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락 아날로그의 재림
Elac Miracord 90 Anniversary Turntable
“엘락 아날로그”
현재 살아 있는 전설 같은 브랜드들이 그렇듯 2차 세계 대전 전후 급격한 기술발전을 겪으며 진화해왔다. 그 중 엘락의 경우 무척 멀리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1926년부터 역사를 써내려갔다. ‘일렉트로어커스틱(Electroacoustic GmbH)’라는 이름으로 1926년 키엘(Kiel)에서 설립된 이들은 공기와 수중에서 시그널 및 사운드 전달 기술을 개발했다. 더불어 소나(Sonar)라고 불리는 음파 탐지기를 개발하기도 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엔 수많은 컨슈머 제품이 필요해졌고 엘락은 당시 대중적인 가전을 만드는데 집중했다. 직원이 5천명에 이를 정도로 크게 성장했고 자동차 부품에서 심지어 재봉틀까지 생산해내는 다목적 회사가 되었다. 세계적 전기전자기업 지멘스를 위해 엘락이 생산하던 제품들도 있었을 정도.
오래된 하이파이 기기 카달로그는 물론 사용자 매뉴얼, 팜플렛, 브로슈어까지 모으는 해외 컬렉터들의 소장품은 끝이 없다. 이베이서 거래되는 그런 목록과 사진을 보면 상당히 재미있다. 때로 당시 생산되었던 제품이지만 마치 생산된지 얼마 안된 듯 출시 당시 박스와 매뉴얼까지 그대로 매물로 나와있는 것을 보면 놀랍다. 사용하지도 않을 거면서 소유욕이 발동한다.
특히 아날로그 턴테이블은 보기만 해도 재미있다. 토렌스, 가라드를 비롯 듀얼, PE 등 완전 기계식 턴테이블의 디자인이 새롭다. 그 중 엘락도 빼놓을 수 없다. 종종 1950년대 전후 엘락이라는 상표를 보면 지금 엘락과는 판이한 모습에 놀라곤 한다. 엘락을 단지 스피커 브랜드로 인식하고 있다면 오산이다. 엘락은 무려 1948년부터 턴테이블을 만들기 시작한 베테랑이다. 이후 1970년대 후반까지 엘락은 턴테이블을 출시했으며 아직도 빈티지 컬렉터들 사이에 여러 엘락 턴테이블이 거래되는 이유다. 그만큼 많이 판매되었고 성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엘락 Miracord 90”
Miracord는 엘락 턴테이블의 오리지널 라인업이었다. 1970년대 후반까지 생산했던 Miracord 라인업은 단종 후 수십년간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엘락은 마치 다락방에 숨겨져 있었던 아버지의 소장품을 발굴하듯 Miracord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완전히 새롭게 혁신했다. Miracord 90 기념작은 이렇게 21세기 엘락의 방식으로 변주되어 우리 앞에 나타났다.
해외에서 Miracord 90 출시 뉴스가 올라왔을 때 과연 어떤 규모의 리이슈일지 궁금했다. 과거 Miracord 와는 완전히 결별한 디자인 때문이었다. 게다가 금속 바디와 번쩍이는 도회적 바디는 엘락의 저의를 약간 의심하게 만드는 면도 있었다. 직접 마주친 Miracord 90은 사진으로 보던 것보다 훨씬 더 우람하고 듬직한 풍채를 자랑한다. 좌/우 넓이가 470mm, 깊이가 360mm 이며 높이가 170mm 로 웬만한 중급 인티앰프 정도 크기다. 랙 위에 올라선 Miracord 90는 바닥에 단단히 납작 엎드려있다. 무게가 무려 17.1kg 으로 턴테이블로서는 상당한 수준이다. 단지 패셔너블 디자인에 간단한 기능을 얹은 트렌드 제품이 아닐까 하는 예상은 빗나갔다.
Miracord 90는 내부에 어떤 서스펜션 같은 장치가 없는, 이른바 ‘리지드’ 타입이다. 플린스, 그러니까 턴테이블 플래터와 톤암이 설치되어 있는 MDF를 깍아 만든 후 외부에 아노다이징 처리한 알루미늄을 덧대어 만들었다. 따라서 겉으로 볼 때 가벼워 보이나 실제 꽤 무겁다. 중간 정도 밀도의 MDF 로 내부는 자연스럽게 댐핑 처리되는 방식이다. 그리고 그 아래는 총 네 개의 발이 탑재되어 본체 베이스를 단단히 지지하고 있다.
상단에 얹어지는 플래터는 내부 플래터 외부 플래터로 나뉘어져 있다. 스핀들 베어링 하우징은 청동 부싱(bushing) 두 개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를 통해 플래터 수평이 잡힌다. 플래터는 8mm 짜리 볼 베어링을 중심으로 회전한다. 6.2kg의 상당히 무거운 플래터 무게 덕분에 관성 모멘트가 크고 묵직하게 회전하는 모습. 플래터 아래에는 회전 속도를 측정하는 광학 장치가 설치되어 있어 플래터 우측 앞에 설치된 속도 조절 버튼에서 속도 정확도를 알려준다. 모터는 18V DC 전원을 공급받아 회전하며 요즘 추세와 달리 면적이 넓은, 넓적한 벨트를 걸어 플래터를 회전하는 방식이다.
톤암은 직선형 톤암인데 언뜻 보기에 클리어오디오 그것을 연상시킨다. 경량 톤암으로 주요 소재는 카본 섬유. 파이프 자체는 카본이지만 이 외 부분은 알루미늄과 황동 등으로 만들어진 톤암이다. 톤암 축은 볼 베어링 위에 마운트되어 있으며 톤암은 무척 부드럽게 주행한다. 헤드셸 부분은 조정이 쉽게 만들어져 있으며 헤드셸 일체형이고 동그란 손잡이는 사용하기 편리한 구조를 가진다. 안티스케이팅은 아주 조금만 주어도 되는 구조며 조정폭도 많지 않다. 아무것도 인쇄되지 않은 스트로보스코프 아크릴판을 사용하면 좋다. 개인적으로는 국내 진선오디오에서 판매하는 스트로보스코프를 사용해 안티스케팅을 세팅한다.
Miracord 90 턴테이블에는 기본적으로 카트리지가 장착되어 있다. 어디서 많이 봐왔던 카트리지처럼 생겼는데 알고 보니 오디오 테크니카의 카트리지다. 기본적으로 타원형 스타일러스 팁을 장착하고 있는 것이 장점이다. 타원형일 경우 레코드 소릿골과 접촉 면적이 넓어 더 많은 정보를 읽어 들일 수 있기 때문. 더불어 이카트리지는 오디오 테크니카의 MicroLine® 다이아몬드 스타일러스를 채용하고 있다. 증폭 방식은 MM이며 일반적인 MM포노앰프나 프리/인티앰프의 MM 포노단에 연결하면 바로 재생 가능하다.
후면을 보면 좌/우 한 조의 RCA 출력단이 마련되어 있으며 접지단도 보인다. RCA 단자는 금도금 뉴트릭 제품이며 접지 단자도 금도금 단자를 채용하고 있다. 우측으로는 전원 입력단이 보이는데 일반적인 AC 입력단이 아니라 DC 입력단이다. 트라이코드 등 일부 독일 제품에서 종종 보이는 단자로 Lumberg® 커넥터 타입이다. 전원 케이블 종류를 알 수는 없지만 고급 케이블이라고 하며 전원은 외장 DC 어댑터를 통해 공급받는다. 별도의 리니어 전원부 또는 내부에 전원부를 설계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현대적 독일 사운드의 표본”
턴테이블 세팅은 무척 쉽게 설계되어 있다. 별도의 전원 케이블도 필요 없으며 카트리지 침압과 오프셋 그리고 약간의 안티스케이팅만 맞추어주면 끝이다. 테스트에는 아큐톤 트위터와 미드레인지 그리고 이튼 우퍼 두발을 채용한 아발론 Time 스피커 및 컨스텔레이션 프리/파워앰프, 웨이버사 W PHONO1 포노앰프를 사용했다.
Sting & Edin Karamazov - Flow my tears
The Journey & The Labylinth
음질적으로는 완벽히 독일 사운드의 전형을 보여준다. 독일 클리어오디오 같은 메이커가 생각나는 소리다. 예를 들어 스팅의 ‘Flow my tears’같은 곡에서 마치 엘락 스피커를 처음 들었을 때의 느낌, 더 자세히 말하면 JET 트위터를 처음 접했을 때의 소리와 유사하다. 물론 카트리지는 오디오 테크니카의 것이지만 턴테이블 자체 특성이 상당히 강하다고 판단된다. 넓고 정교한 음장, 사실적이며 쿨한 음색 등이 돋보인다. 약간 서늘한 음색에 해상력이 굉장히 높아 어느 정도 번인 타임이 필요할 듯. 대신 무척 상쾌하고 속속들이 레코딩의 정보를 끌어내준다.
B.B.King, Eric Clapton - Riding with the king
Riding with the king
B.B. 킹과 에릭 클랩튼이 함께한 ‘Riding with the king’같은 곡에서 기타 사운드는 예상했던 대로다. 윤곽이 뚜렷하며 표면이 강한 돌처럼 단단하다. 게다가 마치 면도날처럼 날카롭고 밝은 소리를 내준다. 드럼이나 베이스 등 리듬 파트 또한 밀도가 높고 민첩한 반응 특성을 보인다. 빠르고 정확하게 바닥을 찍듯 강도 높은 컨트라스트 대비를 관찰할 수 있다. 무대가 앞으로 나오며 다소 적극적이고 추진력이 강하게 실려 있는 사운드다. 비트 넘치는 팝/록이나 재즈 음악에서도 활력이 넘친다.
Miles Davis Sextet - Someday my prince will come
Someday my prince will come
역시 아큐톤 트위터의 고역은 빠르고 개방감 넘치게 뻗어 올라간다. 예를 들어 마일스 데이비스의 ‘Someday my prince will come’ 앨범을 들어보면 고역 해상도가 끝단까지 감쇄 없이 선명하게 드러낸다. 중간에 속도를 맞추어보았는데 별도의 속도계로 측정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상단 우측 앞에 스피드 컨트롤러 기능을 겸한 다이얼 버튼이 있지만 스트로보스코프를 보면서 세팅하는 것이 좋다. 더불어 클램프(스테빌라이저)의 경우 하이파이스테이 클라우드 나인 정도 클램프만 올려도 음질 상승이 감지된다.
Anne-Sophie Mutter - Sarasate Zigeunerweisen
Carmen-Fantasie
안네 소피 무터와 빈 필이 함께 한 ‘찌고이네르바이젠’을 들어본다. 국내 아날로그포닉에서 출시한 LP로 제품 리뷰에서도 테스트용으로 많이 활용하곤 하는데 바이올린 연주는 어느 때보다도 힘차고 매우 견고하며 밀도 높은 고해상도로 들린다. 과거 엘락의 Miracord나 토렌스, 가라드 등의 빈티지 턴테이블을 생각하면 곤란하다. 마이크로 다이내믹스는 상당히 뛰어나며 세부표현력이 좋아 생동감이 넘치며 오케스트라 연주도 가슴 후련하게 탁 트인 무대를 열어준다. 잔잔한 여운과 촉촉한 음색보다는 입체적인 스테이징과 역동적인 고해상도 사운드를 선호하는 젊은 오디오파일에게 어울릴만한 사운드다.
“총평”
엘락이 지금 다시 턴테이블을 부활시킨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이미 전 세계 여러 레코드 프레싱 기기들이 재가동을 시작했다. 대기업 소니가 LP 프레싱 사업 시작을 위해 커팅 머신과 프레싱 장비 일체를 사들였고 공장을 오픈했다. 아마 머지않아 일본 소니에서도 다양한 LP가 생산될 예정이다. CD에 한 번 주도권을 빼앗겼으나 음원 재생에 시들해진 팬들이 대거 LP 재생을 위해 턴테이블을 사들이고 있다.
레가, 린, 듀얼이 건재하며 독일엔 트랜스로터, 클리어오디오 등이 하이엔드 턴테이블을 생산해 커다란 호응을 얻고 있다. 미국에서는 VPI, 프로젝트오디오 등이 불티나게 팔리며 TW 어쿠스틱스 Raven, Techdas 턴테이블이 무시무시한 가격에도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전통의 강호 엘락이 다시 나서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다. 다시 만난 엘락은 환골탈태한 모습으로 레가나 린보다 VPI나 클리어오디오의 사운드에 가깝다. 카트리지를 여러 종류로 사용해보지 못해 아쉽지만 저렴한 오디오테크니카로 이정도 성능이라면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고 판단된다. Miracord 90은 엘락이 기념작으로 내놓은 모델이다. 단지 한 번의 이벤트가 아니라 앞으로 꾸준히 아날로그의 재림을 이어가길 기대해본다.
Written by 오디오 칼럼니스트 코난
Specification | |
Cartridge | Custom Moving Magnet |
Frequency range | 20 Hz – 25 kHz |
Tracking force | 14 ± 4 mN ≙ 1.4 ± 0.4 g |
DC resistance | 800 Ω ± 20% |
Coil impendence | 3.2 kΩ ± 20% at 1 kHz |
Recommended load | 47 kΩ |
Output voltage | 2.2 – 4.9 mV |
Channel separation | > 25 dB |
Selectable speeds | 33 and 45 rpm |
Pitch | ± 5% |
Outputs | 2 gold-plated Neutrik RCA connectors, gold-plated ground connector |
Power supply | 18 V, 18 W Lumberg connector |
Finishes | Black high gloss, white high gloss, oiled walnut |
Weight | 17.1 Kg |
Dimensions(HxWxD) | 170 x 470 x 360mm |
Elac Miracord90 Anniversary Turntable | |
수입사 | 사운드솔루션 |
수입사 연락처 | 02-2168-4500 |
수입사 홈페이지 | www.sscom.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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