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애호가를 위한
Loricraft Audio PRC4i
놀라운 외관
지난번 J.Sikora의 턴테이블을 살피는 동안에 평소 자주 듣던 30장 정도의 LP를 시청실에 가져가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었습니다. 그 치열한 전투를 치른 바이닐들은 정비가 필요한 상태가 되었는데, 때마침 Loricraft Audio 사의 PRC4i를 사용해 볼 기회가 생겨서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Loricraft Audio는 Garrard(그 유명한 Garrard 301 턴테이블이 2018년부터 다시 생산되고 있습니다!)와 함께 현재 SME의 계열사입니다. PRC는 Professional Record Cleaner의 약자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겠습니다. Loricraft는 제가 받아 본 PRC4i 외에 조금 더 비싸고 살짝 큰 부피를 가진 PRC6i까지 두 개의 라인업을 갖추고 있습니다.
처음 접했을 때 참으로 놀라웠던 것은 박스의 부피였는데, 세단으로 옮긴다면 트렁크 공간에는 적재가 불가능했고, 조수석의 위치를 앞으로 이동시켜서 간신히 뒷좌석에 넣을 수 있을 정도로 무지막지한 크기였습니다. 큰 박스가 의미하는 것은 명백합니다. PRC4i는 대부분의 턴테이블보다 큽니다.
색다른 방식
진지하게 LP를 청소한다면 건식이 아닌, 습식의 방식을 사용합니다. 습식 레코드 청소기 중에서 대중적으로 접할 수 있는 것은 초음파 방식입니다. 저는 이미 보유 중이므로 Loricraft의 새로운 방식과 비교가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초음파 방식은 대개 레코드를 세로로 세우고 재생되는 면의 일부분을 물에 닿게 한 다음 초음파를 이용해 물을 진동시켜 레코드의 불순물을 분리합니다. 이때 모터와 롤러를 이용해 LP를 회전시켜서 모든 면이 세척되게 합니다. 그리고 물을 빼내고 바람으로 건조합니다. 이 초음파 방식 세척기의 장점은 세팅 후 버튼 하나로 모든 과정이 자동화되어 신경 쓸 일이 없다는 것과 상대적으로 적은 부피를 차지해서 보관이 용이하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접하게 된 Loricraft의 방식은 위 방식과 확연히 구별됩니다. PRC4i는 턴테이블과 매우 흡사하게 생겼으며 바이닐을 플래터 위에 가로로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플래터를 회전시킵니다. 세척은 Loricraft에서 제공하는 세제를 이용합니다. 이 세정액은 고농도로 되어있어서 정제수를 섞어 희석시켜서 사용해야 합니다. LP 표면에 희석된 이 용액을 스포이트로 도포하고 Loricraft에서 제공하는 흰색 브러시를 이용해서 그 용액을 퍼트림과 동시에 거품을 발생시키고 레코드 표면의 불순물들을 물리적으로 분리합니다.
Loricraft Audio 프로페셔널 레코드 클리너 PRC4i 동작 영상
어느 정도 거품이 발생하고 불순물들이 세제 용액과 거품에 의해 부유하게 되면 PRC4i의 진공청소기 같은 톤암을 움직여서 레코드 표면을 빨아들임으로 청소를 마무리하게 됩니다. 이 공들인 빗질이 생성해 낸 거품을 톤암이 움직여 없애는 것을 바라보고 있자면 일종의 작은 성취감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초음파 방식의 경우 세척하는데 2분에서 5분, 건조하는데 5분에서 10분 정도의 시간이 걸립니다. PRC4i는 레코드에 용액을 도포하고 손으로 브러시를 잡고 거품을 내기 때문에 자동화된 초음파 방식보다 번거롭고 조금 더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이 Loricraft의 기계는 건조하는 시간이 따로 필요하지 않습니다. 톤암이 움직이며 흡입과 건조를 한 번에 마무리하기 때문입니다.
Loricraft 사는 매뉴얼을 통해 세척 시 한 면당 시계방향으로 한번, 반시계 방향으로 한 번 더 세척하길 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면을 두 번씩, 총 네 번의 갱생의 시간을 거치면 정전기와 지문, 먼지로부터 발생하는 틱 잡음, 소리의 왜곡이 사라지며 레코드는 본래의 맑은 고음과 공간감, 잔향감을 내어줍니다.
다만 이미 심각하게 손상된 상태라면 그 LP의 그루브는 복구되지 않습니다. 상처의 형태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소음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하여 레코드 표면의 상처로부터 발생하는 잡음은 여전히 남아 어떤 레코드 클리너도 LP의 소리골까지 복구하지 못한다는 매우 당연한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차별적인 요소
만약 음반에 접착성의 이물질이 단단히 붙어있다면 초음파 방식만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결국 브러시 같은 물리적인 방식을 통해서 불순물을 제거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지요. 게다가 초음파를 이용해 매질을 진동시켜 먼지를 분리해도 물을 빼내는 과정에서 다시 바이닐에 묻은 채 건조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Loricraft는 세척 첫 단계에서부터 세척액과 브러시를 통해서 불순물을 제거하고 흡입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시간은 더 소요되지만 가장 깨끗하게 청소할 수 있습니다. 이 방식은 수분, 먼지 등의 잔여물이 남지 않아서 더욱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실제로 사용하면서 만족감이 높았습니다. 다만 손이 많이 가고 공간을 차지한다는 단점은 턴테이블을 즐기는 아날로그 애호가들의 숙명을 떠올리게 합니다.
어느 날 Pablo Casals가 연주하고 1952년 Philips에서 발매한 Schubert Quintet Op.163 음반을 청소하기 위해 저의 초음파 세척기를 작동시켰을 때의 일입니다. 갑자기 음반이 회전하지 않는 것입니다. 당황하여 고장이 난 줄 알고 이것저것 만지다 다른 음반은 잘 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원인은 이 오래된 음반이 다른 12인치 음반들 보다 아주 살짝 작아서 세웠을 때 롤러에 제대로 접촉되지 않아서 회전이 어려웠던 것입니다. Loricraft였다면 일어나지 않을 일입니다.
초음파 방식과 Loricraft 방식의 모든 제조사에서는 세척 시 정제수 사용을 권하고 있습니다. 정제수란 미네랄이나 다른 기체가 녹아있지 않고 순수하게 물만 남아있는 상태로, 저는 필요할 때마다 약국에서 몇 통씩 구입하는데 꾸준히 유지 비용이 들어갑니다. 물을 매질로 이용하는 초음파 방식은 정제수 1리터 한 병으로 세 번 정도 세척이 가능합니다. 반면 Loricraft는 세제를 희석하기 위한 용도로 이용하기 때문에 사용량은 현저히 적습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Loricraft 쪽이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겠습니다.
초음파 방식과 Loricraft 방식의 또 다른 차이점은 노이즈의 음역대입니다. 초음파는 고음역대의 노이즈가 발생합니다. 고주파가 발생하면 저의 경우 음악은 아예 듣지를 못하기 때문에 청음 공간에 함께 둘 수 없습니다. 자동화된 기계라서 다른 방에 두고 문을 닫아 둘 수 있다는 점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래도 소음이 새어 나옵니다.
반면, PRC4i는 액체를 흡입하기 위한 진공 펌프를 작동시킬 때 나무의 바디가 울리는 상대적으로 저음역대의 소음이 발생합니다. 이 소음은 물론 진지하게 음악을 듣기에 방해가 되겠지만, 초음파 방식에 비하면 훨씬 나은 수준입니다.
달라지는 소리
같은 음악을 담은 LP라도 언제 어디서 발매되었느냐에 따라서 음질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1959년 발매한 Miles Davis의 Kind Of Blue는 최근 Analogue Productions에서 발매한 것과 구별되는 소리 특성을 지닙니다. 그 말인즉 음반들이 각각 미세하게 다른 소리 골의 형태를 지닌다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런 미세한 소리 차이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음반 애호가들에게 소리 골에 붙어있는 불순물로 인해 발생하는 정보의 오류는 참을 수 없는 것입니다.
Loricraft PRC4i는 오래된 음반에서 큰 영향을 발휘합니다. 우리가 오래된 바이닐을 구입할 때 나름 괜찮은(very good +) 상태이거나 심지어 새것에 가까운(near mint) 것이라도 앰비언스(특정 공간을 표현하는 소리)는 훼손되고 소리의 디테일이 뭉툭해지며 음의 해상도가 떨어진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나 발매한지 50년 정도 된 음반이라면 멀쩡해 보이는 상태라 하더라도 막상 들어보면 상당한 기저 잡음이 들리기도 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Oscar Peterson Trio의 We Get Requests 앨범은 1965년에 발매된 스테레오 초반입니다. Loricraft 사에서는 오래된 음반을 세척할 때 거품을 낸 후 어느 정도의 시간 동안 놔두길 추천하고 있습니다. 세제와 브러시로 거품을 낸 후에 5분 정도를 불렸다가 톤암으로 흡입하는 것을 몇 번 반복하자 B 면 첫 곡에서 트라이앵글 소리와 흡사한 고음의 타악기 잔향감이 변한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곡 전반의 입체감과 자연스러움이 잘 살아납니다. 본래 음반이 가지고 있는 정보들이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장작이 타는 듯한 소리도 상당히 감소하여 듣는데 거북함이 없었습니다.
LP의 소리 골에 흡착된 미세먼지와 각종 불순물들은 각 음역대에 영향을 줍니다. 결국 제대로 청소가 되지 않은 음반은 음질적으로 왜곡이 발생하게 됩니다. 상태에 따라서 잘 세척된 바이닐은 고음질 버전의 LP를 구입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내기도 합니다.
2021년에 구입한 Ella Fitzgerald의 Ella Wishes You A Swinging Christmas(Acoustic Sounds 버전) 앨범에서 A면 4번째 수록곡을 듣는데 무언가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Ella의 목소리 고음 쪽에서 부자연스럽게 찌르면서도 막혀있는 듯한 소리가 귀에 계속 거슬렸는데 외관상 아무런 문제가 보이지 않지만 세척을 해보기로 합니다. PRC4i로 세척을 하고 턴테이블에 올렸는데, Ella의 혀와 입천장이 닫는 소리가 더욱 잘 들리고 고음역이 확연히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종종 듣는 음반들은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됩니다.
새 음반도 세척이 필요한 경우가 있습니다. 간혹 유통과정에서 먼지를 머금은 채 배송되기 때문입니다. 최악의 경우 속지가 마분지 같은 종이로 되어 있고 배송 과정에서 흔들림이 발생한다면, 종이의 미세한 파편들과 정전기로 인해서 물 세척을 하지 않고서는 재생이 힘들게 됩니다. 습식 세척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물을 이용해 잘 세척한 후 다른 마찰 없이 잘 건조가 되었다면 정전기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 정전기를 제대로 제거하지 못하면 턴테이블 주변에 있는 먼지들이 레코드에 달라붙거나, 정전기 그 자체가 카트리지 바늘에 음향적으로 안 좋은 영향을 줄 것이 자명합니다.
결론
이 기계로 두 장 이상의 오래된 LP를 세척한다면 삼십분 이상 시간이 소요될 것입니다. 반 시간 동안 세척만 하고 있다면 자칫 지루함과 회의감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청음실에서 음악을 들으며 작동시킨다면 좋겠습니다. 음질을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기꺼이 투입할 수 있으며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고 계신 분께 추천드립니다.
한 차원 높은 세정력을 보여주는 이 Loricraft Audio 사의 PRC4i는 비쌉니다. 이것을 구입하려는 분이라면 아마도 이 기기보다 비싼 턴테이블을 사용하고 있을 것이며, 턴테이블 가격보다 많은 금액을 LP 구입에 쏟아부었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리고 대개 그런 애호가들은 소음에 민감한 경우가 많습니다.
왼쪽부터 PRC4i, PRC6i
그래서 조금 더 욕심을 내자면, PRC4i 보다 49mm 높고 더 비싸지만 조용한 PRC6i를 선택하는 것이 청음실에서 스트레스가 적을 것입니다. 저라면 추가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PRC6i를 구입할 것 같습니다.
Loricraft Audio 사의 PRC 시리즈를 통해 오래되고 다시는 구할 수 없는 귀중한 음반의 아직 발견하지 못한 감동을 찾을 수 있을 것이고, 새 음반 배달이 잦아져도 확실하고 편리하게 깨끗한 음질을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Written by 김우혁
Specifications
Versions | Europe 230v, USA 115v and Japan 100v (Japan version switchable for 50/60Hz) |
Dimensions | W: 550mm D: 410mm H: 273mm |
Weight | 15kg (unit only) |
Loricraft Audio PRC4i
수입사 | 큐브코포레이션 |
수입사 홈페이지 | cubecorp.kr |
구매문의 | 02-582-98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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