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락, 아날로그의 르네상스를 꿈꾸다
Elac Miracord 70 Turntable
엘락의 반격
디지털 쪽 신생 메이커가 상당한 물량 투입을 통해 신제품을 출시한다. 대개 비슷비슷한 회로에 좋다고 소문난 소자를 부지기수로 투입하고 스펙을 최고조로 올린다. 사람들은 무비판적으로 가격 대비 성능이 좋다고 즐기며 실제로 믿을만한 설계와 좋은 소자만으로도 디지털 사운드는 가파르게 올라와 상향 평준화되고 있다. 그러나 아날로그 분야는 다르다. 신생 메이커가 갑자기 뛰어난 성능의 턴테이블을 만들어내는 걸 보지 못했다. 종종 킥스타터닷컴 등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서 아날로그 붐에 편승해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무장한 턴테이블들이 펀딩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자력을 통한 공중부양 등 신진 메이커들의 제품들은 완성도 면에서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LP 제작 쪽도 마찬가지다. 한동안 사라졌던 LP 공장이 다시 세워지고 있고 새로운 LP 전문 레이블이 생겨나고 있으나 오랜 시간 동안 만들어온 장인들의 그것을 뛰어넘기 쉽지 않다. 필자는 최근 들어 턴테이블을 추천해달라는 의뢰를 많이 받는다. 요구 사항은 제각각이어서 아주 저렴한 가격대에서부터 고가 하이엔드 턴테이블까지 매우 다양하다. 저가는 티악, 데논, 마란츠 등 주로 일본 메이커들의 차지다. 워낙 대량생산에 제조 단가가 낮아서 쉽게 접근하기 좋고 편의성 측면에서 초심자들의 요구에 부응한다. 조금 더 올라가면 레가나 프로젝트오디오의 미들 클래스 제품들이 보인다. 클리어오디오도 빠질 수 없으며 좀 더 상위 기기로 올라가면 린, VPI, 트랜스로터 그리고 초하이엔드 크로노스나 테크다스, 쿠즈마 등이 보인다.
그러나 추천할 때 가장 기준이 되는 것은 메이커의 역사다.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턴테이블을 만들어왔는가 또는 그들의 역사에서 대표할만한 상징적 제품이 존재하는 가다. 특히 입문형을 넘어 좀 더 상위급 제품들을 개발해본 메이커를 추천하는 편이다. 요즘 팬시상품 같은 턴테이블 말고 진짜 제대로 된 턴테이블을 만드는 메이커 말이다. 아날로그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한 분야다. 그리고 최근 엘락의 움직임은 심상치 않다. 위 리스트에서 이젠 엘락 턴테이블을 추가해야 할 듯하다. 엘락이 아날로그 턴테이블 시장에 반격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엘락 Miracord 70
몇 년 전부터 엘락은 다시 턴테이블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Miracord 90을 만들어내더니 이젠 Miracord 70 등 하위 기기들로 라인업을 확장하고 있다. Miracord는 엘락 턴테이블의 계보를 잇는 증거다. 1960년대 기계식 턴테이블이 대부분이었던 당시 독일 엘락의 Miracord는 음악을 즐길 줄 아는 중산층 집의 거실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 하루를 마감하고 가족들과 저녁을 먹으며 퇴근길 단골 레코드샵에서 구입한 신보를 엘락 Miracord 50H 같은 턴테이블로 즐겼을 것이다.
다시 돌아온 엘락 Miracord는 무척 세련된 모습이다. 수십 년의 세월을 건너 Miracord는 마치 중형 세단의 표면처럼 반짝이는 베이스에 유리로 만들어진 플래터로 치장하고 있다. 우선 Miracord 70은 외부 유리 플래터 안에 서브 플래터를 설치하고 이를 싱크로너스 AC 모터로 회전시키는 벨트 드라이브 방식이다. 완전 수동 방식으로 오토 스톱/리턴 기능 등 전자식 제어 기능은 모두 배제되어 있다.
일단 플린스는 상당을 고광택 블랙으로 처리했으며 그 소재는 고강도 MDF를 사용하고 있다. Miracord 90과 달리 전면엔 그 어떤 버튼이나 노브도 보이지 않는다. 33 1/3RPM과 45RPM 두 가지 속도만 지원하지만 이를 바꾸기 위해선 플래터를 벗겨내고 모터 풀리에 감겨있는 벨트의 위치를 바꾸어 주어야 한다. 45RPM을 자주 듣는다면 불편할 수 있다. 모터는 Premotec의 AC 모터를 사용하고 있는 모습이며 ON/OFF 스위치는 전면 하단 쪽에 위치해있어 그리 불편할 점은 없다.
턴테이블의 사운드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톤암은 인하우스 디자인으로 J 모양으로 만들어진 모습이다. 복고풍 디자인이 꽤 매력적인데 알루미늄과 강철을 적절한 비율로 섞어서 만든 톤암이라고 한다. 공진에 있어서 단 하나의 소재보단 두 종류 이상의 소재를 혼합할 때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침압을 주는 방식에 있어서는 아쉽게도 다이내믹 밸런스 방식은 아니며 스태틱 방식으로 제작한 모습이다. 이 외에 안티스케이팅을 조정할 수 있는 노브가 마련되어 있고 침압을 주기 위한 무게추가 제공되는데 무게 추에 눈금이 새겨져 있다.
아마도 엘락이 Miracord 70을 출시할 때 가장 중점을 두었던 부분은 다른 무엇보다 편의성과 음질의 양립이었던 듯하다. 기본적으로 번들 카트리지를 장착해 출시하고 있다. 카트리지는 오디오 테크니카의 AT-95E라는 MM 카트리지다. 가격 대비 좋은 카트리지이긴 하지만 턴테이블의 가격대에 비하면 너무 저가 카트리지다. 아마도 이 턴테이블을 구입한다면 꼭 카트리지를 더 상위 제품으로 교체해보길 바란다. 왜냐하면 다행히 톤암의 성능이 베이스의 구조 등 Miracord 70은 더 나은 성능을 내줄 수 있는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셋업
ELAC MIRACORD 70 Turntable Setup 보기 |
Miracord 70의 사이즈는 가로 465mm, 깊이 365mm 그리고 높이가 140mm로 일반적인 랙에 꼭 알맞게 들어가다. 카트리지 AT95E의 침압은 2.0g(±05g)으로 보편적인 수준이며 로딩 임피던스가 47K 옴에 출력이 3.5mV로서 일반적인 MM 포노앰프를 사용하면 된다. Miracord 70은 24V AC로 작동하며 금도금 RCA 출력 한조만 지원하고 역시 금도금 접지케이블을 제공하고 있다. 전체 무게는 11kg. 날렵한 디자인에 비하면 꽤 묵직한 느낌을 준다.
테스트는 청담동 하이파이 클럽의 작은 룸에서 이루어졌으며 포노앰프는 요즘 턴테이블을 발매한 Mo-Fi의 작은 포노앰프를 사용했다. 앰프는 일렉트로콤파니에 ECI6D 그리고 스피커는 펜오디오 카리스마 Signature 버전을 사용해 테스트했다. 셋업시 주의할 사항은 수평을 잡는 것이다. Miracord 70은 별도로 높이 조정이 가능하지 않으므로 랙 자체의 높이를 세심하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
사운드 퀄리티
Eva Cassidy - What a Wonderful World
Best Audiophile Voices
우선 에바 캐시디의 ‘What a Wonderful World’를 들어보았다. [Best Audiophile Voices] LP에 수록된 것을 들어보았는데 판이 꽤 휜 상태였다. 하지만 Miracord 70의 톤암은 다소 출렁거리는 LP 위를 어떤 문제도 없이 트래킹해 나갔다. 전체적인 밸런스는 무척 잘 잡혀있고 전반적인 소리의 두께는 조금 얇은 편이다. 아마도 엘락 스피커들을 사용해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예상 가능한 사운드다. 고역은 탁 트여있고 전대역에 걸쳐 골격이 또렷하며 에지 있는 소리를 상상하면 맞다. 덕분에 에바 캐시디의 억양까지도 선명하게 표현된다. 대신 무게감은 떨어지지만 이 가격대에서 해상도는 훌륭하다.
Daft Punk - Get Lucky
Random Access Memories
리듬감은 무척 훌륭해 특히 팝이나 록 그리고 재즈 녹음에서 매력적인 소리를 들려준다. 예를 들어 다프트 펑크의 ‘Get Lucky’ 디지털 음원과 아날로그 LP에 대해 각각 별도의 마스터링을 거친 [Random Access Memories]의 대표곡이다. 실제로 ECI6D의 내장 DAC와 웨이버사 시스템즈의 W 스트리머를 활용해 들어본 음원과 LP 사운드의 차이는 무척 컸다. LP 사운드의 경우 무척 리듬감 넘치지만 긴장감이 줄고 좀 더 나긋나긋하며 자극이 사라진 소리를 내준다. 물론 여러 변수가 있어 공평한 비교는 아니지만 입문형 카트리지와 포노앰프를 사용한 점을 감안해도 디지털에 비해 LP 사운드가 더 듣기 좋게 느껴진다.
John Coltrane Quartet - Say It
Ballads
Miracord 70은 밝고 상쾌한 음색을 가지고 있어 어눌하거나 답답한 모습이 없이 시원시원한 사운드를 선보인다. 예를 들어 존 콜트레인 쿼텟의 ‘Say It’을 들어보면 마치 요즘처럼 추위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이른 봄날 오후의 날씨 같은 온도감이 전해온다. 중역이 약간 얇아 진한 톤으로 들리진 않지만 대신 매우 깨끗하고 정밀한 소리다 마치 클리어오디오를 연상시키는데 또랑또랑한 피아노와 약간 스산한 느낌의 색소폰 사운드 등이 Miracord 70의 특징을 대변해준다. 태생은 속일 수 없는 것 같다.
Rafael Frühbeck de Burgos, New Philharmonia Orchestra
Albéniz: Suite Espanola
‘Suite Espanola – Asturias’를 LP로 들어보았다. ORG에서 45RPM, 2LP로 발매했던 것을 시청실에서 LP를 뒤적이다가 우연히 찾았다. 이번에 출간한 필자의 두 번째 책 [고음질 명반 가이드북]에도 수록한 앨범인데 무대의 전/후 깊이가 깊고 무척 입체적인 무대를 그리며 호소력이 짙게 들린다. 좁은 대역폭과 다이내믹스를 가진 과거 가요나 팝을 들으면서 향수에 젖기보단 이와 같은 클래식을 즐길 때 그 매력을 더한다. 45RPM 전환이 불편한 것이 흠이지만 음정 정확도나 다이내믹스 그리고 사운드 스테이징 등에서 그 음질은 가격 대비 훌륭한 편이다.
총평
Miracord 70는 과거 아날로그 전성기 시절 엘락이 만들었던 Miracord 시리즈를 다시 깨워내고 있다. 그 모습은 한층 세련되어있고 편리하다. 그리고 클리어오디오, 레가, 프로젝트오디오 등의 비슷한 가격대 턴테이블과 경쟁할 것으로 보인다. 만일 내가 이 턴테이블을 구입해 사용한다면 일단 카트리지는 데논 DL103R 이상으로 업그레이드할 것이며 턴테이블 하단에 높이 조정이 가능한 인슐레이터를 구해 받쳐줄 것이다. 거의 ‘Plug & Play’ 수준의 간편한 LP 감상에 중점을 두었지만 더 나은 음질을 위해 이 정도 투자는 해줄 만한 가치가 충분한 턴테이블이다. Miracord 70은 독일 하이파이의 명가 엘락이 아날로그의 르네상스를 꿈꾸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다.
Written by 오디오 칼럼니스트 코난
140 x 465 x 365 mm |
11 Kg |
AT95E by audio-technica® |
20 Hz – 20 kHz |
2,0 ± 0,5 g, 20 ± 5 mN |
400 ohms ± 20 % |
1 kohms ± 20 % at 1 kHz |
47 kohms |
3,5 mV |
> 20 dB |
33 – 45 U/min |
2 goldplated RCA connectors, gold-plated ground connector |
24 V AC, 6 VA |
Black High Gloss Decor |
사운드솔루션 |
www.sscom.com |
02-2168-4500 |
02-582-98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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