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역사를 소환하다
Clearaudio Essence MC
누구나 기억 속 저 깊은 곳에 추억의 서랍 몇 개쯤은 가지고 산다. 그 기억의 서랍 속에는 무수히 많은 기록의 편린들로 가득하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음악에 대한 기억이 상당 분량 그 서랍들을 가득 메우고 남을지도 모른다. 내게 그 시작은 LP로 처음 듣던 비틀즈 베스트 음반과 플라디도 도밍고의 헤진 판 등이다. 눈에는 그냥 작은 실금 같은 것으로 보이지만 그 위에 모델명도 잘 기억나지 않는 노란 오디오테크니카 카트리지를 조심조심 얹으면 음악이 나왔고 한없이 그 소릿골이 토해내는 음악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젠 슈어가 카트리지 제조 사업을 접었고 몇몇 굵직한 메이저 카트리지 메이커만 남았다. 그리도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카트리지를 만들었던 아날로그의 장인들만이 현미경을 들이대고 카트리지를 만들고 있다. 그 중엔 이미 장인의 대를 이어 아들이 그 길을 가고 있는 메이커도 있다. 끊길 듯 말 듯 이어지던 카트리지는 최근 몇 년 사이 부쩍 증가한 아날로그 붐에 즐거워하고 있다. 서랍장 속 넣어두었던 슈어와 오디오테크니카 카트리지가 할 일이 생겼으니까.
클리어오디오
카트리지는 LP에 기록되어 있는 음악 신호를 읽어내 증폭해준다. 소릿골을 읽는 것은 마치 기억의 동굴을 여행하는 듯한 모습이다. 소릿골을 현미경으로 확대해 보면 마치 깊은 산의 협곡을 연상시키듯 무척 불규칙한 깊이와 모양을 가지고 있다. 음악의 다이내믹레인지가 클수록 그 음악의 산세는 험하고 오르기 힘들다. 그래서 언젠가는 차이코프스키 1812 서곡을 담은 LP를 카트리지가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카트리지 제조사가 소송에 걸리는 등, 지금 생각하면 무척 재미있는 후일담이 많다.
CD가 출현하고 디지털 음원 파일 재생이 대중화된 지금도 카트리지는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다. 아무도 관심 없을 것 같지만 LP를 처음 접한 세대는 여전히 LP를 통해 음악 듣는 걸 즐긴다. 게다가 최근 아날로그 붐의 영향은 LP를 처음 접하는 젊은 층까지 끌어들이고 있다. 이들은 그저 힙(hip)하다는 이유로 LP를 사기도 하지만 때로 LP 재생음 자체의 매력에 빠져들곤 한다. LP의 소릿골 안에 담긴 과거와 현재의 기억, 그 역사적 질감과 현실 인식을 음악을 통해 생생하게 즐기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클리어오디오는 바로 지금 현재를 살고 있다. 과거 모노 시절 명기 카트리지 등에 목메지 않고 카트리지를 거듭 현대적으로 진화시켜왔다. 수십년 지난 빈티지 오토폰 SPU 가 최고라고 부르짖는 사람들도 있으나 카트리지는 냉정하게 말해서 소모품이다. 따라서 아무리 견고한 카트리지라도 세월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 아날로그 종합 메이커를 꿈꾸던 클리어오디오가 카트리지를 만들지 않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 시작은 1970년대를 넘어 1980년이라는 새로운 산기슭을 오르기 시작하던 때였다.
에센스 MC
클리어오디오는 독일 아날로그 정밀 엔지니어링을 대표한다. 그들은 톤암과 함께 제작하기 가장 까다로운 아날로그 구성 제품 중 카트리지를 제대로 만들어내는 대표 메이커로 성장했다. 특히 MC 카트리지에 대한 꾸준한 연구로 현대 하이엔드 카트리지를 대표할만한 모델을 완성한 바 있다. 바로 골드핑거 스테이트먼트. 무려 100kHz까지 재생 가능한 하이엔드 MC 카트리지로서 MC 카트리지의 새로운 방향과 이상을 제시했다. 이후 다 빈치, 스트라디바리 등 고급 MC 카트리지를 계속해서 내놓으며 아날로그의 극단을 실험중이다.
하지만 클리어오디오는 아날로그의 대중화에 대해서도 모른 채 하지 않았다. 수천만 원대 하이엔드 아날로그 제품을 내놓으면서도 콘셉트 턴테이블과 카트리지 라인업 같은 엔트리 라인업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콘셉트 턴테이블과 카트리지는 국내에서도 사용자가 상당히 많은 정도로 커다란 히트를 쳤고 그만큼 많은 오디오파일을 아날로그로 인도했다.
이번에 리뷰한 에센스 MC는 바로 콘셉트 카트리지의 상급기로 개발된 모델이다. 우선 재질은 꽤 고급스러운 모습인데 세라믹을 사용해 바디 전체를 코팅한 모습이다. 하지만 내부 소재는 알루미늄-마그네슘 합금 소재로 역시 진동에 뛰어나고 단단한 소재를 적절히 활용한 모습이다. 더불어 상판과 하판 단 두 개 부분으로만 구성되어 있고 둥글게 모양을 내거나 하지 않아 세팅할 때 카트리지의 정확한 장착 각도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MC카트리지는 코일을 사용해 출력 아주 작은 출력 전압을 얻어낸다. 클리어오디오는 그들이 직접 개발해 특허받은 MC 제네레이터를 사용해 다이내믹스, 채널 밸런스, 채널 분리도 측면에서 상당히 우수한 스펙을 자랑하고 있다. 참고로 코일 소재는 OFC. 특히 하위 모델 콘셉트 MC와 채널 분리도와 밸런스, 트래킹 능력 등에서 꽤 많은 차이를 두고 있다. 캔틸레버 역시 물성이 뛰어난 보론 소재를 활용했으며 스타일러스는 마이크로라인 타입으로 설계했다.
에센스 MC는 MC 카트리지 중에서도 낮은 출력전압을 갖는 저출력 카트리지다. 스펙에서 확인해보면 고작 0.4mV. 그리고 내부 임피던스는 11옴 정도에 그친다. 따라서 포노앰프에서 높은 증폭이 가능해야하며 로딩 임피던스를 맞추어주어야한다. 기본적으로 MC 입력단이 있되 게인과 로딩 임피던스를 여러 종류로 세팅할 수 있는 포노앰프 또는 포노스테이지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특히 로딩 임피던스는 최소 100옴 정도가 적당하다.
셋업 & 리스닝 테스트
에센스 MC 카트리지는 같은 회사 클리어오디오의 퍼포먼스 DC 턴테이블에 세팅했다. 이번 퍼포먼스 DC 턴테이블엔 TT5 라는 일명 리니어트래킹 톤암을 장착했다. 침압은 2g. 금도금된 출력단자 네 개가 리니어트래킹 톤암에 장착되어 움직이는 모습은 마치 커팅머신의 커팅헤드가 LP 마스터 커팅을 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멋지다. 포노앰프는 별도의 분리형 포노앰프 대신 매킨토시 C1100의 내부에 탑재된 진공관 방식 포노스테이지를 활용했다. 이 외에 파워앰프는 역시 매킨토시 MC 1.25KW 그리고 스피커는 B&W 800D3를 사용해 셋업했다.
Espana Carmen
클리어오디오는 MM 카트리지도 MC 카트리지인줄 착각할 정도로 투명하고 높은 해상력의 중고역을 선보인다. 그래서 특히 클래시컬 음악에 대한 대응력이 뛰어난 편이다. 예를 들어 2017년 2월 그 유명한 런던 에어 스튜디오에서 녹음과 동시에 커팅한 LP [Espana] 중 비제 ‘카르멘’을 들어보다. D2D 방식으로 제작된 LP 재생에서 현장의 아주 작은 기척까지도 모두 생생하게 전해진다.
매킨토시의 포노단이 아주 높은 고해상도를 주장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작은 소리에서부터 커다란 소리까지 세밀한 단계로 낱낱이 포착해 드러낸다. 전반적인 대역 밸런스는 약간 높은 편으로 현악 파트 시원하게 뻗어 올라간다.
Gart Karr - Adagio in G minor
Adagio d'Albinoni
에센스 MC는 여타 클리어오디오 카트리지처럼 특히 고역이 매력적이다. 중역과 저역은 그 양감이 크지 않고 대신 높은 해상도로 자신감 넘치게 표현된다. 중, 저역 뉘앙스를 좀 더 세부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게리 카의 알비노니 ‘Adaio in G minor’를 들어본다. MM 카트리지나 고출력 MC 카트리지에 비하면 중저역 두께는 약간 가늘지만 디테일이 매우 훌륭하다. 다행히 메마르거나 거친 느낌은 없으며 현의 보잉이 아주 크고 시원하게 펼쳐진다. 더블 베이스의 통울림은 최대한 억제해 무척 단정하며 뚜렷하게 표현해주는 편이다.
Anne-Sophie Mutter - "Vivaldi" The Four Seasons Concerto In G Minor, RV 315, "The Summer" 3. Presto
Live from the Club Album Yellow Lounge
시간축 안에서 리듬감이나 또는 클래시컬 음악에서 피지카토 표현 또는 포르티시모나 피아니시모 등 강약 표현은 음악 감상의 즐거움, 쾌감과 연관이 크다. 클리어오디오 사운드는 앰프로 치자면 마치 코드 같은 소리를 내준다. 그만큼 빠르고 기민한 반응 및 에너지의 강, 약과 음영 표현이 뛰어나다. 안네 소피 무터의 옐로우 라운지 라이브 콘서트 앨범 중 1번을 들어보면 굉장히 빠른 페시지와 연속적인 음의 빠른 강타 속에서도 음의 세기 표현이 첨예하게 대비되어 들린다. 현의 온도감은 낮은 편이지만 연주의 냉철하고 시린 듯한 표현이 강력하게 폐부를 파고든다.
The Dve Brubeck Quartet - Take Five
Time Out
에센스 MC는 여타 클리어오디오 카트리지가 그렇듯 빠른 속도감과 화려한 고역 때문에 언제 들어도 활기차고 밝은 생명력이 활활 타오른다. 종종 CD같은 재생음이라는 질타를 받기도하지만 제대로 세팅되었을 때 오히려 그보다 더 예리하고 첨예한 아날로그 사운드를 만끽할 수 있다. 데이브 브루벡 쿼텟의 ‘Take five’같은 곡엣도 폴 데스몬드의 알토 색소폰이 싱싱하고 투명한 음색에 더해 제비 날갯짓처럼 날렵하게 허공을 가른다. 리듬 파트는 군더더기 없이 무척 단정하며 풋웍이 빨라 순발력 넘치는 리듬감이 잘 표현된다.
총평
클리어오디오는 “깨끗한 소리를 세상에 들려주고 싶다”는 모토를 가지고 회사를 시작했다. 더불어 항상 주장하는 “take the best and make it better”는 그들의 제품에서 모두 투영되고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실제 에센스 MC 카트리지는 리니어트래킹 톤암 위에서 정교하게 유영하며 과거엔 상상할 수 없었던 소리를 내주고 있다.
여전히 과거 가라드, EMT, 토렌스 등의 빈티지 턴테이블을 사용하며 빈티지 카트리지에만 집착하는 아날로그 마니아들이 많다. 하지만 현재 아날로그는 계속해서 진보하고 있으며 과거엔 기대하지 못했던 소리들이 아날로그 시스템에서 표출되고 있다. 만일 LP의 소릿골에 갖혀버린 음악의 역사를 헤집으며 음악에 빠져들기 시작했던 당시 나에게 이런 성능의 턴테이블과 카트리지가 있었다면 중간에 CD로 돌아서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Essence MC는 음악의 역사를 다시 되짚어 소환하고 있다.
Written by 오디오 칼럼니스트 코난
8.0 g |
20 Hz – 40 kHz |
0.4 mV at 5 cm/s |
> 32 dB |
< 0.3 dB |
80 μm |
2.0 gr. (± 0.2 gr.) |
11 Ohms |
Boron |
Micro Line |
9 μ/mN |
— |
OFC – copper |
Aluminium-Magnesium alloy with ceramic surface layer |
로이코 |
www.royco.co.kr |
02-335-0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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