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의 정의
악기를 연주하면 특정한 음높이를 가진 소리가 나오는데 우리는 이것을 만들어내거나 혹은 들음으로써 악기 연주를 즐기며 감상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피아노 건반을 누르면 어느 지점을 누르는가에 따라 서로 다른 음높이의 소리가 들린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한 강하게 때리면 큰 소리가, 약하게 때리면 약한 소리가 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결국 악기에 대한 아주 원초적이고도 간단한 정의를 내리자면 악기는 특정한 음높이의 소리를 만들어내는 기구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과연 악기가 만들어낸다는 그 소리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가? 소리에 대한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물체의 진동에 의하여 생긴 음파가 귀청을 울리어 귀에 들리는 것.
한편 옥스포드 사전에서는 소리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Vibrations that travel through the air or another medium and can be heard when they reach a person’s or animal’s ear. (공기나 다른 매질을 통해 전파되어 사람이나 동물의 귀에 전달되었을 때 들을 수 있는 진동)
▴ 소리의 전달
'소리(sound)'라는 단어를 쓸 때 우리는 이것을 대개 현상학적인, 혹은 지각 가능한 대상으로서 받아들인다. 다시 말해 소리는 청각(聽覺)이라는 감각으로 느껴지는 무형의 대상으로 인지된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두 사전의 정의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소리의 근본은 '파동(波動, wave)'이라는 물리학적인, 보다 구체적인 대상이다. 마치 '맛'이라는 단어가 혀로 느껴지는 여러 가지 인지 가능한 대상을 일컫는 말이지만 실상 맛의 근원은 복잡 미묘하게 생긴 화학 물질 및 혀에 존재하는 생체 기관 및 대뇌와의 화학 및 생물학적 상호작용인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이 시점부터는 '소리'라는 것을 특별한 예술적인 무언가로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으며 단지 초등학교 시절부터 과학 및 물리 시간에 지겹게 배워왔던 '파동'이라고 간주하면 된다. 이러한 개념의 전환을 거치면 소리라는 존재를 파동이라는 ‘해석 가능한 물리학적 개념’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우리는 음악적 개념을 좀 더 정량적이고 객관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파동의 물리학
그렇다면 파동이란 무엇인가? 파동이란 '매질을 통해 운동이나 에너지가 전달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파동이 전파될 때 매질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기본적인 상식으로 잘 알려져 있다. 즉 바다 한가운데서 파도가 일렁이지만 그 위에 떠 있는 부표(浮標)는 수직 방향으로 넘실거리기만 할 뿐 수평 방향으로는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파동들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파동들은 모두 공통적인 특성을 공유하고 있으며 이러한 것들을 물리량으로 정의하면 아주 간단한(?) 수학식으로 나타낼 수 있다. 소위 파동의 요소들이라 불리는 것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진폭(振幅, amplitude) : 진동 중심에서 최대 변위의 크기 (A)
2. 파장(波長, wavelength) : 같은 변위(위상)을 가진 서로 이웃한 두 점 사이의 거리 (λ)
3. 주기(週期, period) : 매질의 한 점이 1회 진동하는데 걸린 시간 (T)
4. 진동수(振動數, frequency) : 파동 전파시 매질의 한 점이 1초 동안 진동한 횟수 (f). 참고로 진동수는 주기의 역수이다. (f = 1/T)
▴ 파동의 요소들
이러한 파동의 요소들을 고려하여 위의 그림과 같은 단순한 파동을 수학식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y(t) = A sin (2πft)
파동은 중첩(重疊, superposition)과 관련된 여러 가지 재미있는 성질을 나타낸다. 선형 조합(linear combination)이라는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이 중첩의 원리는 간단히 설명할 수 있는데, 각기 진행하던 파동들이 서로 만나게 되면 겹쳐지는 지역에서 파동은 위상이 단순히 더해질 뿐 각 파동의 고유한 속성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래 그림처럼 서로 마주오던 파동은 서로 만났다고 해서 부서지거나 합체하는 것이 아니며 만남의 시간이 끝나면 서로 쿨하게 헤어지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헤어질 때 자기 자신의 속성이 변하지는 않으므로 처음에 왔던 그 모습 그대로 떠나가게 된다. (왠지 각박한 현대 사회의 이별을 보는 것은 기분 탓이다.)
▴ 파동의 중첩을 나타낸 그림
위에서는 진행이 매우 짧은 일종의 펄스(pulse)파의 중첩을 나타낸 것이었다. 그렇다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파동이 겹치면 어떻게 되나? 이 경우 우리는 새로운 파동을 얻게 되며 이를 간섭(干涉, interference)이라고 한다. 그런데 왼쪽 그림처럼 서로 같은 위상의 파동이 만나게 되면 진폭은 커지게 되는데 이와 같은 간섭 형태를 보강 간섭(補强干涉, constructive interference)이라고 한다. 반대로 오른쪽 그림처럼 서로 다른 위상의 파동이 만나게 되면 진폭은 작아지게 되는데 이를 상쇄 간섭(相殺干涉, destructive interference)이라고 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이런 현상도 발생한다: 진폭과 진동수가 똑같은 두 파동이 간섭을 일으키면 진폭이 두 배가 된 파동이 형성된다. 그러나 동일한 파동이되 위상이 반대이면 간섭의 결과 완전히 파동이 없어진 것처럼 느껴진다. 후자의 경우 가수들의 라이브 실력을 알아보기 위해 사람들이 흔히 행하는 MR 제거의 원리인데, 즉 반주 음원의 위상을 죄다 180도 바꾸어 놓고나서 가수의 라이브 음원과 중첩을 시킨다. 그러면 상쇄 간섭이 일어나서 라이브 음원에서 반주에 해당하는 소리의 파동은 죄다 없어진 것처럼 되어 버리게 된다! 이러한 중첩과 무관한 가수의 목소리만 살아남은 결과 가수는 대중들에게 찬탄을 혹은 비난을 받게 되는 것이다.
▴ 보강 간섭과 상쇄 간섭, 그리고 일반적인 사인 파동의 간섭
정상파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파동들은 모두 끝이 없이 진행하는 파동들이다. 즉, 한번 형성된 파동은 (에너지의 감쇄가 없다고 가정할 때) 지구 끝, 아니 우주 끝까지 전달된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이런 파동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만일 파동에게 처음과 끝이 주어지게 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예를 들어 출렁이는 밧줄이 있다고 할 때 그 밧줄의 양끝을 막대기에 묶어버린다고 해보자. 이처럼 양쪽 끝이 고정 혹은 한정된 매질에서의 파동인 경우, 고정된 점에서 파동이 반사하게 된다. 그런데 연속적인 파동이라면 이렇게 반사하여 되돌아가는 파동은 지속적으로 밀려 들어오는 파동과 중첩되어 간섭을 일으키게 된다. 그 결과 마치 전파되지 않고 가만히 멈춰 서 있는 것 같은 파동이 형성된다.¹
▴ 정상파의 형성
앞서 언급한 간섭 원리를 떠올린다면, 정상파의 진폭은 보강 간섭으로 인해 본래의 파동보다 더 큰 것임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정상파의 가장 극적인 예가 바로 1940년에 붕괴한 미국의 타코마(Tacoma) 다리이다. 다소 충격적인 영상이기도 한데, 당시 강에 불던 바람이 현수교(懸垂橋)인 타코마 다리에 정상파를 형성해 놓았고, 지속적인 바람에 의해 다리에 만들어진 파동이 계속 보강 간섭을 일으켜 진폭이 커지다가 결국 다리의 기계적 한계를 넘어서는 바람에 다리를 붕괴시키기에 이른 것이다.
▴ 타코마 다리의 붕괴 장면을 찍은 동영상
그런데 이 영상을 자세히 보면 중간에 연구자가 다리의 중앙 부분을 지그재그로 유유히(?) 걸어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해당 지점은 크게 출렁이지 않는 부분으로 사람이 흔들리지 않고 걸어갈 수 있었던 지점이다. 실제로 정상파가 형성되면 자신의 파장의 반정수배 및 정수배, 곧 1/2배, 1배, 3/2배... 에 해당하는 지점은 정말로 가만히 멈춰 서 있는데 이를 마디(node)라고 한다. 아래 그림에서 보면 양쪽을 고정시킨 실에서 발생한 정상파의 경우 다양한 정상파마다 점의 형태로 마디가 형성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타코마 다리에 형성된 정상파에는 마디가 평판 위의 곡선을 따라 형성되어 있었고, 연구자는 그 위를 유유히(?) 걸어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 정상파에서 발견되는 마디
양쪽을 고정시킨 줄에 어떠한 이유로 인해 정상파가 형성되었다고 생각해 보자. 파동은 에너지를 전달하는 현상이라고 했으나 정상파는 위와 같은 제한 조건에 갇혀 더 이상 확산되지 못하는 파동이므로 에너지를 계속 보유하게 된다. 따라서 아주 이상적인 실이 진공 중에서 떤다면,² 그 정상파는 세상 끝날 때까지 그 자리에서 영원히 떨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정상파 주변으로 충만하게 공기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정상파로 인해 요동치는 실은 주변에 있는 공기를 자신과 같은 진동수로 떨게 만드는데 이를 통해 공기에도 정상파를 유도한다. 어떻게? 실이 바깥으로 밀리면 공기도 바깥으로 밀어내어 갑자기 공기의 밀도가 높아진다. 실이 이제 안쪽으로 당겨지게 되면 공기도 안쪽으로 당겨내어 이제 공기의 밀도는 낮아진다. 즉, 공기의 밀도가 높아졌다 낮아졌다를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횡파(橫波, transverse wave)인 실의 떨림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파동인 종파(縱波, longitudinal wave)이다. 아무튼 실의 떨림은 공기의 떨림으로 전이되었으므로 정상파의 에너지는 작아지게 되는 대신에 에너지의 상당수가 공기를 통해 이제 퍼져 나가기 시작한다.
▴ 소리는 종파이다.
이것이 악기 소리의 본질이다. 악기에 유도된 정상파가 공기에 전달되어 형성된 진동이 바로 악기의 소리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악기 소리는 악기 고유의 떨림이 아니라 그로 인해 유도된 공기의 떨림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이것을 전편에서 본 호른보스텔-작스 분류법에 맞춰 해석할 수 있을까?
1. 체명악기, 막명악기, 현명악기 : 물체의 진동이 주변 공기를 진동시켜 음파 생성.
2. 공명악기 : 연주 시에 악기로부터 공기의 진동이 직접 만들어짐.
3. 전명악기 : 전자 신호가 스피커에 도달하면 스피커의 진동판이 진동하고 이것이 스피커 주변의 공기를 진동시켜 음파 생성.
▴ 악기 소리의 전달
소리의 인식은 악기의 소리 발생 과정의 반대 과정으로 일어난다. 공기 중으로 발산되는 음파에 의해 귓속 고막이 진동하게 되고 이 진동이 청소골(聽小骨)에 의해 증폭되며 대뇌와 연결된 청신경을 자극하게 된다. 최종적으로 대뇌는 이 전기 신호를 인식하여 우리가 받아들이는 현상학적 개념인 '소리'를 인지하게 된다.
이제 악기의 소리가 악기 고유의 소리가 아닌 공기의 소리라는 것을 알게 된 독자들이라면 이제 더 이상 고체 물질만이 공기를 진동시키는 물질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 어떤 물질이더라도 최종적으로는 공기만 떨게 만들면 소리가 나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이 세상에는 기존의 상식을 뒤엎는 다양한 실험적인 악기들이 개발되었다.
▴ 고체와 기체가 아닌 액체도 역시 물을 떨게 할 수 있다.
영상에서 연주되는 악기는 물 오르간이라고도 불리는 hydraulophone이다.
▴ 방전을 통해 발생된 전하 역시 공기를 떨게 할 수 있다.
이렇게 연주되는 악기를 통상적으로 plasmaphopne이라고 부른다.
소리의 3 요소
그렇다면 우리가 배운 소리의 3요소를 이제 정상파라는 물리학적 개념에 맞추어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음높이(pitch)를 생각해보자. 음높이란 사람이 인식하는 음파의 진동수로 정의가 된다. 즉 초당 파동이 몇 번 진동하는가에 따라 도레미파솔라시도가 결정된다고 이해하면 좋다. 단위는 헤르츠(Hz)인데 음높이의 기준이 되는 가(A)음의 진동수는 국제적으로 정의되길 440.00 Hz이다. 이보다 진동수가 높아지면 음높이는 올라가고, 진동수가 낮아지면 음높이는 내려가게 된다.
▴ 파동의 진동수와 음높이
그런데 음높이가 같더라도 사람은 모든 악기 소리를 동일하게 인식하지 않는다. 즉 피아노의 A음과 바이올린의 A음은 음높이는 같으나 전혀 동일하지 않은 소리이다. 이것을 음색 혹은 맵시(timbre)라고 부르는데 파동의 경우 기본 진동수는 같더라도 파형(波形, waveform)이 달라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파동의 간섭을 떠올려야 한다. 서로 다른 파동들이 합쳐지면 다른 파장을 가지는 파동을 만들 수 있는데, 이를 달리 말하면 어떤 파동은 서로 다른 기본 사인 파동들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는 말이다. 수학적으로 유식하게 말하면 세상 모든 파동은 서로 다른 진동수를 가지는 무수한 사인 파동들의 선형 조합으로 나타낼 수 있고,³ 이는 푸리에 변환(Fourier transformation)을 통해 해석 가능하다.
▴ 일반 파동의 분해 및 같은 음을 내는 악기들의 서로 다른 파형
마지막으로 세기(loudness)가 있다. 소리의 세기는 사람이 인식하는 음파의 세기로 결정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람이 인식하는 음파의 세기라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사람이 간신히 들을 수 있는 세기인 1×1012 W/m2 를 기준으로 하여 상대적인 시끄러운 정도를 데시벨(dB)이라는 단위로 나타내는데 10배 시끄러울수록 dB이 10씩 올라간다. 예를 들어 지하철 소음에 해당하는 100 dB의 소리 세기는 진공 청소기 소음에 해당하는 80 dB의 소리 세기보다 100배 센 것이다.
이제 소리는 곧 악기로부터 유도된 물리학적인 파동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식했으므로 본격적으로 피아노를 해부해보도록 하자. 그러나 이번 편에서 했던 방식으로, 즉 예술적으로가 아닌 물리학적으로 피아노를 해부해 볼 것이다. 여기서 본 것보다 더 많은 수식이 등장할 것이다.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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