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학2013-04-29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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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레인지, 트랜스페어런트, 스테레오 이미지, 스케일, 뎁스, 하이트 ... 이런 용어만 나오면 나조차 골치가 아프다. 하지만 오디오를 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기준임에는 분명하다. 과연 이런 조항들이 전부일까? 아마 독자 여러분도 꽤 궁금할 것 같다. 오랜 기간, 참으로 많은 제품을 접했던 것 같다. 온라인 혹은 오프 라인의 리뷰로 만나는 제품 말고도, 수많은 오디오 쇼나 팩토리 탐방을 통해 접한 제품을 헤아려본다면 족히 몇 천종은 되지 않을까 싶다. 아니 1만종을 넘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많은 제품을 보거나 들었지만, 아직도 흥미가 있다. 늘 어떤 제품이 나오는가 궁금하고, 어떤 기술이 개발되었는가 호기심이 간다. 가끔 디자이너나 마케터와 인터뷰를 하면서 어느 어느 제품이 나올 것이란 말을 들으면, 눈여겨 봐두게 되고, 직접 만나면 반갑기까지 하다. 왜 이럴까? 아마도 개인적으로 쇼핑을 좋아하는 천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꼭 오디오만도 아니다. 디지털 카메라나 주방 기구, 커피 메이커, 의류, 가구 등 일상 생활의 소소한 물건들을 살피는 것을 좋아한다. 우연히 색감이 너무너무 아름다운 커피메이커를 보거나, 편안해 보이는 소파를 만나면 가슴이 뛴다. 예쁜 스탠드도 빠질 수 없고, 책상 위에 올려놓는 볼펜꽂이도 그렇고 ... 와우! 보는 것 모두를 살 수는 없지만, 그저 아이 쇼핑이라도 좋다. 아마도 그래서 수많은 쇼를 다니며 오디오를 구경하고 또 리뷰를 쓰지 않나 싶기도 하다.
사실 외국에 한번 나가면 되도록 오래 체류하는 편이다. 혼자서 왜 그렇게 오랫동안 지내냐 묻는다면, 나름대로 할 말이 있다. 각종 백화점, 쇼핑몰, 전시장, 박물관, 기념관 등 가볼 데가 정말로 많다. 또 되도록 사진을 찍어서 담아놓기도 한다. 이런 거 다 뭐에 쓰냐고 물으면 할 말이 잆지만, 그냥 취미 생활이라고 변명할 수밖에 없다. 천성이 그런 것이다.
그런 와중에 오디오서에 한 가지 배운 게 있다면 그 본질이 바로 “오디오는 전송이다”라는 것이다.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CD 혹은 LP에 (혹은 다운로드 파일에) 기록된 음성 정보를 우리 귀에 전달하는 기기가 바로 오디오인 것이다. 사실 아무리 예민한 귀를 갖고 있다고 해도, CD나 LP에서 직접 음을 들을 수는 없다. 어차피 오디오를 통해야 한다. 그렇다면 오디오의 제1 덕목은 최대한 소스의 정보를 보존해서 전달하는 것이다. 그래서 간단히 “전송”이라 표현하는 것이다. 물론 말은 쉽지만, 현실적으로 오디오를 구현하기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CD로 말하면 20Hz~20KHz 사이의 대역을 전달한다. LP나 고음질 파일과 비교하면 폭이 좁지만, 우리 인간의 귀만 놓고 말하면 가청 주파수 대역을 훨씬 뛰어넘는 수치다. 또 저역을 20Hz까지 재생한다고 가정하면 어지간한 사이즈의 스피커 갖고는 어림도 없다. 예산도 예산이지만, 그에 걸맞는 공간의 확보도 필수다.
이 말은 무슨 뜻인가 하면, 어차피 어느 정도 타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소스에 담긴 정보량을 100% 다 끄집어낼 수는 없지만, 통상 즐기는 음악의 신호 대부분은 어떻게 하든 들어야한다. 오디오 평이란 것은, 바로 그런 전제하에 앰프니 스피커니 특정 제품을 리뷰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대역이 넓은 것만 좋은 것도 아니다. 좀 협대역이라도 매력적인 음을 내는 제품도 많다. 어차피 광대역을 낼 수 없다면, 특정한 대역에 집중해서 독특한 음악성을 발휘하는 방식도 나쁘지 않다. 이렇게 메이커마다 접근법이 다르고, 해석이 다른데, 그런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바로 오디오 리뷰인 것이다.
여기서 나는 크게 두 가지 사항을 염두에 둔다. 그 첫 번째는 가격이다. 아무리 소리가 좋아도, 파워 코드 하나에 1천만원이 넘으면 살 수 있는 애호가들은 한정되기 마련이다. 또 3억짜리 앰프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납득하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가격이라는 부분은 매우 민감하고, 중대한 사안인 것이다. 예전에 모 잡지사에서 이런 비교 테스트를 한 적이 있다. 평론가 세 분을 모셔다 놓고, 하루 종일 25개의 북셀프 스피커를 집중 비교한 것이다. 이를 위해 앰프와 CDP 그리고 음반을 모두 고정시킨 채 집중 시청에 들어갔다. 여기서 한 가지 배운 게 있다면 그 소리의 퀄리티라는 것이 정확히 가격따라 올라간다는 점이다. 정말 가격을 상회하는 음을 내는 제품은 한 두 가지에 불과했고, 그 나마도 약간 좋은 정도였다. 이런 결과를 갖고 누구는 아마도 어느 보이지 않는 손이 음을 들은 다음 그 퀄리티에 따라 가격을 매기는 것 같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시장의 원리라는 것이 이런 모양이다. 다시 말해 싸고 좋은 제품을 만나기란 극히 드물고, 그래서 그런 제품을 만나면 “심봤다”라고 쓰기도 한다. 꼼꼼히 리뷰를 읽는 분들은 아마 이런 극찬에서 어떤 감을 얻어내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이런 가격대비 성능이라는 것이 모든 제품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 마이크 타이슨이라는 복서가 처음 등장했을 때 팬들이 받은 충격은 엄청난 것이었다.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스펙의 복서가 실체화되어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어느 평론가가 이런 말을 썼다. “헤비급에선 모든 복싱 이론이 무용지물이 된다.” 다시 말해 하이엔드, 아니 울트라 하이엔드를 지향하는 제품들은 이런 가격대비 성능과는 무관하다. 이런 제품의 제1 덕목은, 해당 분야에서 세계 최고냐 아니냐는 것이다. 물론 그 기준이라는 것엔 개인적인 취향차가 존재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음은 아니지만 최고다”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는 되어야 한다. 복싱으로 치면 헤비급인 셈이다. 그러므로 중급기 정도까지 나는 가격대비 성능에 연연하지만, 이를 넘어선 제품에 관해선 가격을 잊고 오로지 성능에만 집중한다. 대체 네가 최고냐 아니냐 이런 기준으로 따지고 들어가는 것이다.
두 번째로 언급할 기준은 매칭이다. 사실 오디오에서 알파와 오메가가 모두 매칭으로 귀결된다. 불행하게도 아무리 좋은 스피커를 사도 그 자체만으로 음은 나지 않는다. 또 아무리 억대의 앰프를 구입해도 그 자체로 음을 들을 수 없다. 최소한 소스, 앰프, 스피커의 3종이 케이블로 엮여져야 소리를 낸다. 그러므로 어쩔 수 없이 매칭이라는 구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전자공학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매칭이라는 것은 터무니 없을 수도 있다. 몇 와트 내는 앰프에 몇 dB의 입력 감도를 갖는 스피커를 걸면 그게 대충 비슷비슷하게 소리가 나지 않냐 반문할 수도 있고, 어차피 중급기 정도라면 뭐 거기서 거기다 라고 무시하는 분들도 있다.
그러나 세상 일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물의 원소 기호는 “H2O"다. 시냇물이든 바닷물이든 모두 같다. 그렇다고 해서 이 물이 일으키는 기후의 변화나 폭풍우, 홍수 등의 복잡한 현상을 오로지 원소 기호 하나만 갖고 설명할 수 있을까? 참고로 일기예보를 위해 수퍼 컴퓨터를 돌릴 때 매개 변수만 몇 백만개나 된다고 한다. 꼭 그 정도는 아니지만, 오디오에서 매칭이라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항목인 것이다. 아마 바꿈질의 90% 이상이 바로 이런 매칭 때문에 벌어지지 않을까 싶다.
그럼 매칭의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 누구는 바이올린 음을 예쁘게 만들기 위해 또 누구는 강력한 저역을 구동하기 위해 또 누구는 여성 보컬의 미묘한 뉘앙스를 잡아내기 위해 바꿈질을 한다. 그러나 오로지 그런 이유만으로 매칭이 정당화가 될까? 예전에는 그냥 디자인이 좋거나, 나름대로 매혹적인 음이 나오면 기기 바꿈질을 했다. 지금은 생각이 바뀌어 역시 매칭의 최종 목적지는 “사실성의 추구”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즉, 흔히 말하는 실제 음을 얻기 위해 매칭을 하는 것이다. 또 그렇게 실제 음을 추구하다 보면, 바이올린이든 여성 보컬이든 여러 요소들이 참으로 아름답게 구축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사실이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음악은 아름답기 때문이다.
나는 오디오를 왜 하냐고 묻는다면 바로 아름다움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오디오는 음악을 재생하는 도구이고, 음악은 그 자체로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꼭 깨끗하고, 고고하며, 고상한 것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 나는 음성 정보를 전달한다는 표현을 쓰곤 하는데, 여기에 약간의 오해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 “음성=보이스(Voice)”가 아닌 것이다. 여기서 음성의 음(音)은 조성이 된 소리를 말한다. 즉 협화음으로 구성된 소리다. 반면 성(聲)은 불협화음의 음이다. 이것은 주변의 소음이나 자동차 소리같은 것도 포함한다. 즉, 좋은 오디오란 협화음만이 아니라 불협화음도 포함해야 한다. 오디오가 사실성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노자 철학에 따르면 아름다운(美)이란 선(善)과 동일시된다. 그럼 아름답지 않은 것은 추한 것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선의 반대말은 악이 아니라 불선(不善)이다. 이때의 선이라는 것을 “착하다”라고만 이해해선 안된다. 실제로는 “좋다”의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즉 아름다움이란 좋은 것이다. 왕필이란 학자는 “미라는 것은 사람이 나아가 좋아하는 바의 것이다”라는 주석을 달았다. 그 반대는 추하다, 그러니까 더럽고 지저분하다가 아니다. 싫은 것이다. 우리가 싫어하는 것이 추의 개념이고, 좋아하는 것이 미의 개념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미추가 상대적인 개념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이다.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다. 왜 이런 말을 하나면, 간혹 오디오 애호가를 만나면 너무나 음악이나 아름다움의 개념을 고상하고, 형이상학적으로만 판단해서 답이 없는 질문에 매달리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의외로 세상에는 오디오에서 불가능한 경지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음, 도저히 표현될 수 없는 음을 찾아 미몽을 해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추구하는 음은 아름다움과 추함, 협화음과 불협화음이 모두 담긴 그런 세계인 것이다. 오디오에서 무릉도원이나 이상향 같은 세계만을 상정하면 절대로 안되는 것이다.
동양에서는 이 세상을 천지인(天地人)의 3요소로 구분하고 이를 삼재(三才)라 했다. 그러나 이것은 각각 동떨어진 것들이 아니다. 이것들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그 뒤에 간(間)이란 말이 붙는다. 다시 말해 하늘은 시간을 뜻하고, 땅은 공간을 뜻하며, 그 사이에 있는 사람이 인간인 것이다. 이를 오디오에 대입하면 시간 예술인 음악이 천간이고, 일정한 형태로 공간을 점유하는 오디오는 지간이요, 오디오파일은 그 사이에 있는 인간인 것이다. 우리가 하늘만 바라보고 살 수 없듯, 땅만 보고 살 수도 없다. 다시 말해 오디오를 좋아한다는 것은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이고, 그것이 내 삶을 풍족하고, 여유롭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얻어지는 즐거움은 다른 데에 비할 바가 아니다. 바로 오디오 애호가들의 그런 조화로운 경지를 위해 나 역시 최선을 다해 리뷰에 임하도록 자세를 다듬어본다. 늘 부족하고, 아쉽지만, 넓은 아량으로 이해 바란다. 마지막으로 오디오 리뷰를 읽을 때 이 점을 유의하기 바란다. “세상에는 좋은 오디오가 있고, 매우 좋은 오디오가 있다.” 리뷰가 찬사 일색이다, 천편일률적이다 비판하는 분들도 많지만, 그 행간을 추적하다 보면, 내 스스로 넋을 잃고 빠져드는 진짜 좋은 물건을 만나기도 한다. 그 부분을 캐치한다면, 상당한 도움이 되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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