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편2016-08-16 17:47
추천 50 댓글 0
직열 3극관인 300B를 싱글 구동하는 앰프는 보기에도 듣기에도 아름답다. 300B 진공관 자체가 육감적인 생김새인데다, ‘직열’이라는 단어가 묘하게 ‘원초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것이다. 소리는 또 어떠한가. 싱글 구동시 ‘고작’ 8W의 출력으로 때로는 스피커를 가녀리게 어루만지고, 때로는 거칠게 몰아대는 그 양면성이 어떨 때는 무서울 정도 아닌가.
그런데 오디오 초보자 입장에서는 궁금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도대체 어떤 메카니즘으로 300B 싱글 앰프는 스피커를 울리게 되는 걸까. 300B 앞단에 있는 초단관은 어떤 역할을 하고, 정류관과 출력 트랜스는 도대체 정체가 무엇일까. 아니 무엇보다 220V 파워케이블을 앰프 인렛단자에 꽂는 순간 앰프 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 걸까.
[오디오 그림책 by 김편] 첫회는 그래서 일종의 ‘서문’ 격으로 ‘300B 싱글앰프 작동메카니즘’을 다루기로 했다. 장황한 설명보다는 나름 정성껏 그린 그림으로 핵심만을 최대한 쉽고 간결하게 전할 예정이다. 칼럼 제목이 ‘오디오 그림책’인 이유다. 따라서 초보자 입장에서는 평생 도움이 안되는 공식이나 백과사전식 정의는 모두 지양한다. 오디오파일로 살면서 필자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잘근잘근 이해한 것들만 다룰 예정이다.
상상속의 300B 싱글앰프
필자가 상상력을 발휘해 그려본 앰프는 300B를 채널당 1개씩 출력관으로 쓰는 싱글 엔디드(Single-ended) 클래스A 인티앰프다. 나중에 자세히 언급할 기회가 있겠지만, 한 개 채널의 음악신호를 한 개의 진공관이 모두 맡아 증폭한다는 의미에서 ‘싱글 엔디드’다. 각각 싱글 구동하는 2개의 진공관이 병렬로 연결돼 있어도 ‘싱글 엔디드’다(파라 싱글). 어쨌든 이 모델 앰프는 정류소자로 진공관인 5U4GB, 초단관으로 쌍삼극관인 6SN7을 채택한 것으로 상정했다. 편의상 모델 앰프 이름은 모양을 본따 ‘종이비행기’로 정했다. 실제로 이 구성의 300B 싱글앰프가 이 세상에는 꽤 많다.
A. 전기의 흐름
그림에서 [P]는 플레이트(Plate) 전원의 흐름이다. 출발점(P1)은 역시 전원트랜스(Power Transformer)다. 이후 정류관 5U4GB에서 정류(Rectifying. P2)를 하고, 평활회로에서 평활(Smoothing. P3)을 한다. 한마디로 교류를 직류에 거의 가까운 전기로 만드는 과정이다. [P3] 이후에는 두 갈래 길로 나뉘는데(병렬), 하나는 출력트랜스(Output Transformer) 1차코일(P4)을 거쳐 출력관 플레이트(P5)로 가고, 다른 하나는 부하저항(Pa)을 거쳐 초단관 플레이트(Pb)로 간다. 그림에서는 초단관을 한 개만 그렸지만, 6SN7은 쌍삼극관이라 실제로는 2개의 플레이트에 전압을 공급한다.
지금까지가 진공관 플레이트에 전압을 공급하는 것이었다면, [F]와 [H]는 히터(필라멘트)에 전압을 공급하는, 즉 [+B전원] 흐름이다. 역시 출발점은 전원트랜스(F1, H1)인데, 출력관인 300B 필라멘트(F2)와 초단관인 6SN7 히터(H2)에 각각 필요한 전압을 공급한다. 300B의 경우 히터가 아니라 필라멘트를 직접 가열해 전자를 방출해서 ‘직열’이고 그래서 표기도 [F]로 했다.
전원트랜스(P1)
교류 전기를 받아 전압을 변환시켜주는 부품이다. 승압도 하고, 강압도 한다. 1차 코일에 220V가 들어오고, 2차 코일로부터 다양한 전압의 전기가 나온다.
전원트랜스의 전압변환 결과물
그림은 이러한 전압변환 과정과 그 결과물을 간략히 그려본 것이다. 가운데 검은 줄 2개는 트랜스의 코어(Core)이고, 왼쪽 파란색이 1차 코일, 오른쪽 여러 색깔이 2차 코일이다. 빨간색 5V와 0V는 방열 정류관 5U4GB의 히터로 가고, 녹색 400V 2개와 0V는 5U4GB의 플레이트(2개)로 간다. 2개의 보라색 6.3V와 0V는 각각 초단관 6SN7 히터, 출력관 300B 필라멘트로 간다. 어쨌든 2차 코일에서 나온 이 모든 전기는 여전히 교류인 상태다.
정류관(P2)
교류(Alternating Current)를 맥류(Pulsating Current)로 바꿔주는 2극 진공관이다. 5U4GB는 히터가 캐소드를 가열시켜주는 방열형이다.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정류관을 통과한 교류는 아랫도리(-전압)가 모두 잘려나간 톱니모양의 맥류(+전압)가 된다. 왜냐하면 플레이트에 [-전압](즉 아랫도리)이 걸리면 캐소드에서 음전자가 탈출을 못하기 때문에 캐소드에서 맥류가 흘러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교류 전기 중에서 [+전압]일 때만 맥류가 흘러나오는 게 정류관이다. 이번 ‘종이비행기’에서는 ‘양파정류’ 방식(Full-wave rectifier circuit)이란 것을 써서 이 윗도리 톱니모양이 촘촘해졌다.
평활회로(P3)
맥류가 비록 교류전압을 ‘+전압’으로 만드는데는 성공했지만 이 정도 톱니모양 갖고는 직류라 할 수 없다. 그래서 이 톱니를 직류에 가깝게 다듬어주는 회로가 ‘평활회로’(Smoothing Circuit)다. ‘종이비행기’에서는 [평활용 캐패시터(사진 위) + 초크트랜스(사진 아래) + 평활용 캐패시터] 방식을 썼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2개의 캐패시터는 각각 병렬로 연결돼 접지로 흘러가고, 초크트랜스는 직렬로 연결된 상태다. 평활회로는 캐패시터의 충방전 기능과 초크트랜스의 고주파 차단 기능(로우패스필터)을 활용한 것이다.
정류 및 평활과정, 그 결과물
위 그림은 전원트랜스, 정류관, 평활회로를 거치면서 전기의 파형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간략히 그려본 것이다. 맨 위의 파형은 전형적인 교류 파형이고, 두번째가 양파방식의 정류를 통해 얻어진 맥류, 세번째가 평활회로를 거쳐 비교적 직류에 가까운 파형을 얻어낸 결과다.
출력관 플레이트에 +B전압 공급(P4, P5)
이렇게 해서 거의 직류에 가까워진 전기는 병렬로 나눠져 각각 출력관과 초단관으로 간다. 출력관의 경우는 먼저 출력트랜스(사진 위)의 1차 코일을 거쳐 300B(사진 아래) 플레이트로 간다. 이 플레이트에는 이제 고압의 +전압이 걸려있는 만큼, 향후 캐소드에서 뛰쳐나올 -전자를 언제든지 받아들일 만반의 준비를 갖춘 셈이 됐다.
초단관 플레이트에 +B전압 공급(Pa, Pb)
초단관의 경우는 부하저항(Load Resistor)을 거친 후 6SN7의 플레이트에 +B전압이 공급된다. 6SN7은 하나의 진공관 안에 3극관 2개가 들어가 있어 쌍삼극관(Twin Triode)이다. 그래서 +B전압도 각각 1개의 부하저항을 거쳐 각각의 플레이트에 공급된다. 출력관과 마찬가지로 이제 초단관의 2개 플레이트도 각각의 캐소드로부터 달려나올 음전자를 맞을 채비를 끝냈다.
-C전원 공급
이제 +B전압 공급 흐름은 끝났다. 히터(필라멘트)에 공급되는 +A전압은 전원트랜스 2차 코일에서 만들어진 교류를 그대로 쓰거나 직류로 바꿔 초단관과 출력관에 들어가면 된다. 문제는 그리드에 걸어주는 [-바이어스 전압]인데,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이 방식에는 별도 전원으로부터 이 바이어스 전압을 공급받는 ‘고정 바이어스’ 방식(Fixed Bias)과, 자체 회로를 통해 바이어스 전압을 공급받는 ‘자기 바이어스’ 방식(Self Bias) 2가지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바이어스 전압’이란 한마디로 진공관 그리드에 가해져 캐소드에서 플레이트로 가는 전자의 양을 최적화시키는 전압이다. 쉽게 생각하면 된다. [-전압]인 바이어스 전압이 없으면 가장 많은 전자가 캐소드(-)에서 플레이트(+)로 달려갈 것이다. 폭주가 우려되는 셈이다. 그렇다고 바이어스 전압을 너무 많이 주면 전자는 그 반발작용 때문에 캐소드에서 꿈쩍도 안할 것이다. 증폭을 안하는 것이다.
바이어스 전압은 그러면서 동시에 [+전압]과 [-전압] 사이를 출렁거리는 교류 신호(Signal)를 일제히 [+전압] 영역 쪽으로 들어올리는 역할도 한다. 만약 이 때 모든 신호, 즉 주파수의 최저점까지 모두 [+전압] 영역으로 들어올려졌다면 그게 바로 클래스A 증폭방식이다.
어쨌든 ‘종이비행기’에서는 자기 바이어스 방식을 채택했다. 그림에서 보이는 캐소드 저항(오른쪽)과 바이패스 캐패시터(왼쪽)를 서로 병렬로 연결해 [+]는 진공관 캐소드에, [-]는 접지로 흘려보내는 한편, 그리드 앞에 저항(그리드 저항)을 새로 달면, 그리드에는 ‘저절로’ 바이어스 전압이 생긴다. 왜냐하면, 캐소드 저항 양 사이드에는 새로운 [+전압]이 생기는데, 이를 그리드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마치 [-전압]을 공급받고 있는 것과 같은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B. 음악신호의 흐름
이제 신호의 흐름을 살펴보자. 물론 여기서 ‘신호’는 음악신호다. 음악신호 역시 [+전압]과 [-전압]을 오가는 교류다. 0V를 기준으로 1초에 한 사이클이 끝나면 그 주파수는 1Hz다. 이 Hz가 높으면 고주파, 낮으면 저주파다. 사람의 가청영역 주파수는 20Hz~20kHz다. 그리고 이 주파수의 높이가 ‘진폭’이라는 것으로, 이 진폭이 높으면 큰소리, 낮으면 작은소리다. 원래 앰프로 들어오는 음악신호는 이 진폭이 말도 안되게 작기 때문에 이 진폭을 키워줘야 스피커로 들을 만한 소리가 난다. 이 과정이 다름 아닌 ‘증폭’(Amplification)이다. 그렇다고 음악신호 자체가 확대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진공관의 경우 캐소드에서 플레이트로 음전자가 움직이는데, 음악신호는 이 전자의 흐름(전류는 플레이트에서 캐소드로 흐르는 것으로 표기), 즉 진공관에 흐르는 음전자의 양을 자신과 닮은꼴로 해서 확대시킬 뿐이다. 결국 우리가 스피커로 듣는 소리는 음악신호 자체가 아니라, 음악신호를 확대복사한 진공관의 증폭된 전류인 셈이다.
어쨌든 ‘종이비행기’의 음악신호는 이렇게 흘러간다.
1. 가변저항(볼륨)
2. 초단관 제1그리드, 제1플레이트
3. 초단관 제2그리드, 제2플레이트
4. 커플링 캐패시터
5. 출력관 그리드
6. 출력관 플레이트
7. 출력트랜스 1차 코일
음악신호의 첫번째 관문 : 가변저항
음악신호는 맨 먼저 앰프의 볼륨(가변저항)을 통과한다. 말 그대로 저항비를 바꿈으로써 입력신호의 전압(진폭)을 바꾸는 장치다.
초단관
앰프의 앞단에 있다고 해서 초단관이다. 가변저항을 통해 들어온 음악신호는 맨 먼저 진공관의 전류 흐름을 제어하는 그리드(Grid)를 만난다. 사실, 음악신호는 이 초단관 그리드에서 제 할 일을 다했다고 보는 게 맞다. 음악신호는 그리드에 대기하고 있던 바이어스 전압과 만나서, 캐소드에서 플레이트로 가는 전자의 양을 늘려주기만 하면 끝인 것이다. 핵심은 이때 플레이트에 나타난 신호의 파형이 자신의 판박이(진폭만 커진!)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후 이 증폭된 판박이 신호는 쌍삼극관인 6SN7의 경우 다시 제2그리드로 들어가 앞의 과정을 되풀이한 후 제2플레이트에 또 증폭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커플링 캐패시터
이렇게 초단관을 빠져나온 판박이 증폭 전류는 출력관 그리드로 달려가는데, 그 중간에 커플링 캐패시터(Coupling Capacitor)를 거쳐야 한다. 한마디로 초단관을 빠져나온 전류에 남아있는 직류 성분을 걸러줌으로써, 순수한 교류(음악신호를 자신에게 투영한 전류)만을 뒷단에 넘겨주는 역할이다.
출력관, 출력트랜스
커플링 캐패시터를 통과한 전류는 이제 마지막 관문인 출력관만을 남겨뒀다. 역시 300B(사진 위)의 그리드로 들어가 캐소드에서 플레이트로 가는 전자의 양을 늘려주는 역할이다. 이렇게 최종 증폭된 신호(실제는 그 신호를 닮은 교류)는 출력트랜스(사진 아래) 1차 코일로 들어간뒤 2차 코일로 점프해 스피커로 들어간다. 여기서 출력트랜스가 아주 큰 일을 하는데, 진공관의 높은 임피던스(수백~수k옴)를 스피커의 낮은 임피던스(4~16옴)에 맞게끔 매칭시켜주는 것이다. 즉 전원트랜스가 전압변환이 주요 임무였다면, 출력트랜스는 임피던스 매칭이 자신의 소명인 것이다. (이에 비해 트랜지스터는 임피던스가 낮기 때문에 트랜지스터 앰프에는 출력트랜스가 있을 필요가 없다. 그리고 진공관 푸쉬풀 구동방식의 경우에는 출력트랜스가 위상반전 역할도 해야 한다. 이는 나중에 자세히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결국 ‘종이비행기’ 앰프는.....
지금까지 전기흐름과 신호흐름으로 나눠 살펴본 ‘종이비행기’는 결국 이런 앰프가 된다.
증폭방식 : 클래스A
구동방식 : 싱글 엔디드
정류방식 : 양파정류 정류관(5U4GB) 사용
평활회로 : 초크트랜스를 투입한 파이형(CL형과 LC형 결합)
C전원 : 자기바이어스 방식
초단관 : 6SN7(전압증폭)
출력관 : 300B(전력증폭)
커플링 : 캐패시터 사용
'Audio'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디오 사운드에 역행한 전자산업의 발전 - 1 진공관에서 트랜지스터(반도체)로. 사라진 배음 (0) | 2024.03.01 |
---|---|
오디오의 친구들 (0) | 2024.03.01 |
S세대의 음악듣기 (0) | 2024.03.01 |
화성에서 온 필자, 금성에서 온 독자 (0) | 2024.03.01 |
디지탈 오디세이 1편 - DAC란 무엇인가? (0) | 2024.03.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