혀 손상 없이 받아 설치까지 순조롭게 끝냈다. 필자가 설치해본 턴테이블 중에선 가장 간단한 편에 속했다. 세팅도 무척 편리하다. 무게 추를 턱이 있는 곳까지 밀어 넣고 톤암 리프트의 테잎을 떼어냈다. 그리고 반드시 플래터를 걷어낸 후 내부 플래터 아래에 끼워넣은 종도 빼내야한다. 카트리지는 그냥 셋업된 상태에서 바로 사용하면 된다.

 

 

아무런 위화감 없이 바로 최근 듣고 있던 서브 시스템에 연결해 음악 들을 채비를 끝냈다. 프는 오라노트 프리미엄, 포노앰프가 필요 없기 때문에 Aux 입력단에 바로 연결했다. 스피커는 최근 재밌게 듣고 있는 리바이벌오디오의 Atalante 3 북셀프 스피커다.

 

 

한동안 듣지 않던 엘피를 레코드 수납장에서 발견했다. 엘리엇 스미스의 앨범이다. 턴테이블 베이스 좌측 바닥에 위치한 스타트 버튼을 누른 후 카트리지를 엘피 소릿골에 얹고 잠시 기다리자 음악이 흘렀다. 거짓말처럼 레가의 시그니처 사운드가 음악에 섞여 있다. 소리의 두께가 도톰해 포만감이 넘치며 속이 꽉 찬 소리다. 레가만의 색깔은 있지만 그렇다고 예쁘게 치장한 화려한 컬러가 아니다. 담백하고 옹골찬 소리로서 겉멋 낸 레스토랑이 아닌 평소 자주 발길을 옮기게 되는 백반 맛집 같은 인상으로 나를 이끌었다.

 

 

레가는 턴테이블을 가볍게 만든다. 플린스부터 플래터 모두 가볍다. 진동에 대해 독일, 미국 등 하이엔드 턴테이블들이 무겁게 눌러 진동을 제어하는 것과 정반대다. 하지만 들어보면 시끄럽거나 이 가격대 입문형에서 종종 들을 수 있는 가벼운 소리가 아니다. 예를 들어 아르네 돔네러스의 ‘Antiphone Blues’ 앨범 중 ‘Almighty god’을 들어보면 핵이 뚜렷하면서도 풍부한 잔향이 리스닝 룸을 가득 메운다. 진동을 억제한답시고 이런 아름다운 잔향까지 없애버린 턴테이블은 깔끔하게 들릴지언정 레가처럼 음악에 취하게 만들진 못한다.

 

 

내장된 포노앰프는 확실히 레가의 Fono Mini와 닮은꼴이다. 그 회로 거의 그대로 내장했기 때문에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외부에서 케이블로 연결하지 않고 톤암 케이블에서 바로 직결되기 때문에 되레 케이블 커패시턴스 등의 영향이 적어 약간이라도 이득이 있다. 에릭 클랩튼과 BB 킹이 함께한 ‘Riding with the King’을 들어보면 단단하고 묵직한 리듬 섹션 위로 에릭 클랩튼의 기타가 여유롭게 넘실댄다. 확실히 클래식 같은 음악보단 팝, 록 음악에 잘 어울린다.

 

 

첨예한 해상도로 음향적 쾌감을 극대화한 턴테이블 나는 좋아한다. 하지만 레가같은 따스한 온도감과 감칠맛 나는 엔벨로프 특성은 그런 턴테이블에서 얻기 힘들다. 예를 들어 아트 페퍼의 ‘You’d be so nice to come home to’ 같은 곡을 들을 때 어떤 턴테이블은 안 어울리게 슈트를 빼입고 다소 어깨에 힘이 들어간 소리로 들릴 때도 있다. 하지만 레가로 듣고 있으면 아트 페퍼가 당시 제대로 된 리허설도 없이 바짝 마른 마우스피스를 입에 물고 즉석에서 연주하던 이미지가 생생하게 연상된다.

 

 

총평

 

필자가 오랫동안 변심 없이 좋아해온 턴테이블이 몇 종류 있다. 지금 쓰는 트랜스로터 외에 린의 LP12 그리고 레가 턴테이블이 대표적이며 여유가 되면 닥터 페이커트 등 하나 더 구비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 중 레가는 아마도 가장 다양한 모델을 사용해봤을 것이다. 구형부터 신형에 이르기까지 족히 열 종류는 될 듯하다. 나도 나를 이해할 수 없는 게 하이엔드 턴테이블을 사용하다가 다시 또 훨씬 낮은 가격대의 레가 턴테이블이 간절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레가 Planar1 Plus를 듣고 있자니 리뷰가 끝나도 계속 음악을 듣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게다가 이번엔 포노앰프를 내장하고 레가의 음악적 개성과 맞닿은 듯한 월넛 마감으로 기능에 더해 분위기까지 한껏 살렸다. 이 가격대에 이런 턴테이블을 만나는 것은 매우 드물고 동시에 값진 일이다.

 

: 오디오 평론가 코난

제품 사양

 

톤암 : RB110

카트리지 : 카본 MM

모터 : 24V 저 노이즈

플래터 : 페놀 수지

크기 (WxHxD) : 447 x 117 x 360 mm

무게 : 4.2 kg

 

제조사 : 레가 리서치 (UK)

공식 수입원 : 웅진음향 (www.wjsound.com)

공식 소비자 가격 : 780,000

 

Written by 코난

코난 이장호는 하이파이 오디오를 평가하는 평론가다. <고음질 명반 가이드북 1,2> 등의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