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폴론과 아홉 뮤즈들
Μουσα |
춤과 노래·음악·연극·문학에 능하고, 시인과 예술가들에게 영감과 재능을 불어넣는 예술의 여신이다. 또한 지나간 모든 것들을 기억하는 학문의 여신이기도 하다. 고대인들은 뮤즈를 무사(Musa)라 불렀는데, 이는 ‘생각에 잠기다, 상상하다, 명상하다’라는 뜻의 고대 그리스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보통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의 자매 여신들로 나타날 때가 많았기 때문에 복수형으로 무사이(Musai)라 불리기도 했다.
뮤즈 여신들의 출신은 문헌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호메로스(Homeros, BC 800?~BC 750)는 ≪오디세이아≫에서 뮤즈를 제우스 신이 홀로 낳은 딸들이라고 기록하였다. 그러나 헤시오도스(Hesiodos, 기원전 8세기?)의 ≪신통기(Theogony, 신들의 계보)≫와 키케로(Cicero, BC 106~BC 43)의 ≪신의 본성에 관하여(De Natura Deorum)≫ 등에는 뮤즈 여신들이 제우스와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Mnemosyne)의 결합으로 태어난 존재들로 등장한다. 파우사니아스(Pausanias, 2세기경?)는 ≪그리스 이야기(Description of Greece)≫에서 뛰어난 언변과 박수갈채의 여신인 에우페메(Eupheme)가 므네모시네가 낳은 뮤즈들을 길러준 유모였다고 적었다. 그 외 디오도로스(Diodorus Siculus, 기원전 1세기?)의 ≪역사 총서(Bibliotheca historica)≫와 아르노비우스(Arnobius, ?~327?)의 ≪이교도들에 대항하여(Adversus nationes)≫에는 뮤즈 여신들이 대지의 여신 가이아와 천공의 신 우라노스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나오기도 한다.
초기에 뮤즈 여신들은 세 명의 자매로 서로 속성이 유사했다. 그러나 후대로 가면서 점차 각각의 특성들이 나눠지고 구체화되어 갔으며 그 수도 아홉 명으로 늘었다. 이러한 뮤즈 여신들의 분화는 미술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초창기 그리스 화병과 조각들에서 뮤즈 여신들은 악기를 들고 있는 아름다운 여신의 모습으로 서로 비슷하게 묘사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제각기 개성을 갖게 되었다. 뮤즈 여신들의 우두머리이자 ‘서사시’를 담당한 칼리오페(Calliope)는 서판과 펜을 든 모습으로 주로 그려졌다. ‘희극’의 여신 탈레이아(Thaleia)는 익살스러운 가면을 쓴 반면, ’비극’의 여신 멜포메네(Melpomene)는 슬픈 표정의 가면을 쓰고 그리스 비극배우들이 신는 반장화를 신고 나타났다. ‘장엄한 종교 찬가’를 담당한 폴리힘니아(Polyhymnia)는 골똘히 생각에 잠긴 모습으로 등장하거나 베일을 썼다. ‘에로틱한 시’의 여신 에라토(Erato)와 ‘서정시’의 여신 에우테르페(Euterpe)는 각기 리라(lyre, 고대 발현악기)와 플루트를 상징으로 가졌다. 합창과 춤의 여신 테르프시코레(Terpsichore)는 손에 리라와 작은 채를 들고 춤을 추는 자태로 그려졌다. ‘역사’를 관장한 클레이오(Cleio)는 앉거나 기대서 긴 두루말이와 책을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날 때가 많았으며, ‘천문학’을 관장한 우라니아(Urania)는 주로 막대기로 천구를 가리키고 있었다.
고대인들에게 뮤즈는 그 자체가 예술적 영감이나 학문적 재능을 의미하기도 했는데, 이는 뮤즈 여신들의 샘 신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람들은 보이오티아(Boeotia)의 헬리콘(Helixon) 산과 트라케(Thrace)의 피에리아(Pieria) 산에 뮤즈 여신들이 살고 있으며, 그 곳들에 있는 샘물을 마신 자는 그녀들로부터 뛰어난 재능을 물려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로 인해 고대 뮤즈 여신들의 성소에는 영감을 얻고자 하는 예술가와 학자들이 많이 찾아들었다. 일부 고대 작가들은 자신은 뮤즈 여신들이 노래하는 것을 단지 받아 적을 뿐이라고 생각하여 중요한 작품을 쓸 때는 그녀들에게 먼저 기도를 올리기도 했다. 오늘날에 뮤즈는 작가나 화가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존재를 지칭하는 말로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편, 인류의 뛰어난 문화유산과 지적자산을 대중들에게 전시하는 박물관(또는 미술관)을 가리키는 ‘뮤지엄(museum)’이란 단어도 뮤즈 여신들을 모시는 신전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나온 말이다. 영어에서 음악을 의미하는 ‘뮤직(music)’도 뮤즈 여신에게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뮤즈 [Muse]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알렉상드르 빅토르 르키앙, 에우테르페, 1859년경
Eὐτέρπη(그리스어) |
무사이 |
플루트, 음악, 서정시 |
기쁨을 주는 |
무사이 여신들, 레소스 |
제우스의 딸, 므네모시네의 딸, 레소스의 어머니 |
에우테르페 인물관계도
에우테르페를 비롯한 무사이 여신들은 제우스와 티탄 12신(오케아노스, 코이오스, 크레이오스, 이아페토스, 히페리온, 크로노스, 테티스, 포이베, 테이아, 레아, 테미스, 므네모시네) 중 하나인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 사이에서 태어났다. 에우테르페는 강의 신 스트리몬과의 사이에 레소스를 낳았다.
신화 이야기
무사이 여신들
무사이의 출생에 대해서 전하는 내용은 원전에 따라 차이가 나는데, 『신들의 계보』에 의하면 무사이는 제우스와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 사이에서 태어난 딸들이다. 제우스는 거인들 즉 기간테스에 맞서 싸운 힘든 전쟁에서 승리한 후 승리의 축가를 지어 그 기쁨을 영원히 기억하고자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전쟁에 대해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는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가 필요했다. 이에 제우스는 므네모시네와 9일 동안 동침했고, 바로 여기에서 에우테르페를 비롯하여 9명의 무사이 여신들이 태어난 것이다.
무사이는 예술의 여신들이며 동시에 모든 것을 기억하여 간직하는 학문의 여신들이기도 하다. 올림포스 산에서 신들의 연회가 열리면 무사이 여신들은 아폴론이 연주하는 리라소리에 맞춰 노래를 불러 신들에게 즐거움을 주었다.
아폴로와 뮤즈시몽 부에, 1640년, 부다페스트 미술관 소장
신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무사이 여신들은 사람들에게는 예술적 재능과 영감을 주었다. 문자가 없던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노래를 통해 이야기를 전해주는 음유시인들의 작업이 기억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는데, 무사이 여신들이 바로 예술가의 기억력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고대 그리스 예술가들은 예술적 영감과 재능을 무사이 여신들로부터 받았다고 생각했다.
뮤즈들의 석관왼쪽부터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대개는 나팔과 물시계를 들고 다니는데 여기서는 책을 들고 있는 역사 담당의 클레이오, 웃는 가면을 들고 있는 희극 담당의 탈리아, 연가를 담당하는 에라토, 플루트를 들고 있는 음악의 여신 에우테르페,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는 찬가와 무언극의 여신 폴리힘니아, 월계관과 책을 들고 있는 서사시의 여신 칼리오페, 리라를 들고 있는 가무의 여신 테르프시코레, 지구의 및 나침반과 함께 있는 천문의 여신 우라니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슬픈 가면을 쓰고 있는 비극의 무사 멜포메네.
무사이의 수도 원전에 따라 차이가 나는데, 처음에는 3명이었다가 점차적으로 9명까지 늘어나게 되었다. 『신들의 계보』는 9명의 무사이를 하나하나 이름까지 거명하고 있다. 학문과 예술을 관장하던 무사이는 처음에는 그 역할이 개별적으로 정해지지 않았고 로마 시대에 들어와서야 무사이 하나하나에게 특정한 역할이 지정되었는데, 개별적인 역할 또한 원전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난다. 아래 사진에 있는 석관은 로마시대에 만들어졌는데, 거기에는 9명의 무사이가 자신이 주관하는 분야를 상징하는 물건과 함께 조각되어 있다.
음악의 무사 여신 에우테르페
에우테르페는 음악과 서정시를 맡고 있는 무사 여신으로 이름의 의미는 “기쁨을 주는” 여신을 의미한다. 무사이 여신들의 이름은 관장하고 있는 분야와 관련하여 각 여신들의 재능과 적성을 고려하여 지어졌는데, 디오도로스 시쿨루스가 쓴 『역사총서』에 의하면 음악의 여신은 자신의 노래를 듣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기 때문에 에우테르페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에우테르페를 상징하는 물건은 플루트로 대개의 경우 여신은 예술 작품 속에서 플루트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에우테르페는 강의 신 스트리몬과의 사이에 트라키아의 왕 레소스를 낳았다고 한다. 에우리피데스에 의하면 레소스의 어머니는 무사이 여신들 중의 한 사람으로 음악을 담당하는 여신이라고 하는데, 구체적인 이름은 언급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일반적인 설에 의하면 레소스의 어머니는 에우테르페라고 한다. 에우리피데스가 쓴 『레소스』에는 레소스의 출생이 무사이 여신 중의 한 명인 그의 어머니의 말을 통해 상세하게 전해지고 있다.
여기에서 레소스의 출생이야기는 트라케의 전설적 가수이자 시인인 타미리스와 연관되어 전해진다. 자신의 음악적 재능에 오만해진 타미리스는 무사이 여신들에게 노래 시합을 하자고 도전을 한다. 이에 무사이 여신들이 악기를 나르기 위해 강물을 건너다가 그 중 한 명이 그만 강물에 빠져 강의 신 스트리몬의 침대에 들게 되어 임신을 하고 그 결과 레소스가 태어난 것이다.
레소스는 트로이 전쟁에서 트로이를 돕기 위해 왔으나 오디세우스와 디오메데스의 습격을 받아 목숨을 잃고 명마와 전차를 빼앗긴다.
에우테르페 인물관계도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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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우테르페를 비롯한 무사이 여신들은 제우스와 티탄 12신(오케아노스, 코이오스, 크레이오스, 이아페토스, 히페리온, 크로노스, 테티스, 포이베, 테이아, 레아, 테미스, 므네모시네) 중 하나인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 사이에서 태어났다. 에우테르페는 강의 신 스트리몬과의 사이에 레소스를 낳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에우테르페 [Euterpe] - 무사이 (그리스로마신화 인물백과, 안성찬, 성현숙, 박규호, 이민수, 김형민)
그리스어로 ‘기쁨’이라는 뜻이다. 제우스와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 사이에서 태어난 아홉 뮤즈 가운데 하나로서 칼리오페·클리오·테르프시코레·탈리아·멜포메네·에라토·폴림니아·우라니아의 자매이다. 이들에 아오이데·므네메·멜레테 등의 세 뮤즈를 더해 12자매라고도 한다.
예술과 역사·천문학 등 광범위한 학예 영역을 관장하는 뮤즈들 가운데 에우테르페는 음악 또는 서정시를 주관하며, 피리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트라키아 강의 신 스트리몬과의 사이에서 레소스를 낳았다.
트라키아 왕 레소스는 에우테르페의 자매인 칼리오페의 아들이라고도 하는데, 그는 트로이전쟁에 참가하여 오디세우스와 디오메데스의 습격을 받고 목숨을 잃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에우테르페 [Euterpe]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 Photo RMN, Paris - GNC media, Seoul
이미지뷰어로 이동에우테르페 요정, 플루트를 연주하는 여인
La Muse Euterpe, une femme jouant de la flute지오반니 도메니코 세리니(Giovanni Domenico Cerrini, Cavalier Perugino) 출생-사망 1609년~1681년 |
17세기경 |
유화 |
캔버스에 유채(Huile sur toile) |
63 x 47 cm |
렌 미술관 |
Calliope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홉 뮤즈의 우두머리
무사이 |
제우스의 딸, 아폴론의 아내, 오르페우스의 어머니 |
서사시, 노래, 지혜로운 중재 |
아름다운 목소리 |
두루마리, 책, 펜, 명판 |
Καλλιόπη(그리스어) |
칼리오페원본보기
Καλλιόπη(그리스어) |
무사이 |
서사시, 노래, 지혜로운 중재 |
아름다운 목소리 |
두루마리, 책, 펜, 명판 |
제우스의 딸, 아폴론의 아내, 오르페우스의 어머니 |
칼리오페 인물관계도
칼리오페는 우라노스와 가이아의 딸인 티탄 신족 므네모시네가 제우스와 관계하여 낳은 아홉 명의 무사이 자매 중 맏이다. 아폴론(혹은 트라키아의 왕 오이아그로스)과의 사이에서 두 아들 오르페우스와 리노스를 낳았다.
신화 이야기
아도니스를 둘러싼 분쟁의 중재
헤시오도스는 『신들의 계보』에서 칼리오페가 무사이 중에서 가장 빼어나고 또 현명하여 큰 분쟁도 능숙하게 금세 해결한다고 하였다. 칼리오페가 아도니스를 둘러싼 아프로디테와 페르세포네의 다툼을 중재한 일은 유명하다.
아름다운 청년 아도니스는 아프로디테의 분노를 사서 나무로 변신한 미르라의 몸에서 태어났다. 아프로디테는 아기 아도니스를 하데스의 아내 페르세포네에게 맡겨 기르게 하였다. 아도니스가 아름다운 청년으로 자라나자 아프로디테는 그를 되찾으려고 하계로 갔지만 마찬가지로 아도니스에게 마음을 빼앗긴 페르세포네는 내주려 하지 않았다. 두 여신은 서로 아도니스를 차지하려고 다투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제우스에게 중재를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제우스는
지혜로운 무사(뮤즈) 칼리오페를 중재자로 보냈고, 칼리오페는 두 여신에게 아도니스와 함께 보낼 시간을 균등하게 배분해 주었다. 칼리오페는 아도니스를 1년의 3분의 1은 아프로디테와 보내도록 하고, 다른 3분의 1은 페르세포네와 보내도록 했으며, 나머지 3분의 1은 아도니스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지내도록 했다. 그러자 아도니스는 1년의 3분의 2를 아프로디테와 보냈다.
오르페우스의 탄생
칼리오페는 아폴론과의 사이에서 두 아들 오르페우스와 리노스를 낳았다. 어머니 칼리오페에게서 노래와 시를 배운 오르페우스와 리노스는 모두 음악의 신으로 불리는 존재가 되었다. 특히 오르페우스는 리라의 선율로 짐승과 초목까지도 감동시켰으며, 죽은 아내를 찾아 저승으로 내려가서는 하데스마저도 감동시켜 아내 에우리디케를 지상으로 데려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내기도 했다.
오르페우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칼리오페오귀스트 이르슈, 1865년
다른 설에 따르면 오르페우스의 아버지는 아폴론이 아니라 트라키아의 왕 오이아그로스인데, 그는 선택받은 자들에게만 비밀스럽게 전해진다는 디오니소스의 비의(秘儀)를 물려받은 인물이었다. 오이아그로스는 아들 오르페우스에게 집안의 전통으로 내려오는 디오니소스의 비의를 전해 주었다고 한다.
신화 해설
무사이
칼리오페는 아홉 명의 무사이 자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 ‘무사이’는 ‘무사(뮤즈)’의 복수형으로 아홉 자매를 통칭할 때 쓰이는 표현이다. 무사이는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와 제우스와의 사이에서 난 딸들인데, 므네모시네는 올림포스 산 동쪽 피에리아에서 제우스와 9일 밤낮을 관계를 맺어 이들을 낳았다고 한다. 아홉 명의 무사이는 음악, 미술, 문학, 철학, 역사 등 광범위한 지적 활동을 관장하는 여신들로 시인, 음악가, 미술가 등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역할을 했다.
아홉 명의 무사이: 왼쪽부터 클레이오, 탈리아, 에라토, 에우테르페, 폴리힘니아, 칼리오페, 테르프시코레, 우라니아, 멜포메네루브르 박물관 부조를 모사한 삽화, 마이어백과사전, 1888년
처음에 무사이는 멜레테(‘수행’), 므네메(‘기억’), 아오이데(‘노래’) 3명이었는데, 헤시오도스가 이들을 9명으로 언급한 뒤로 이들 자매의 숫자는 아홉 명으로 굳어졌다. 더 후대로 가면 이들 아홉 자매가 관장하는 영역도 구체적으로 지정되었다.
예를 들어 칼리오페는 서사시를 관장하는 여신으로서 호메로스에게 트로이 전쟁의 노래를 들려주어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탄생시킨 장본인으로 간주된다. 나머지 무사이를 열거하자면, 클레이오는 역사, 에우테르페는 서정시, 탈리아는 희극, 멜포메네는 비극, 테르프시코레는 합창 가무, 에라토는 독창, 폴리힘니아는 찬가, 우라니아는 천문을 담당하였다.
무사이는 음악과 예언의 신으로서 그녀들의 지도자 격인 아폴론 신과 자주 함께 묘사되고, 올림포스에서 열리는 신들의 연회에서 우미의 세 여신 카리테스, 계절의 여신 호라이 등과 함께 춤을 추기도 한다.
칼리오페 인물관계도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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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오페는 우라노스와 가이아의 딸인 티탄 신족 므네모시네가 제우스와 관계하여 낳은 아홉 명의 무사이 자매 중 맏이다. 아폴론(혹은 트라키아의 왕 오이아그로스)과의 사이에서 두 아들 오르페우스와 리노스를 낳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칼리오페 [Calliope] - 무사이 (그리스로마신화 인물백과, 안성찬, 성현숙, 박규호, 이민수, 김형민)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여자’라는 뜻으로서 칼리오페이아라고도 한다. 제우스와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 사이에서 태어난 아홉 뮤즈의 연장자로서 서사시 또는 서정시를 관장하였다고 한다. 손에 서판(書板)을 들고 있거나, 머리에 금관을 쓰고 종이나 책 두루마리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아프로디테(로마신화의 비너스)와 페르세포네가 미소년 아도니스를 차지하려고 다툴 때 제우스의 부름을 받아 서로 균등한 시간을 아도니스와 함께 지낼 수 있도록 중재하여 분쟁을 가라앉혔다고 한다.
칼리오페는 트라키아의 왕 오이아그로스 또는 아폴론과의 사이에서 오르페우스와 리노스를 낳았으며, 스트리몬의 하신(河神)과의 사이에서 트라키아의 왕이 된 레소스를 낳았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칼리오페 [Calliope]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동물들에 둘러싸인 오르페우스원본보기
Ὀρφεύς(그리스어) |
음유시인 |
예술, 음악, 시, 지극한 사랑 |
‘어둠’ 혹은 ‘고아’ |
거문고자리 |
리라, 키타라 |
아르고호 원정대, 에우리디케 |
오르페우스 인물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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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페우스는 디오니소스의 조력자로 유명한 칼롭스의 아들인 트라키아 왕 오이아그로스(혹은 아폴론)와 무사이 여신 칼리오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헤라클레스의 음악 선생이었던 음유시인 리노스와 쌍둥이 형제라고도 한다. 오르페우스는 님페 에우리디케와 결혼하였지만 둘 사이에 자식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신화 이야기
리라의 명수
오르페우스는 트라키아 왕 오이아그로스(혹은 아폴론)과 학예의 여신인 무사이 자매 중 하나인 칼리오페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태어난 곳은 올림포스 산 근처 핌플레이아이지만 자란 곳은 어머니와 다른 무사이 여신들이 사는 파르나소스 산이었다. 이곳에서 그는 어머니로부터 시와 노래를 배우고, 또 음악의 신 아폴론으로부터 리라 연주를 배워 뛰어난 음악가가 되었다.
그가 아폴론으로부터 선물 받은 황금 리라를 연주하면 초목도 감동을 받고 사나운 맹수들이 얌전해졌다고 한다. 나중에 아르고호 원정대에 참여해서는 리라 연주로 바다의 폭풍을 잠재우고, 괴조 세이레네스의 유혹하는 노래 소리를 제압하였다. 또 원정대가 목적지인 콜키스에 도착했을 때는 그가 리라 연주로 아레스의 숲을 지키는 용을 잠재운 덕분에 무사히 황금 양털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오르페우스와 관련하여 가장 유명한 신화는 아내 에우리디케를 찾아 저승으로 내려간 이야기다.
오르페우스의 노래를 듣는 님페들샤를 잘라베르, 1853년, 월터스 미술관, 볼티모어
에우리디케의 죽음과 저승 여행
오르페우스의 아내 에우리디케는 아름다운 물의 님페(혹은 나무의 님페)였다. 에우리디케는 어느 날 트라키아의 초원을 산책하다가 아폴론과 키레네의 아들 아리스타이오스가 자신을 계속 따라오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그가 자신을 겁탈하려 한다고 여겨 황급히 도망치다가 그만 뱀에 물려서 죽고 말았다.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의 갑작스런 죽음에 하염없이 슬퍼하다가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이기지 못하고 그녀를 찾아 저승으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오르페우스는 애절한 노래와 리라 연주로 저승의 신들을 감동시켜 마침내 사랑하는 아내 에우리디케를 다시 지상으로 데려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내기에 이르렀다. 두 사람이 떠나기 전에 저승의 왕 하데스는 한 가지 주의를 주었다. 에우리디케는 이미 망자가 되었던 몸이기 때문에 반드시 오르페우스의 뒤에서 따라가야 하며, 오르페우스는 지상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아내 에우리디케를 향해 몸을 돌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하계에서 지상으로의 기나긴 여정이 거의 다 끝나고 저만치서 한 줄기 지상의 빛이 비춰오자 오르페우스는 사랑하는 아내를 보고 싶은 마음을 더 이상 억누르지 못하고 그만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그러자 에우리디케는 안개의 정령으로 변하여 다시 하데스의 나라로 사라져버렸다. 오르페우스는 또다시 뒤따르고자 하였지만 저승으로 가는 길은 이미 막혀버린 뒤였고 이제는 그의 음악도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오르페우스는 가눌 길 없는 절망감 속에서 홀로 지상으로 돌아와야 했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에드워드 포인터, 1862년
오르페우스의 죽음
사랑하는 아내 에우리디케를 영영 잃고 난 오르페우스는 실의에 잠겨 아내의 기억에만 매달릴 뿐 어떤 여인과도 가까이 지내려하지 않았다. 그 전까지 오르페우스는 종종 디오니소스를 섬기는 트라키아의 여인들인 마이나데스를 초대하여 디오니소스의 주연을 벌이기도 했지만 이제는 젊은이들과만 어울릴 뿐 그녀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 때문에 오르페우스는 동성애의 창시자로도 언급된다).
트라키아의 여인들은 오르페우스가 자신들을 무시한다고 여겨 분노했다. 그러던 중 숲을 거닐던 오르페우스가 디오니소스 의식을 통해 광기에 빠져 있던 트라키아 여인들의 눈에 띄었다. 여인들은 미친 듯이 달려가 오르페우스를 둘러싸고는 그의 몸을 갈가리 찢어 죽였다. 또 다른 설에 따르면 오르페우스의 죽음은 아프로디테의 저주 때문이었다고 한다. 아프로디테가 미소년 아도니스를 놓고 페르세포네와 다툴 때 오르페우스의 어머니 칼리오페가 중재에 나서 두 여신에게 1년에 절반 씩 번갈아가며 아도니스를 차지하도록 했는데, 아프로디테가 이 결정에 불만을 품고 대신 아들에게 복수하였다는 것이다. 아프로디테는 트라키아의 여인들 마음 속에 오르페우스에 대한 미칠 듯한 욕망을 불어넣어 그를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다가 사지를 찢어 죽이게 하였다.
여인들은 오르페우스의 시체를 강물에 던져버렸다. 바다로 흘러나간 오르페우스의 시체는 멀리 레스보스 섬에서 머리만 리라와 함께 발견되었다. 레스보스의 주민들은 오르페우스의 머리를 거두어 엄숙히 장례를 치르고 무덤을 만들어주었다. 그 이후 레스보스 섬에서는 뛰어난 서정시인들이 배출되었다고 한다. 아폴론이 선물한 오르페우스의 황금 리라는 신들에 의해 하늘의 별자리가 되었다 (거문고 자리).
오르페우스의 죽음안토니오 베가, 20세기, 오르세 미술관
오르페우스의 머리를 든 트라키아 처녀귀스타브 모로, 1865년, 오르세 미술관
종교가 된 오르페우스의 신화
음악의 힘을 빌려 저승까지 내려갔다 다시 지상으로 돌아온 오르페우스의 신화는 훗날 사람들에 의해 종교로 발전되었다. 사람들은 오르페우스가 저승에 다녀올 때 인간이 죽은 뒤 만나게 되는 모든 장애와 함정을 피해 천상에 이르는 비결을 알아내서 가져왔다고 믿었다. 그래서 오르페우스가 저승에서 돌아와 썼다는 시와 문헌들을 토대로 교리와 신비의식을 만들고 오르페우스를 창시자로 하는 종교집단을 이루었다. 오르페우스가 썼다는 80여 편의 『오르페우스 찬가』와 아르고호 원정대의 내용을 오르페우스를 중심으로 바꾼 『아르고나우티카 오르피카』는 오르페우스교의 경전으로 꼽힌다.
[네이버 지식백과] 오르페우스 [Orpheus] - 음유시인 (그리스로마신화 인물백과, 안성찬, 성현숙, 박규호, 이민수, 김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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