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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역전의 앰프 바쿤 5522P
노병은 죽지 않는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이런 말을 쿨하게 남기고, 맥아더 장군은 은퇴했다. 영어로 쓰면, “Old soldiers never die. They just fade away.” 아무튼 세월에 장사가 없고, 언젠가는 “그날”이 온다. 그럼에도 끈질기게 자신의 일을 놓지 않는 모습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그렇다고는 해도 최근에 참 많은 별이 떨어졌다. 록과 팝을 보면, 레너드 코헨, 조지 마이클, 데이빗 보위, 후랑소와 아르디 등이 각각 영면했다. 오디오쪽에도 데이빗 윌슨부터 팀 데 파라비치니, 미우라 아츠시 등이 한 시대를 마감했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무대에 오르는 폴 매카트니, 밥 딜런, 믹 재거 등의 존재가 각별하다. 데이빗 길모어도 정정하고, 에릭 클랩턴도 여전히 반짝거린다. 이들을 보면 가끔 뭔가가 울컥해진다.
물론 이들과 나는 세대가 다르다. 모두 내 아버지뻘에 해당한다. 이 글을 읽은 젊은 분들에겐 할아버지로 다가올 수 있다. 이들이 꿋꿋하게 시간의 공격을 버텨내는 모습 자체가 감동이라 하겠다.
아직도 창조력이 샘솟는다.
개인적으로 야구를 좋아하고, 찬반양론이 엇갈리기는 하지만, 김성근 감독님을 존경하고 있다. 이제 은퇴하고 손주들이나 볼까 하다가, 최강야구단에 합류했을 땐 그저 하나의 해프닝 정도로 생각했다. 이 야구단에서 활약중인 정근우, 박용택, 이대호 등은 다시 현역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도 받았지만, 어차피 예능 프로가 아닌가?
하지만 김감독은 절대로 호락호락하지 않다. 게임 하나하나가 마치 코리안 시리즈의 마지막 7차전과 같은 자세로 임할 뿐 아니라, 이미 은퇴한 선수들을 계속 다그치고 있다. 그 와중에 계속 신인들을 발굴해서 결국 몇 명의 선수는 프로야구단에 보내기까지 했다. 한때 그는 SK 감독직에서 물러났을 때, 고교 야구 팀을 지도한 적이 있다. 야구가 있으면, 그 주체가 고교팀이건 OB 팀이건 예능이건 중요하지 않다. 어느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면 되니까.
오디오쪽으로 보면, 바쿤을 주재하는 나가이 아키라상이 그렇다고 본다. 첫 대면의 시기도 벌써 20년이 넘는데, 여전히 신제품이 나오고 새로운 설계가 이뤄지고 있다. 오디오 한 길을 꾸준히 걸어오면서, 그와 관련된 다양한 장르를 섭렵한 가운데, 이제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욱 완성도가 높고, 음악성이 풍부한 제품들이 나오고 있다. 어찌 보면 지금이 전성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인생 역전의 앰프 좀 만들어줘요.
이렇게 오랜 경력과 기술을 자랑하는 바쿤이지만, 그 노력과 열정에 비해 결과물은 결코 화려하지 않았다. 어느덧 바쿤 창업이 33년째에 이르고, 한국에 소개된 것은 23년이 되었으며, 바쿤매니아에서 전적으로 핸들링한지 13년에 다다르고 있다.
자, 이제는 뭔가 한 방이 나올 때가 되지 않았을까? 바쿤매니아는 과감하게 나가이 상에게 주문을 했다. 인생 역전의 앰프를 하나 만들어주세요.
이런 오더를 한 적은 별로 없어서, 나가이 상이 단단히 기합이 들었나 보다. 이런 이야기를 꺼낸지 4년이 흘렀는데, 그 기간 동안 꾸준히 새로운 착상을 하고, 계속 설계를 바꾸고, 디테일을 고치면서 드디어 이번에 그 결과물이 나왔다. 바로 이번 회의 주인공 AMP-5522P다!
사실 최근 몇 년간 100만원대 언저리에서 여러 제품들이 출시되면 애호가들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모두 5522의 개발 과정에서 나온 기술들이 하나씩 들어갔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이번에 그 완결판이 나온 것이다.
그간 정말 고생만 하면서 브랜드를 알렸지만, 금전적인 소득은 별로 없었다. 오히려 고생만 바가지로 했다. 그러므로 이번 제품을 통해 누구나 납득할 만한 음질과 퀄리티로 많은 사랑을 받자, 라는 점에서 인생 역전의 앰프라고 지칭하고 있다. 정말 본 제품으로 홈런 한 방 날렸으면 좋겠다.
5522P와 5522M의 차이
현재 5522는 두 가지 버전이 있다. 5522P와 5522M이 그 주인공이다. 5522P는 일본 내수용으로 판매되고 있는 모델로, 3개의 RCA 입력단과 사트리 링크 2가 장착되어 있다. 반면 5522P는 우리나라를 위해 일종의 업그레이드가 이뤄진 모델이다. 입력단을 보면 XRL과 RCA와 사트리 링크 2가 각각 하나씩이다. 이 과정에서 XLR 변환 회로가 추가되는 바람에 제작비가 더 상승했다고 한다.
사실 우리나라 애호가들은 하이엔드 제품이라고 하면, 일단 XLR 단자가 장착되어야 한다. 이 단자 값만 해도 만만치 않지만, 일단 이런 입력단이 없으면 높은 점수를 주지 않는다. 덕분에 일본 내수용보다 더 급수가 높은 5522P가 탄생한 셈이다.
드디어 리모컨 채용
그간 일부 애호가들이 불만을 표했던 것이 바로 리모컨이다. 아무튼 편하게 소파에 앉아 리모컨으로 볼륨과 셀렉터를 조작하는 데에 익숙한 터라, 미세 조정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는 것은 당연히 불편하다. 드디어 본격적인 변신이 이뤄진 것이다.
하지만 리모컨 자체의 개발은 실제로 심각한 문제다. 혹 나중에 분실할 경우, 새로 장만해야 하는 부담도 따른다. 그래서 일단 제안한 것이 애플의 리모컨이다. 이것을 호환으로 쓰게 만들었다.
사실 이럴 경우, 리모컨의 분실은 그리 큰 문제가 안 된다. 또 사면 되니까. 가격도 그리 높지 않다.
좀 더 자세히 내용을 살펴보면, 셀렉터와 볼륨은 당연하고, 뮤트 기능이 있다. 이것은 리모컨 중앙에 있는 플레이 버튼을 누르면 된다. 파워는 스탠드 바이 기능을 한다. 메인 스위치는 제품 뒷면에 따로 장착되어 있으므로, 스탠드 바이 기능을 통해 깨우거나 재우는 것이다.
한편 이렇게 메인 스위치를 뒤에 배치한 경우, 대부분은 그냥 스탠드 바이 상태로 놔두라는 의미가 있다. 네임 앰프가 대표적이다. 미약하지만 일정한 전기가 흐르게 하는 것이 실제로 작동을 했을 때 빠르게 깨어나서 정상 상태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또 온/오프 시 발생하는 위험이 실제로 앰프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이렇게 리모컨을 통해 스탠드 바이 기능을 활용하는 점이 매우 고무적으로 다가온다.
히비키가 뭔가?
제품 상단 우측에 보면 향(響)이라는 한자가 보일 것이다. 이것은 울림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한편으로 명성이라는 의미도 갖고 있다고 한다. 일본어로 읽으면 히비키가 된다. 왜 히비키인가?
여기서 잠깐 이 단어가 낯익은 분들이 있을 것이다. 애주가라고 한다면, 바로 산토리 위스키의 상급 모델 히비키가 역시 같은 한자를 쓰고 있다.
산토리 위스키의 특징은 향이 좋다는 점이다. 또 술맛 자체가 공격적이지 않아, 여성도 스트레이트로 마실 만하다. 현재 산토리는 하쿠슈, 야마자키, 히비키라는 세 가지 모델을 상급에 두고 있다. 하쿠슈와 야마자키는 싱글 몰트, 히비키는 블렌디드라는 점이 다르지만, 모두 명주에 속한다. 단, 구입이 너무 어려워 간사이 공항에 가서 5만엔을 내놓고 배팅을 해야 한다. 운이 좋으면 18년산짜리를 당첨받을 수 있다고 한다.
한편 산토리는 본사가 오사카에 있다. 그래서 오사카의 관문인 간사이 공항에 이런 특별한 이벤트 부스를 만든 것이다.
아무튼 이런 히비키를 굳이 앰프 설계의 프로젝트에 네이밍으로 사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히비키 회로
현재 7순을 넘긴 나가이 상이지만, 오히려 창작력이 왕성해서 현재 절정의 기량을 뽐내는 중이다. 그 와중에 사트리 연구소를 통해 사트리 회로가 선을 보였고, 이게 발전해서 히비키 회로로 진화한 것이다.
그 내용을 체크하면, 최신의 증폭단 기술이라 보면 된다. 기존에는 사트리 증폭단이 쓰였지만, 여기에 쓰이는 버퍼 회로를 제거하면서 보다 심플하고, 하이 스피드를 추구한 내용으로 완성된 것이다. 이 히비키 회로는 벌써 2세대에 이르며, 무려 4년의 개발 기간이 소요되었다.
그 와중에 여러 작은 모델들이 지속적으로 출시되었는데, 이 회로의 개발 과정에서 나온 제품들이라 보면 된다. 드디어 본 기에 와서야 찬란하게 히비키 기술이 만개한 것이다. 참고로 히비키 회로에 투입되는 IC는 채널당 1개씩 사용된다고 한다.
다양한 기술의 향연
한편 본 기에 투입된 것중 HBFBC라는 버퍼 회로가 있는데, 이것은 입력단에 투입되고 있다. 커다란 기판을 작은 칩 안에 구현했다고 보면 된다. 이것은 채널당 2개씩 사용되고 있다. “Hybrid FET input Buffer”의 약자다.
전원부를 보면, 전통적인 리니어 방식이 아닌 SMPS를 사용해서 눈길을 끈다. 리니어 방식에는 전원 트랜스가 필수로 따라붙는 바, 여기서 발열이나 노이즈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반면 SMPS는 그런 단점이 없는 데다가, 새로 설계된 모듈을 넣어서 음질 면에서도 뛰어난 결과물을 얻고 있다. 단, 채널당 하나씩 총 두 개를 장착해서 전원부를 튼튼하게 구성하고 있다.
70W의 출력!
본 제품은 2015년에 나온 AMP-5521의 후속기다. 이 제품이 8오옴에 35W의 출력을 갖춘 터라, 하이엔드 제품으로 개발된 5522는 최소한 50W는 되어야 한다고 봤다. 그러나 최신 기술을 듬뿍 넣은 결과, 무려 70W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는 점은 무척 고무적이다.
사실 5522P는 기존의 바쿤 제품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원래 바쿤의 라인업에는 소출력 앰프 못지 않게 대출력 제품들도 있었지만, 그간 주로 소출력 중심으로 소개된 바 있다.
그러다 점차 애호가들의 층이 두터워지고, 하이엔드 유저들의 관심도 끌면서, 점차 대출력 제품들도 주목받는 상황이다. 그 가운데 본 기가 런칭된 것은 여러모로 시의적절하다. 개인적으로 바쿤과 윌슨은 조합이 좋다고 보는데, 실제로 최근에 나온 더 와트 퍼피와 기막힌 매칭을 보여줬다. 국내에 윌슨 팬들이 많은 만큼, 이번 기회에 본 기에 관심을 가져봐도 좋을 듯싶다.
3극관과 같은 소리
언젠가 바쿤의 설계 철학에 대해 알아본 적이 있는데, 이런 답이 왔다. 3극관 싱글 앰프를 기준으로 만든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논 피드백 회로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진공관 앰프 애호가들에게 위의 두 가지 사항은 일종의 규범과도 같다. 이 원칙에서 벗어나면 바로 옐로 카드를 발부할 정도다.
한편 이런 철학을 갖고 만들기 때문에, 그간 꾸준히 바쿤의 제품들이 사랑받지 않았나 싶다. 특히 본 제품은 로 레벨의 볼륨에서도 밸런스가 무너지지 않는 특징이 있다. 희한하게도 저역이 살아있고, 전망이 좋다. 늦은 밤에 조용히 음악을 감상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라면, 이 제품의 진가가 잘 드러나지 않을까 싶다.
다양한 시청
그간 나는 5522P를 다양한 매칭으로 들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최근에 나온 더 와트 퍼피다. 실제로 풀레인지 쇼에 선을 보였는데, 정말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낸 바 있다. 이 부스에 대해선 할 말이 많지만, 그것은 나중에 다시 소개하는 것으로 하고, 이번에는 최근에 모 오디오 숍에서 들은 내용을 정리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이번 시청에서는 더 와트 퍼피보다 급수가 높은 윌슨의 알렉시아 V를 걸었다. 얼핏 말이 안되는 조합같다. 스피커 가격이 앰프의 11배에 이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큰 공간을 낭랑하게 울리는 대목에서 과연 나가이 상이 단단히 칼을 갈고 나왔구나 싶었다. 참고로 소스기는 dCS의 엘가 플러스와 베르디 등을 활용해서 CD와 SACD를 골고루 들었다.
첫 트랙은 LA 4의 <Carinhoso>. 웨스트 코스트 재즈의 기둥이라 할 수 있는 로린도 알메이다의 기타와 버드 생크의 알토 색스가 빛을 발하는 트랙이다. 네 명의 멤버 모두 노익장을 자랑하지만, 제대로 숙성된 빈티지 와인과도 같은 기교와 하모니를 들려준다. 왼쪽에는 기타, 오른쪽에는 알토가 각각 포진한 가운데, 정말 유려한 프레이징이 펼쳐진다. 화려하면서 짜임새가 촘촘한데, 그렇다고 숨이 막힐 정도는 아니다. 약간 넉넉하면서, 유머 감각도 잃지 않고 있다. 더블 베이스가 빠르고 정교하게 재생되는 대목에서 충분히 스피커를 핸들링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두 번째로 들은 것은 아르헤리치가 연주한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1악장>. 일단 넓은 스테이지에 다양한 악기들이 촘촘히 엮여 있다. 그 앞에 화려하게 프레이징하는 피아노가 보인다. 젊은 시절에 한껏 미모를 뽐냈던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긴 머리를 휘날리며 질풍노도처럼 몰아치는 연주가 여축없이 드러나고 있다. 저역의 반응이 빠르면서 펀치력이 좋고, 적절한 온기를 머금은 음색은 마치 아날로그를 듣는 듯 자연스럽다.
이어서 야마모토 츠요시가 연주한 <Misty>. 피아노 트리오의 편성으로, 내공이 풍부한 야마모토의 임프로바이제이션이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 전체적으로 투명하고, 디테일이 살아있으며, 출중한 리듬감을 자랑한다. 더블 베이스의 라인이 분명하게 보이고, 심벌즈의 터치가 우아하게 펼쳐진다. 피아노는 화려한 듯하지만, 음 하나하나에 혼이 담겨 있다. 아티스트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고 있다.
마지막으로 에릭 클랩턴의 <Nobody Knows When You’re Down and Out>. 최근에 발표된 작품으로, 그와 평생을 함께 한 노장들과 여유만만한 세션을 펼치고 있다. 마치 빈티지 와인처럼 농익은 음이 나온다. 특히 아직도 힘이 넘치는 보컬에 명징한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는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정말 힘들이지 않고 스피커를 구동해서 최상의 결과물을 얻고 있다. 무위자연의 경지라고나 할까? 바쿤의 매직은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PROS & CONS
PROS : 본격적인 하이엔드용으로 개발된 제품치고는 가성비가 상당하다. 특히, 윌슨 오디오와 조합이 좋다. 클래식의 투명하면서 감칠 맛나는 음색은 3극관 싱글 앰프를 연상시키지만, 록이나 재즈에서 강력하게 저역을 드러내는 대목에선 일종의 야성미도 느껴진다.
CONS : 그간 소출력 바쿤 제품을 써온 분들에게는 가격적으로 부담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나중에 하이엔드로 올라간다고 할 때, 이런 제품의 존재가 얼마나 귀중한지는 쉽게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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