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엔드 사운드의 화룡점정
실텍 Royal Double Crown IC XLR
오디오와 귀금속
지구엔 어마어마하게 많은 종류의 금속이 존재하며, 인류가 탄생한 이래 인간은 여러 금속 원자재를 가공해 사용해왔다. 구리, 아연, 금, 은 등이 대표적이다. 인간 또한 생래적으로 금속이 필요하다. 피의 적혈구엔 철이 포함되어 있고, 우리 인체를 골격을 이루는 뼈엔 칼슘이 함유되어 있다. 이 외에 나트륨과 칼륨, 그리고 마그네슘, 망간, 아연 등이 인체 내부에 존재하며 생명을 이어가는 데 필수 요소로 기능한다. 여기에 지구를 넘어 천문학 쪽까지 가면 금속의 범위가 무한 확장되어 또 다른 의미의 금속학이 태어난다. 최근엔 배터리 덕분에 리튬의 가치가 주목받고 있기도 하다.
그중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어 귀금속이라고 부르는 금속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금, 은, 백금 같은 것들이다. 어렸을 적 IMF로 인해 나라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을 때 전 국민이 금 모으기 운동을 했던 걸 기억하는가? 전 국민은 나라를 살리겠다는 일념 아래 장롱 속에 깊이 보관해놓았던 결혼 기념 금반지부터 시작해 은수저, 심지어 금이빨까지 빼냈다. 나라를 살리겠다는 일념이 금으로 모아진 것은 금이 그만큼 귀하고 그 가치가 높은 금속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종종 금에 투자하는 상품 가격이 경제 뉴스를 장식할 만큼 귀금속은 단순히 화폐로 치환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전쟁이 나 화폐가 휴짓조각이 되더라도 귀금속의 가치는 인정된다.
이런 특성을 띠는 광석 중에선 다이아몬드 역시 대표적이다. 최근엔 인공 다이아몬드 제작 기술이 엄청나게 발전했지만, 이전에는 모두 자연에서 얻은 것뿐이었다. 매우 귀하기 때문에 결혼 등 인생에서 아주 특별한 날 선물로 주고받는 반지나 목걸이에 활용되었다. 여자들은 다이아몬드의 퀄리티와 그 크기를 자신의 가치와 동일시할 정도로 다이아몬드는 가장 값비싼 가치를 대변해왔다.
타협 없는 최고 수준의 음질을 추구한다는 하이엔드 오디오에선 이런 귀금속이나 광석들이 종종 발견된다. 꼭 귀한 것이 아니더라도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부터 인공적인 자석에 이르기까지 금속과 광석의 가공물 조합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 리뷰하면서 놀라운 소리를 내주었던 카르마의 이니그마 베이런 4D는 트위터 진동판으로 다이아몬드를 사용한다. CVD, 즉 화학적 증착 기술을 통해 만든 인조 다이아몬드로서 하나에 천만 원을 호가한다. 때론 베릴륨을 진동판으로 사용하며, 매지코 같은 브랜드는 그래핀을 진동판에 채용하고 있기도 한다. 더 파고들면 내부 배선용 케이블은 은으로 만들어 순도와 전도율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누가 케이블에 2천을 태워?
하이엔드 오디오를 종종 테스트하는 나는 가끔 생각해 보곤 한다. 저 물건에 투입된 귀금속이나 광석들을 모두 모으면 얼마나 많은 양의 반지나 귀고리, 목걸이를 만들 수 있을까? 스피커 진동판들은 물론, 앰프까지 시야를 넓히면 기본이 금 도금이고 은이나 백금을 코팅하기도 한다. 어떤 단자는 아예 순은이고 섀시도 항공기 등급의 최고급 알루미늄을 사용하곤 한다. 승압 트랜스에 순은 코일을 사용하기도 하며, 카트리지 캔틸레버를 보론(붕소)로 만들기도 한다. 카트리지는 또 어떤가? 금과 은을 정말 아무렇지 않게 고작 음악 듣는 소자들에 듬뿍듬뿍 발라놓고 있다. 하지만 필자 같은 사람에게 반지나 귀고리, 목걸이와 오디오를 바꾸겠냐고 묻는다면 절대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물론 그만한 가치가 있는 오디오이며 뛰어난 소리를 들여줄 때에 한해서다.
가끔 고가의 케이블을 리뷰하고 그 소리나 품질에 대해 이야기하면 오디오에 대해 문외한인 사람은 ‘누가 케이블에 천만 원을 태워?’ 같은 질타를 받곤 한다. 물론 내가 직접 구입한 것은 아니지만 일반인의 시선에서 볼 때 미친 짓이라고 생각하는 게 이해는 간다. 하지만, 천만 원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 중 천만 원짜리 케이블을 구입하는 게 최선인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경험한 케이블은 물경 2천을 넘어간다. 이번엔 ‘누가 케이블 따위에 2천을 태워?’라는 이명이 들려올 판이다.
로열 더블 크라운
Royal Double Crown은 이름부터 로열패밀리, 명문가의 자손임을 천명하고 있다. 도체 소재는 순은 소재이며, 외관만 봐도 단자, 스플리터, 피복 등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그렇다면 이것도 럭셔리처럼 단지 귀금속 소재의 아름다운 디자인을 바탕으로 인생의 특별한 날을 기념하기 위한 세속적 가치에 부응하는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귀금속을 사용하고 있지만 그 소재와 구조, 전체 설계는 모두 “소리의 손실 없는 전달”이라는 소실점을 향해 모아져 있다.
우선 도체를 보면 S10이라는 순은 소재를 사용하고 있다. 이른바 모노 크리스털 소재다. G로 시작하는 도체의 경우 은을 기본 도체로 사용하되, 은의 입자 사이에 있는 그레인에 금을 주입해 신호의 전송에 왜곡과 손실을 가져오는 원인을 제거했다. 하지만 S10으로 올라오면 이른바 모노 크리스털 구조를 취한다. 이는 입자 사이에 존재하는 그레인, 즉 틈새 자체가 거의 없는 도체다. 따라서 금을 사용할 필요가 없어졌고, 순은만으로 신호 흐름에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최고 수준의 전도 효율을 완성했다.
한편 Royal Double Crown IC XLR은 도체를 총 여섯 개나 사용해 육각형 구조로 만들어진다. 이 구조는 완벽한 대칭형 구조로서 그 배열 자체로 인한 이점, 즉 전파 방해로부터 자유로워진다고 실텍은 설명한다. 케이블에서 꼬임 구조 등 배열을 활용한 지오메트리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대단히 중요하다. 심지어 꼬을 때 사용하는 장비에 따른 완성도 차이도 있다. 한편 전기가 흐르는 도체가 나란히 배열되어 있을 때 생기는 자기장과 그로 인한 상호 간섭을 피하기 위해 절연도 철저히 이뤄지고 있는데, 이 모델의 경우 캡톤과 테플론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외부 노이즈로부터 신호 전송을 보호하기 위한 차폐의 경우 ‘와이드 레인지 차폐’라는 방식으로 광범위한 주파수에 걸쳐 커패시턴스를 최소화하는 등 노이즈 억제에 최선을 다한 모습이다.
한편 케이블에서 도체만큼이나 혹은 도체 이상으로 중요한 단자의 경우 오야이데 포커스 1 단자를 채용하고 있다. 실텍은 자사의 제품에 사용할 단자를 직접 만들기도 하지만 타사에 특주 해 사용하기도 한다. 이 정도 가격대라면 모두 직접 만들 법도 하지만, 파워케이블과 XLR 단자는 오야이데 포커스 단자를 애용하고 있다. 아무래도 단자는 해당 전문 메이커에 특주를 통해 제작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판단인 듯하다. 한편 중간에 장착된 일종의 스플리터가 로열 가문의 자제임을 알려주고 있다.
청음
실텍 Royal Double Crown IC XLR 테스트에 사용한 장비는 다음과 같다. 한편 청음 공간은 청담동 소리샵 제1 청음실에서 진행했음을 밝힌다.
※ 사용 기기
파워앰프 : T+A A3000HV 모노 브리지(+PS3000HV)
프리앰프 : T+A P3000HV
소스 기기 : T+A MP3100HV 플레이어
스피커 : 윌슨 베네시 Omnium
구스타프 레온하르트 – ‘바흐 : Goldberg Variations’
실텍 케이블을 처음 들었을 때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소리 알갱이들이 세세하게 모두 장막 위로 올라오는 듯했다. 이번도 마찬가지로 챔발로의 기음은 뚜렷하지만 절대 딱딱하거나 건조하지 않다. 반대로 잔향이 묻어나면서 따스한 소리가 앰비언스처럼 청취자를 감싼다. 해상도나 윤곽감, 악기의 실체적 사운드 특색은 최고조로 끌어올려 주는 모습이다. 따라서 소리에 막이 낀 듯 답답하고 생기, 온기가 부족하다면 케이블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샨탈 챔버랜드 – ‘Temptation’
일반적인 거시적 주파수 특성만으로 케이블의 변화를 감지하기란 어렵다. 마이크로 부문에서 다각적으로 임피던스, 커패시턴스 등 다양한 부문에 얽혀 문제를 만들어내기 때문. Royal Double Crown은 매우 심도 있고 동시에 유연하면서 소리의 물리적 촉감, 텍스처에 영향을 준다. 리듬 섹션은 활기차면서 은은하게 공간을 휘감는다. 텐션이 좋아 밀고 당기면서 탄력적인 움직임을 보인다.
올라퍼 아르날즈/앨리스 사라 오트 – ‘쇼팽 : Nocturne in C# Minor’
인류가 이룩한 문화유산 중 악기 부문에서 스트라디바리를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스트라디바리 연주 재생에서 스피커에 소너스 파베르가 있다면 케이블에선 실텍이 제격이다. 이 곡에서 스트라디바리 음색을 수백 년 전 그 당시의 소리로 이끈다. 최신 하이엔드 오디오 세팅임에도 바이올린 현의 마찰 강도, 힘의 셈여림 밑 잔향 시간까지 너무나 실감 난다. 마치 현미경으로 스트라디바리의 바디와 현을 샅샅이 탐색하는 듯 세밀한 소리를 들려준다. 더불어 살짝 얹히는 착색은 음악에 대한 식감을 더해준다.
데얀 라지치 – ‘라흐마니노프 : 피아노 협주곡 2번, 1악장’
케이블은 상위 라인업으로 올라갈수록 자신의 주장이 강해진다. 오히려 더 정직해지기만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도 그만의 특징이 강해지는 걸 피할 순 없다. 실텍 상위급으로 가면 갈수록 심선의 지오메트리, 심선 개수가 달라지면서 정보량, 해상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처음엔 디테일, 음색에 차이가 크며, 더 올라가면 다이내믹스, 사운드 스테이징 등 더 거시적인 테두리까지 그 변화 영역이 확장된다. 실텍은 세지 않으면서 무대를 입체적으로 조망해 주며, 특히 깊게 물러선 무대 위에 악기들이 살아 숨 쉬는 듯 싱싱하다.
총평
누군가 케이블에 대해 묻는다면 일종의 조미료 같은 것이라고 말하겠다. 하지만 이 조미료 또는 향료는 아주 소량이기 때문에 가치 절하되기 십상이다. 만일 음식에서 조미료나 향료가 빠진다면 음식의 맛이 낮아지는 비율은 어느 정도나 될까? 음식의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 작은 것이 음식의 풍미를 절반은 없애버릴 수도 있고 때론 음식의 정체성을 좌우할 수도 있다. 케이블은 미시 세계의 소리 변화를 추구하는 데 마치 조미료나 향료 같은 역할을 하며 심미적으로 패션에 비유하면 럭셔리 액세서리 같은 역할도 한다.
실텍 Royal Double Crown 또한 그 바운더리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않는다. 그러나 그 음질적 변화는 단순한 변화가 아닌 상승에 있다.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없었던 것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원래 음원의 품질이 기존의 저품질 케이블로 인해 손상되었었던 것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케이블에 누가 2천을 태워?’라고 묻는다면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다고 대답하겠다. 적어도 실텍 Royal Double Crown이라면 충분하다. Royal Double Crown은 당신이 이룩하려고 했던 사운드의 화룡점정이 되어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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