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진공관 앰프 입문
입문자들 중에서 진공관 앰프에 관심이 있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켜놓았을 때 아련하게 불빛이 보이는 것도 아름답고, 트랜스나 캐패시터 등이 노출되어 있는 고풍스런 느낌도 유별나며, 주위에서 들리는 바로는 소리도 부드럽고 힘도 좋다고 한다. 게다가 일반인들 중에는 사용하는 사람이 극히 드물어서, 진공관 앰프를 사용하면 단번에 오디오를 좀 하는 매니아처럼 보일 것 같다. 하지만 입문자들이 막상 진공관 앰프를 구입하려하면 쉽지가 많다. 진공관 수명이 다 하면 어떡하지? 진공관을 교체해야 한다던데… 잡음이 많다던데… 출력이 작아서 내 스피커와 맞을까 등등…
하지만,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진공관 앰프의 인기는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비슷한 가격대의 중급 앰프에서 반도체와 진공관 앰프를 비교하면 만듦새나 소리에서 가격대 성능비, 나아가 가격대 만족비가 매우 높은 진공관 앰프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게다가 조금만 익숙해지면, 진공관을 바꿔 꼽음으로써 소리의 변화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진공관 앰프를 사용해보고 싶지만,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입문자들을 위해 진공관 앰프의 전반적인 내용에 대해 알아보도록 한다. 진공관 앰프, 결코 어렵지 않다.
1. 열과 충격, 습기에 조금의 관심을
당연하지만 진공관은 트랜지스터나 FET 같은 반도체 대신 진공관을 출력 소자로 사용한 것이다. 그런데 반도체건 진공관이건 출력 소자로 사용되어 전류가 흐르면 반드시 열을 내게 되어 있다. 트랜지스터나 FET는 납작하게 생겨서 열을 방출시키는 금속 판(방열판)에 부착하기 쉬워서, 전류가 많이 흐르는 대출력 앰프나 A급 증폭 방식의 앰프도 열을 방출시키기가 비교적 쉽다. 하지만 진공관은 전구처럼 생겼으므로 주위 공기로 열을 식힐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반도체와는 달리, 진공관은 먼저 켜줘야 증폭 작용을 시작한다. 필라멘트(히터)를 켜서 빨갛게 달궈저야만 전기 신호를 증폭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진공관 앰프는 소출력이라도 열이 많이 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열이 잘 방출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진공관의 수명이 짧아지고 고장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지며 잡음이 생길 수도 있다.
진공관 앰프의 열을 방출시키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창밖에서 뜨거운 햇빛이 내리 쪼이는 환경을 피한다던가, 주위에 열원을 배제하는 것이 첫번째 할 일이다. 뜨거워진 공기는 위로 올라가므로 진공관 앰프 위에 아무 것도 두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주위가 꽉 막힌 오디오 랙에 두는 것은 금물이며, 뒤와 옆이 뚫려 있는 경우라면 앰프 윗공간이 어른 한 뼘 이상 충분히 떨어져 있다면 괜찮다. 음악을 듣는 시간이 길수록 방열 대책은 중요해지는데, 열을 방출하기 어려운 환경에 부득이하게 설치해야 한다면 작은 팬 같은 것을 돌려서라도 공기 순환을 시켜야 한다.
진공관 앰프는 적절히 열이 방출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상당히 뜨겁다. 하지만 백열전구가 그런 것처럼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 혹시 진공관이 뜨거워지는 것이 걱정되어 물티슈같은 것으로 닦아내서는 절대 안된다. 진공관이 파손되거나 진공관에 따라 감전의 위험이 있다. 진공관은 적당히 열을 받아야 제 소리를 낸다고 생각하자(사실이다).
한편 진공관은 진동이나 충격에 약하다. 유리 제품이라 깨지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진공관은 형번에 따라 내부 전극들이 매우 가깝게 위치된 것도 있고, (진공관을 켜는) 히터는 백열 전구의 필라멘트와 유사하다. 진공관 앰프를 켜놓고 진공관 앰프를 툭 쳐보면 스피커에서 진공관의 필라멘트가 흔들리는 소리가 작게 들리는 경우가 있을 정도다. 그래서 진공관 앰프 밑에 스파이크를 받치거나, 흡음판 등을 대면 소리가 바뀌는 경우도 많다. 어쨌거나 진공관 앰프는 흔들거나 심한 충격을 주면 파손될 수 있고, 고장을 일으킬 수 있음을 유의하자. 진공관 앰프는 이 점에서는 확실하게 반도체 앰프에 불리하다고 할 수 있다.
습기는 모든 전자제품의 적이라고 할 수 있다. 진공관도 예외는 아닌데, 특별한 대책은 필요없다. 다만 장마철 같이 습한 계절에는 가끔씩 앰프를 켜두는 습관을 갖는 것이 좋다. 어떤 전자 제품이던지 오래도록 전원을 넣지 않고 방치하는 것은 오히려 고장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진공관 앰프건 인티앰프건 가끔 켜주고 셀렉터나 볼륨을 몇 번 돌려주는 것만으로도 좋은 컨디션을 유지시킬 수 있다.
진공관 앰프는 생긴 모양 때문인지, ‘낡았다’, ‘위험하다’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오래되어 낡은 진공관 앰프도 정상 동작한다면, 안정된 동작을 발휘한다. 예컨대, 아주 오래된 반도체 앰프는 경우에 따라(DC앰프) 고장이 나면 스피커를 손상시킬 수도 있는 반면, 진공관은 그럴 일이 거의 없다고도 할 수 있는 수준이다. 진공관 앰프에는 출력 트랜스라는 것이 있어서 아무리 앰프가 고장나더라도 스피커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고 시장에는 1960년대에 발매된 진공관 앰프들이 여전히 거래되는 것이다. 다만 반도체건 진공관이건 너무 오래된 제품은 내부 캐패시터의 열화나 기기 상태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므로 입문자들에게 권하지 않는다.
(2) 진공관의 수명과 교체
2. 진공관의 수명은 길다
입문자들 중에는 진공관이 소모품이고 따라서 이를 교체하는 것이 번거로워서 진공관 앰프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진공관의 수명은 생각보다 길다. 30년 가까이 이런 저런 진공관 앰프를 사용하면서, 진공관을 갈아 본 기억은 불과 수차례에 불과하다. 그 수차례 중에서도 실수로 진공관을 깨뜨렸다거나(뜨겁게 달궈진 진공관은 땀 한방울이 떨어져도 파손될 수도 있다), 더 좋은 소리를 듣고 싶어서 고급관으로 교체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바꿈질을 자주 하지 않는 주변 애호가들의 경우를 보면, 신품 구입후 3년 ~ 5년 후에야 진공관 교체를 고려하는 듯하다. 5년 후에도 교체하지 않는 케이스도 적지 않다.
진공관의 수명을 길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켜고 끄는 것을 자주 하지 않는 것이 우선이다. 자주 켜고 끄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은 비단 진공관 앰프 뿐아니라, 반도체 앰프를 포함하여 어떤 전자제품이건 통용되는 진리다. 켤 때와 끌 때는 전류가 갑자기 흐르거나 갑자기 끊기므로 부품들은 미세하나마 충격을 받게 된다. 그래서 잠시 화장실에 가기 위해 앰프를 끄거나 한두 곡만을 듣기 위해 앰프를 켜는 일은 피하도록 하자. 한 번 켰으면 최소 30분 이상은 켜두는 습관을 가지는 것이(껐을 때도 마찬가지) 기기의 수명에 큰 도움이 된다.
한편, 진공관은 품질의 편차가 매우 큰 부품이다. 제작사에 따른 가격 차이가 매우 크며, 같은 회사에서 만든 같은 형번의 진공관들이라도 차이가 작지 않다. 아주 저급한 진공관은 적당한 사용환경에서도 수명이 짧을 수 있고, 돌발적인 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 예컨대, 몇 달간 음악을 잘 들었는데 갑자기 앰프에서 연기가 나면서 고장이 날 수도 있다. “불이다!” 라고 호들갑 떨지 말자. 진공관 앰프를 오래도록 사용하면서 이 진공관, 저 진공관을 경험하다보면, 특히 30~40년된 낡은 중고 앰프를 사용하다보면 대개 한두번은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이런 현상은 진공관으로 많은 전류가 흐르면서(진공관이 순간적으로 확 달아오른다) 앰프 내부에서 저항이나 캐패시터가 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런 사고 때문에 스피커가 상하거나 다른 문제가 생겼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리고 이런 고장은 전문점에서 어렵지 않게 수리가 가능하다.
진공관의 수명은 진공관 내부에 발라진 은회색의 게터의 상태로 대략 짐작할 수 있다. 처음에는 선명하게 은회색으로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투명하게 사라지거나 검은색으로 변색된다. 진공관의 수명은 메이커에 따른 구조의 차이나 진공관에 얼마나 높은 전압을 걸리는지, 또는 얼마나 자주 음악을 들었는지나 주위 환경에 따라 변하므로 ‘몇 시간이다’라고 획일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지만, 생각보다 무척 길다는 이야기는 분명히 할 수 있다.
3. 진공관의 교체
비록 처음이라고 하더라도, 진공관을 교체하는 것은 무척 쉬운 일이다. 혹시 잘못 꼽아서 앰프가 터지지나 않을까 걱정하지는 말자. 진공관의 핀은 가운데 가이드가 있거나, 핀 배치를 비대칭으로 하여 오직 한 방향으로만 끼울 수 있지, 결코 잘못 끼울 수가 없게 되어 있다. 즉, 같은 형번의 진공관을 구입하여 꼽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다만 ‘고정 바이어스’ 방식의 진공관 앰프는, 진공관을 갈아 끼운 다음, 테스터나 표시창을 보면서 반고정 저항을 돌려 바이어스 전압을 맞춰 줘야 하는 수고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 또한 한 번만 해보면 어렵지 않은 일이다. 테스터가 없다면 하나 장만하도록 하자. 오디오하는 집에 테스터가 없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다. 요즘 발매되는 대부분의 진공관 앰프는 ‘자동 또는 셀프 바이어스’ 방식이므로 그저 갈아 끼우는 것으로 끝이다.
더불어 1년에 단 한번이라도, 진공관을 뽑았다가 다시 꼽아주도록 하자. 진공관의 핀은 앰프의 소켓과 접촉하여 연결되므로 이물질이 끼어들거나 부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 몇번 뽑았다 꼽았다 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한 청소가 된다. 이 때 진공관의 핀에 접점 개선제 같은 것을 발라주면 소리가 맑아지고 또렷해지는 등 소리를 개선시킬 수 있다. 고정식 바이어스 방식의 진공관 앰프라면 하나씩 뽑았다가 꼽아서 원래의 위치를 변경하지 않도록 하자. 물론 바이어스 조정을 다시 할 의향이라면, 출력관의 위치를 골고루 바꿔주는 것도 좋다.
만일 출력관이 네 개이고 그 중 하나가 고장이 나서 출력관을 교체할 때 하나만 바꿔도 괜찮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특히 다른 메이커의 같은 형번 진공관을 써도 괜찮냐는 질문이다. 이 경우 앰프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전혀 상관없다고 할 수 있다. 좌우에 다른 진공관이 꼽혀 있는 것을 바라보면서 소리도 좌우가 다른 것은 아닐까 하는 ‘찜찜함’만 견딜 수 있다면 실용상으론 문제가 없다.
만일 출력관들을 오래 사용했다면 나머지 세 개도 수명이 다했을 것이므로 함께 바꿔주는 것이 좋다. 보통 진공관 앰프는 두 개, 또는 네 개의 출력관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가격은 조금 오르겠지만, 진공관을 측정하여 비슷한 것들을 추려놓은 ‘매치드 페어(2개씩 묶어 놓은 것)’, ‘매치드 쿼드(4개씩 묶어 놓은 것)’를 구입하는 것이 좋다.
(3) 입문자에게 적당한 진공관
By AnalogStyle - 2017년 5월 16일
4. 입문자에게 적당한 진공관
애호가들이 흔히 사용하는 진공관 앰프에 사용되는 출력관은 크게 3극관, (드물게 4극관), 5극관 그리고 송신관 등으로 분류된다. 3극관은 진공관 시대의 초기에 개발된 것으로 한 개당 출력이 보통 2W~8W 정도로 낮은 편이다. 출력이 약한 대신 소릿결이 고우므로, 오랜 경험을 가진 애호가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반면에 5극관은 하나당 10W가 넘는 출력을 뽑을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3극관보다 현대 진공관 앰프에서 사용빈도가 훨씬 많다. 송신관은 무전기 등의 고주파 회로에 사용할 목적으로 개발된 진공관들을 총칭한다. 3극관이 대부분인데, 진공관의 크기가 크고, 하나로도 20W 이상의 대출력을 뽑을 수 있다. 내부에서 매우 높은 전압(보통 1000V 수준)으로 구동되므로 열이 많이 나는데, 필라멘트도 내열성이 좋은, 용접봉에나 사용되는 토륨-텅스텐을 사용한다. 토륨 계열이 열을 받으면 독특한 빛을 내는데, 때문에 송신관들의 불빛은 매우 환하면서 아름답다.
진공관 앰프는 출력관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싱글 앰프, 또는 푸시풀 앰프로 분류된다. 싱글은 좌우 채널에 출력관을 한 개씩 사용한 것이고, 푸시풀 구성은 두 개씩 사용한다. 싱글은 회로가 간단하고 부품 수가 적은 만큼 진공관 고유의 음색을 들려주는 경우가 많으며, 특히 3극관을 싱글 회로에 사용함으로써 가장 단순한 구성이 된다. 간혹 3극관 싱글이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는 극렬 애호가들이 있을 정도로 잘 만든 3극관 싱글 앰프의 소리는 매혹적인 부분이 있는데, 대체로 출력이 작아서 현대의 일반적인 스피커를 구동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송신관을 싱글로 사용하는 것이 대안이 되겠지만, 3극관은 오디오용이라기 보다 고주파용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자칫 밋밋한 음을 내는 앰프가 되기 쉽고 일반적인 진공관 앰프보다 매우 높은 내부 전압 때문에 만들기도 어렵고 가격도 비싸진다.
게다가 싱글 구성으로 특유의 매력을 만끽하려면 오래 전에 만들어진 구관을 구하는 것이 좋은데, 불행히도 사용하지 않은 ‘새’ 구관은 가격이 상당히 비싸고 송신관 역시 크기가 크기 때문인지 가격이 비싼 편이다. 3극관을 푸시풀 구동하면 출력은 충분히 커질 수 있지만, 푸시풀 회로는 3극관 특유의 ‘맑고 고운 고음’에 방해가 된다는 인식 때문에 흔히 볼 수는 없다.
반면에 5극관은 출력이 큰 만큼 싱글 회로로 구성해도 쓸만한 출력을 얻을 수 있지만, 이 경우에는 반대로 5극관 특유의 스케일감과 구동력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큰 인기가 없고, 5극관을 푸시풀 회로로 구동하는 앰프가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다. 입문자들에게도 5극관을 출력관으로 사용하는 푸시풀 앰프를 가장 먼저 권하고 싶다. 푸시풀 방식보다 더 많은 출력관을 사용하는(예컨대 파라렐 푸시풀 회로는 채널당 4개씩의 출력관을 사용하며 그 이상으로 출력관을 많이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대출력 진공관 앰프들도 시중에 가끔 보이지만, 진공관의 개수가 너무 많은 것은 입문자에게 권장하고 싶지 않다. 가격도 비쌀 뿐더러 발생하는 열도 끔찍하며 바이어스 조정이나 진공관을 교체할 때 신경쓸 부분이 많아지고 회로가 복잡한 만큼 고장의 소지도 높기 때문이다. 흔히 사용하는 출력관 – KT88, 6L6, EL34 등을 푸시풀로 구성한 앰프는 가정에서 사용하기에 충분한 출력을 낸다.
5극관 푸시풀 앰프는 다양한 출력관을 장착한 것들이 발매되는데, 그 중에서도 구하기 쉽고, 널리 사용되는 진공관을 출력관으로 사용한 앰프를 권한다. 요즘에는 러시아나 중국, 동구권에서 진공관을 활발하게 생산하고, 국내에도 활발하게 유통되면서 KT88의 인기가 가장 높은 것 같다. KT88은 무엇보다 출력이 크다는 장점을 갖고 있으며, 널리 사용되는 만큼 구하기도 쉽고 선택의 폭도 넓다. 시원하고 호방한 남성적인 음색을 갖고 있는데, 매킨토시의 대표작 MC275에 사용되면서 유명해졌다. MC275는 KT88 푸시풀 구동으로 채널당 2개의 KT88로 무려 75W의 대출력을 뽑아낸다. 다른 메이커들이 생산하는 KT88 푸시풀 앰프는 대개 40~50W의 출력을 내는데, 출력관에서 출력을 많이 뽑아낼수록 진공관에는 부하가 크게 걸리므로 출력관의 수명이 짧아진다고 봐도 좋다. 물론 앰프 회로의 안정성에 따른 변화는 분명히 있다.
한편, 10년~20년쯤 전에 가장 널리 사용되었던 EL34는 KT88보다 출력은 조금 떨어지지만, 여전히 구하기 쉽고 소리도 좋으며 불빛도 예뻐서 추천 1순위다. 흔히 KT88은 남성적인 소리, EL34는 여성적인 소리를 낸다는 이야기를 한다. 예전 전성시절의 마란츠의 파워 앰프는 출력관으로 한결같이 EL34만을 고집하고 있는데, EL34가 순수 오디오용으로 개발된 진공관이라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EL34 푸시풀 앰프는 대개 20W ~ 50W의 출력을 내며, 이 경우에도 출력이 지나치게 높은 것은 출력관 수명이 짧아질 수 있으므로, 지나치게 큰 출력을 낸다고 혹하지 말기를.
이외에 쿼드에 사용되었던 KT66이나 매킨토시에 사용되었던 6L6도 음악성이 뛰어난 소리로 정평이 있지만, 요즘에는 신제품에 장착되는 경우가 흔하지는 않은 것 같다. 크기가 작아서 컴팩트한 앰프에 사용되는 EL84는 생긴만큼 예쁜 소리를 내지만, 출력이 작아서 채널당 두 개를 사용하여 15W 정도를 얻을 수 있다. 진공관의 가격이나 앰프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므로 음압이 90dB 전후의 스피커를 갖고 있는 애호가라면 관심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이야기는 출력관만의 상대 비교이며, 앰프 메이커의 설계에 따른 성능의 차이도 있으니 속단은 금물이다. 제품에 대해 충분히 검색해보고, 소리를 직접 들어보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이니 생략하자.
(4) 입문자의 앰프 고르기
5. 앰프를 고를 때 유의할 사항
흔히 앰프, 특히 파워 앰프는 무거운 것이 좋다고 한다. 일리가 있는 말인데, 이는 무거운 것일수록 전원부가 충실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며, 무거울수록 잡진동의 영향을 덜 받기 때문이다. 진공관 앰프는 특히 출력 트랜스가 포함되므로 무거운 것을 고르는 것이 더욱 유리하다고 말할 수 있다(출력 트랜스가 없는 OTL앰프라는 것도 있지만 입문 시절에는 쳐다도 보지 말자). 요즘 진공관 앰프에 장착되는 출력 트랜스는 메이커들이 경쟁적으로 큰 것을 사용하고 있으므로 용량이 작아서 험이 들리거나 하는 일은 거의 사라졌지만, 앰프가 무거워서 진동에 강하다는 것은 여전히 이점으로 남는다.
혹시 인터넷이나 오프라인에서 실물의 내부를 볼 수 있다면 부품들의 연결방식을 살펴보는 것도 좋다. 대부분의 앰프들은 기판에 부품을 꼽고 한번에 납땜하는 방식으로 제작되지만, 부품들을 일일이 배선으로 연결한 것도 있다. 이를 ‘하드 와이어링’이라고 하는데, 부품들을 러그핀과 배선에 일일이 납땜해야 하므로 제작하기 어렵고 제작 비용도 많이 소요된다. 하지만 진공관 앰프는 반도체 앰프에 비해 전압이 높고 전류가 낮으므로, 기판 방식보다는 하드 와이어링 쪽이 좋다는 사실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에 비해 반도체 앰프는 하드 와이어링과 기판 방식으로 우열을 가리기는 힘들기 때문에, 현대 반도체 앰프는 거의 모두 기판 방식으로 제작된다.
중고 진공관 앰프를 구입하는 경우라면, (반도체 앰프에도 적용되는 이야기지만) 우선은 입력 단자 – 특히 RCA 단자들을 보면 앰프를 얼마나 사용했는지를 알 수 있다. 한 자리에 놓고 곱게 쓴 경우라면 RCA 단자들은 깨끗하고 금도금 상태도 새것처럼 유지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인이 여러 번 바뀐 경우나, 이 장소, 저 장소에서 사용하던 제품들은 분명히 금도금 부위가 마모되어 낡아 있거나, 단자들이 흔들리는 등의 표시가 난다.
다음에는 진공관들의 게터를 살펴보자. 게터는 2편에서도 설명했지만 진공관의 유리 안쪽, 위나 아래에 은회색으로 발라져 있다. 진공관을 오래 사용할수록 게터는 투명해지거나 검게 변하므로, 새 진공관과 비교해보면 게터의 색깔과 양에 의해 대략적인 사용량을 짐작할수도 있다. 게터가 거의 남지 않았다면 이미 출력의 저하가 발생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므로 구입 가격에 진공관을 교체하는 비용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다음은 소리를 들어본다. 먼저 진공관 앰프를 처음 켰을 때 지글거리는 잡음이 났다가 사라지는 것은 반드시 피하자. 이런 경우는 대개 진공관을 교체해야 하는 경우다. 앰프가 열을 받으면 잡음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고, 앰프를 끄고 진공관을 몇 번 뽑았다가 꼽음으로써 증상이 일시적으로 호전될 수도 있지만, 십중팔구는 같은 증상이 다시 나타나며 계속 무리하게 사용할 경우 고장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반도체 앰프도 마찬가지지만) 앰프는 좌우의 음량 밸런스가 잘 맞는지가 최우선의 관건이다. 모노 음반을 재생하면서 고음이건 저음이건 모두 정 중앙에 정위하는지 살펴보자. 보통의 리스닝 공간은 좌우 대칭이 아니므로 반사에 의해 고역이 한 쪽으로 치우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 앰프에서 스피커의 좌우를 바꿔 꼽음으로써 확인할 수 있다.
볼륨을 최소로 하면 좌우 모두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아야 한다. 셀렉터나 톤 컨트롤이 있는 경우 이를 돌리면서 잡음이 들리는지 확인해보자. 잡음이 약간 들리는 것은 노브를 여러 번 돌려서 청소하면 해결되는 경우도 많고, 중고 제품이므로 어느 정도 감내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잡음이 심하거나, ‘퍽’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은 청소 수준에서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으므로 주의를 요한다.
앰프를 켜고 음악을 재생하지 않은 채 전원 트랜스에 귀를 대보면 작게 웅~ 하고 떨리는 소리를 내는 경우가 제법 있다. 이는 진공관이건 반도체이건 마찬가지이지만, 진공관 앰프들은 대개 트랜스가 새시 밖으로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가끔 문제가 되기도 한다. 트랜스 뿐아니라 스피커 유닛에 귀를 대도 잡음이 반드시 들리는데, 이런 소음에 지나치게 민감할 필요는 없다. 새 앰프의 트랜스에 청진기를 대보고 잡음이 들려서 찜찜하다는 애호가를 본 적이 있는데, 이런 것은 분명히 ‘신경과민’이다. 대개 앰프나 스피커에서 조금만 떨어져도, 아니면 음악을 재생할 때는 잡음을 의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아주 조용한 리스닝 환경을 가진 사람이라면 다른 곳에서는 작은 잡음이 더 크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음악 소리를 들을 때도 팝음악처럼 일정한 크기의 음이 연속적으로 나오는 것보다는 피아노 소나타처럼 중간에 정적이 있고 약음과 강음이 섞인 음반을 들어보아야 한다. 이런 음반을 크게 틀어놓고 작은 음에서 표현이 어떤지, 정적 부분에서 잡음이 얼마나 의식되는지를 평가해야 한다.
앰프의 내부를 볼 수 있다면 전원부의 전해 캐패시터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자. 전해캐패시터는 알루미늄 원통형 케이스에 담긴 부품인데, 주변에 비닐로 싸여 있고 인쇄가 되어 있다. 알루미늄 원통의 머리 부분을 살펴보았을 때 유난히 불룩 솟아나와 있다면 이는 캐패시터가 전기적인 충격을 받았다는 이야기다. 이런 경우라면 부품들이나 부품들을 연결하는 납땜 부위를 유심히 살펴보고 탄 흔적 같은 것이 보인다면 수리를 받았을 확률이 높다. 물론 수리를 정상적으로 받았다면 앰프의 성능에는 이상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중고 제품은 애호가 한 명이 사용하면서 수리를 하지 않고 외관이 깨끗한 극상품과 수리를 여러 번 하고 여러 애호가들의 손을 거친 제품과는 분명히 가격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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