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blog.naver.com/kimkwmy/223723561574
Intro - 모든 것의 시작, 4310
1968년에 출시된 JBL 4310
1968년 미국 JBL에서 3웨이 모니터 스피커가 출시됐다. 1.4인치 트위터와 5.25인치 미드, 12인치 우퍼를 단 이 스피커는 캐피탈 레코드를 시작으로 EMI, 데카, RCA 같은 유명 레코딩 회사의 대표 모니터 스피커로 속속 채택됐다. 1970년대 나온 웬만한 록과 팝 앨범은 이 스피커로 녹음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10년이 훌쩍 지나 나온 마이클 잭슨의 대표작 Thriller(1982년), Bad(1987년) 녹음 때도 모니터 스피커로 활약했다. 바로 JBL 43xx 모니터 스피커의 시작을 알린 4310 이야기다.
1948년 JBL 미국 캘리포니아 본사 모습
4310이 등장한 1960년대 후반은 전세계적으로 음악과 오디오의 격변기였다. 주류 음악은 이미 점잖은 재즈나 블루스, 올드 팝, 영화 사운드트랙에서 신나는 로큰롤과 록, 댄서블 팝으로 바뀌었고 녹음과 믹싱 스튜디오의 수도 급격하게 늘어났다. 특히 JBL이 있던 미국 캘리포니아는 도어즈, 그레이트풀 데드, 제퍼슨 에어플레인, 마마스 앤 파파스, 몽키즈, 아이언 버터플라이, CCR, 이글스, 밴 헤일런 등을 배출한 웨스트 코스트 뮤직의 뜨거운 본산이기도 했다.
1969년 우드스탁 페스티벌. JBL이 메인 무대 스피커로 활약했다.
앞서 1960년대 중반부터는 비틀스와 롤링스톤즈 같은 영국 록밴드의 미국 시장 침공(브리티시 인베이전)이 시작됐고, 1969년에는 40만 관객이 운집한 가운데 산타나, 그레이트풀 데드, 재니스 조플린, 더 후, 제퍼슨 에어플레인 등이 참가해 연대와 평화를 외쳤던 역사적인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미국 뉴욕주 베델에서 열렸다. 그리고 이 무대를 장식한 스피커가 JBL, 앰프가 매킨토시였다.
이 시기에는 또한 음악을 전달하는 주류 미디어도 1948년에 등장한 LP에서 1963년에 등장한 카세트 테이프로 주도권이 넘어갔다. 1968년 한 해에만 미국에서 필립스를 비롯한 85개 업체에서 만든 240만대의 카세트 테이프 레코더가 팔렸다. 오늘의 스위스 나그라를 있게 한 테이프 레코더 Nagra IV가 출시된 해도 1968년이었다.
이 같은 시대의 흐름은 1960년대 미국 빌보드 연간 HOT 100 차트에서도 읽힌다. 아니,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이 변하자 이에 맞춰 미디어와 모니터 스피커가 바뀌었다고 보는 게 옳다. 1960년에는 엘비스 프레슬리가 달달한 목소리로 발라드 ‘It’s Now or Never’(1960년 7위)를 불렀지만, 1969년에는 밴드 CCR이 사이키델릭 록의 명곡 ‘Proud Mary’(1969년 19위)를 불렀던 것이다.
1960년 : It’s Now or Never (엘비스 프레슬리. 7위), Only the Lonely (로이 오비슨. 20위)
1961년 : I Fall To Pieces (팻시 클라인. 2위), Sad Movies (수 톰슨. 20위)
1962년 : I Can’t Stop Loving You (레이 찰스. 2위)
1963년 : Surfin’ U.S.A. (비치보이스. 연간 1위), Blowin’ in the Wind (밥 딜런. 13위)
1964년 : I Want to Hold Your Hand (비틀스. 1위), She Loves You (비틀스. 2위)
1965년 : (I Can’t Get No) Satisfaction (롤링스톤즈. 3위)
1966년 : California Dreamin’ (마마스 앤 파파스. 1위), Last Train to Clarksville (몽키즈. 4위)
1967년 : Light My Fire (도어즈. 6위), Happy Together (터틀즈. 8위)
1968년 : Hey Jude (비틀스. 1위), Sunshine of Your Love (크림. 6위)
1969년 : Honky Tonk Women (롤링스톤즈. 4위), Proud Mary (CCR. 19위)
JBL 4310. 콘솔 위에 스피커를 올려놓고 쓰는 프로 모니터 시장을 겨냥해 중고역 유닛을 밑에, 사실상 풀레인지로 활약한 12인치 우퍼를 위에 배치했다
JBL 4310과 1973년에 나온 후속기 4311은 이같은 시대의 요청에 정확히 부합했다. 3웨이 구성에 45Hz~15kHz라는 준수한 주파수응답특성, 91dB라는 높은 감도는 거의 무제한으로 치솟는 록 밴드 일렉 기타의 고음과 이를 뚫고 선명히 들려야 하는 중역대 보컬, 그리고 폭발하는 드럼의 저음을 모니터하기 위한 최적의 조건이었다. 특히 중고역대를 부스트할 수 있는 2개의 컨트롤 노브와 사실상 풀레인지로 활약한 12인치 우퍼는 이들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우퍼를 위쪽에 단 것 역시 4310이나 4311을 콘솔 위에 놓고 쓰는 스튜디오 환경을 고려한 것이었다.
1970년 - 역대 최고의 베스트셀러 L100 Century의 탄생
JBL L100이 등장한 1980년 히타치 Maxwell 카세트 테이프 광고
1980년 미국의 유명 음악잡지 롤링스톤에 2페이지짜리 비범한 광고가 실렸다. 소파에 앉은 한 남성이 앞에 놓인 스피커를 듣는 장면인데, 뒤로 휘날리는 머리카락과 넥타이, 그리고 소파 손잡이를 꽉 움켜잡은 자세까지 누가 봐도 스피커에서 엄청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짐작케 했다. 광고 주인공은 언제 들어도 생생한 소리를 들려준다는 히타치의 Maxwell 카세트 테이프였지만 정작 화제가 된 것은 남자를 자지러지게 한 스피커, JBL L100이었다.
1970년에 등장한 L100 Century
L100은 4310이 나온 지 2년이 흐른 1970년 봄 시카고에서 열린 CES에서 처음 공개됐다. 정식 이름은 L100 Century. 4310이 스튜디오에서 모니터 스피커로 인기를 끌고 많은 뮤지션과 엔지니어들이 4310을 자신들의 집에서도 사용하자 아예 ‘4310의 홈 오디오 버전’으로서 L100 Century를 내놓은 것이다. 1970년은 현 JBL 모기업 하만 인터내셔널의 전신인 저비스 코퍼레이션이 JBL을 인수한 바로 다음 해이기도 했다.
L100 Century의 유닛 구성은 4310과 동일했다. 1.4인치 트위터는 페이퍼 진동판 재질의 LE20, 5.25인치 미드레인지는 역시 페이퍼 진동판을 쓴 LE5-2, 12인치 페이퍼 우퍼는 123A-1, 모두 똑같았다(LE는 Low Efficiency(저효율)의 약자로 1950년대 말 인기를 끌던 에드거 벌처의 저감도 밀폐형 스피커를 겨냥해 개발됐다). 마그넷도 두 모델 모두 알니코를 썼다. 공칭 임피던스 8옴, 감도 91dB, 주파수응답특성 45Hz~15kHz도 동일했다.
초창기 JBL 3웨이 스피커. 왼쪽부터 4311, L100A, L100, 4310
그러나 홈 오디오 스피커인 만큼 변화도 있었다. 우선 유닛 배치가 바뀌었다. 스튜디오 모니터용 4310은 콘솔 위에 올려놓았을 때 중고역 2개 유닛이 귀 높이에 오도록 우퍼를 위쪽에 배치했지만, 홈 오디오용 L100 Century는 바닥이나 낮은 스탠드 위에 올려놓기에 우퍼를 아랫쪽에 배치했다. 4310에서 중고역 유닛들이 장착됐던 반달 모양의 돌출 패널도 L100 Century에서는 사라졌다.
L100 Century. 시그니처인 쿼드렉스 폼 그릴을 장착했다.
L100을 영화 ‘슈퍼맨’의 주인공 클라크 켄트(Clark Kent)에 비유한 광고
결정적 차이는 그릴이었다. 실내 인테리어를 감안해 부드러운 폼 재질에 촘촘한 사각 격자 문양을 한 쿼드렉스(Quadrex) 그릴을 채택했는데 이것이 또 하나의 히트메이커가 되었다. 컬러도 다크 오렌지, 블루, 블랙으로서 파격 그 자체였다. 폼 하나하나는 미세한 구멍이 송송 뚫린데다 옆에서 봤을 때 끝이 좁아지는 사다리꼴 형태를 취해 소리 왜곡을 최소화했다.
1974년에 등장한 JBL L100A
L100 Century는 이후 1974년 한 해 전 나왔던 4311의 홈 오디오 버전 L100A를 내놓았다. L100A가 되면서 트위터와 미드의 배치가 온셋에서 오프셋으로 바뀌었지만 인기는 여전했다. 무엇보다 두 모델 모두 소리가 좋았고, 작은 앰프 출력으로도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흔치 않은 스피커였다. 특히 L100 Century는 1978년 단종될 때까지 무려 25만조가 팔려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JBL 스피커이자 1970년대 최고의 베스트셀러 스피커로 기록됐다. 1978년에 단종된 이유도 값이 더 싼 4311에 수요가 몰렸기 때문이었다.
(2부에 계속)
'Audio'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돌고래 고음, 주파수는 얼마? (0) | 2025.01.13 |
---|---|
케이블, 혈관이 막히면 소리도 막힌다 (0) | 2025.01.13 |
〈What Hi-Fi?〉가 선정한 2024년 최고의 DAC : USB, 데스크탑 및 휴대용 DAC 2 (0) | 2025.01.12 |
〈What Hi-Fi?〉가 선정한 2024년 최고의 DAC : USB, 데스크탑 및 휴대용 DAC 1 (0) | 2025.01.12 |
〈스테레오파일〉 2024년 가을 턴테이블 추천 : B 클래스 (0) | 2025.0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