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생각치도 못하게 하이파이클럽에서 연락이 와서 이렇게 칼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클래식과 재즈, 포크를 오가며 레코딩 프로듀서 및 엔지니어로 일을 하며 작은 마이너 레이블을 하나 운영하고 있는 최정훈이라고 합니다.
음악이 저의 직업이기는 하지만 음반의 녹음이나 마스터링만큼이나 제가 치열하게 좋아하는 것은 바로 이 글을 보시고 계시는 분들과 같은 하이파이 오디오입니다. 최근에는 빈티지에 부쩍 관심을 지니게 되어 하이파이라는 단어가 조금 어색해지기는 합니다만..^^).
이제는 하이파이 오디오기기를 바꾸는 것이 삶의 큰 활력소이자 재미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탓인지 하이파이 기기들 뿐만이 아니라 레코딩이 마스터링에 사용하는 기기들 역시(그 중에 스피커가 가장 자주 바뀝니다) 무척 자주 바꾸는 편입니다. 때로는 새로운 기기들 연결하고 소리 들어보느라. 몸이 지쳐서 정작 녹음음 할 때 제대로 소리를 들을 체력 조차 바닥난 적도 있었죠.
오디오파일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음악녹음 현장에 관한 이야기들을 한번 진행해보고자 합니다. 먼저 첫 번째로 제목이 조금 딱딱합니다.
"클래식 오케스트라 녹음"
딱딱한 제목만큼이나 사실 저는 요즘 딱딱하고 신경질적으로 지내고 있는데요. 무언가 환기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전에는 늘 사람들로부터 "편안해 보이거나. 정서적으로 여유가 있어 보인다..." 라는 이야기를 늘 듣고 지내왔었던것 같습니다만, 요즘은 반대로 "오디오가이(많은 사람들이 저를 부르는 닉네임입니다)는 엄청 히스테릭하다. 신경질적이다. 짜증을 잘 낸다"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음속에서는 그리 바뀐 것이 없는데, 무엇이 저를 이리도 변화시키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과거에는 블로그들에 게시판에 일기 같은 에세이를 쓰거나 하면서 차분히 저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심장 박동수를 줄여나가는 좋은 시간들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술 한 잔 기울일 여유도 없는 것 같네요. 레코딩 엔지니어에게는 누구나 다 있는 일종의 "결벽증"이라고 할까요?
좀더 진행이 매끄럽게, 좀더 소리가 좋게.. 등등을 찾아나가다 기기들에도 너무 지나치게 집착을 하게 되고.. 늘 많은 사람들이 음향기기 제품에 관해 질문을 해오고.. 새로운 기기는 정확하게 사용해보고 의견을 말하자... 라는 생각을 지니게 되니, 이 장비, 저장비 너무 많이 사용해보고. 매일같이 새로 바뀐 장비 세팅하느라 체력적으로 지쳐.. 정작 밥벌이를 해야 할 중요한 믹싱이나 마스터링은 대강대강 해버리는 것이 많아졌다는 것이 참으로 우습기도 합니다.
이렇게 미쳐 지내며 나름대로 결론 낸 시스템으로 작년 즈음 전부 바꾸었습니다. 물론 제 주변에 친한 분들은 전혀 믿지 않는 이야기이지만, 이번에 완성한 세팅 장비는 당분간 절대 바꾸지 않을 것 입니다. 아니... 이제 랙에 끼웠다 넣었다, 기기들 연결, 이것 저것 하는 것도 참으로 많은 체력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서론은 이제 그만하고. 어쿠스틱 녹음에 관한 첫 번째 이야기로서, 오케스트라 녹음에 관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클래식 오케스트라 녹음은. 클래식 음악을 듣는 시간이 아무래도 가장 긴 저에게 있어. 언제나 동경의 대상이었는데요.
어떻게 보면 쉬운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어려운 것 같기도 합니다. 사실 모든 녹음이 다 그렇지만 말이지요 ^^
2007년 겨울 전라남도 광주에서 열린 '정율성 국제음악제' 실황을 녹음하면서, 광주시향과 피아니스트 백혜선씨의 연주를 녹음하였는데 결과가 어느 정도는 마음에 들게 나왔습니다. 광주에 있는 광주문화예술회관은 음향이 좋기로, 특히 피아노 소리가 좋기로 소문이 자자한데요. 큰 기대를 하고 갔는데, 사운드가 기대 이상으로 훨씬 더 좋았습니다.
국내에서 클래식 오케스트라를 녹음하기에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 제외하고는 많이들 하시는 분당 요한 성당보다도 저는 이쪽이 훨씬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소문대로 피아노의 소리 역시 아주아주 깔끔하고 깨끗한 소리를 들려주었구요.
광주문화예술회관은 객석 바닥에 아쉽게도 카페트가 깔려있지만 양 옆 벽면이 돌로 되어있어서 적당한 잔향을 지니고 있고, 게다가 잔향의 음색이 적당히 길고, 무엇보다도 소리가 상당히 깨끗합니다. 그래서 앰비언스 마이크의 소리가 참 좋게 들어오더군요. 지금까지의 녹음들과 방법이나 장비들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데 홀의 사운드가 좋으니 역시 지금까지 보다는 훨씬 더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오케스트라에 마이크 8개. 함께 한 피아노에 마이크를 XY로 2개만 사용하였습니다만, 나중에 들어보니 앰비언스를 추가했더라면 훨씬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사진에 보면 간격이 상당히 넓게 되어있는데. 본래는 좀더 좁혀있는 상태였으나. 방송국 촬영팀에서 마이크 스탠드가 촬영에 방해가 된다고 해서 좀더 바깥쪽으로 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늘 이렇게 실황녹음을 할 때마다 느끼는 것 이지만, 실황녹음은 정말 여러가지를 고려해야 하는 것이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나중에 믹싱 때 전체 사운드의 85%가 이 메인 마이크를 사용하였으며. 나머지 보조적인 엑센트 마이크들의 비중은 대단히 낮게 사용이 되었습니다. 실황녹음이 아니라면 테카 트리나 여러가지 방법들을 시험해보고 싶지만, 실황에서는 마이크 세팅의 제약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오케스트라 녹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메인 원 포인트 마이크의 세팅. 메인 마이크만으로도 생각하는 소리에 가까운 어느 정도 완성을 시킬 수 있어야 나중에 들어도 마음에 드는 소리가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늘 이렇게 오케스트라의 엑센트 마이크로는 단일지향성보다는 와이드카디오이드를 무척 선호합니다. 메인을 무지향성으로 엑센트를 단일지향성으로 하는 경우, 각각 마이크들에 들어오는 현의 소리들의 음색 차이, 좀더 자세히 말하면 "엣지감"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나중에 믹스 때 엑센트 마이크에 아주 상당한 양의 리버브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소리가 어색해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이전에도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단일지향성 마이크와 무지향성 마이크는 오프엑시스 컬러레이션.
그러니까 원거리 마이킹에서 마이크의 정면이 아닌 측면이나 후면에서 들어오는 음색 차이가 특히나 심하게 차이가 나기 때문에 저는 와이드카디오이드를 전적으로 선호합니다. 만약 마이크를 아주 많은 수량을 사용해서 한다면 조금 이야기가 달라질 수는 있겠지요.
다음으로 현의 2nd/3rd 와 콘트라베이스를 위한 엑센트로는 MBHO 622PZM을 사용하였습니다만 이 마이크가 정말 좋았습니다. 제가 잘 쓰지 않는 표현으로는 "대박"이라고 하지요. 메인으로 사용해도 좋을 만큼 우선 소리가 너무너무 자연스럽고, PZM 마이크이기 때문에 주변에 있는 여러 악기들의 소리가 마치 메인 마이크에 들리는 것과 거의 차이 없는 음색으로 메인 마이크로 들어오지 않는 악기들의 수만 더 늘어난 느낌입니다.
이것은 비단 메인 마이크와 엑센트 마이크를 같은 회사의 것을 사용해서 같은 캐릭터가 나오는 것이 아닌, 제가 생각해고 있는 메인에서 원하는 소리, 그리고 엑센트에서 원하는 소리가 정확하게 나오고 있었습니다. 바이올린 1st와 첼로에 스팟으로 사용한 마이크는 좀더 높이를 올려야 소리가 메인에 들어오는 것과 믹스해도 위화감이 없을 것 같더군요.
그리고 사진에는 없지만 목관들 앞에도 MBHO의 스테레오 PZM 마이크가 사용이 되었는데, 이 마이크는 PZM임에도 상당한 지향성을 지니고 있어서(본래 PZM은 모두 반무지향성입니다) 딱 앞에 있는 목관과 금관 소리들만 집음이 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연주자나 다른 사람들이 밟을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세팅과 녹음내내 가슴 졸여야 하기도 한답니다. 그래서 연주가 끝나면 장비 철수시 가장 먼저 나가서 마이크 프리 앰프의 팬텀을 내리고 PZM들부터 걷어옵니다.
다음은 함께 연주한 피아노입니다.
피아노에는 MG의 M930 스테레오 페어를 XY로 사용하였는데, 가끔씩 마이크 제조회사들에서 같은 마이크를 두 개 구입하면 되지 뭐하러 예민하게 스테레오 매치드 페어를 만들어 비싸게 파나..라고 생각해본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직접 사용해서 들어보게 되면 매치드 페어쪽이 좀더 비싼 가격을 주고라고 충분히 구입할 가치가 있다고 느껴질만큼 '확실히 향상된' 스테레오 이미지, 정위, 위상특성을 보여줍니다.
아주 미세한 수치상의 차이일텐데도 차이가 귀로 느낄 수 있는 것이 참 신기하지요.
MG M930은 중고역이 조금 밝게 나오는 편이라 피아노 녹음에 아주 잘 어울리는데요. 중고역이 밝은 만큼 묵직한 저역을 얻기 어렵습니다. 이번에도 피아노의 저음현에 마이크를 하나 더 사용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만, MG M930특유의 그리고 스타인웨이 피아노 특유의 반짝반짝하는 소리는 잘 녹음이 되었습니다.
최종 믹싱에서는 전채널 이퀄라이징이나 필터, 프로세싱을 하지 않았으며 리버브만 아주 살짝 더해주었습니다. 리버브 사용도 적은 이유는, 피아노의 경우도 메인마이크로 들어오는 피아노소리가 충분히 피아노의 엑센트 마이크와 함께 사용이 되면 자연스럽게 피아노에 공간감을 부여해주기 때문입니다.
오케스트라에 이처럼 협연이 있을 경우, 역시나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사항은 협연하는 성악가나 연주자의 엑센트 마이크가 아닌, 메인 마이크로 들어오는 협연자의 음색과 밸런스를 조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조정은 단순히 '위치' 밖에 없습니다.
협연자가 서거나 연주하는 위치, 그리고 오케스트라의 밸런스도 좋게 들어오면서 협연자의 음색과 정위도 좋게 들어오게 해야 하는 메인마이크의 위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에 이야기 한 것 처럼 오케스트라 녹음시 엑센트 마이크에 리버브를 많이 사용해서 소리를 만들어나가는 것 보다는, 메인마이크 세팅과 마이크 선택을 정밀하게 한 후 나머지 세팅을 보조로만 하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누구나 다 아는 내용이지만 실제로 오케스트라 녹음에 있어 메인마이크의 정확한 위치를 느끼게 되는 데에는 많은 경험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 까닭에 구체적으로 마이크를 어떠한 포인트에 어떻게 사용을 하면 된다! 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은 조금 어려운 것 같습니다.
어쿠스틱 악기들의 마이킹... 게다가 이렇게 공간음향이 아주 중요한 클래식 오케스트라 녹음의 경우는 그저 녹음하는 공간에 가서 연주를 직접 듣고 공간 안에 울리는 소리를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며 소리가 가는 길에 마이크를 두는 것, 그것이 바로 제가 하는 오케스트라의 녹음 방법의 전부입니다.
전 함께 일하는 식구들에게 마이킹에 관해서 이야기를 할 때 늘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가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는 시각적으로 쉽게 이미지를 구현할 수 있으면서. 왜 직접 공간 안에서 사람이 연주하는 소리는 시각적 이미지로 구현을 하기 어려울까...라는 것.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늘 듣고 있는 스피커보다는 실제현장에서 음악을 듣고 느끼고 판단하는 시간이 적기 때문에 그러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마이킹의 방법은 어떻게 보면 아주 단순합니다. 그래서 누가 마이킹을 물어보면 늘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누군가가 악기를 연주하면 가만히 소리를 들어보세요"
"연주자의 주변을 돌며. 각 공간에서 소리가 어떻게 들리는 지 음색을 느껴보세요"
"다음으로 조금 멀찌감치 떨어져 아티스트가 내는 소리가 공간으로 어떻게 흘러가는지 지켜보세요"
"그리고는 소리가 지나가는 그 길에 마이크를 두시면 됩니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것입니다. 실제의 소리들을 많이 들으며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를 볼 수 있는 것 처럼, 실제로 연주하는 소리를 볼 수 있게 되면 거기서 어쿠스틱악기의 녹음은 시작이 되는 것이며, 또한 클래식 오케스트라 녹음도 시작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저도 가끔은 잘 보이다가도, 어떨 땐 소리만 들리고 소리는 전혀 보이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자, 이렇게 클래식 오케스트라 녹음을 시작하는 선상에서 그 다음은 무엇을 고려해야 할까요? 일전에 녹음했던 백혜선씨가 과거 클래식 음악 잡지에서 했던 인터뷰에 잊혀지지 않고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습니다. 그녀가 막 미국의 프로듀서와 녹음을 끝내고. 프로듀서가 편집한 모니터링 CD를 받아서 듣고 "아.. 내가 이렇게 연주를 잘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소리의 길을 보기 시작한 다음에는 바로 아티스트의 연주가 좋게 들려야(물론 음악적으로) 하는 녹음을 해야할 것 입니다. 모든 장르의 녹음에서 '음악'은 항상 최우선시 되어야 하는 사항이지만, 클래식 오케스트라 같이 녹음시의 마이크의 위치, 그리고 믹싱 때의 밸런스만으로 음악적인 분위기가 전혀 다르게 들리는 장르는 흔치 않습니다. 이번 녹음에도 메인마이크와 피아노 엑센트 마이크만 사용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물론 세계최고의 오케스트라는 아니지만 이번 광주시향의 연주는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세계최고의 오케스트라의 연주처럼 들리게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녹음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일런지도 모릅니다.
메인마이크가 아닌 엑센트마이크들로만 사용을 해서 적당하게 멋진 리버브를 걸고 이퀄라이저를 사용해서 소리를 부드럽거나 섬세하게. 혹은 풍부하게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물론 이렇게 하면 소리는 좀더 깨끗하고 좋을런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메인마이크로 들어오는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음악이 훨씬 더 음악적이며, 무엇보다도 '앙상블'이 아주 좋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레코딩 엔지니어라고 할지라도. 그 음악을 실제 지휘한 지휘자보다 그 음악을 더 잘알고 있을수는 없을 것 입니다. 우리가 녹음한 오케스트라의 밸런스는 지휘자의 머리와 몸에서 나온 것이니까요. 지휘자가 생각한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와 밸런스와 가까운 소리. 그것은 엑센트 마이크를 조합한 것보다는 메인 마이크로 들어오는 것이 아마도 더 가까울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물론 메인마이크의 위치가 정확해야 한다는 점이 우선시 되야겠지요.
거창한 클래식 오케스트라 녹음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구체적인 시원한 이야기들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오케스트라 녹음에 관해서 알고 느끼고 있는 것은 아직 여기까지. 더욱 더 많은 부분들을 앞으로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그래서 더욱 기대가 되는 것이 클래식 오케스트라의 녹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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