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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물리학 – 1. 악기 분류법

by onekey 2024. 2. 29.
김성수2018-05-20 11:06
추천 56 댓글 0
 

칼럼 연재를 시작하며…

 

2015년 여름 방학 때 모교인 신성고등학교에서 창의융합과정 수업(교양과학) 강의를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부탁 받은 강의의 주제는 '과학철학'이었다. 나는 칼 포퍼(Karl Popper)의 반증가능성(falsifiability) 및 토머스 쿤(Thomas Kuhn)의 패러다임(paradigm)을 강조하며 '과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강의를 3일간 진행했는데, 생각해 볼 거리가 풍부한 내용이었음에는 틀림없다고 생각했지만 수업을 듣는 고등학생 입장에서는 그렇게 재미있는 주제는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2016년 겨울 방학에 고등학교에서 내게 자유 주제로 한 번 더 강의해 줄 것을 부탁했을 때, 고등학생들에게 재미있게 과학 이야기를 해줄 수 있으려면 어떤 주제를 택해야 할 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러다가 든 생각이, 아무리 과학에는 관심이 없어도 음악에는 학생들 모두 관심이 있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파동역학 내용과 음계 및 화성 내용을 엮어서 '음악과 물리학'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진행하기로 결정하였다. 주제가 결정되자 관련 내용들을 검색하고 정리하는 긴 준비 시간이 이어졌는데, 강의 자료를 만드는 데는 풍부한 인터넷 자료들과 더불어 미국에서 구매했던 니콜라스 지오다노(Nicholas Giordano) 교수의 저서 'Physics of the Piano'가 큰 도움을 주었다. 특별히 지난 강의와는 달리 '음악과 물리학' 강의 자료에는 시청각 자료를 최대한 많이 넣었다. 특히 youtube 연주 영상 자료가 많았는데, 이들 영상은 학생들의 호기심 자극 및 이해 증진에 충분한 도움을 주었다.

 

주제가 좀 더 친숙한 덕분인지 강의는 전보다 더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강의가 끝나고 난 뒤 파워포인트 슬라이드 강의 자료를 웹페이지로 편집해서 홈페이지에 올려둬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국문이나 영문으로 된 비슷한 내용을 인터넷에서 무수하게 찾아볼 수 있기에 혹여나 '정보의 바다'에 복제품을 하나 더 만들어 슬쩍 빠뜨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민망함이 없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새로운 시각과 구성을 가지고 만든 자료인만큼 많은 분들이 음악과 물리학에 대한 정보를 보다 쉽게 얻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이렇게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 개인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던 연재물을 하이파이클럽 사이트에 게재하는 것을 허락해 주셔서 알맞게 편집을 하고 다시 퇴고를 한 뒤 이곳 칼럼란에 올리게 되었다. 본래 홈페이지에 올린 글은 총 6편이었으나 하이파이클럽 사이트 칼럼란에는 사이트의 성격에 맞는 글을 추가로 더 작성하여 8편으로 구성하였다.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강의 자료 첫 슬라이드에 써 두었던 강의 개요를 아래에 옮긴다.

 

본 강좌에서는 파동의 물리학을 통해 음악을 연주하는 데 쓰이는 도구인 악기(樂器)가 어떻게 소리를 내고 그 특징이 무엇인지를 고찰하며, 나아가 악기 소리들이 어우러져 만드는 음악(音樂)을 과학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기초적인 수준에서의 음계(音階)와 화성(和聲) 발전의 역사를 다룬다.

 

 

호른보스텔-작스 분류법

 

악기의 사전적인 정의는 '음악을 연주하는 데 쓰는 기구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1 인류 사회는 태곳적부터 음악과 함께 생활해 왔으며, 그 결과 각 지역과 문화별로 다양한 악기들이 발전되어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물론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악기들은 보편적으로 널리 보급되고 알려진 서양 악기들이 대부분이지만, 당장 한반도에서 수천년 동안 우리 민족과 함께 해 왔던 국악기들을 생각해보면, 또 옆나라인 일본과 중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악기들의 생김새와 소리를 생각해보면, 사실상 셀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나게 많은 악기들이 우리 인류와 함께 했다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비록 악기마다 생김새와 음색은 다를지 언정 비슷한 것들은 분명히 있다. 예를 들면 국악기 중 소금(小芩)과 대금(大芩)은 크기만 달랐지 형태와 연주 방식은 비슷했다. 문명권이 달라도 이러한 것들을 찾아볼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서양의 류트(lute)와 동양의 비파(琵琶)는 다른 악기지만 분명 비슷한 것들이었다. 『구약성서』의 「시편」의 경우 라틴어 성경에서 솔터리(psalterio)와 큰 소리 나는 심벌즈(cymbalis benesonantibus)로 기록된 악기가 공동번역성서에서 각각 거문고와 자바라로 무리 없이 번역된 것을 보면,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비슷한 형태와 연주법을 가진 악기들은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 같다. 자연스럽게 비슷한 악기들은 함께 모여 일종의 군(群)을 형성하였고, 서로 다른 악기들이 함께 사용되어 연주 행위가 이뤄질 때 이러한 같은 악기군 내에서의 유사성과 서로 다른 악기군끼리의 차이점은 합주 시 분명 중요하게 고려되었을 것이다. 더욱이 세계화를 통해 서로 다른 문화권의 음악 문화를 접하게 되면서 악기의 교류 및 이해는 전보다 더욱 깊어지게 되었고, 이러한 방식의 음악 발전은 마침내 악기의 분류법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시작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아주 보편적으로 악기를 분류하는 방법은 바로 연주 형태에 따른 것으로 아래와 같다. 이 분류법은 상당히 직관적이기 때문에 이해가 빠르고, 또 유명한 악기들은 아래와 같이 쉽게 분류가 가능하다.

 

1. 현악기(絃樂器, strings) : 현(絃)은 악기줄을 의미한다. 줄을 이용해서 연주. 바이올린, 거문고 등.

 

 

 

▴ 대표적인 현악기인 바이올린

 

 

2. 관악기(管樂器, wind) : 관(管)은 대롱을 의미한다. 속이 비어있는 관을 통해 연주. 플룻, 단소 등.

 

 

 

▴ 대표적인 목관악기(woodwind)인 플룻(좌)과 금관악기(brass)인 호른(우)

 

 

3. 타악기(打樂器, percussion) : 타(打)는 친다는 뜻이다. 물체를 때려서 연주. 팀파니, 징 등.

 

 

 

▴ 대표적인 타악기인 심벌즈(cymbals)

 

 

4. 건반악기(鍵盤樂器, keyboard) : 건(鍵)은 열쇠(key), 반(盤)은 평평한 그릇이나 판(board)을 의미하므로 keyboard의 번역어이다. 손가락으로 치도록 만들어진 건반을 이용해서 연주. 피아노 등.

 

 

 

▴ 대표적인 건반악기인 피아노

 

 

5. 전자악기(電子樂器, electronic) : 전자(電子) 기기를 통해 연주. 전자 바이올린, 전자 키보드 등.

 

 

 

▴ 전자악기 중 하나인 EWI(Electric Wind Instrument)

 

 

그런데 '연주를 하는 형태'의 정의 및 구분이 모호한 것이 문제다. 몇몇 악기의 경우 서로 다른 악기 분류에 다 들어갈 수 있는 문제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아래의 영상을 살펴보자.

 

 

 

▴ Ted Yoder의 해머드 덜시머(Hammered Dulcimer) 연주 영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해머드 덜시머를 현악기로 분류할 것이다. 왜냐하면 줄을 이용해서 연주하는 악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통상적으로 떠올리는 현악기와는 달리 해머드 덜시머의 경우, 양손에 든 막대기로 줄을 내리쳐서 연주한다. 따라서 연주 방식은 타악기에 더 가깝다. 그렇다면 이 악기는 현악기인가, 타악기인가? 혹자는 두 경우가 모두 해당되는 교집합으로서의 타현악기(打絃樂器)라는 새로운 분류를 과감하게 제안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새로운 악기가 발견될 때마다 임시 방편식으로 그때그때 분류를 마구 만들어낸다면, 이것은 조악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헛갈리게 만들기에 충분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좀 더 과학적이고도 체계적인 악기 분류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바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많은 음악학자들이 나서서 악기를 분류하기 시작했는데, 이 분야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두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오스트리아의 민속음악학자인 에리히 폰 호른보스텔(Erich von Hornbostel)과 독일 태생의 음악학자인 쿠르트 작스(Curt Sachs)였다. 이들은 1914년에 공동으로 『자이트쉬리프트 퓌어 에트놀로기(Zeitschrift für Ethnologie)』라는 저널에 향후 악기 분류법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아주 유명한 논고를 실었다. 이들의 연구를 통해 악기에 대한 연구는 악기학(organology)이라는 세부 분류명을 가지고 독자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 에리히 폰 호른보스텔(좌) 및 쿠르트 작스(우)

 

 

이들의 분류법은 악기가 소리를 내는 원리, 즉 발음(發音) 원리에 초점을 두었다.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연주하는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고, 악기 그 자체만 관찰하자는 것이었다. 이것은 악기의 소리를 '인간과 물체 사이의 상호작용'이라는 관점보다는 '물체에서 발생하는 물리학적인 현상'이라는 관점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성립된 분류법을 호른보스텔-작스 분류법이라고 하며 이에 따라 악기를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1. 체명악기(體鳴樂器, idiophones) : 체(體)는 악기 자체를 의미하며 명(鳴)은 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즉 체명악기란 3차원의 형태를 가지는 악기 자체가 소리를 발생시키는 원리로 작용하는 악기를 말한다. 영문명의 'idio-'는 '자기 자신의'라는 뜻을 가진 접두사이며 phone은 소리의 의미를 가진 의미 단위이다. 아래 그림에서 나타낸 마림바(marimba)는 비록 막대기로 나무 막대기를 두드려서 소리를 내는 것이지만, 이러한 연주 방식과 무관하게 마림바의 악기 소리는 바로 악기 자체인 나무 막대기에 충격이 가해진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마림바는 체명악기에 속한다.

 

 

 

▴ 마림바

 

 

2. 막명악기(膜鳴樂器, membranophones) : 막(膜)은 말 그대로 얇은 2차원 필름을 말하며 영문 이름의 'membrano-'는 멤브레인(membrane)에서 파생된 접두사이다. 막명악기에는 악기를 구성하는 요소 중 막이 필수적으로 포함되어 있으며, 이 부위에 충격이 가해진 결과 소리가 발생하는 악기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드럼 악기가 막명악기에 속한다.

 

 

 

▴ 남미의 전통 막명악기인 봉고(bongo)

 

 

3. 현명악기(絃鳴樂器, chordophones) : 줄과 같이 1차원적인 형상을 가지고 있는 구성 요소가 소리를 발생시키는 경우 현명악기로 구분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때 줄을 어떻게 연주하는가는 고려하지 않는다. 앞에서 소개한 현악기의 대부분은 바로 현명악기에 속한다. (그러나 모든 현명악기가 현악기인 것은 아니다.) 한편, 영문 이름의 'chordo-'는 현을 의미하는 'chord'에서 파생된 접두사이다. 바이올린보다 크기만 조금 큰 듯한 비올라(viola)는 대표적인 현명악기이다. 또한 앞에서 소개한 해머드 덜시머는 현에서 소리가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명악기에 해당한다.

 

 

 

▴ 비올라

 

 

4. 기명악기(氣鳴樂器, aerophones) : 앞서 소개한 체명악기, 막명악기, 현명악기는 각각 3차원, 2차원, 1차원의 고체 물질이 소리를 발생시키는 악기였다. 기명악기는 비록 악기는 고체로 구성되어 있으나 소리를 발생시키는 원인은 그 내부에 존재하는 공기에 있다. 대체로 취구(吹口)를 통해 주입된 공기가 악기 내부에서 진동하면서 소리를 만들기 때문에 기존 분류법의 관악기에 포함되는 악기들은 대부분 기명악기에 속한다. (하지만 모든 기명악기가 관악기인 것은 아니다.) 아래 사진에 나와 있는 오보에(Oboe)는 가느다란 취구를 통해 숨을 불어넣고 악기 표면에 뚫린 구멍에 손을 다양하게 갖다 댐으로써 다양한 음의 소리를 발생시키므로 기명악기에 해당한다.

 

 

 

▴ 오보에

 

 

5. 전명악기(電鳴樂器, electrophones) : 전명악기는 원래 호른보스텔-작스 분류법에는 없었다. 그러나 과학 기술이 발달하면서 전자 기기들을 이용한 악기들이 크게 발전하였고, 고전적인 의미의 기존 악기들보다 더 다양한 소리 발생과 표현이 가능하다는 장점 덕분에 20세기 들어와 크게 각광받기 시작했다. 전명악기의 경우 악기에 가한 물리적 자극을 전기적 신호로 바꾼 뒤 스피커를 통해 다시 물리적인 자극으로 바꾸는 시스템이 악기 내에 내장되거나 혹은 그러한 기능을 하는 기기와 연결되어 있어야만 소리를 발생시킬 수 있다. 기존 분류법의 전자악기는 대부분 전명악기에 해당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 전자 키보드 컨트롤러

 

 

그런데 위의 다섯 분류는 대(大)분류에 해당하며 세부적으로 하위 분류를 여럿 둘 수 있다. 예를 들어 캐스터네츠(castanets)는 체명악기 중에서도 타격(concussion)에 의한 체명악기로 분류될 수 있으며, 그 중에서도 속이 빈 용기(vessel) 타입의 타격 체명악기로 더 세밀하게 분류할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전세계에 존재하는 많은 악기들을 하나의 분류법 안에서 체계적으로 분류할 수가 있었고, 덕분에 호른보스텔-작스 분류법이 처음 제안된 이후 100년남짓 된 지금에도 여전히 몇 차례의 개정을 거치며 널리 애용되고 있다. 비록 이 분류법이 지구상에 현존하는 가장 흠 없는 분류법인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가장 보편적이고도 체계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건반악기의 분류

 

기존 분류법에서는 건반악기로 분류되던 여러 악기들이 호른보스텔-작스 분류법에서는 그들의 발음 원리에 따라 모두 앞서 소개한 다섯 개의 악기군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이 건반 악기들을 올바르게 호른보스텔-작스 분류법으로 분류할 줄 안다면, 이 분류법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 피아노(piano) : 피아노는 가장 대표적인 건반 악기로 원래 이름은 피아노포르테(pianoforte)인데 피아노는 여린 소리를, 포르테는 센 소리를 의미한다. 3편에서 소개할 것이지만, 이러한 이름이 붙은 이유는 건반을 누르는 힘을 조절함으로써 소리의 강약을 표현해낼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기 때문이다. 건반을 누를 때 연결된 해머가 피아노줄을 때리며 이로 인해 소리가 발생한다. 따라서 피아노는 현명악기이다.

 

 

 

▴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의 「골드베르크 변주곡(Goldberg Variations)」, 글렌 굴드(Glenn Gould, 1932-1982)의 연주

 

 

• 하프시코드(harpsichord) : 하프시코드는 피아노의 전신(前身)에 해당하며, 건반을 누를 때 연결된 플렉트럼(plectrum)이 움직이면서 현을 뜯기 때문에 소리가 나간다. 따라서 하프시코드 역시 현명악기로 분류된다.

 

 

 

▴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의 「골드베르크 변주곡(Goldberg Variations)」, 안드레아스 슈타이어(Andreas Staier, 1955-)의 연주

 

 

• 오르간(organ) : 교회 음악에서 주로 사용되었던 오르간은 그 크기와 웅장함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오르간에는 송풍기가 장착되어 있어 쉼없이 바람을 오르간의 관으로 불어넣는데, 건반을 누르게 되면 관 내부의 공기가 진동하면서 소리를 발생시킨다. 따라서 오르간은 기명악기에 해당한다.

 

 

 

▴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의 「D단조 토카타와 푸가(Toccata and Fugue in D minor)」, 한스 안드레 슈탐(Hans-André Stamm, 1958-)의 연주

 

 

• 첼레스타(celesta) : 첼레스타라는 악기 이름은 '천상(天上)의'라는 뜻을 가진 프랑스어 celeste에서 왔다. 1886년에 프랑스의 악기공인 오귀스트 뮈스텔(Auguste Mustel)이 발명했으며, 외관은 피아노와 동일하게 생겼다. 그러나 첼레스타의 소리는 피아노의 그것과는 현격하게 다른데, 건반을 누르면 연결된 해머가 금속판을 때리면서 소리가 발생한다. 이러한 원리는 글로켄슈필(glockenspiel)이나 실로폰(xylophone)과 비슷하며 이는 곧 체명악기의 범주에 든다.

 

 

 

▴ 표트르 차이콥스키(Пётр Чайковский, 1840-1893)의 「호두까기 인형(Щелкунчик)」, 베를린 필하모닉 관현악단(Berliner Philharmoniker)의 연주, 오자와 세이지(小澤征爾)의 지휘

 

 

• 옹드 마르트노(ondes Martenot) : 1928년에 프랑스 음악가이자 발명가인 모리스 마르트노(Maurice Martenot)가 발명한 악기로 프랑스어로 ondes는 파동(波動)을 의미한다. 옹드 마르트노에는 진공관 발진회로가 연결되어 있어 건반을 누르게 되면 축전기의 용량을 변화시켜 다양한 음파를 발생시킬 수 있으며 이렇게 발생된 음파는 스피커를 통해 소리로 변환된다. 그러므로 옹드 마르트노는 전명악기로 분류된다.

 

 

 

▴ 올리비에 메시앙(Olivier Messiaen, 1908-1992)의 「튀랑갈릴라 교향곡(Turangalîla-Symphonie)」 10악장, 영국 국립 청소년 오케스트라 (National Youth Ochestra)의 연주

 

 

• 키보드 컨트롤러(keyboard controller) : 생각해볼 필요도 없이 키보드 컨트롤러는 대표적인 전명악기이다. 다양한 대중 음악 및 전자 음악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 리턴 투 포에버(Return to Forever, 1972-)의 「Spain」 피날레 부분 리허설 장면. 칙 코리아(Chick Corea, 1962-)의 건반 연주

 

 

이제 악기와 발음 원리에 대해서 간단하게 살펴 보았으니, 2편에서부터는 본격적으로 악기에서 발생시키는 소리란 대관절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파동 물리학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그런데 잠깐. 세상에는 호른보스텔-작스 분류법으로 분류할 수 있는 수백, 수천가지의 악기들이 있다. 만일 이 악기들의 원리와 물리학을 하나하나 다 다룬다면 아마 저자가 죽을 때까지 웹페이지를 편집해도 그 내용을 여기에 다 담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본 칼럼에서는 일종의 모델 악기로서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악기인 피아노를 우선 선택하였고, 이후의 이야기는 대체로 피아노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갈 것이다. 피아노 연주를 해본 독자라면 많이 난해하지 않을 것이지만, 피아노를 전혀 연주해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피아노에 관한 이야기가 생소할 수 있다. 그러나 피아노를 몇 년간 연주한 사람들조차 피아노의 구조와 발음 원리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 많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부디 모든 독자에게 그리 지루하지 않은 여행이 되길 바라며.

 

 

-김성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