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를 향한 집념과 결실
Boulder 1108 Phono Preamplifier
포노앰프의 진화
한때 프리앰프의 성능은 포노단이 승패를 가르는 캐스팅 보트였다. 라인단이 일단 우수해야 하는 것은 당연했다. 시디플레이어나 DAC의 아날로그 출력으로부터 최대한 많은 정보량을 가감 없이 정확히 전달받아 증폭했어야 했으니까. 그다음은 포노단이었다. 1980년대 CD가 출현하기 전 LP가 주력 음원 소스였을 땐 포노단이 필수였고 좋은 포노단을 탑재한 프리앰프가 많았다. 아직도 그 당시 마란츠 7 같은 포노나 마란츠 및 매킨토시의 포노단이 생각난다. 하지만 하이엔드 솔리드스테이트 앰프가 강세를 보이던 1990년대 제품들 중 출중한 포노단을 가진 레퍼런스급 프리앰프는 흔치 않았다.
그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게 들었던 것들은 스펙트랄 DMC 시리즈나 마크 레빈슨 26계열 등이다. 호쾌한 무대와 우수한 매크로 다이내믹스는 파워앰프를 제동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반대로 마크 레빈슨의 경우 매우 고운 분진이 날리는 듯한 입자와 세부 묘사가 매력적이었다. 처음 들으면 조금 심심한데 오래 들을수록 마치 견과류를 곱씹을 때의 고소한 맛처럼 오래 들을수록 그 진가가 드러났다. 그래서 오히려 스펙트랄보다 더 쉽게 질리지 않고 오래 듣게 되는 소리였다. 지금 들으면 또 어떨지 모르겠지만 포노앰프가 발전하고 있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훌륭한 소리를 가진 포노단으로 기억한다.
일체형 하이엔드 포노앰프의 등장
이후 CD가 완전히 메인스트림 포맷으로 자리 잡았고 LP 인구가 계속해서 축소되면서 언젠가부터 포노앰프가 내장된 프리앰프나 인티앰프를 찾기가 힘들어졌다. 일제 앰프들에 내장되어 있곤 했지만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키긴 힘들었다. 입문자들은 크릭 등 가격 대비 성능이 좋은 포노앰프로 목을 축일 수 있었고 좀 더 여유가 있으면 해외에서 헤론, 서덜랜드, 레만오디오, EAR, 맨리 등의 포노앰프를 구입해 즐기곤 했다.
일체형 포노앰프에 하이엔드 레벨의 기기들이 출현한 건 꽤 나중의 일이다. 완전히 사라질 거라 생각했고 실제 사양길에 접어들었던 LP 사용자가 시대의 변화에도 아랑곳없이 꾸준한 수요를 만들었고 음질에 대한 기대는 더 높아진 덕분이다. 비록 소수였지만 현대적인 광대역, 다이내믹스 기준에 걸맞은 LP 사운드를 즐기려는 유저들을 위해 하이엔드 메이커 몇몇이 최고급 포노앰프를 출시하기 시작했다. 때로 다질 같은 하이엔드 메이커가 프리앰프에 탑재한 포노단의 성능은 한동안 뜸했던 고음질 LP 사운드에 대한 기준을 한껏 높여버렸다.
그중 하나가 바로 볼더였고 2008이나 1008 같은 포노앰프는 대단히 뛰어난 성능으로 당시 아날로그 마니아들을 놀라게 했다. 전에 없던 아날로그 사운드에 대한 열정에 불을 댕겼고 CD보다 LP에 공을 들이는 오디오파일들에게 더없는 기쁨을 안겨주었다.
볼더 1108 포노
다시 볼더다. LP는 다소 두툼하고 묵직한 맛, 조금은 떨어지는 SN비에도 불구하고 다분히 따스하고 인간적이라는 느낌으로 듣는 것이라는 세간의 편견을 뒤집었던 하이엔드 포노앰프의 원조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전작 1008이 출시된 지 거의 10여 년 만의 새로운 출사표는 과거 1008이나 2008을 기억하는 마니아들에겐 희소식이다. 특히 CD와 음원의 범람 속에서도 꿋꿋이 LP의 르네상스를 예견하며 그 자리를 지켰던 아날로그 마니아들에겐 성능과 상관없이 일단 반가운 마음이 먼저일 것이다.
우선 전체적인 설계에 대해 살펴보면 볼더의 설계 철학과 기능 등은 거의 유사한 골격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세부적인 부분에서 상당히 고심해 진보시킨 부분 또한 역력하다. 마치 대리석의 물결무늬를 보는 듯한 전면 패널의 만듦새는 오디오파일이 아니더라도 무척 아름답다. 게다가 전체 섀시를 알루미늄으로 만들어 웬만한 프리앰프에 버금가는 16.8KG의 묵직한 무게를 가진다. 크기 또한 거의 풀 사이즈에 가까워 랙 한단을 충분히 메워주는 모습이다.
1108의 내부를 보면 워낙 낮은 레벨의 오디오 신호를 전송, 증폭하는 포노앰프며 이 때문에 EMI, RF 노이즈 또는 진동에 매우 민감한 것을 감안한 모습이 눈에 띈다. 전원부를 입/출력단과 물리적으로 완전히 격리시켜놓은 것은 물론이며 입력과 출력단 사이의 전송 구간을 최소화시켜 음질적 손실 또한 줄이는 설계다. 더불어 회로를 서킷 보드에서 효율적으로 격리시키고 전체 제어 장치들 또한 분리시켜 전기적 간섭을 최소화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후면 출력단을 보면 입력이 총 두 조 그리고 출력단이 총 두 조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모두 3핀 XLR 타입으로 일반적인 RCA 타입 단자를 하나도 볼 수 없다. 카트리지의 출력 신호는 기본적으로 XLR로 전송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기 때문에 이렇게 설계한 것이라고 한다. XLR 입력단이 마련되어 있는 프리앰프는 많지만 포노케이블 종단이 XLR에 대응하는 경우는 많지 않기 때문에 불편할 수는 있다. 이번 테스트에선 음질적으로 좋진 않지만 부득이 RCA->XLR 어댑터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기존 구형 볼더 포노앰프들도 마찬가지였지만 기본적으로 입력단은 MM 및 MC 모두 대응한다. 다만 공장 출고 시 MC로 세팅되어 있으며 이때 게인은 70dB, 그리고 로딩 임피던스는 100옴으로 조정되어 있다. 한편 MM 카트리지를 사용하고 싶다면 입력단 하단의 슬롯에 장착된 모듈을 빼서 내부 딥스위치를 MM으로 조정하면 된다. 이때 게인은 44dB, 로딩 임피던스는 MM 카트리지의 일반적인 추천 값인 47K옴이 된다. 이 외에도 만일 MC 카트리지 세팅 시 더 낮거나 더 높은 로딩 임피던스가 필요하다면 모듈 기판에 저항을 납땜해서 사용해야 한다. 꽤 귀찮은 일이긴 한데 이런 방식이 음질적으로는 가장 좋다. 자세한 사항은 매뉴얼에 적시해 놓았으니 필히 참조할 필요가 있다.
한편 볼더 1108은 요즘 오리지널 모노 LP 재생에 대한 일부 아날로그 마니아들의 요구에 대해 부응하고 있다. 대체로 1960년대 이전 RIAA 커브 보정 기준이 확립되지 않았던 시절의 LP에 대한 재생 능력을 최적화하기 위한 기능이다. 만일 모노 LP를 꽤 가지고 있고 이를 그 당시 음반사마다 제각각이었던 커브에 최대한 정확히 대응해 듣고 싶다면 볼더 1108은 훌륭한 대안이 될 것이다. 기본적으로 FFRR, EMI 그리고 컬럼비아 커브 EQ 기능을 탑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퍼포먼스
볼더 1108 테스트는 클리어오디오의 플래그십 아날로그 시스템과 함께했다. 마스터 이노베이션 턴테이블에 스테이트먼트 TT1 리니어 트래킹 톤암을 설치했고 카트리지는 클리어오디오의 최상위 MC 카트리지 골드핑거 스테이트먼트를 사용했다. 출력전압 0.6mV 로서 저출력 MC 카트리지 치고는 약간 높은 카트리지라서 볼더 1108의 입력 1번을 MC로 세팅했을 때 충분히 강력한 출력과 풍부한 볼륨을 얻을 수 있었다. 참고로 프리앰프 및 파워앰프는 옥타브의 주빌리 시리즈를 활용해 아방가르드 트리오 럭셔리 에디션 26 스피커를 울렸다. 300B를 사용한 채널당 30와트짜리 저출력 모노블록 앰프지만 아방가르드 트리오를 힘차게 몰아붙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Glenn Gould
Bach: The Goldberg Variations, BWV 988 (1955 mono) [Gould Remastered]
우선 저출력 MC 카트리지라서 고역은 매우 섬세하지만 전반적으로 좀 왜소한 소릴 내주지 않을까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기본적으로 0.6mV의 높은 출력 덕도 있지만 볼더 1108의 해상력과 다이내믹스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력했다. 예를 들어 글렌 굴드의 1950년대 ‘골드베르그 변주곡’ 녹음을 들어보면 오히려 동일한 볼륨에서 음원 재생보다 더 높은 게인을 확보할 수 있었으며 매우 힘차고 활기찬 사운드로 시스템을 장악해버렸다. 마치 투명한 새벽이슬이 방울방울 맺히는 듯한 피아노 소리는 고결하면서도 극도로 투명하고 싱싱하다.
Naomi Sommers - Hypnotizing
Great Voices, Vol. II
일단 볼더 1108은 모든 음악의 무대와 스케일을 최고조의 반열로 올려놓는다. 한편 음색적으로는 마치 아주 깨끗하게 닦은 큼직한 도자기의 표면처럼 윤기가 난다. 예를 들어 DMM 커팅으로 유명한 오디오파일 모음집 [Great Voices, Vol. II] 중 ‘Hynotizing’을 들어보면 기타 표현엔 번뜩이는 광채가 일만큼 풍부한 배음과 또렷한 기음이 돋보인다. 절대 어떤 구간에서도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볼 수 없이 기승전결이 뚜렷하며 에지가 살아있어 명쾌한 소리를 들려준다. 시종일관 밝고 상쾌한 광대역 아날로그 사운드로서 기저 잡음이 낮아 노이즈 없이 투명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Gary Karr – Adagio In G Minor
Adagio d'Albinoni
고역에서 저역까지 주파수 재생 특성은 매우 평탄한 편으로 착색은 거의 동반하지 않는 포노앰프다. 예를 들어 저역만 해도 그렇다. 게리 카의 ‘Adagio In G Minor’를 들어보면 광대역 포노앰프의 활짝 열린 대역폭에서 시원한 기개가 느껴진다. 한편 현의 낮은 음계를 긁을 땐 마치 악기의 모습이 연상될 정도로 그 울림이 진하고 깊게 전해온다. 정확한 RIAA 정밀도를 통한 저역 재생은 그 어떤 포노앰프보다도 뛰어난 제품으로 이번엔 테스트해보지 못했으나 데카, EMI, 컬럼비아 등 모노 커브의 성능에도 기대가 간다.
Pink Floyd
The Dark Side Of The Moon
이 외에 대편성 교향곡이나 팝, 재즈, 록 음악 등 주로 여러 악기들이 출몰하면서 커다란 스케일과 다이내믹스 폭을 요구하는 음악들의 재생 능력을 평가해보았다. 특히 핑크 플로이드의 [The Dark Side Of The Moon]의 A면 수록곡들은 특별한 인상을 남겼는데 심장소리는 무척 묵직했고 여러 멀티채널을 믹싱한 사운드 스펙트럼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며 선명하게 눈앞에 그려졌다. 아날로그 LP에 이런 입체적인 사운드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카트리지의 역할도 있으나 1108의 스피드 및 굉장히 섬세한 다이내믹스 표현에서 연유한 것도 있다. 결국 나는 A면을 모두 들을 후에야 자리에서 일어설 수 있었다.
총평
골드핑거는 클리어오디오 사운드의 결정판으로서 굵직하고 호방한 남성적 사운드보다 절정의 해상도와 선예도를 갖는 섬세한 스타일임을 감안하면 볼더의 파워와 스케일을 짐작할만하다. 마치 중형 세단의 안정감 넘치는 안락감과 힘이 넘치는 어택 및 명암대비가 커다란 쾌감을 만들어낸다. 밤과 낮의 차이만큼 명암대비가 뛰어나며 배경이 고요하다. 만일 고전적 포노앰프나 빈티지 승압 트랜스를 사용하고 있다가 이런 하이엔드 포노앰프를 사용하면 음악과 자신 사이에 놓은 커튼 하나가 열리는 체험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단, 사용하는 카트리지에 따른 로딩 임피던스 및 커패시턴스 조정을 위해서는 모듈형 카드를 뺀 후 내부 저항 등을 그에 맞게 납땜, 장착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이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할지도 모르니 감안해야 한다. 또한 XLR 입/출력만 지원하므로 어댑터를 사용할 경우 매뉴얼을 숙지해 제대로 제작된 제품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
사용 편의상에 몇 가지 불편함이 있긴 하지만 기본적인 기능, 특히 여러 모노 커브에 대응하는 기능 그리고 18dB/octave로 설계된 로우 컷 필터 등은 무척 편리하다. 만일 어떤 이유에서든 우퍼가 심하게 요동치는 경우엔 이 필터를 사용하면 보다 쾌적한 LP 재생음을 즐길 수 있다. 더불어 음질 면에선 트랜지스터 앰프임에도 불구하고 그리 차갑지 않아 고해상도에도 불구하고 피로도가 낮은 고음질을 즐길 수 있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물론 그만큼 많은 지출을 감안해야 하지만 한 번 경험하면 포기하기 힘든 매력적 음질을 제공한다. 볼더 1108엔 그동안 결코 포기하지 않고 걸어온 볼더의 아날로그를 향한 집념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Written by 오디오 칼럼니스트 코난
SpecificationsINPUTSOUTPUTSINPUT IMPEDANCE, MAXIMUM1 KHZ GAIN, RIAAFREQUENCY RESPONSE, RIAADISTORTION, THDNOISE (EIN), MCMAXIMUM OUTPUT LEVELCROSSTALK, L TO R OR R TO LWEIGHTPOWER REQUIREMENTSPOWER
2 pairs balanced, converts to unbalanced |
2 pairs balanced, use as Main or Record |
MC: 1000 ohms MM: 47k ohms |
MC: 70 dB MM: 44 dB |
±0.10 dB, 20 Hz to 20 kHz |
+0.01% |
98 nanovolts flat, 20 Hz to 20 kHz |
16 Vrms |
-100 dB or better, 20 Hz to 20 kHz |
37 lbs. (16.8 kg), Shipping: 51 lbs. (23.2 kg) |
100-240 VAC, 50-60 Hz |
32W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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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원에이브이 |
www.samaudio.co.kr |
02-582-98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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