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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을 멀찌감치 뛰어넘다 - Needle Clinic 리팁 카트리지

by onekey 2024. 3. 2.

오리지널을 멀찌감치 뛰어넘다
Needle Clinic 리팁 카트리지

김편2023-12-0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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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강력한 펀치를 날렸다. 손아귀 힘 자체가 달랐다. 실수로 볼륨을 높인 게 아닌가 싶을 만큼 다이내믹스가 늘어났고, 피아노 오른손 건반의 작고 여린 소리는 더 또렷하게 들렸다. 베이스가 긁는 저음은 시청실 바닥이 패일 것 같은 기세로 한없이 내려갔다. 모든 것이 분명했고 묵직했다. 

 

리팁 포노 카트리지가 이 정도로 큰 차이를 낼 줄은 몰랐다. 비교 청음을 한 모든 곡에서 차이가 역력했다. 주인공은 미국 니들 클리닉(Needle Clinic)이 리팁한 데논 DL-103 MC 카트리지. 오리지널 DL-103도 훌륭한 소리를 들려줬지만, 리팁한 DL-103은 레벨이 달랐다. 이번 리뷰는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어냈는지, 그 이유와 근거에 대한 필자의 추적기다.


MC 카트리지의 세계

MC 카트리지는 0.3mV 정도 되는 아주 약한 신호를 출력하는 장치다. 0.3mV면 포노앰프에서 1000배(60dB)를 증폭해야 겨우 프리앰프가 받아들일 정도로 약한 전압이다.

 

MC 카트리지는 또한 진동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바꾸는 변환기다. 즉, 1) 음악 신호가 커팅 된 LP 그루브를, 2) ‘바늘'(스타일러스+캔틸레버)이 따라가며 진동에너지를 얻고, 3) 이를 캔틸레버에 감은 코일과 카트리지 몸통에 붙은 자석이 플레밍의 오른손 법칙에 의해 전기에너지로 바꿔준다.

 

따라서 MC 카트리지 소리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이것이다. LP 그루브와 맞닿는 뾰족한 스타일러스(stylus), 스타일러스가 박힌 막대 캔틸레버(cantilever), 캔틸레버를 잡아주는 댐퍼(damper), 전기를 일으키는 코일과 자석, 이 모든 것을 수납한 프레임과 바디다. 전기신호가 나가는 4핀(L+, L-, R+, R-) 단자와 이들 단자가 붙은 플레이트도 소리에 영향을 미친다.   

사진. 여러 형태의 스타일러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마이크로 리지, 라인 컨택트, 일립티컬, 스페리컬

 

이 중 딱 2가지만 집중해 보자. 스타일러스는 다이아몬드 팁이 대세가 되었고, 그 깎아낸 형태에 따라 마이크로 리지(micro-ridge), 라인 컨택트(line contact), 일립티컬(elliptical), 스페리컬(spherical)로 나뉜다. 트래킹 능력이나 마모에 따른 형태 변경 등에서 다면체 형상의 마이크로 리지 타입이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다. 오리지널 DL-103은 원추형 스페리컬, 니들 클리닉 리팁 DL-103은 마이크로 리지 타입이다. 

 

사진. 일본 제작사 나미키가 공개한 캔틸레버 모습. 왼쪽 끝에 스타일러스가 박힌 것을 알 수 있다.

 

캔틸레버는 그 막대 재질에 따라 보론, 알루미늄, 사파이어, 루비 등으로 나뉜다. 이 세상 최고 경도를 자랑하는 다이아몬드를 쓰는 경우도 있지만 보론이 강도나 무게에 있어서 최고의 가성비를 보인다. 오리지널 DL-103은 알루미늄, 니들 클리닉 리팁 DL-103은 보론 캔틸레버를 쓴다.


니들 클리닉과 리팁 카트리지

2023 서울국제오디오쇼에서 진행된 니들 클리닉의 앤디 김 대표 인터뷰

 

이번에는 니들 클리닉이 어떤 제작사이고, 어떤 식으로 카트리지를 리팁하는지 알아본다. 필자는 지난 3월 하이파이클럽이 주최한 서울국제오디오쇼에서 니들 클리닉의 앤디 김 대표를 만나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그는 한국에서 태어나 연세대 물리학과 졸업 후 공군 장교로 복무했으며, 1983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2008년에 니들 클리닉을 설립했다. 

 

니들 클리닉에서는 카트리지 리팁(re-tip)을 단순히 팁을 고친다는 뜻이 아니라 팁을 업그레이드한다는 의미로 본다. 앤디 김 대표는 “리팁은 단순 수리 작업이 아니다. 때문에 30만원짜리 데논 103 카트리지의 리팁 비용이 50만원에 이르는 것"이라며 “고가 모델이든, 저가 모델이든 최고 품질의 팁 및 캔틸레버를 사용해 1차 업그레이드를 완성한다"고 말했다.

 

스타일러스 팁은 마이크로 리지 타입으로, 캔틸레버는 보론으로 바꾼다. 앤디 김 대표는 “스타일러스 팁과 캔틸레버를 빼고는 실제 제너레이터(코일+자석)는 모든 MC 카트리지가 동일하다"라며 “팁 중에서는 마이크로 리지 타입이 최고이고, 캔틸레버는 보론이면 충분하다"라고 말했다.

 

2차 업그레이드는 바디를 누드나 세미누드 형태로 바꿔 바디에서 발생하는 공진을 제거한다. 앤디 김 대표는 “카트리지 코일이 움직일 때 미세한 바람이 생기는데, 일부 카트리지의 경우 바디를 이루는 플라스틱이 얇아 문제가 발생한다"라며 “고급 카트리지의 경우 누드 바디가 많은 것도 이 같은 바디 공진을 없애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리팁 DL-103 vs 오리지널 DL-103 살펴보기

DL-103은 데논이 1964년에 처음 선보인 이래 지금도 생산되고 있는 역사적인 MC 카트리지. 출력 0.3mV, 출력 임피던스 40옴이며 스타일러스 팁은 아까 언급한 것처럼 스페리컬 타입, 캔틸레버는 알루미늄 로드를 쓴다. 무게는 8.5g, 권장 침압은 2.5g, 권장 부하 임피던스는 100옴 이상. 참고로 1994년에 나온 DL-103R은 0.25mV 출력, 14옴 임피던스로 바뀌었다. 

왼쪽부터 오리지널 DL-103과 니들 클리닉이 리팁한 DL-103 카트리지

 

오리지널 DL-103과 니들 클리닉이 리팁한 DL-103을 나란히 놓고 외관부터 살폈다. 일단 리팁 카트리지는 바디 앞부분이 깎여있어 육안으로 쉽게 구분이 된다. 바디가 밀폐돼 있으면, 코일이 일으킨 미세한 바람이 빠져나갈 데가 없어서 바디에서 진동과 공진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2023 서울국제오디오쇼 니들 클리닉 부스 현장

 

더 자세히 보면 캔틸레버와 스타일러스 팁도 그 모양이나 색깔이 다르다. 오리지널 팁은 스페리컬, 리팁은 마이크로 리지인데, 육안으로는 스페리컬이 뾰족하고 마이크로 리지가 둥글다. 오리지널 캔틸레버는 희뿌연 알루미늄, 리팁 캔틸레버는 진한 컬러의 보론. 이들 모두 앤디 김 대표가 70배율 현미경으로 보며 직접 교체한 것들이다. 

 

사진. 나미키 마이크로 리지 스타일러스 팁

 

마이크로 리지 팁은 결정적으로 그루브 접촉 면적이 가장 넓다. 다이아몬드 팁 끝을 다양한 각도로 평평하게 깎아놓아 그루브 양 벽에 최대한 밀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미키가 공개한 팁별 접촉 면적을 보면, 마이크로 리지가 62.1um2로 가장 넓고, 시바타III가 46.7um2, 스페리컬이 36.5um2, 일립티컬이 20.6um2를 보인다. 

 

마이크로 리지 타입은 마모에 의한 형태 변형이 적다는 장점도 있다. 즉, 오래 써도 팁 자체의 곡선 반경(curvature radius)이 변하지 않아 일정하게 LP 그루브를 트래킹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원추형 스페리컬 타입은 오래 쓰면 이 곡선반경이 넓어져 LP 그루브에 닿는 면적이 점점 줄어들게 된다. 

 

사진. 나미키 마이크로 리지 스타일러스(위)와 라인 컨택트 스타일러스(아래)의 주파수응답특성.

 

주파수 응답 특성도 마이크로 리지 타입이 가장 우수하다. 나미키가 공개한 자사 마이크로 리지 팁과 라인 컨택트 팁의 주파수 응답 특성을 보면, 마이크로 리지 타입이 거의 15kHz까지 플랫하게 유지된다. 이에 비해 라인 컨택트 타입은 거의 6kHz부터 감쇄가 시작된다. 감쇄 슬로프 역시 그루브 반경이 좁은 경우(R=70mm)와 넓은 경우(R=138mm) 모두 라인 컨택트 타입이 마이크로 리지 타입보다 가파르다. 

 

캔틸레버는 가볍고 강해야 하는데, 이와 관련해 보론은 여러 면에서 우수한 특성을 보인다. 원자나 분자의 질량을 비교하는 척도인 몰 질량(molar mass)의 경우, 보론이 24.8g/mol인데 비해 루비는 471.4g/mol, 사파이어는 101.9g/mol, 알루미늄은 26.98g/mol, 다이아몬드는 12.0g/mol을 보인다. 요약컨대, 보론은 루비와 사파이어는 물론 알루미늄보다 가볍다. 

물질의 단단함을 뜻하는 경도도 보론이 상대적으로 아주 높은 수치를 보인다. 스크래치로 인한 마모도를 기준으로 한 모스경도(Mohs Hardness)의 경우, 다이아몬드가 가장 높은 10, 사파이어와 루비가 9, 알루미늄이 2.7이며 보론은 9.3에 달한다. 

 

탄성계수(Young’s Modulus) 역시 물질의 경도를 알 수 있는 척도인데, 다이아몬드가 1050, 사파이어가 470, 루비가 372, 알루미늄이 68인데 비해 보론은 656을 보인다. 알루미늄보다는 거의 10배 정도 단단하다. 캔틸레버 재질로서 보론의 높은 가성비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리팁 DL-103 vs 오리지널 DL-103 들어보기

사진. 오리지널 DL-103(위쪽), 리팁 DL-103

 

필자의 시청실에서 진행한 리팁 DL-103 시청에는 쿠즈마 Stabi S 턴테이블과 4 Point 9 톤암, 올닉 H-5500 포노앰프를 동원했다. 프리앰프는 패스 XP-12, 파워앰프는 일렉트로콤파니에 AW250R, 스피커는 B&W 801 D4. 포노앰프 부하 임피던스는 128옴으로 설정했다. 시청은 4곡을 연속해서 오리지널 DL-103으로 들은 뒤 리팁 DL-103으로 바꿔 다시 듣는 방식으로 진했다.

 

 

아티스트   Kari Bremnes
   A Lover In Berlin
앨범   Master Female Audiophile

 

먼저 오리지널 DL-103으로 들어보면 중고음이 약간 두드러지며 전체적으로 단정하고 예리하며 깨끗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윤곽선에 색번짐이 없다. 하지만 필자가 쓰고 있는 올닉 Rose 카트리지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저음이 약하고 두텁지가 않다. 전체적으로 음이 얇다는 인상. 

 

리팁 DL-130으로 바꿔 들어보면 처음부터 펀치력이 늘어나고 순간순간 재빠르게 잘 치고 빠져나간다. 저음이 안정적으로 받쳐 주니 밸런스가 비로소 맞는 것 같다. 무엇보다 필자의 가슴을 짓누르는 저음의 압력이 상당히 기분 좋다. 캐리 브렘네스의 목소리도 탁 트였고 발음은 보다 선명해졌다. 오리지널이 창백했다면 지금은 활기 그 자체다. 

 

 

아티스트   Paul Chambers Quartet 
   Yesterdays, You’d Be So Nice To Come Home To 
앨범   Bass On Top

 

먼저 A면 1번 트랙인 ‘Yesterdays’부터. 워낙 베이스 녹음이 잘 된 곡이라서 그런지 오리지널 DL-103으로 들어도 활이 베이스 현을 긁는 굵고 거친 질감이 잘 살아난다. 2번 트랙 ‘You’d Be So Nice To Come Home To’는 드럼의 리듬감과 비트감이 압권. 기타의 독주도 빼어나다.

 

리팁 DL-103으로 바꿔도 소리가 더 나아질까 싶었다. 하지만 1번 트랙부터 베이스의 호소력이 높아지고 무대 앞도 한결 투명해졌다. 체감상 베이스의 저음이 더 깊고 묵직하게 내려간다. 베이스 악기 자체가 실물 사이즈로 커졌고, 이 곡에 이 정도로 다채로운 표정이 있었었나 싶다. 2번 트랙은 넓어진 무대 스케일과 드럼 하이햇의 고음이 부각되었다. 

 

 

아티스트   조성진
   Suite No.2 In F Major HWV 427
앨범   The Handel Project

 

오리지널 DL-103으로 들어보면 의외로 양감이 풍부한 피아노 소리가 나오고 해상력이 계속해서 돋보인다. 무대 앞이 투명한 것을 보면 역시 LP 재생이 맞다. 하지만 저음이 살짝 모자란 아쉬움은 있다. 그럼에도 음 표면이 매끄럽고 깨끗하며, 은근히 푸근하고 따뜻한 소리다. 

 

리팁 DL-103으로 바꿔 들어보면 조성진의 타건에 힘이 실린 동시에 음 자체가 또렷하고 야무지고 견고해졌다. 특히 피아노의 고음이 더욱 또랑또랑하게 들리는 점이 큰 변화다. 저음 쪽에서는 다이내믹스, 고음 쪽에서는 디테일이 늘어난 것 같다. 그만큼 리팁 카트리지가 LP에서 더 많은 정보를 긁어왔다는 증거다. 피아노가 보다 선명하게 풀 사이즈로 등장하는 모습도 멋지다. 

 

 

바이올린   Jascha Heifetz
지휘   Sir Malcolm Sargent
오케스트라   New Symphony Orchestra of London
   Scottish Fantasy
앨범   Scottish Fantasy, Concerto No.5

 

오리지널 DL-103으로 들으면 장엄한 분위기와 뒤로 좌악 물러선 무대가 눈에 띈다. 이 곡 1악장에 등장하는 그 처연한 멜로디가 이날따라 귀에 쏙쏙 들어온다. 하이페츠 바이올린 솔로 대목에서 대놓고 메탈 쇳소리가 섞여 나오는 순간에는 등에 소름마저 돋았다.  

 

더 좋아질까 반신반의하며 리팁 DL-103으로 바꿔 들었다. 무대가 좀 더 넓고 크게 펼쳐지며, 곡 곳곳에서 아까는 캐치하지 못했던 살짝살짝 치고 빠지는 악기 소리가 들린다. 맞다. 작은 소리가 더 또렷하게, 큰 소리는 더 힘차게 들리는 것이다. 특히 하이페츠가 힘줘 연주할 때는 리모컨이 잘못 눌러져 프리앰프 볼륨이 높아진 게 아닐까 싶었다. 실황 느낌이 더 살고, 곡의 표정이 보다 풍부해진 순간이었다. 


총평

포노 카트리지는 정말 오묘한 소우주의 세계다. 그 조그만 팁과 캔틸레버, 아니면 제작사에 따라서는 코일과 자석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댐퍼로 어떤 고무를 쓰느냐에 따라 재생음 자체의 인상과 스케일이 확확 달라진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날로그 음악 신호를 처음 캐내는 곳이 바로 포노 카트리지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니들 클리닉의 리팁 카트리지는 앤디 김 대표가 재창조한 소우주다. 이번 시청기인 데논 DL-103은 리팁한 모델이 다이내믹스와 해상력, 무대 스케일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자신의 소중한 카트리지가 바늘이 휘거나 부러진 경우는 물론, 평소 애용하던 카트리지로부터 보다 업그레이드된 소리를 듣고 싶은 애호가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by 김편 오디오 칼럼니스트

Needle Clinic
업체명 Needle Clinic
홈페이지 phonocartridgeretipping.com
문의전화 070-7899-5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