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학2012-05-10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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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미국에 와서 헷갈린 용어가 카운티(County)다. 우리 식으로 번역하면 군(郡)정도에 해당하는데, 그렇다면 시(市)보다 하위의 개념으로 다가온다. 아니, 시라는 말도 미국에서는 좀 의미가 다르다. 일례로 캘리포니아에서 L.A.를 찾아보자. L.A.라고 지칭된 광범위한 지역 안에 이스트 L.A.니 사우스 L.A.와 같은 소규모 단위의 지역들이 또 포진해 있다. 대체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지 않은가.
나중에 알았는데, 미국은 주(州) 단위로 크게 땅을 구분한 다음, 카운티~시티 순으로 나눈다. 그런 면에서 시보다는 군이 먼저라는 이야기다. 캘리포니아만 따지면 58개의 카운티가 있고, 그중 가장 큰 것이 바로 L.A. 카운티다. 그 속에 이스트 L.A.니 비벌리 힐스니 헐리웃과 같은 시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럼 우리가 흔히 듣는 오렌지나 어바인, 애너하임은 대체 뭔가? 이게 L.A. 카운티 속에 들어있는 시인지 혹은 별도의 카운티인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정답은 후자다. 모두 하나의 카운티들로 그 안에 여러 개의 시를 갖고 있는 것이다.
왜 이렇게 장황하게 카운티에 대해 쓰나하면, 오디오퀘스트(이하 AQ)를 찾아가려고 지도를 검색하면서 여러모로 혼란을 느꼈기 때문이다. 어바인이라는 단어를 만나자 처음에는 L.A.의 남부 지역 정도로만 알았다. 하지만 이것은 엄연한 하나의 카운티로, 당연히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다. 당연히 L.A. 카운티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만일 그 중간에 위치한 풀러턴 카운티에 사는 친구 내쉬 임의 도움이 없었으면, 이번 방문은 상당한 난항을 겪었을 것이다. 실제로 L.A. 시내에서 어바인까지의 거리를 따지면 우리의 서울~천안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교통편도 여의치 않고, 마땅한 정보도 없어서 참 난감했는데, 구세주처럼 내쉬가 나타났으므로, 참으로 편하고, 쉽게 취재 장소를 찾아갈 수 있었다. 이 기회를 빌어 감사를 표한다.
사실 L.A. 인근에 사무실이 소재했다는 말은 참으로 애매하다. 매킨토시처럼 아예 뉴욕에서 뚝 떨어진 빙햄턴이라든가, 에어처럼 덴버에서 한참 떨어진 볼더라고 하면, 어쨌든 메이커에서 손수 차량을 제공한다. 그러나 AQ는 좀 애매하고, 실제로 나중에 알아보니 L.A. 시내에서 기차를 타고 갈 수도 있다고 한다. 이래저래 초행길은 여행자들에게 혼란과 불안감만 가져다는 주는 것이다.
아무튼 가는 길에 고속도로의 이정표를 보니 진 오트리 도로가 나온다. 이 양반은 초기 컨트리 뮤직의 대가다. 영화에도 여러 편 나왔다. 맥아더 장군의 도로명도 있고, AQ 인근의 공항명은 존 웨인이다. 역시 영화와 쇼 엔터테인먼트가 발달한 지역답다.
AQ를 찾은 것은 CES가 끝나고 난 바로 다음 주로 상당히 어수선할 때다. 행사가 끝나자 마자 AQ의 담당 딜러들이 본사에 모여 회의를 한다고 하는데, 이번 방문은 바로 그 회의가 끝난 다음날이었다. 같은 방문이라도 시기가 잘 맞아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이번에는 불청객이 되고 말았다.
어쨌든 처음 캘리포니아 지역에 온 것은 몇 년 전 CES 취재차였는데, 뜻하지 않게 매년 1월에 이 지역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꼴이 되었다. 그런데 바로 이 시기만 딱 떼어놓고 말하면, 정말 캘리포니아, 특히 L.A. 지역만한 곳이 없다. 단순히 기후가 따뜻한 것만은 아니다. 맑고 푸른 하늘이 드높이 펼쳐진 데다가 그 아래 하늘을 뚫을 듯한 기세로 쭉쭉 뻗어있는 팜 트리의 위용은, 과연 이곳이 캘리포니아구나 실감나게 한다. 또 낮에는 대충 반팔로 다녀도 될만큼 기후가 선선하고, 저녁에 약간 추운 편인데 우리로 치면 늦가을쯤에 해당한다. 작은 히터 하나면 켜도 훈훈하게 잠을 잘 수 있다.
이 시기에 개인적으로 유럽의 지중해 지역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날씨에 관한 한 그냥 악몽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추운 데다가 난방 시설이 완비되지 않은 곳들이 많아, 그야말로 옷을 몇 겹 걸치고 벌벌 떨면서 자야했으니까. 그래서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지나가는 말로 그래도 기후 하나만은 좋아, 라는 약간 자조적인 말도 웃으며 한다.
(이 시기에 영하 15도니 20도니 한국에서 벌벌 떨며 고생했을 애호가분들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도 든다.)
이렇게 기후가 좋고, 농업이 발달해서 야채며 과일 값이 싸고, 당연히 인심도 좋다. 만일 여생을 아무 곳에나 편히 지내겠다고 결심한다면 단연 추천 1위의 지역이다. 또 오렌지 카운티라던가 풀러턴, 어바인 등은 기본적으로 집값이 비싸고, 학군도 좋아 성공한 한국인들이 많이 거주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IT 관련 업체들이 많이 들어서 이래저래 각광받고 있다. 돈많은 중국인들도 많이 들어와 한중 타운이라는 용어가 생길 정도다. 그런 면에서 일찍이 이 지역에 자리잡은 AQ는 부동산 투자 면에서도 큰 재미를 보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여러 오디오 업체를 탐방하면서 느낀 것은, 각 회사의 성격이나 기업 철학에 역시 소재지의 기후나 역사, 분위기 등이 반영된다는 점이다. 꼭 국민성까지 들먹일 생각은 없지만, 추운 데엔 추운 대로, 따뜻한 데엔 따뜻한 대로, 그 나름의 독특한 개성이 있다 하겠다. 그 점에서 오디오 문화란 상당히 깊은 것이다.
그럼 캘리포니아의 강점은 무엇인가? 바로 다양성이다. 단순히 기후만 좋은 것이 아니라, 전세계에서 몰려온 수많은 인종과 민족들을 모두 아우르는 포용력이 있다. 그러므로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절대로 나와 같이 생긴 사람은 한 명도 찾아볼 수 없다. 흑인, 멕시칸, 푸에르토리컨, 중국인, 인도인 등등 가히 인종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그만큼 프랑스에서 말하는 “똘레랑스”도 발달했다.
나는 AQ의 최신 행보를 보면서 바로 이런 다양성, 포용력과 같은 미덕을 찾아볼 수 있었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거나, 뭐가 낫다고 주장하지 않고, 싸면 싼대로 비싸면 비싼대로 합리적인 음질을 보장하며, 아날로그나 디지털 혹은 오디오나 비디오 케이블을 모두 같은 가치를 가진 분야로 생각해서 일체의 선입견 없이 접근한다는 점은 AQ의 최대 강점이 아닐까 싶다.
그러므로 최근에는 애플 관련 케이블이나 각종 인터넷, 이더넷 관련 제품들이 줄줄이 나오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심지어 지난 방한 때 AQ측은 혹시 우리가 만들지 않은 포맷의 케이블이 있으면 한번 알려달라 부탁한 적이 있다. 그러나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이런 다양성은 계속 AQ가 신선한 아이디어를 갖고 전진하는 바탕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드디어 AQ 본사에 왔으므로, 조 할리 (Joe Harley)씨의 안내를 받아 본격 탐방에 들어가겠다. 참고로 할리씨는 오랜 기간 스튜디오의 엔지니어로 일해 왔으며, 그 결과 한때 AQ의 레이블로 된 음반사를 운영한 적도 있다. 최근에는 블루 노트의 음반들을 45 RPM으로 변환해서 자신의 레이블 이름으로 출시하고도 있다. 자택에서 늦은 밤에 블루 노트의 세션을 담은 사진들을 뒤적일 때가 제일 행복하다는 만큼, 기본적으로 재즈에 경도된 필자에겐 더 없이 친근한 선배님이기도 하다.
AQ에 들어서니 간단한 리셉션이 나온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내방객이 많아, 전문 직원이 관리하고 있다. 이윽고 조 할리씨가 나와 그의 안내로 안에 들어갔다. 여기는 담당 직원의 동반이 없이는 내부에 들어갈 수 없다. 하긴 첨단 기술력을 보유한 회사라 아무나 들락거릴 수는 없으리라.
일단 안에 들어가니 사무실이 나온다. 이곳은 마케팅 전문 직원들이 상주하는 곳으로, 수많은 주문을 처리한다. 지역에 따른 배분이 철저하게 이뤄져, 효과적으로 수출을 관리하고 있다. 사진에 보이는 분이 스티브 파커씨로 총책임자다.
이윽고 복도를 통해 공장으로 향했다. 복도의 벽에 장식된 각종 홍보물이 인상적이다. AQ는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케이블을 다 제조하지만, 퀄리티 컨트롤이 뛰어나 등급에 따른 정확한 배분이 이뤄지고 있다. 만일 이 리스트를 본다면 자연스럽게 어떤 제품이 어떤 급수에 속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드디어 제일 보고 싶었던 작업실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제조되는 것은 주로 하이엔드급으로, 최소 6년 이상의 근속을 한 분들이 직접 만들고 있었다. 여기서 제일 상위의 모델은 WEL인데, 순동에 은을 입힌 소재를 컨덕터로 쓰고 있다. 이 도금의 두께가 상당해서 100 마이크론 정도라고 한다. 당연히 순은과 같은 성질을 갖게 된다. 여기에 각종 진동 차단 기술이 들어가고, DBS가 얹어진다.
DBS의 개념은 상당히 오래 전에 나왔다고 한다. 최초로 주장한 분은 폴 클립쉬로, 당초 클립쉬 스피커의 크로스오버 제작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그 요체는 케이블의 길이가 길어질 수록 저항이 커지므로, 이 부분의 자기장을 제거하면 보다 정확한 전송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상품화한 것이 바로 DBS다.
최근에 AQ는 일체 납땜을 하지 않은 방식으로 제조하고 있다. 단순한 압착이 아닌, 컨덕터의 성능을 일체 저해하지 않는 방식을 도입하고 있는데, 이런 콜드 웰드 (Cold Weld) 수법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직접 볼 수 있었다. 이때 사용되는 물질이 실버 페이스트로, 0.23 온스에 50불이나 할 정도로 비싸다. 이를 접합 지점에 일정하게 넣어 압착하면, 컨덕터와 자연스럽게 융합되는 것이다. 일종의 샌드위치를 연상하면 된다.
이 사진들은 숙련공이 일부러 어떤 과정으로 콜드 웰드를 하는가, 직접 시범을 보인 장면이다. 단순히 단자와 컨덕터를 압착하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클램프를 넣어 선을 뺀 다음 단자와 연결하는 수법이 흥미로웠다.
참고로 조 할리씨는 신제품 소개를 위해 해외 여행을 자주 가는 편이다. 그럼 꼭 검색대에서 걸린다고 한다. 가방에 담긴 제품 중에서 DBS가 지적되기 때문이다. 대체 이게 뭐하는 것이냐. 뱃터리라면 무슨 기폭 장치와 관련있지 않냐, 꼼꼼히 따진다고 한다. 이게 케이블과 관련된 제품이라 아무리 설명해도 못 알아듣는 이들이 태반이라니, 결국 카탈로그를 보여줘서 납득시키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작업실 한 구석에는 각종 케이블들과 단자들이 즐비하게 쌓여 있다. 이를 일정한 길이로 잘라내는 커팅 도구도 보였는데, 진동 방지를 위해 탁자에 단단히 부착되어 있다. 그리 크지 않은 공간이지만, 숙련공들의 빼어난 솜씨로 하나하나 제작되는 터라, 완성된 케이블을 보니 상당한 믿음이 갔다. 역시 어떤 분야든 하이엔드급은 모두 사람 손을 거치게 된다. 이와 비슷한 규모의 작업실이 또한 네덜란드에 있어서 유럽 전역의 수요를 충당한다고 한다.
자재 창고로 가면서 잠시 들린 곳이 카페테리아다. 이곳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거나 커피를 마신다. 커피 머신이라던가 음료, 스낵 등을 파는 밴딩 머신 등이 눈에 들어왔다. 상당히 쾌적하고, 깔끔한 작업 환경이다.
사실 AQ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회사다. 주요 생산 기반을 중국으로 옮겼지만, 창고에 수납된 수많은 제품들을 보면서 과연 전세계를 상대하는 회사는 다르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처음 본 것은 HDMI 케이블로, 당연히 여러 급수가 있다. 현재 이 케이블의 인기가 대단해 매그놀리아나 베스트 바이와 같은 가전 전문 체인점의 요구가 있다고 한다.
HDMI는 영상과 음성 신호를 동시에 보내는 케이블이다. 당연히 내부 구조가 복잡해서, 여기에 들어가는 부품들은 아시아에 있는 특수 공장에서 제작한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AQ가 원한 것은 특수한 메탈이었고, 이를 특별히 허가한 모 국가의 허락이 있었기에 그 회사가 납품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자세한 내막을 알 수는 없지만, 케이블 제조라는 것이 그리 단순한 비즈니스가 아니라는 느낌이 왔다.
그런데 이 공장을 운영하는 사장 역시 오디오 애호가라고 한다. 얼마 전에 AQ를 방문했을 때엔 할리씨의 자택에 와서 새벽 2시까지 함께 음악을 들었다고 한다. 확실히 음악은 만국공용어다. 혹 블루 노트의 세션 사진도 보여주지 않았을까?
여기는 소량 주문을 위한 파트다. 큰 박스 단위가 아닌 열 개, 스무 개 정도의 주문 처리는 이쪽에서 이뤄진다. 북미 각지의 딜러들이 그때 그때 HDMI 열 개, RCA 인터커넥터 스무 개 하는 식의 주문이 오면 직접 배송 담당자들이 와서 집어가는 식이다.
또 한쪽에는 아이폿 단자를 USB로 바꾸는 식의 브릿지 케이블들이 잔뜩 쌓여있다. 최근에 애플에서 소개한 썬더볼트라는 새로운 전송 방식 역시 지금 연구 중이라 상품화할 날이 머지 않았다.
이곳 공장의 명물 중의 하나가 천장에 달린 거대한 팬이다. 이들은 “빅 애스 팬” (Big Ass Fan)이라 부르는데, 여름에 큰 활약을 할 것이다. 한편 이곳엔 아예 박스가 없이 케이블만 달랑 있는 것들도 보였다. 알고 보니 인스톨러용으로, 한꺼번에 대량으로 가져가서 바로 사용함으로 굳이 박스가 필요 없는 것이다. 또 스피커 케이블의 경우 그때 그때 주문을 받아 원하는 길이로 제작해준다고 한다. 인스톨이라는 것이 특수한 룸 환경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때로는 벌크선으로 길게 연결하기도 하고 반대로 고가의 제품을 짧게 연결할 일도 있을 것이다. 이런 주문 생산까지 모두 커버하는 곳이 바로 AQ인 것이다.
이번에는 다른 건물에 위치한 창고로 가봤다. 점차 AQ의 비즈니스 영역이 넓어져, 현재의 공간이 곧 부족할 것이라 하니, 참 부럽기만 하다. AQ는 베스트 바이용 저가 제품들도 따로 생산하고 있는데, 특히 AV 관련 제품들이 많았다. 또 코스트코를 위해 특별히 와이어 로직 (Wire Logic)이란 회사를 만든 바, 비록 엔트리 클래스지만 충실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한다.
문득 클린 스크린 (Clean Scree)이라는 브랜드가 있어서 뭐냐고 물어봤더니 역시 코스트코 용으로, 각종 디스플레이를 닦는 용품들이라고 한다. 그 한편으로 래디오 색 체인을 위한 파이프 라인 (Pipe Line)이라는 브랜드도 별도로 있었다. 이 브랜드만을 위한 별도의 건물을 지을 예정이란다. AQ는 기본적으로 하이엔드 지향의 메이커지만, 이런 비즈니스도 필요한 법.
다시 창고에 오니 할리씨가 직원 한 명을 붙들고 꼭 사진을 찍으라고 한다. 리치라는 분으로, 항상 웃는 얼굴이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분이라고 하니, 이 분의 미소가 더욱 따뜻하게 다가온다. 그래요, 늘 웃고 삽시다.
이곳은 고가의 부품들만 모아놓은 곳이다. 일일이 절차를 거쳐 반출되는 만큼, 아무나 들락거리며 꺼내갈 수 없다. 한편 AQ에는 음악 애호가들이 많고 그 중에는 광적으로 LP를 수집하는 분들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조 할리의 제안으로 일본의 라이라 카트리지를 특별히 수입하고 있다. 미국내 디스트리뷰트까지 하고 있지만, 물건이 들어오면 제일 먼저 직원들부터 구입한다고 한다. 할리씨는 자택에서 아틀라스라는 모델을 쓰고 있는데, 미화 1만불에 가까운 금액이란다. 카트리지 하나에 1만불이라니!
이제 본사 건물의 2층으로 갔다. 이곳부터는 본격적인 오피스 지역으로, 임원실 및 R&D, A&R 관련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처음 들린 곳은 사장실로, 마이크 맥커널이란 분과 인사를 나눴다. 일종의 전문 경영인으로 AQ의 운영을 도맡아 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빌 로우는 제품 제작에 전념하고, 할리씨는 리스닝 테스트 및 홍보에 주력하는 식으로 역할 분담이 잘 이뤄지고 있다. 당연히 마이크의 주력 분야는 세일즈.
이번에 들린 사무실은 빌 보이어라는 분이 쓰고 있다. 그는 AQ 이외의 브랜드들을 관리하고 있는데, 전술한 와이어 로직, 클린 스크린, 파이프 라인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이 중 클린 스크린을 보니 LCD TV나 모니터뿐 아니라 노트북이나 핸드폰의 디스플레이 모두 닦을 수 있다. 언제 기회가 되면 꼭 구매하고 싶은 제품이다.
DC4-30이란 제품도 눈에 들어왔다. 이것은 요리를 하거나 빨래를 하는 기기들에 특별히 사용되는 파워 코드다. 사실 미국에는 상업용으로 제작된 냉동 냉장 기기나 세탁기의 사이즈가 엄청나다. 당연히 양질의 파워 코드가 필요하다. 50불 정도하는 이 제품이 어떤 활약을 할지는 충분히 짐작이 될 것이다.
이런 제품을 만들게 된 동기는 간단하다. 수천불짜리 기기를 들여놓고, 파워 케이블은 고작 몇 달러짜리 안팎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장이 나면 간단하게 이 부분만 수리해놓고 70불짜리 청구서를 들이밀기 일쑤다. 뭔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지 않은가?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곳 건너편에 있는 퍼시픽 세일즈라는 회사다. 주로 플럭이나 와이어를 파는 곳으로, 당연히 이런 제품을 핸들하기엔 더 없이 좋지 않은가. 이래서 이웃사촌이라고 했던가?
이어서 찾아간 곳은 바로 디자인실. 여기엔 3명이 근무하는데, 그 중 한 분이 한국인으로 주 유하씨다. 전혀 뜻하지 않은 곳에서 동포를 만나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빌은 제품의 성능뿐 아니라 디자인 역시 중요시해, 바로 자기 옆방에 디자인실을 두고 수시로 들려서 체크한다고 한다. 직원들 입장에선 죽을 맛이겠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멋진 패키징이나 박스 디자인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
빌이 없어서 아쉽지만 그래도 잠시 그의 오피스에 가봤다. 분홍색 자켓을 걸친 분이 캐런이라는 비서로, 그의 일정 모두를 책임지고 있다. 할리씨에 따르면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을 하는 분이라고 한다. 충분히 짐작이 된다.
빌의 사무실엔 호랑이 그림이나 새 조각 등 전혀 어울리지 않은 소품들이 눈에 띠었다. 그런데 그게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는 메인주와 뉴욕 그리고 이곳에 각각 아파트와 주택 등을 소유하고 그때 그때 필요하면 지낸다고 한다. 나 또한 방 하나짜리라도 좋으니 라스 베거스 정도쯤에 지낼 곳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온 터라, 빌의 생활 방식에 상당히 공감이 되었다.
참고로 빌의 취미는 예술 영화 감상이다. 그래서 실험 영화나 특수한 영화 관련 페스티벌이 열리면 꼭 참석한다고 한다. 일할 때 일하고, 쉴 때엔 확실히 쉬는 타입이구나 싶었다.
마지막으로 조 할리씨의 방에 들렀다. 그리 크지 않지만, 양쪽 벽에 빼곡히 전시된 재즈 뮤지션들의 사진으로 그의 기호를 충분히 엿볼 수 있었다. 특히 한쪽 벽을 장식한 콜트레인과 그랜트 그린의 액자가 멋지다. 문득 내 방도 이런 식으로 꾸며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시청실 차례. 아마 많은 분들이 AQ에선 무슨 시스템으로 음악을 들을까 상당히 궁금해할 것이다. 메인 시스템은 록포트의 미라 스피커를 중심으로, 에어의 일렉트로닉스가 기본 매칭이다. CD 및 SACD 플레이어로 사용하는 DX-5를 위시해, KXR 프리, XMR 파워 등이 눈에 띤다. 또 그리폰의 안틸레온 시그너처 파워도 가끔 쓰고 있었다.
한편 PC 파이를 위한 시스템도 한쪽에 비치되어 있다. 첫 번째 시스템은 좀 거창한 것으로, 조셉 오디오의 북셀프에다 옥타브에서 나온 인티 앰프가 쓰이고 있었다. 두 번째는 패러다임의 스피커에 파이오니아의 AV 리시버를 연결한 시스템.
최근 AQ에선 드래곤플라이이라는 USB DAC를 개발했는데, 그 시제품을 여기서 들어볼 수 있었다. 엄지 손가락만한 크기의 제품에 업샘플링 기능을 넣고, 해드폰까지 출력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음질도 좋은 데다가 휴대성이 뛰어나 큰 주목을 받을 것 같다.
아무튼 이런 다양한 환경에서 새로 나온 케이블을 시험하고 있으며, 메인 테스트는 결국 조 할리씨의 귀를 통해 이뤄진다. 그야말로 골든 이어인 셈. 여기서 다양한 음악을 들으며 인터뷰가 이뤄졌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디오퀘스트를 대표하는 조 할리와의 인터뷰는 동사의 시청실에서 이뤄졌다. CES의 열기가 채 가라앉기 전이라, 많은 직원들이 외근을 하거나 출장을 간 상황이라, 오히려 조용한 가운데 진득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참고로 조 할리씨는 이니셜 JH로 표기한다.
- 드디어 이곳 어바인까지 와서 공장 견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할리씨의 집도 이 근처라고요?
- 드디어 이곳 어바인까지 와서 공장 견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할리씨의 집도 이 근처라고요?
JH : 네. 차로 40분 정도 달리면 나옵니다. 원래 이 지역에서 쭉 살고 있었는데, 본사가 이쪽으로 이전하는 바람에 출퇴근이 더 용이해졌죠. (웃음)
- 그럼 간단하게 AQ의 역사에 대해서 소개해주시죠.
JH : 저희 회사는 1980년에 윌리엄 E. 로우 (William E. Low)에 의해 창업되었습니다. 창업 다시의 모토라고 하면 아주 간단합니다. “해를 입히지 말아라!” (Do no harm!) 다시 말해 최고의 케이블은 그 존재 자체가 없는 것처럼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많은 케이블 회사들은 음색을 튜닝하는 방식으로 만드는데, 저희는 그런 방침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애호가들이 기기를 교체하게 되면, 그런 케이블은 쓸모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아주 중립적이어야 어떤 기기가 들어와도 사용할 수 있으니까요.
- 창업 당시에는 제품 라인업이 그다지 많지 않았죠?
JH : 네. 3종의 스피커 케이블과 2종의 인터 커넥터가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케이블이 없는 것과 같은 상태였습니다. 말하자면 “Sound of No Cable"이죠. 그래서 바이패스 테스팅을 꼭 해봅니다. 그것도 제 집에 있는 시스템과 빌의 집에 있는 시스템에 각각 물려서 말이죠. 이때 주안점으로 삼는 것은 음악입니다. 음악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신호 전달 과정에 일체의 간섭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이를 기준으로 계속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온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 그럼 그 과정에서 숱하게 소재들을 바꿔보고, 새로운 기술을 도입했다고 보입니다만.
JH : 맞습니다. 일례로 1980년대에 히타치에서 리니어 크리스털 방식으로 만든 순동을 만들었습니다. 실험해보니 아주 좋았습니다. 한동안 사용했죠. 그런데 5~6년 뒤에 일본에서 PCOCC (Pure Copper Ohno Continuos Cast)라는 소재가 나왔습니다. 샘플을 받아 만들어보니 이전 것보다 나았습니다. 그래서 한 10년 정도 사용했죠. 그러다 1998년경에 PSC를 시작했습니다. PSC는 “퍼펙트 서피스 카퍼”의 약자인데, 역시 이전보다 소리가 좋을 뿐 아니라, 소재 자체가 소프트해서 가공이 용이했습니다. 안 바꿀 이유가 없는 것이죠.
- 직접 생산 시설을 둘러보니 이렇게 소재를 바꾸거나 제작법을 개량하면 반발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JH : 맞습니다.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이나 직접 현장에서 뛰는 세일즈 쪽에서 당장 반발이 나옵니다. 이럴 경우, 이전까지 만든 제품이 뭐가 되냐는 것이죠. 또 손에 익숙한 방식을 바꿔야 하는 부담도 있고요. 그러나 빌과 저는 소리가 좋다고 하면 절대로 주저하지 않고 바꿔왔습니다. 물론 파일럿 케이블이라고 해서, 일단 시제품을 만들어보면 모두가 다 만족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저희는 엄밀하게 테스트하기 때문에 이 부분을 통과하지 않으면 절대로 제품화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기준을 통과하면 주저 없이 교체하는 것이죠. 설령 디자인이나 박스를 통째로 바꿔야 해도 개의치 않습니다.
- AQ의 홈 페이지를 들어가거나 지금처럼 인터뷰를 해보면 지나칠 만큼 많은 정보를 공개해서 당황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 경우 경쟁사가 카피하기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JH : 기본적으로 빌은 일체의 과장이나 거짓말을 무척 싫어합니다. 진실, 정확성 등을 삶에서도 또 일에서도 추구합니다. 그는 늘 판매 담당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자동차 세일즈 맨이 아니다. 절대로 허풍을 치지 말아라. 일례로 CES에 한번 가보세요. 수많은 회사들이 뭐가 새롭고, 뭐가 엄청나다는 식의 광고를 무척 많이 합니다. 우리는 절대 그러지 않습니다. 광고를 해도 뭔가 교육적인 면이 있습니다. “노이즈 감소 시스템”과 같은 식입니다. 지극히 단순하지만, 어떤 내용인지 정확히 알리고 있죠.
- 정말 대단하군요.
JH : 실제로 빌은 일일이 케이블을 다 잘라서 보여줍니다. 일체의 비밀이 없습니다. 심지어 제작 비법도 공개합니다. 그래서 저희 회사 담당 변호사가 와서 만류할 정도입니다. 왜 그런지 혹시 짐작이 가십니까?
- 글쎄요.
JH : 소비자의 입장을 생각해서입니다. 왜 내가 이 돈을 내고 AQ의 케이블을 사느냐, 그 이유를 명확히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은 저도 AQ 직원 이전에 한 명의 오디오파일입니다. 어떤 회사의 케이블을 보면 2만불, 3만불 하는데, 무슨 내용으로 만들었는지 거의 언급이 없습니다. 그냥 비싸니까 소리가 좋겠지, 정도의 느낌만 갖고 구매해야 하는 것이죠. 저는 아무리 싸구려 케이블이라 해도 어떻게 만들었는지 다 공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애호가 입장에서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다가옵니다.
JH : 저희는 딜러들에게 절대 더 팔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빌은 트레이닝이라는 말을 싫어합니다. 개나 훈련시키는 것이지 어떻게 사람을 훈련시키냐는 것이죠. 딜러들이 소리를 듣고 호기심이 생기면 제조법에 대해 설명하고, 그래서 자발적으로 판매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저희의 원칙입니다. 이번에 새로 입사한 빌 보이어만 해도 그렇습니다. 원래 판매 업무를 오랫동안 했으므로,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AQ의 방식으로 영업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그가 담당하고 있는 코스트코와 래디오 색의 지점들을 합치면 800개가 넘습니다. 이곳의 구매자들은 플랫 TV를 사놓고 떡하니 벽에 걸어놓으면 끝인 줄 알고 있죠. 이게 끝이 아니다, 라는 것만 알려도 큰 진전이 있다고 생각하므로, 절대 서둘지 말라고 했습니다.
- 아마도 그런 방식이 지금의 AQ를 탄탄한 회사로 만들지 않았나 싶군요.
JH : 빌이 창업할 무렵인 1980년만 해도 직원이라고는 달랑 저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마저도 낮에는 헐리웃에 있는 녹음 스튜디오에서 일하고, 밤에만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이었죠. 빌의 창고에서 이렇게 두 사람이 케이블을 조립하는 식으로 작게 시작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저희 회사가 한 번에 엄청나게 도약을 해서 몇 배나 확장시키는 일은 없었습니다. 다만 매년 조금씩 커지고 있었죠. 늘 연구하고, 실험하고, 배우는 일의 연속이었다고 할까요? 그래서 저희는 일체 세일즈 맨들에게 뇌물을 주거나 별도의 보너스를 지불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런 회사도 있습니다. 차를 사주거나 바하마로 여행을 보내주는 식이죠. 그럴 경우, 세일즈맨은 이런 회사를 존경하지 않습니다. 그냥 돈이나 벌어 가면 된다고 생각하죠.
- 현재 회사 구성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시죠.
JH : 저희는 이곳 어바인 본사에 약 50명의 직원을 두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이엔드급 케이블을 만들고 또 R&D며 마케팅을 처리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네덜란드에 또 하나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15명의 직원들이 있는데, 직접 하이엔드급 케이블을 만들죠. 왜 그런가 하면, 유럽쪽의 수요를 바로 처리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중국에 공장을 두고 3명의 관리자가 파견되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희와 일하는 공장은 B&W 스피커도 만드는 곳이므로, 상당한 숙련공이 포진해있고, 기초 시설이 잘 완비되어 있죠.
- 올해 신제품 런칭 계획이 있다면 간략하게 소개해주시죠.
JH : 일단 저가이면서 성능이 뛰어난 인터커넥터를 소개할 것입니다. 또 반대로 순은을 사용한 1,800불짜리 케이블도 준비 중이죠. 그 외에 하이엔드급 케이블이 나올 것입니다. 말하자면 20불짜리부터 7,500불까지 다양한 제품들이 출시될 예정입니다.
- 늘 쉬지 않고 새로운 컨셉의 제품을 만드는 빌의 창조력에 감탄할 뿐입니다.
JH :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웃음)
- 아무튼 긴 시간, 공장 투어와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JH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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