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OA 아이솔레이터 + HAM
정말 좋은 소리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좋은 소리’라는 것에 지나치게 천착하지 않게끔 하는 소리 아닐까? 하이파이 오디오가 힘든 것이 뭔가 더해주면 계속해서 바뀐다는 것이다. 음상이 조금씩 바뀌고 포커싱의 명료도도 바뀌며, 심하면 다이내믹스, 스테이징도 휙휙 변한다. 미칠 노릇이다. 하지만 반대로 잔뜩 적용했던 액세서리를 보고 있자면 ‘이게 다 뭐 하는 짓인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 집착과 탐욕의 부스러기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 과유불급이라는 걸 깨달으면 정말 필요한 곳에만 최소한의 액세서리를 적용하게 된다.
그래서 귀찮긴 하지만 최대한 많은 것들을 구입하거나 대여해서 들어보고 적재적소에 가장 효과가 높은 것을 선택하고 나머진 제거하는 게 나의 액세서리 운용 방식이다. 하나 있지만 하나 더하면 어떤 면에선 더 좋을 수 있지만 인생사처럼 트레이드 오프가 있는 경우 하나만 유지하는 게 좋다. 그렇게 ‘좋은 소리’에 대한 탐욕에서 벗어나면 음악이 들리기 시작한다. 한 동안 마음 편하게 음악만 즐기면 그만이다.
아마도 AOA 아이솔레이터는 그런 좋은 소리에 대한 탐욕에서 벗어나게 해준 액세서리 중 탑 클래스에 꼽을 만할 것이다. 지난 번 턴테이블 하단 슈즈를 이 녀석을 대체한 후 이보다 더 좋은 해결책은 없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다른 것들도 적용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 트랜스로터 턴테이블엔 이게 최고다. 왜냐하면 제작자가 이 턴테이블 사용자니까.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트랜스로터 ZET-3MKII 턴테이블의 구성 요소 중 또 하나를 대체할 이이솔레이터를 개발했다. 아니 기존엔 개발해놓은 아이솔레이터, 일명 ‘개똥이’에 높이 조절이 가능한 HAM이라는 녀석을 결합해 트랜스로터의 순정 모터 베이스를 대체하는 프로젝트였다. 한참 기다린 후 받아본 이 녀석은 조립 과정을 요구했다. 주말 저녁을 이 모터 베이스에 바쳤는데 생각보다 너무 재밌다. 마치 어렸을 적 가지고 놀던 아카데미 과학 프라모델 조립의 즐거움을 떠올렸다.
전체적인 구조를 보니 제작자가 트랜스로터 턴테이블의 일부 단점을 정말 정확히 꿰뚫고 있음을 알 수 있어 탄복했다. 우선 모터와 모터 베이스의 단점을 열거해보자. 모터의 하단엔 총 여섯 개의 고무발이 각 홈에 박혀 있는 구조다. 그리고 그 하단에 모터 베이스 위에 얹혀져 모터와 모터 베이스 사이에 일종의 완충 역할을 해주도록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이게 수 년이 흐르면 고무가 경년변화를 일으키면서 약간씩 뭉개지는 걸 확인했다. 비슷한 걸 어디서 구하거나 아니면 다른 소재를 활용해서 교체할까 생각하고 있었던 참이다. 고무 발이 꽤 부드러운 소재라서 모터가 플래터를 돌릴 때 플래터 쪽으로 힘을 받으면서 특히 플래터 쪽에 가까운 고무 발이 압축되는 현상이 있기 때문에 좀 더 견고한 걸 찾아보려 했다.
이 아이솔레이터 제작자는 아예 이 고무 발을 빼고 사용할 수 있도록 둥근 수지 벨트를 만들어버렸다. 개똥이 아이솔레이터는 그렇게 모터 베이스의 상단을 영민한 구조로 대체해주었다. 진동 격리 측면이야 이미 기존 개똥이에서 충분히 감탄했으니 넘어가고…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트랜스로터 모터 베이스의 단점 또 하나가 있다면 높이 조절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본체 베이스의 3단지지 발의 높이 조정이 가능하긴 하다. 하지만 한번 높이 조정을 하려면 발 세 개를 모두 돌려주어야하고 수평도 다시 잡아야해서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제작자는 개똥이 아이솔레이터 하단에 별도의 HAM을 제작해 받치도록 설계했다. 이른바 ‘Height Adjust Module’. 신기한 건 옆구리에 렌치를 꼽거나 혹은 그냥 손으로 돌려도 그 부분만 회전하면서 높이 조절이 된다는 사실. 높이 조정이 끝나면 중앙에 커다란 볼트를 조여서 고정하도록 되어 있는데 그냥 걸쳐만 놓거나 완전히 빼고 사용해도 성능엔 전혀 문제가 없다. 신박한 발상이며 사용도 아주 쉽게 만든 아이디어가 놀랍다.
무사히 조립을 마치고 순정 모터 베이스를 교체, 드라이브 벨트를 걸고 전원을 올린 순간 적막을 뚫고 나오는 소리는 매우 정교하다. 그리고 단단하다. 물론 이런 진동 격리 액세서리는 수도 없이 테스트해보았기에 그 부대 효과가 어떤 것인지 안다. 배경 정숙도 향상과 약음 표현 능력 상승으로 인한 마이크로 다이내믹스 향상, 좀 더 명료한 포커싱 등 시스템마다 그 편차는 있지만 이와 대동소이한 효과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이번 AOA 제품은 그 폭이 훨씬 더 크면서도 부작용을 거의 발견할 수 없다.
※ 테스트 시스템
스피커 : 락포트 Atria
프리/DAC : MSB Analog
파워앰프 : 코드 일렉트로닉스 SPM-1400E
턴테이블 : 트랜스로터 ZET-3MKII
카트리지 : 다이나벡터 DV20X2
포노앰프 : 서덜랜드 PHD
며칠간 간만에 엘피 랙에서 여러 엘피를 다시 꺼냈다. 최근 구입한 엘피 위주로 듣다보니 잊고 있었던 과거의 명연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역시 하드웨어에서 뭔가 바뀌어야 예전 음악을 찾아듣는다. 오디오파일이 다 그렇지 뭐. 오디오에서 뭔가 바뀌면 대개 볼륨을 크게 올리고 뭔가 좋아졌을 거란 자기 암시를 거는 사람들이 있다. 큰 소리에서 음질도 중요하다. 하지만 사실 승부는 작은 음량에서 난다. 진동이 저감된 모터 덕분인지 게리 버튼의 달콤한 비브라폰 약음들이 한층 섬세하게 들린다. 칙 코리아의 피아노와 비브라폰의 음색이 더 선명하게 분리되어 들리면서 자연스럽게 연주자의 위치도 명료해진다.
엘피 랙을 뒤지다가 다수의 프로그레시브 록 엘피들을 발견했다. 핑크 플로이드, 제스로 툴, 킹 크림스, E.L.P 등…유럽 아트록 참 많이 들었지 하면서 예스의 ‘Fragile’을 꺼내들었다. 첫 곡 ‘Roundabout’을 재생하자 존 앤더슨의 그 싱싱한 보컬이 중앙 무대에 또렷하게 떠오른다. 스티브 하우의 일렉트릭 기타가 경쾌하고 정교하며 특히 크리스 스콰이어의 베이스 기타가 굵직하고 힘차게 질주한다. 패임이 깊고 역동적인 베이스 기타 사운드가 곡을 힘차게 이끈다. 특히 릭 웨이크먼의 해몬드 올갠 사운드인데 기존보다 더 풍부하고 유기적인 움직임을 보인다. 이후 다른 곡들에서 드럼 등 리듬 악기들도 명료하고 단단하게 풀어낸다.
엘피 소릿골에 바늘 스치는 것도 아까울 정도로 가끔 특별한 경우에만 꺼내드는 뮤직 매터스 엘피. 그래도 요즘처럼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는 시절엔 한 번씩 듣고 싶다. 바로 캐논볼 애덜리의 ‘Autumn leaves’ 때문. 한결 깨끗하고 정갈한 사운드가 자연스럽게 빠져나온다. 대게 이런 아이솔레이터를 잘못 쓸 경우 잔향이 너무 줄어 겨울철 피부처럼 건조하고 딱딱하게 재생되는 경우가 많다. 과유불급인 경우인데 음악 듣는 맛은 뚝 떨어져버리기 일쑤. AOA 아이솔레터+HAM 조합은 전혀 딴 판이다. 담배연기 자욱한 정적의 무대 위를 가르는 한줄기 불빛처럼 트럼펫과 알토가 유령처럼 서성거린다.
무대는 앞으로 나서지 않고 뒤로 깊게 형성된다. 사운드는 마치 찌든 때를 깨끗이 지워낸 듯 더 맑아졌다. 속도를 다시 맞추었다. 간만에 45rpm 엘피를 재생했는데 33 1/3회전에서 45회전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훌쩍 넘어간다. 손으로 모터와 하단의 아이솔레이터/HAM을 만져봐도 아무런 진동도 느껴지지 않는다. 심지어 턴테이블 앞에서 마구 뛰어 봐도 카트리지는 미동도 없으며 진동이 타고 들어가지도 않는다. 간만에 라흐마니노프의 ‘철야기도’를 끝까지 완주했다. 깨끗하고 맑은 무대와 입체적인 정위감이 녹음의 실체감을 북돋아주었다.
개인적으로 동일한 액세서리를 여러 개 사용하지 않는 편. 하지만 예외적으로 이 아이솔레이터는 몇 개 더 사용하고 싶어진다. 또 탐욕이 똬리는 튼다. 트랜스로터 턴테이블에서 빼버린 기존 모터 베이스를 우측에 놓았더니 그 위가 허전하다. 클램프를 놓아두었는데도 뭔가 허전하다. 그 이유는 모터 베이스 위엔 모터를 놓아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트윈 모터 시스템으로 업그레이드하고 싶은 욕구가 나도 몰래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려면 모터만 구입한다고 끝이 아니라 전원부도 출력이 두 조인 상급 전원부를 새로 구입해야한다. 아….이게 다 개똥이 때문이다.
Written by 코난
코난 이장호는 하이파이 오디오를 평가하는 평론가다. <고음질 명반 가이드북 1,2>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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