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유러피언 아날로그 연합
SME Synergy Turntable
역전노장 SME
몇 해 전인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아마 여름날 한창 린 손덱, 그러니까 세팅이 힘들기로 유명한 LP12를 혼자서 뜯어냈다. 턴테이블 하판을 열고 한여름 엿가락처럼 축 늘어진 서스펜션을 떼어냈다. 그리곤 해외에서 공수한 내부 서스펜션으로 교체하고 나니 새벽 한 시. 얼마 후엔 또 한 번 열고 수술대에 손덱을 올렸다. 이번엔 전원보드 교체 작업으로 좀 더 난이도가 있었다. 발할라를 떼어내고 해외에서 제작한 허큘레스 전원 보드를 달았다. 내친김에 내부 전원 케이블과 포노 케이블까지 교체하고 음악을 듣는 순간, 나는 참 그때가 가장 재미있었던 시절이었다고 지금도 회상한다.
손덱에 좀 질리면서 아날로그도 조금 심드렁해졌다. 그러다 친구가 빌려준 VPI가 집에 들어와 한동안 정말 대충대충 들었다. 하지만 오디오 파일의 이런 휴식 같은 시간을 오래 가지 않았다. 안 그래도 심심하던 차 VPI에 장착된 SME 3010R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잠깐 정신 줄을 놓으면 나이프에 베이듯 나이프에지 톤암 세팅을 망가뜨릴라 조심조심 세팅을 매만졌다. 그때가 아마도 SME 톤암의 위대함을 처음 알았던 듯하다. 린 이톡, 에코스, 아키토, 레가의 여러 톤암들 그리고 젤코 등 다양한 톤암을 써봤지만 SME는 그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좋은 소리를 들려주고 있었다.
변화의 바람
SME 설립자 에이크먼(Alastair Robertson-Aikman)
한동안 SME에 대해 잊고 있던 어느 날 SME에 대해 다시 복기하게 된 건 SME 대표의 사망 소식이었다. 1946년 SME를 설립하고 지금도 전 세계 빈티지 오디오 마니아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으며 현역으로 뛰고 있는 3000시리즈 톤암을 만들어낸 인물. 바로 에이크먼(Alastair Robertson-Aikman)의 죽음이다. 그는 최계 최고의 픽업 암을 만들겠다는 의지로 SME를 설립해 성공을 거두었다. 스테레오 LP가 처음 나왔을 때 그의 집에서 실연을 했고 그는 오페라를 가장 좋아했다. 사업가였지만 음악에 대한 애정으로 똘똘 뭉친 마니아였다.
그의 죽음은 그냥 한 개인의 죽음이 아니다. 그가 형성해온 한 세계의 죽음이었다. 그의 사망 이후 10년이 지난 후 SME는 카덴스 그룹에 인수되었고 전 항공 우주 전문가 스튜어트 맥네일리스가 CEO로 들어섰다. 그리고 유통은 나그라 등을 취급하던 Padood가 인계받았다. 흥미로운 것은 SME가 작년 말 돌연 톤암의 개별 판매를 중단한다는 발표다. 사실 SME가 이렇게 오랫동안 버틸 수 있었던 데엔 톤암의 역할이 지배적이었다. 많은 턴테이블 메이커 그리고 개인들이 SME 톤암을 다른 턴테이블에 장착해서 애용해왔기 때문이다.
변화의 바람은 제품 기획에도 적용되었다. 기존에 SME 턴테이블에서 뭔가 다른 패턴의 모델로 변화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다. 한동안 잠잠했던 SME였고 워낙 보수적인 설계를 보였던 그들이기에 변화와 혁신은 쉽지 않을 거라 예상했다. 그러나 최근 SME가 감추었던 칼을 드디어 빼들었고 베일을 벗었다.
아날로그 연합군 SME Synergy
SME가 비장의 무기로 준비하고 있었던 것의 실체는 바로 SME Synergy다. Synergy의 정체성이란 그 이름이 말해준다. 다름 아닌 유럽의 대표하는 세 개 브랜드의 연합으로 탄생한 턴테이블이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은 스위스의 나그라, 덴마크의 오토폰 그리고 네덜란드의 크리스탈케이블이다. 오토폰은 카트리지를 만드니 이해한다. 실제로 Synergy 턴테이블엔 오토폰 카트리지가 장착되어서 나온다. 또한 크리스탈케이블도 유추할 수 있다. 톤암 케이블 등 아날로그 장비에서 순은 모노 크리스탈 도체로 만든 크리스탈 케이블은 무척 좋은 소리를 내준다. 그렇다면 왜 앰프와 DAC를 만드는 나그라가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을까?
다름 아닌 Synergy에서 SME가 추구한 설계 컨셉을 이해하면 간단해진다. 카트리지를 장착시키고 별도의 케이블 고민 없이 최고 수준의 케이블도 기본 지원하며 포노 앰프까지 포함시켜서 출시한 것이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아주 간단하게 하이엔드 아날로그 사운드를 경험하자는 것이다. 별도의 톤암을 구입하고 별도의 케이블을 고르며 톤암의 질량과 헤드셸 타입 등을 고려해 카트리지를 고르는 게 번거롭다면 Synergy는 그 해답을 미리 정해주겠다는 의지다. 그러니 어설픈 고민일랑은 집어치우고 그냥 들어라. 뭔가 생각하기 전에 그냥 엘피를 얹고 음악을 들으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만들었길래 이런 자신감을 보이는 것일까? 중저가 제품이라면 모르겠지만 하이엔드 턴테이블의 경우 여러 변수를 조율하고 가능한 여러 옵션을 즐기는 오디오 파일이 많은 것을 고려할 때 이것은 모험이다. 그러나 항공 우주 전문가 스튜어트 사단은 여러 부분에 걸쳐 좀 더 진보적인 소재와 구조로 시너지를 일으키고 있다. 일단 본체 구동 메커니즘은 벨트 드라이브 방식이다. 본체는 항공 우주 분야에서 쓰이는 고품질 알루미늄 빌렛을 깎아 만들었는데 마감은 아주 정교하고 부드러워 만족스럽다.
SME Synergy 클램프
베이스 하단은 총 네 개의 커다란 폴리머 소재 아이솔레이터를 만들어 탑재했다. 첫째도 둘째도 진동이 중요한 턴테이블이니만큼 상당히 공을 들인 것으로 보이는데 높이 조정도 가능해 세팅시 상당히 편리하다. 이 또한 싱글 알루미늄 빌렛으로 일일이 깎아 만든 것. 이 외에 서브 섀시가 총 세 개의 서스펜션 위에서 메인 베어링과 톤암을 정확히 고정하고 있다. 그 위에 플래터 같은 경우 약 4.6kg 정도의 견고한 소재다. 상단은 역시 우주 항공용 아이소댐프(Isodamp) 소재를 사용해 완충되며 그 위로는 자체적으로 개발한 클램프를 올려놓게 되어 잇다. 클램프 같은 경우 스핀들에 그냥 올려놓은 방식이 아니라 나사선을 마련해 조일 수 있는 방식. 개인적으로 무척 선호하는 방식이다.
SME Synergy 전원부 & 스피드 컨트롤러
SME 시리즈 IV 톤암
턴테이블의 구동과 속도 안정성에 책임을 지는 모터 같은 경우 8극 네오디뮴 마그넷 및 3상 모터를 사용하고 있다. 특히 세 개의 센서가 탑재되어 있어 속도를 실시간으로 체크하면 균질한 속도를 유지해 준다. 최근 이런 방식의 센서를 부탁한 턴테이블이 꽤 나오고 있는데 내구성만 오래 유지된다면 음질적으로도 유리한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작동시켜보면 정확한 속도가 나오기 전엔 전면 인디게이터가 깜밖거리며 정상 속도에 이르러야 완전히 점등한다. 단, 모터의 경우 완벽히 분리하진 않고 베이스에 붙어 있는 점은 조금 아쉽다. 이를 구동하는데 필요한 전원부와 스피드 컨트롤러는 옆으로 분리시켜 놓고 있는데 상당히 무겁고 안정적이어 보인다. 마지막으로 톤암은 당연히 SME의 시리즈 IV 톤암이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셋업 & 리스닝 테스트
SME Synergy는 간단한 조립과정만 거치면 누구나 최고 수준의 하이엔드 엘피 사운드를 즐길 수 있게 설계되었다. 케이블도 기본 제공되는 크리스탈 케이블이 있으며 나그라의 포노단을 내장하고 있다. 대신 전원부를 밖으로 분리시켜놓은 모습. 내부에 나그라에서 직접 만든 MC 승압 트랜스포머를 내장해 웬만한 일체형 포노 앰프를 능가하는 수준이다. 더불어 카트리지 같은 경우 오토폰의 Windfeld Ti MC 카트리지가 장착되어 있으며 나그라 포노단과 최적의 매칭을 보인다. MC 승압 트랜스를 찾아 해맬 필요가 없다. 테스트엔 앰프와 스피커 외엔 필요가 없었다. SME Synergy에 모두 합체되어 있기 때문이다. 앰프는 비투스 프리/파워앰프 그리고 빔베르그 Amea 스피커를 사용해 턴테이블의 성능을 가늠해보았다.
나윤선 - Lento
Lento
SME Synergy의 소리는 예전부터 여러 경험을 통해 머릿속에 형성되어 온 SME 사운드의 전형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았다. 나윤선의 ‘Lento’를 들어보면 굵직하고 풍부한 중역에서 진한 음결이 스며 나온다. 여유 있는 사운드에 전체 밸런스가 낮아 안정적이어서 절대 수선을 떨지 않는다. 아튜톤 북셀프 스피커를 사용했음에도 가볍거나 날리고 산만한 느낌이 없어 진진하게 음악에 몰두하게 해주었다. 하지만 그 고즈넉한 사운드 뒤엔 사실 매우 정교하게 엘피 소릿골을 샅샅이 읽어 들이는 SME Synergy가 있었다.
Dire Straits - Money for nothing
Brothers In Arms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Money for nothing’을 들어보면 매우 편안한 사운드를 구사하는 모습이다. 밸런스가 매우 잘 잡혀있고 중역 디테일이 뛰어나다. 기타 피킹이나 드럼 등 리듬악기들이 요동치는 순간에서도 절대 균형을 잃지 않는 모습이다. 그래서 조금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예리하게 파고 들기보단 편안하고 웅장하며 묵직한 스타일이다. 스피커에 비유하자면 약간 최신 매지코 같은 스피커보다 YG 어쿠스틱스 혹은 ATC 같은 스타일이 엿보일 때가 있다. 드럼 등이 휘몰아치며 연주가 최고조에 이를 땐 권위감마저 느껴진다. 역시 브리티시 사운드의 맥을 잇고 있는 모습인데 깊은 울림이 매력적이다.
Philip Braham - Limehouse blues
Jazz at the pawnshop Vol.1
앨범을 듣다가 ‘Limehouse blues’에서 귀가 쫑긋했다. 무대를 고즈넉이 후방으로 위치시키며 절대 공격적으로 튀어나오며 윽박지르지 않는다. 하지만 이 여유 넘치는 리듬감과 깊은 원금감 덕분에 만들어지는 편안한 소리 속에서도 저 뒤편의 작은 타악기 소리까지 세밀하게 들린다. 마이크로 다이내믹스가 뛰어나며 편안하면서도 세밀하게 무대를 그린다. 오토폰 카트리지가 나그라와 상당히 뛰어난 조화를 보이는 것으로 추측되는데 무척 진하며 끈적끈적한 느낌까지 나서 감칠맛이 좋다.
조성진 - Chopin Piano Concerto
Chopin Piano Concerto 1, Ballades
마지막으로 조성진의 쇼팽 피아노 협주곡을 들으면서 시청을 마쳤다. 아마도 피아노 레코딩은 엘피 감상시 가장 예민한 테스트가 될 것이다. 다름 아닌 속도 정확도에 따른 소리 변화를 가장 민감하게 드러내는 악기가 피아노이기 때문이다. 일단 속도의 순간순간 정확도도 중요하지만 오랜 시간 균질한 속도 정밀도를 보여주는 게 가장 이상적이다. 이것이 틀어지면 피아노는 그 음정이 흐트러지고 상당히 불쾌한 사운드를 낸다. 조성진의 피아노에서 SME Synergy가 보여주는 사운드는 흠잡을 곳이 없었다. 더불어 이런 속도 안정성은 포커싱 등 악기들의 위치 표현력에도 정확성을 더해 무대를 선명하게 표현해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악 같은 경우엔 약간 어두우면서도 에스프레소 같은 진한 여운을 맛보았다.
총평
SME Synergy는 진동, 균질한 속도, 톤암 성능 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 걸쳐 세심하고 정확하게 고려된 턴테이블이다. 예를 들어 속도를 체크해보면 33 1/3RPM에서 조금도 미동이 없다. 마치 카트리지가 한 곳에 정지해있는 느낌이다. 흥미로운 건 시작할 때 본체에서 약간의 구동 소음이 들린다. 그런데 이 소리가 나쁘지 않아 마치 람보르기니 등 스포츠의 배기 음을 연상시켰다. 제 속도에 이르기까지 수초의 시간이 걸리며 정지도 매우 빠른 편이다. 예전에 독일 브링크만의 다이렉트 턴테이블은 다이렉트 드라이브 방식이면서도 벨트 드라이브처럼 전원을 꺼도 한참을 돌았는데 SME Synergy는 오히려 그 반대로 꽤 빠르게 멈춘다.
필자는 최근 SME V 톤암을 구해 내가 운용 중인 턴테이블에 장착할 계획에 들떠 있었다. 톤암 보드를 따로 제작해서 얹고 케이블도 실텍이나 크리스탈케이블 같은 걸 고민하고 있는 와중이다. 그런데 SME Synergy는 이미 원하는 걸 다 갖추고 있으니 한편으로 허탈하다. 게다가 나그라의 PL-P 프리앰프부터 봐왔던 그들의 포노스테이지 사운드는 항상 귓전에 맴돌았다. SME Synergy는 그런 나그라 포노단까지 갖추었으니 더 바랄 게 별로 없다. 취향에 따라서 가끔 카트리지만 바꾸어 즐기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어 보인다. 다양한 매칭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소리를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것을 즐기고 싶다면 다른 대안이 있다. 하지만 편리하게 그저 SME가 조율한 최고 수준의 사운드를 즐기고 싶다면 아마도 SME Synergy는 여러 고민으로부터 당신을 해방시켜줄 것이다. 유러피언 아날로그 연합이 만들어낸 시너지는 실로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Written by 오디오 칼럼니스트 코난
Speeds (rpm) | 33⅓, 45, 78 |
Operation | Manual |
Drive | Belt |
Speed change | Electric |
Phono stage | Yes |
Tonearm | Yes |
Cartridge | Yes |
Suspension | Yes |
Finishes | 1 |
Dimensions (hwd) | 18 x 37 x 35cm |
수입사 | CUBE Corporation |
수입사 홈페이지 | cubecorp.kr |
구매문의 | 02-582-98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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