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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dio

형식의 선입견으로부터 벗어나라

by onekey 2024. 2. 29.
여진욱2016-11-26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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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커와 헤드폰 및 이어폰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는 트랜드듀서(Transducer)이다. 트랜스듀서는 일반적으로는 보다 대중적인 단어인 드라이버(Driver)라고 일컬어진다. 트랜스듀서의 사전적 정의는 전기신호를 다른 형태의 신호로 변환하는 장치이다. 오디오 시스템에서의 트랜스듀서는 시스템의 가장 단말 기기에 해당하는 스피커(헤드폰)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로서, 전기신호를 받아서 음파로 변환하는 장치이다.
 
 
 

 
▲ 정전형 헤드폰의 대명사 STAX 헤드폰
 
 
음악 감상용 스피커와 헤드폰에 쓰이는 드라이버에는 여러 가지 형식이 있다. 가장 일반적인 다이나믹형을 비롯해서 평판형과 정전형, 리본(A.M.T), 그리고 이어폰에서만 쓰이는 밸런스드 아마쳐 등 여러 방식이 존재한다. 각각의 드라이버 형식에는 그 설계의 특성상 고유의 사운드 성향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정전형은 높은 고음 한계, 밸런스드 아마쳐는 높은 감도와 같은 식이다. 그래서 다이나믹 드라이버가 아닌 다른 특징적인 드라이버를 사용할 경우 그 드라이버 형식에 의해 특징적인 사운드를 가질 가능성이 높다.
 
 
 

 
 
▲ 평판형 헤드폰인 Audeze 헤드폰
 
 
그래서 특수한 형식의 드라이버를 사용하는 제품 혹은 메이커는 특정한 매니아층을 형성하는 경우가 많다. 정전형 하면 떠오르는 Stax(헤드폰), Quad(스피커), 평판형 하면 떠오르는 Audeze(헤드폰), 리본 트위터 하면 떠오는 Elac(스피커), Adam(스피커) 등이 대표적이다. 해당 브랜드의 매니아층은 그 브랜드 고유의 드라이버 방식을 열광적으로 추종한다. 다른 평범한 제품들로는 채울 수 없는 특별함이 있기 때문이다. 
 
 
 
▲ 리본트위터를 사용한 ELAC 스피커
 
그 특별함은 무엇보다도 앞서 언급했던 그 특징적인 사운드에서 비롯된다. 실제로 정전형 드라이버나 리본 트위터를 사용한 제품을 처음 접해 보면 그 매력적인 고음에 금방 매료된다. 이론적으로 따져 보았을 때에도 정전형과 리본형은 초고음 재생에 유리한 물리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평판형의 경우에는 저왜율과 깊은 저음의 재생에서 유리한 설계로, 묵직한 저음 및 전 대역에 걸쳐 깨끗한 사운드가 특징이다. 그렇게 드라이버 형식에 의해 태생적인 유리함을 타고나기에 특수 드라이버를 사용한 제품들의 사운드는 당연히 특별할 수밖에 없다. 자동차로 비유하자면 내연기관으로 추진되는 가솔린/디젤 자동차와 전기모터로 추진되는 전기 자동차는 자동차의 핵심을 이루는 엔진의 방식 차이로 인해 주행감이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는 것과 같다.
 
그러나 대부분의 애호가들이 의외로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스피커(헤드폰)의 사운드는 드라이버가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실제로 스피커에서 드라이버의 형식에 의한 사운드의 차이는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만큼은 크지 않다. 다이나믹 드라이버도 설계에 따라서는 다른 형식의 드라이버에 가까운 특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고음 재생 특성은 진동판의 구경을 작게 하고 단단한 재질을 사용하고 진동판의 질량을 줄임으로써 고음 재생 대역의 확장이 가능하다. 저음의 경우엔 진동판의 구경을 크게 하고 자석과 코일의 힘을 키움으로써 저음 재생 성능을 높일 수 있다. 다이나믹 드라이버는 오디오 하드웨어의 역사의 처음부터 함께 한 고전적인 방식으로서 매우 오랜 세월 동안 축적된 노하우가 있다. 그래서 그 설계의 유연성과 완성도는 다른 방식의 드라이버들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 하이엔드 오디오 스피커인 Sonus Faber 스피커 인클로저의 내부
 
 
그리고 드라이버 이외에도 사운드를 결정하는 다른 수많은 요소들이 있다. 드라이버가 장착되는 인클로저, 드라이버 주변에 장착되는 혼이나 그릴 등의 구조물, 멀티웨이 설계일 경우 드라이버의 개수나 위치 등이 사운드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요소들이다. 심지어 스피커의 경우에는 설치 방법과 위치 같은 스피커 외적인 요소에 의해서도 사운드가 크게 변화한다. 헤드폰의 경우에는 이어패드의 재질과 형상이라던가 헤드밴드의 장력과 같은 변수들이 존재한다. 그렇게 사운드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수많은 요소들이 있음에도 단순히 드라이버의 형식에 따라 사운드를 단정 짓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이 스피커는 리본 트위터를 썼으니까 매력적인 고음을 들려줄 것이다'와 같은 단순한 인과관계를 당연시해서는 곤란하다는 얘기다. 
 
결정적으로, 많은 애호가들이 생각하는 각 드라이버 형식만이 특징적인 사운드는 사실은 드라이버의 형식에 의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정전형 드라이버를 사용한 제품들의 그 매력적인 고음 특성은 사실은 드라이버에 의한 높은 초고음 재생 성능이 아닌 중고음 영역에서의 특징적인 음색이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한다. 사람의 귀로는 초고음 영역은 잘 판별이 되지 않고, 그에 비해 중고음 영역은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평판형 드라이버를 사용한 헤드폰들의 자랑인 깊은 저음도 사실 그 헤드폰들이 사용하는 평판형 드라이버의 경우 일반적인 다이나믹 드라이버들보다 상대적으로 대구경이기에 저음 재생 성능이 좋을 뿐이다. 이를 다르게 말하면 평판형 드라이버만큼 진동판 구경을 키우면 얼마든지 깊은 저음을 쉽게 낼 수 있다. 물론 다이나믹 드라이버로도 마음만 먹으면 정전형 헤드폰의 특징적인 중고음을 흉내낼 수 있다.
 
 
 

▲ 헤드폰 다이나믹 드라이버 각 부분의 기능적 설명도
 
 
특별한 방식의 드라이버를 사용한 제품들이 주파수 대역폭이나 왜율 등 음질 성능이 우수한 이유도 다시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특수 드라이버들은 그 수요가 많지 않기 때문에 대량 생산이 힘들다. 이는 다르게 말하면 제조 원가의 상승이 불가피하며 결국 제품의 평균 가격대를 높이는 원인이 된다. 그래서 특수 드라이버를 사용한 제품들은 자연스럽게 고급화 전략을 강요받는다. 실제로도 특수 드라이버를 사용한 제품들은 여러모로 설계에 특별히 신경을 쓴 고급형 제품들이 주류를 이룬다. 즉, 특수 드라이버를 사용한 제품들은 기본적으로 그 수준의 평균이 높다. 그래서 자연스레 특수 드라이버 사용 제품들의 프리미엄 이미지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경차부터 대형차까지 폭넓은 라인업을 가진 도요타와, 그 도요타 소속의 브랜드이자 일정 수준 이상 고급 모델들만 출시하는 렉서스의 브랜드 이미지 차이를 떠올려 보자.
 
 

▲ B&W P7 Wireless Headphone
 
 
글을 정리하자면, 스피커(헤드폰)의 사운드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우선적으로는 드라이버의 형식은 머릿속에서 지우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헤드폰은 정전형 드라이버를 사용해서 고음이 매력적이다'라고 생각하지 말고, '이 헤드폰은 고음이 매력적이다'와 같이 우선 단순하게 생각하려고 노력해 보자. 우선은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사운드만 들어본 다음, '이 헤드폰은 고음이 매력적인데 알고 보니 정전형 드라이버를 사용했더라'와 같이 본인이 느낀 사운드에 대한 원인을 나중에 생각해 보자. 어느 기기를 처음 접하면서 원인(설계)을 생각하지 않고 결과(사운드)부터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는 그 제품을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를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만약 결과를 받아들이기 전에 원인부터 생각한다면, 머릿속으로 미리 알고 있는 원인에 의해 결과를 이미 단정 지어 버리게 된다. 예를 들면 정전형 드라이버를 사용하면서 고음 재생 한계가 높지 않은 이어폰이 있음에도 이 이어폰은 정전형 드라이버를 사용했으니까 고음 한계가 높다고 미리 단정 짓는 식이다. 먼저 받아들인 정보로 대상을 단정 지어 버리게 된다는 사실은 이미 심리학적으로도 '초두효과'라는 이름으로 증명되어 있다. 초두효과를 일상적인 단어로 바꾸어 보자면 다름 아닌 '선입견'이다.
 
스피커(헤드폰)을 처음 접할 때 선입견을 줄 수 있는 요소는 드라이버의 형식뿐 아니라 메이커, 디자인, 가격 등 다른 수많은 요소들이 공존한다. 그래서 제품의 사운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말하기는 쉬워도, 감정이 없는 기계가 아닌 사람인 이상 이를 실천으로 옮기기는 대단히 어렵다. 심지어는 대상의 객관적인 분석을 위해 선입견의 배제를 다년간 '훈련'해온 필자조차도 여전히 선입견으로부터 100% 자유롭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선입견의 존재를 미리 의식하느냐 의식하지 못하느냐 만으로도 대상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진다. 아이들이 어른에 비해 순수할 수 있는 이유는 편견이 없기 때문이다. 기존에 선입견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면, 집에 있는 기기들부터 순수한 마음가짐으로 비교청음해 보는 것으로 천천히 실천에 옮겨 보시기를 권하고 싶다.
 
- 여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