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밤부터 추워지기 시작하더니 토요일 퇴근 무렵 오후2시인데도 쌀쌀하더군요. 몇주째 문을 열지 않던 일본판 가게가 오랫만에 토요일 하루만 문을 연다고 연락이 와서 황학동으로 향했습니다.
가게 안이라 그런지 처음에는 그렇게 춥진 않더군요. 음반을 고르기 시작합니다.
전에 많이 좋아하던 샹송 프랑소와 입니다. 일본 반이지만 자동으로 집어 들었습니다.
콘비츠니 음반은 드물어서 바로 집어들었는데, 일본 반에 상태가 썩 좋지는 않더군요. 그래도 연주와 녹음이 궁금해서 집어들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연말에 한번 올려봐야 겠습니다. 참고로 초반 가격은 안드로메다로 가고 있죠.
일본반인데 쉐링의 모짜르트라 집어들었습니다. 판 상태가 좋아서 선물용으로 사용될듯 합니다.
모이세비치 판은 한두장 있는데, 쇼팽도 궁금하더군요. 옜날 스타일의 연주이지만 제가 올드 스타일 좋아하는데다 지인의 추천도 있어서 담았습니다. 미국반인데 가격은 일본 판 값을 받으셔서 기분 좋았습니다.
이 가게에 이게 있었나 싶어서 놀랬죠. 국내 라이선스 입니다. 와서 닦고 들어보니 좋습니다.
뜬금없이 왠 송어냐고 생각을 했지만 파스칼 퀘텟의 연주가 궁금해서 일본반이지만 샀습니다.
이것도 일본반이라 만지작 거리다가 지인이 오리지날 스탬퍼라는 말에 바로 구매했습니다.
조안 필드는 아는 사람은 아는 연주자죠. 서정적이면서도 여유있게 연주하는게 마음에 듭니다. 일본 반이면 안 샀을 텐데, 오리지날 텔레풍겐 반이라 담았습니다.
일본어만 써 있고 영어가 없어서 무슨 곡인지 몰라서 남아 있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베토벤 바협입니다. 이름만 들어서 알고 있던 티보 바르가의 연주 입니다. 무조건 집어 들었죠. 지인도 강추하더군요. 와서 들어보니 역시 입니다. 베토벤 바협 명반 리스트에 올려줄만한 연주 입니다. 기품 있으면서도 우아하게 끌고 가는 연주가 일품입니다. 듣는 내내 연주에 집중이 되서 일본반이라는 사실이 전혀 의식이 되지 않았습니다. 참고로 티보 바르가 콩쿨도 있습니다. 꽤 유명한 콩쿨입니다.
사냥을 마칠 즈음 가게 안인데도 손이 굳어질 정도로 추위가 엄습하더군요. 기름이 떨어져서 1시간 전부터 난로가 꺼졌답니다. 어쩐지 춥더라고 했더니 죄송하다고 하더군요. 제가 마지막 손님이라 사장님과 같이 문닫고 나왔습니다. 사실 너무 추워서 문을 안 열려고 했는데, 예전에 저한테 문연다고 약속하고 펑크냈던 적이 있어서 오늘은 저한테 미안해서 문을 열었다고 하더군요. 계산하고 나오니 밖은 시베리아로 변해버렸더군요.
지하철을 타기 위해 동묘 앞을 지나는데, 노점에 판이 3박스가 있더군요. 고르기 시작했습니다. 장갑도 없고 내복도 안 입은 상태라 정말 춥더군요. 전 추위를 별로 타지 않는 체질인데도, 이건 정말 힘들더군요. 손가락이 춥다는 느낌보다 손가락의 감각이 없어지기 시작하더군요. 워낙 춥다보니 판고르는 속도도 현저히 떨어집니다. 몇번 헛 손질을 해야 판 한장을 넘기게 됩니다. 목도리도 안해서 목 전체가 추위에 노출되고, 마스크도 안해서 코가 떨어져 나갈거 같더군요.
내가 이게 뭐하는 짖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더군요. 결국 3박스를 다 뒤져서 3장을 건졌습니다.
또 한장은 김영임의 회심곡인데 상태가 좋더군요. 3장이 중요한게 아니고 3박스를 뒤지는 걸 마쳤다는 것에 더 뿌듯함을 느끼면서 계산을 하고 전철역으로 몸을 돌렸습니다. 추위 정말 대단하더군요. 이렇게 한 두시간이 지나면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백 여미터를 걸어서 지하철 출입구에 들어서자 마자 온기가 온몸으로 확 느껴지더군요. 계단 한층을 내려오니 천국이 따로 없습니다.
지하철 승강장은 아열대 우림입니다.
지하철을 타고 종로 3가에 내렸습니다. 20년이 넘는 오래된 오디오 모임인데, 회갑연을 하는 전통에 따라 회갑연을 하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인사동 안쪽 골목 식당인데, 이거 전철역에서 거리가 꽤 됩니다. 100미터씩 끊어서 중간에 가게에 들어가서 1~2분씩 몸을 녹이면서 가야 했습니다. 3번에 끊어서 드디어 근처라고 생각하는 곳에 있는 쇼핑센터에 들어갔습니다. 정신 좀 차리고 식당을 물으니 뒷문으로 나가면 바로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그말이 반가울수가 없더군요.
1차 끝나고 다시 전철역으로 가면서 그 추위를 다시 한번 겪었습니다. 다행히 배도 부르고 막걸리도 두어잔 해서 쉬지 않고 전철역까지 한번에 갈수 있었습니다.
천 쇼핑백에 들어있는 엘피 열장 남짓하는 것을 들고 집에 오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스쳐 지나가더군요.
토요일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 음악을 듣다가 잠 잘 준비를 하려는데, 대장님이 한마디 하십니다. '내일도 황학동 나가요?' 라고 말입니다.
사실 낮에 너무 추워서 안나갈까 하는 마음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습관적으로 '나가볼려고 해요' 라고 답했습니다. 그랬더니 아침에 영하 12도를 찍는다고 안나가는게 어떠냐고 묻습니다. '그래요?' 사실 영하 12도라는 예보를 알지 못했습니다. 갑자기 12도라고 하니까? 12도면 얼마나 추울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얼마나 추운지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갑자기 영화 <넘버3>의 한장면이 생각나더군요. 무대뽀 정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송강호의 대사에 '너 황소냐. 나 최영의야!' 라고 하는 장면 말입니다.
그래서 ' 한번 영하 12도 체험 해보지 뭐!' 하면서 나간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내복을 챙겨 주더군요. 아침에 입고 나가라구요. 조심해서 잘 다니라는 대장님 말씀에 '아주 추우면 경쟁자가 줄어서 좋은 판 건질수도 있다.'고 하니 대장님이 못 말리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흔드시네요.
아침에 일어나 양말2개 겹쳐서 신고 내복입고 옷 입고 외투까지 챙겼습니다. 목도리하고 나서 마스크를 찾으니 얇디 얇은 비치는 부직포 마스크 밖에 없더군요. 그거라도 없는 것보다는 나을것 같아서 챙겨 쓰고 나섰습니다.
준비를 하고 나선 탓인지 별로 춥지 않더군요. 전철에서 나와 보니 확실히 노점이 많이 줄어 있더군요. 약간 불안한 마음이 들긴 했습니다. 추워서 노점이 거의 안나왔으면 허탕이기 때문입니다.
풍물시장 근처에 도착하니 노점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허탕은 아닐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음반이 있는 노점을 찾기 시작합니다.
첫번째 장소에서 3장을 건졌습니다.
사물놀이와 맥을 같이하는 판입니다. 판상태가 좋았습니다.
슈퍼트램프 못보던 판이라 추가 했습니다.
REO 스피드웨건의 못보던 판입니다. 일단 추가 했지요.
다음 장소로 이동합니다. 여기선 3박스를 뒤졌는데 딱 1장 건졌습니다.
은근히 안보이는 판이라고 하면서 값도 온라인 보다 비싸게 2만원 부르더군요. 원래 비싸게 부르는 사장님이라 그려려니 했는데, 판 상태가 좋아서 만오천원에 샀습니다.
다음 장소로 이동합니다. 7박스가 있는데 한박스 뒤지다 보니 지난 일요일 레파토리에 새로 추가된 것이 별로 없더군요. 추가된 것 얼마 안되는 중에 눈깔 하나 빼냈습니다. 뒤에서 고르던 사람이 혹시 안할거면 넘겨달라고 은근히 부탁하더군요.
요거 초반으로 알고 있습니다. 가격 좋게 샀습니다. 뒤에서 고르던 친구는 나보다 더 일찍 나왔는데, 다른 곳에서 고르다 이 장소에는 저보다 뒤에 오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이른 아침에 3만원 짜리 판 3장을 오천원 씩에 샀다는 말을 하면서 자랑하는걸 봐서는 나까마나 업자는 아니고 애호가인것 같았습니다. 건투를 빈다고 하고는 다음 자리로 이동했습니다.
다음 장소에서 이거 선물용 두장을 고르고 나니 슬슬 한기가 몸을 파고 듭니다. 그래도 어제 추위에 비하면 이건 게임도 안되는 수준입니다. 어제는 추위가 문제였다면 오늘은 시간이 문제 입니다. 12시 반에 점심 약속에 이은 강의 스케줄이 있기 때문에 12시에는 황학동에서 나와야 합니다.
10여분 밖에 남은 시간이 없어서 최적의 코스를 머리 속에 그리면서 노점을 탐색합니다. 엘피가 늘 나와 있었던 장소에 엘피가 없습니다. 이제 탐색을 중단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신당역을 향해서 방향을 잡습니다. 전철역까지 최단 코스를 생각하며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그러다 보니 평소 다니던 코스를 벗어나서 지하철로 향합니다. 골목이 아닌 큰길 가에서 예기치 않게 엘피 박스를 발견합니다.
시간이 촉박해도 2박스 반이나 되니, 확인 해야지요. 앞서서 옆에서 고르던 사람도 4장 정도 건지더군요.
오천원 박스에서 이거 두장 건지고 옆에 비싼 박스에서 2장 건졌습니다.
2장에 6만원 달라고 하더군요. 황학동 가격이 아니라고 생각되더군요. 5만원에 주실수 있냐고 했더니 그러라고 해서 사왔습니다. 안살까 하다가 2박스 모두 개인에게서 나온 음반으로 상태가 아주 깨끗해서 샀습니다.
전철로 가는 길에 가게 사장님한테 눈인사 하고 지난번 성금연 판 상태 생각보다 안좋았다고 살짝 항의해 봅니다. 그랬더니 다음주에 나오는거 좋은 값에 주겠다고 하더군요.
결국 12시 반 약속에 10분 늦었습니다. 들깨 칼국수로 배를 채우고 2시부터 4시까지 강의 스케줄을 소화합니다.
스케줄 끝나고 전철역 한 정거장 정도되는 개업식 장소로 걸어서 이동합니다. 30분 정도 걸었는데, 토요일 추위 덕인지 추위는 커녕 안에서 땀이 나더군요. 개업식 참석한 얘기는 따로 올릴까 합니다.
영하 12도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좀 실망 했습니다. 다음 번에는 15도 정도를 도전해봐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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