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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dio

오디오와 인지부조화

by onekey 2024. 2. 29.
코난2016-08-10 18:38
추천 39 댓글 1
 
오디오 기기는 심리적인 경계노선, 감정선과 관련해 다양한 관점과 시선이 공존한다. 비근한 예를 하나 들어보자. 자신의 음악적인 통찰력과 남들보다 더 뛰어난 경험이 있지만 이를 하이파이 오디오로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이 저조할 경우 그 사람은 불안하다. 반대로 오디오와 관련된 지식은 풍부하고 온갖 주파수 특성 그래프 측정 및 해석 능력, 전기/전자 관련 지식은 가지고 있지만 음악적 경험과 직관이 부족한 경우 오디오라는 취미는 어느 샌가 지루한 것이 되어버리기 십상이다. 전자와 후자는 서로 다른 소실점을 가지고 동일한 물체를 바라보듯 서로 다른 생각과 기준을 가진다. 
 
그런데 또 하나 경우의 수가 끼어들어 존재한다. 하드웨어는 음악재생의 궁극적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다. 이 말의 의미는 결국 성능이 좋은 기기를 동원해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재미를 느끼고 감성적으로 충만할 수 있게끔 만들어줄 수 있는 수준의 오디오여야 한다. 따라서 금전적인 여유가 필요하다. 이것은 캐스팅 보트가 되어 많은 사람들을 딜레마에 빠지게 한다. 그럴 경우 많은 오디오파일은 자기 합리화와 함께 인지부조화를 겪게 된다.
 
여기에서 허점이 존재한다. 첫 번째 상황은 경제적으로 타협한 경우다. 국내 제작품이 해외 하이엔드 기기에 버금가는 성능을 보여줄 수도 있겠지만 대신 브랜드 밸류는 기대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실리적 관점으로 도피한다. 알맹이는 저가 제품과 동일한데 섀시만 바꾸어 그럴싸한 기술용어로 포장, 제작한 제품을 수천만 원에 즐기는 것이 하이엔드라며 해외 하이엔드 메이커 사용자를 조롱하기도 한다. 대신 합리적인 가격대에 유사한 음질을 내주는 메이커(라고 믿는) 제품들 사용하겠다는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 대게 제 3의 조건, 경제적인 여유 조건에 타협한 결론이다. 
 
두 번째 상황. 만일 동일한 사람에게 금전적 여유가 충분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 대답은 달라질 것이다. 금전적 여유가 높다면 단 1% 의 성능 향상만 있더라도 엄청난 금전적 부담을 감수할 거라고 생각한다. 나조차도 허접한 섀시 디자인에 동네 주민들이 모두 사용하고 있는 제품을 나름 오디오파일인 내가 똑같이 사용하고 있다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을 것 같다. 적어도 브랜드 밸류라도 높은 제품을 써야 무시 받지 않을 것 같은 게 인지상정이다. 금전적 여유가 충분한 경우 꼰대라고 손가락질 받더라도 이런 심리적 현상을 비껴갈 사람은 많지 않을 듯하다. 이런 오디오파일에게 1% 는 단지 1%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존심은 매우 얄팍한 것이어서 실험을 통해서도 증명된다. 만일 이미 정말 최악의 영화로 소문난 영화 하나를 소개하면서 A그룹에는 1인당 백만 원씩 비용을 지불할 테니 이 영화를 최고의 영화로 소문내라고 지시했다고 치자. 그리고 또 다른 B그룹 멤버들에겐 단 십만 원의 수고료를 지급할 테니 최고의 영화라고 주변사람들에게 소문내라고 의뢰했다.
 
결과는 어떨까 ? 실제 실험 결과 A그룹은 충분한 보상 금액에 따라 별로 뛰어나지도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부담감에 최고의 영화라고 거짓 소문을 냈다. 도덕적으로 양심을 버린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B그룹은 단 만 십만 원의 수고료 따위에 그런 낭설을 퍼뜨리는 것에 자존심을 걸기 싫었다. 이런 쪽팔리는 상황을 타계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이 영화가 매우 재미있는 명화라고 자신을 설득시키는 것뿐이다. 십만 원에 도덕적 양심을 파는 허접한 인격의 소유자가 되기 싫기 때문이다. 결국 B그룹은 해당 영화가 진심으로 훌륭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주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그 영화를 추천한다. 
 
하이파이, 그 중에서도 하이엔드 오디오에서도 이런 인지부조화 현상은 잊을만하면 다시금 찾아오는 질병 같은 것이다. 때로는 정도를 넘어 시기와 질투, 옹졸한 적개심과 편 가르기로 흐르기도 한다. 업체, 동호인을 막론하고 그들 사이 보이지 않는 벽이 항상 공존하는 이유다. 사촌이 땅을 사면 가 아프다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는 이 분야에서도 절대 옅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도피한다. 해외 하이엔드 제품들은 모두 사기꾼이라는 멍에를 씌우고 DIY 나 공동 제작 제품으로 도피해 함께 그 제품의 우월성을 주장하며 서로 위로한다.
 
그렇다고 모든 국내 제품이 가격 대비 성능을 담보하는 것이냐면 그렇지 않다. 반대로 해외 유수의 하이엔드 제품이 모두 거품만 잔뜩 낀 사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논리 자체도 사실이 아니다. 국내에서 소규모 공방에서 한땀 한땀 정성을 다해 제작한 오디오가 그 어느 해외 하이엔드 제품보다 뛰어날 수 있다. 한편 가격대비 성능조차도 오히려 해외 하이엔드 제품보다 떨어지는 국내 제품이 근거 없는 애국심과 집단 심리에 의해 칭송되기도 한다.
 
 


문제는 전체적인 프레임 안에서 제품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고 남들이 만들어낸 프레임 안에서 가치관을 정립해나가는 행태다. 해외 제품에 대비한 국내 제품, 국내 제품에 대비한 해외 제품 모두 자존심이나 경제적 이득 때로는 집단 심리에 함몰되어 잘못된 가치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주관적 취미생활에 웬 객관 타령이라면 할 말은 없지만 최소한의 균형감각은 필요한 법이다. 적어도 논리적 비약이 심한 인지부조화 현상은 없어져야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제품의 성능과 가격, 얼마나 독창적인 음악적 표현력과 기술적 근거가 명확하고 우수한가에 있다. 국산이냐 공제품이냐 초고가 하이엔드 브랜드 제품이냐는 그 다음 문제다. 종종 진실이 아닌 외부적 요인이 그 진실을 왜곡하고 오히려 피상적인 부분들에 집착하는 경우를 많이 목도한다. 음악은 음악이고 오디오는 오디오일 뿐이다. 지나친 자기합리화 그리고 때로 인지부조화로 흐르는 일이 없어야 한다. 
 
즐겁고 재미있어야할 오디오 라이프를 방해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선입견이다. 이건 이 브랜드 제품이니 이럴 것이다. 저건 어느 나라 제품이니 저럴 것이다 등 저마다의 선입견은 오디오의 재미를 반감시킨다. 무엇보다 하이파이 오디오의 재미는 의외성이다. 내가 생각한 어떤 브랜드는 이런 소리라고 알고 있었는데 실제 사용해보니 매우 다른 소리를 내준다. 해외 모 브랜드 제품은 가격만 비싸고 소리는 형편없다던데 실제 내 시스템에서는 어떤 제품도 대체 불가능한 매칭과 함께 딱 원했던 소릴 들려준다. 어떻게 보면 오디오 매칭은 이론을 근거로 한 확률 싸움이 된다. 그런데 그 방대한 매칭의 변수, 수많은 브랜드를 모두 섭렵할 자신이 없으니 스스로 선입견을 만들고 자기 암시를 준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메이커들이 요즘 해외에서 약진이다. 에이프릴 뮤직의 오라노트가 스테레오파일 추천기기 A클래스에 오르기도 하고 웨이버사는 최근 중국과 일본 시장에서 커다란 주목을 받고 있다. SOtM 오디오는 이미 해외 여러 웹진에서 다뤄지며 컴퓨터오디오파일의 인기를 받아온 지 꽤 되었다. 오렌더는 애초에 국내 상륙전부터 해외에서 유명했었고 뜨거운 호평을 받은 후에야 국내 런칭되었다. 
 
 


재미있는 현상은 오히려 그들, 해외 오디오파일들의 눈으로 본 국산 오디오 메이커들에 대한 평가가 더욱 객관적이고 사용자의 인식도 더 합리적이다. 이유는 명확하다. 그들은 나무가 아닌 숲을 본다. 그들은 우리보다 평균적으로 좀 더 합리적인 세계관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고 무엇보다 주체적인 철학을 가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적어도 우리보다는 더 나은 것 같다. 주체적인 오디오파일이라면 남이 만들어놓은 교과서적 프레임 안에서 머물지 말고 좀 더 다양한 관점과 시선의 메타언어 속에서 균형감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렇지 못한 경우 한낱 오디오가 종교가 되기도 한다. 
 
 


국내에서는 국내 메이커가 어떤 제품을 출시하고 프로모션하면 하이엔드 유저들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다. 선입견이다. 반대로 국산 제품을 애용하는 그룹에서는 해외 하이엔드 제품을 무슨 사기인 것 마냥 일갈한다. 과연 이 두 그룹은 화해할 수 없는 것인가 ? 이제 “해외 하이엔드 메이커에서 출시했으면 몇 배의 가격표를 달고 나왔을 것” 이라는 말은 왠지 허황되게 들린다. 한편 어설픈 기술로 초고가 가격을 제시하는 무늬만 하이엔드 제품은 오디오파일들이 먼저 정확히 알아보는 시대가 왔다. 그들만 모르거나 모른 척 애쓰거나 또는 쉬쉬하고 있거나 셋 중 하나다.
 
 


여가로서의 오디오는 무엇보다 음악과 소리로 평가 받아야 마땅하다. 가장 핵심적인 맥락이 무시되고 주변부로 밀려나며 그 자리에 편파적인 선입견과 집단 이기가 자리 잡을 경우 그 폐해는 고스란히 동호인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간다. 다른 외부 요인을 탓하기 전에 오디오파일 스스로 가장 중요한 맥락의 핵심에서 멀리 벗어나 있진 않은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깟 오디오가 뭐라고. 이제 좀 더 열린 시각으로 선입견을 버리고 넓고 깊게 바라볼 줄 아는 혜안을 가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