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니어트래킹의 르네상스를 꿈꾸다
Clearaudio Performance DC
커피와 아날로그
문을 열고 들어서자 고소한 향기가 코를 찌른다. 직접 고른 원두를 직접 갈아 내린 핸드드립커피는 일반적인 캔커피나 믹스커피와 비교할 수 없는 풍미가 가득하다. 냄새와 맛은 물론 원두의 생산지나 이후 볶는 과정에 따라서 맛과 향기는 셀 수 없이 다양해진다. 원두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사람에 따라 똑같은 원두를 써도 맛은 각양각색이다. 때로는 귀찮고 시간과 공, 돈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지만 독특한 맛과 개성은 절대 뿌리칠 수 없는 매력이다.
LP로 음악을 듣는 일은 마치 원두를 직접 구해 만들어낸 커피를 마시는 것과 같다. 어떻게 말리고 볶았는지 어떻게 갈았는지 등등 마지막으로 커피를 내리기 전까지 모든 과정에 주인의 손길이 한땀 한땀 녹아난다. 과정은 무척 복잡하며 때로 정성과 기술이 부족하면 간단히 내려먹는 네스프레소 커피보다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때론 결과와 관계없이 그 과정이 주는 즐거움도 무시할 수 없다.
턴테이블은 플로팅이나 리지드냐에 따라서 또는 다이렉트 드라이브인지 벨트 드라이브인지에 따라서 기본적인 음질적 골격이 달라진다. 게다가 톤암은 제조사마다 뚜렷한 기술적 특징을 갖고 만들어지며 그 음질과 조작감, 기능이 모두 천차만별이다. 카트리지는 아날로그 음질의 화룡점정이다. MM, MC, 스테레오, 모노의 차이도 있으나 캔틸레버와 스타일러스 재질 그리고 형태, MC의 내부 코일 및 마그넷 등의 구조, 성질에 따라서 천국과 지옥을 오가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 하나하나를 자신이 선호하는 방향으로 고르고 셋업해 원하는 소리에 도달했을 때 즐거움은 그 어떤 플레이백도 따라오지 못한다.
퍼포먼스 DC
1978년 설립된 클리어오디오의 대표적인 모델 퍼포먼스 DC는 다양한 취향과 기술적, 음질적 기준을 가진 오디오파일에게 상당히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대개 일체형 턴테이블의 경우 베이스에서 플래터 그리고 톤암, 때로는 카트리지까지 모두 정해져서 완성품으로 최종 출고된다. 기본 옵션 되에 별다른 선택지가 없는 경우가 많다. 평범한 직장인에게 톤암을 별도로 구입해 장착하고 카트리지 및 리드선, 톤암 케이블까지 모두 각각 구입해 자신만의 아날로그 시스템을 구축하는 건 쉽지 않다.
그러나 퍼포먼스 DC는 다르다. 기본저으로는 Clarify 톤암을 장착하지만 이 외에 Stisfy Kardan 블랙 알루미늄 톤암 그리고 TT5 톤암 중 선택할 수 있다. 더불어 Virtuoso V2 MM은 물론 Talismann MC 및 Essence MC 카트리지 등을 조합해 총 네 개 옵션을 마련해놓고 있다. 각 톤암과 카트리지에 따라 다양한 옵션을 선택, 자신에게 가장 알맞은 모델로 셋업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조합이 이노베이션이나 마스터 이노베이션 등 레퍼런스급 모델이 아닌 비교적 진입장벽이 낮은 퍼포먼스 DC 턴테이블에서 가능하다는 것은 무척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사실 퍼포먼스 DC는 단시간에 새롭게 출시된 모델이 아니라 10년 이상 섬세하게 다듬어지고 개량되어 출시된 버전이다. 최초 2007년에 오리지널 퍼포먼스 턴테이블이 출시되었을 땐 지금과 상당히 다른 모습이었다. 그리고 2011년 SE 버전이 출시되며 현재와 상당히 유사한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 이번에 테스트한 퍼포먼스 DC는 매우 간결한 디자인에 단단한 만듦새 등 굉장히 현대적인 틀 안에 클리어오디오의 정밀 기술이 집약되어있다.
기본적으로 퍼포먼스 DC는 벨트 드라이브 방식 턴테이블로서 내부 플래터를 DC 모터가 회전시키고 이것이 최종적으로 외부 모터를 회전시키는 방식이다. 모델명처럼 모터는 DC 모터를 사용하는데 상위 하이엔드 모델과 거의 유사한 모터를 사용하고 있다. 플래터 소재는 과거 클리어오디오 턴테이블에 전방위로 사용하던 아크릴이 아니라 POM, 즉 ‘Polyoxymethylene’를 사용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전세계 하이엔드 턴테이블에서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소재로서 진동에 강하며 상당히 정숙한 소리를 재생하는데 좋은 소재다.
플래터 메인 베어링은 클리어오디오의 독보적인 기술이 녹아든 CMB, 즉 ‘Ceramic Magnetic Bearing’을 사용해 코깅 현상 등이 적고 매우 정밀한 속도와 회전을 돕고 있다. 퍼포먼스 DC는 33 1/3회전 뿐만 아니라 45회전 및 78회전까지 대응한다. 대개 78회전은 지원하지 않는 턴테이블이 많지만 과거 발매된 78회전 싱글을 가끔이라도 듣는다면 매우 요긴하다.
이번 테스트한 퍼포먼스 DC는 특별하다. 과거 몇몇 아날로그 전문 제조사들이 제작해 보급하려 힘썼으나 현재는 거의 잊혀진 리니어트래킹 톤암을 장착한 버전이기 때문이다. 클리어오디오에서는 탄젠셜(Tangential) 톤암이라고 부르는데 기본 원리는 리니어트래킹과 동일하며 여러 부분들이 클리어오디오 턴테이블에 최적화된 톤암이다. 이것은 마치 LP를 찍어내기 전 마스터 동판에 소리를 새겨 넣을 때 사용하는 커팅머신의 트래킹 원리를 연상시킨다. 현재 발매되는 LP도 모두 노이만 등 커팅머신과 다이아몬드 커팅 헤드를 사용해 만든 마스터 품질이 LP 품질을 좌우한다. 그만큼 정확한 톤암 트래킹 능력을 요구하는 커팅머신. 바로 그 커팅머신의 톤암 방식이 리니어트래킹이다.
하지만 클리어오디오 TT5 톤암은 일반 사용자를 위해 매우 간편하고 손쉬운 인터페이스를 갖추고 있다. 일단 리니어트래킹 톤암이기 때문에 일반 톤암에 비해 트래킹 오차각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얼마나 정확히 움직이면서 소릿골을 읽어내느냐가 관건이다. TT5 톤암은 두 개의 리니어 베어링과 정밀하게 제작된 롤러 등을 설치해 카트리지가 LP를 가로지르며 LP 소릿골을 읽도록 만들었다.
아주 유연하게 움직이는 능력이 관건이 되므로 클리어오디오는 별도의 베어링오일을 제공하고 있다. 더불어 LP를 교체할 경우 편의성을 위해 리니어트래킹 톤암의 위치를 옮길 수 있도록 스윙 베이스를 기본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이번 테스트에서도 이 스윙베이스 덕분에 톤암 어셈블리 전체를 자유자재로 옮겨가며 LP를 테스트할 수 있었다. 이 외에 세팅 부분에서 어렵지 않을까 지레 겁을 먹을 수 있지만 침압 및 VTA, 아지무스 등을 그리고 어렵지 않게 조정 가능하다. 더불어 리니어트래킹은 안티스케이팅 기능이 필요 없어 오히려 편리한 면도 있다.
셋업 & 리스닝 테스트
테스트에는 클리어오디오의 Essence MC 카트리지를 사용했다. 20Hz에서 40kHz에 이르는 광대역에 출력은 0.4mV를 내주는 저출력 MC 카트리지다. 바늘은 마이크로 라인 방식 그리고 보론 캔틸레버를 채용하고 있는 클리어오디오의 대표적인 MC 카트리지다. 여기에 포노앰프는 매킨토시 C1100 내장 포노스테이지를 사용했으며 파워앰프는 MC 1.2KW 그리고 스피커는 B&W 800D3를 사용했다. 테스트는 하이파이클럽 메인 홀에서 이루어졌음을 밝힌다.
Aaron Neville - Lousiana 1927
Warm Your Heart
클리어오디오 사운드는 시대를 거듭하며 계속해서 변화해왔다. 그리고 그 방향은 개인적으로 볼 때 진보라고 본다. 과거 상당히 차갑고 냉정한 사운드에서 얼마간 부드러운 윤기도 첨가된 점이 이채롭다. 아론 네빌의 ‘Lousiana 1927’을 들어보면 대역 밸런스는 모난 곳 없이 매우 치밀하며 소릿결 자체도 고해상도 음원을 듣는 듯 맑고 투명하다. 아론 네빌의 팔세토 창법이 시원하게 뻗으며 중역은 약간 왜소하지만 정갈한 맛을 낸다. 전반적으로 차분하고 정돈된 사운드다.
Mstislav Rostropovich - Sonata for Arpeggione and Piano
Schubert - Sonata for Arpeggione and Piano
최근 LP로 여러 클래식, 재즈 음반들을 구입, 비교 청취해보고 있다. 그 중 자주 듣던 아날로그포닉 발매반으로 슈베르트 ‘아르페지오 소나타’를 들어본다. 마치 LP 소릿골에 기록된 모든 소리를 긁어내듯 높은 디테일을 보여준다. 두텁고 묵직한 소리보단 정밀하되 선도가 높은 소리다. 남성적인 육중함보다는 여성스러운 섬세함과 우아하고 예리한 현악의 표현이 돋보인다. 따라서 첼로 같은 악기의 중저역 바디감보단 피아노의 또랑또랑한 타건의 배음에서 그 매력이 극대화된다.
Arne Domnerus - Almighty god
Antiphone Blues
‘아르페이지오 소나타’ 등 클래식 실내악 표현에서도 느낄 수 있지만 확실히 중, 고역대 장점이 많다. 물론 MC 카트리지 Essence MC의 역할도 한 몫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특성은 중고역 하모닉스와 음장 형성에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아르네 돔네러스의 ‘Almighty god’ 같은 곡에서 그의 색소폰은 곱고 풍부한 배음이 상쾌하게 펼쳐진다. 자칫 이런 정밀함은 거칠거나 건조한 음색을 만들어내기 쉽지만 오히려 촉촉하고 유려한 중고역으로 표현된다. 묵직한 중역대 바디보다 금빛으로 살랑대는 소리다.
Eiji Oue - Fanfare the Common man
Minnesota Orchestra
에이지 오우에 지휘, 미네소타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보통 사람들을 위한 팡파르’를 음원과 비교해서 들어보자. 원래 이 레코딩의 LP버전은 키슨 존슨 박사의 HDCD 디지털 마스터에 비하면 다이내믹레인지나 저역 타격감이 조금 약한 편이다. 퍼포먼스 DC에서도 저역 다이내믹스보단 관악, 현악의 배음 표현에서 매력을 드러낸다. 야수처럼 거칠지 않으며 후방으로 조금 들어간 사운드스테이징을 펼쳐낸다. 관현악에선 확실히 고급스럽고 젠틀한 인상이다.
총평
퍼포먼스 DC는 톤암에 따라 상당히 다른 턴테이블로 변화한다. 대체로 턴테이블을 논할 때 입문자들은 카트리지만 좋으면 된다는 식으로 잘못된 인식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전체 턴테이블 성능에 있어서 베이스와 톤암이 우선이다. 이는 시스템 수준이 높아질수록 더 상세히 장점과 단점이 드러난다. 리니어트래킹 방식 톤암 TT5는 그래서 퍼포먼스 DC를 또 다른 턴테이블로 만들어버렸다.
이런 류의 턴테이블과 톤암은 실제 본인의 시스템에서 장시간 셋업과 테스트를 반복해보기 전에는 장, 단점을 명확하고 상세히 파악하기 힘든 면이 있다. 하지만 기본적인 작동과 사운드를 살펴본 바에 의하면 비교적 다루기 쉽고 클리어오디오의 중고역 위주의 단정하고 정밀한 사운드가 돋보였다. 게다가 마치 디터람스, 브라운의 디자인을 21세기 버전으로 내면화한 듯한 모습은 당장이라도 나의 오디오랙 위에 올려놓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이 턴테이블이 리니어트래킹 턴테이블의 르네상스를 일으킬 수 있을지 사뭇 궁금해진다.
Written by 오디오 칼럼니스트 코난
Approx. 11.0 kg |
16.54 inches |
12.99 inches |
4.92 inches |
33 ⅓, 45 and 78 rpm |
로이코 |
www.royco.co.kr |
02-335-0006 |
02-582-98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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